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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이상하게 여성 감염체가 남성 감염체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듯 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손이 얼얼할 지경이었으니.. 내가 막은 모습을 보고 바로 발을 날리는
감염체였지만 손쉽게 피할수 있었다. 저들의 스피드에 익숙해지자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등한 파괴력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약간의 기교도 부릴 수 있었다.
" 퍽!!! 퍽!!! "
" 스걱!!! "
여신 날리는 주먹을 피하면서 정글도로 상처를 내었다. 확실히 남성 감염체 보다
빠른 스피드를 가졌고 지방이 두꺼워서 그런지 깊게 상처를 내기는 힘들었다.
심장부위에 있는 가슴은 정글도로 깊게 찔러도 심장까지 가기 어려웠다. 즉
여성 감염체는 목을 베어야만 사살할 수 있었다. 가슴이 심장을 방어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 젠장.... 글래머 좋아한게 후회되는 중인데!! "
" 이런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
어느새 다가온 김 중사가 나를 도와주며 말했다. 운 좋게 남성 감염체는 쉽게
처리 했지만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감염체라서 그런지 방심하지 않아 처리가
힘들었다.
" 기태야!! 소총!!! "
" 응?? 아!!! 받아!!! "
기태가 들고 있던 K-2소총을 받은 뒤 기회를 노렸다. 이미 흥분 할 때로 흥분
한 감염체는 연신 공격을 퍼부어 다가가기 힘들었다.
" 지금이다! "
김 중사의 공격으로 뒷걸음 치는 모습을 보고 바로 파고들어 턱 밑에 총구를
겨냥한 뒤 연사로 쏴버렸다.
" 타타타타타탕!!! "
몇 초 만에 탄창이 비어버렸다. 난 재빨리 품속에서 벗어났고 머리에 피가
흐르던 감염체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 허억...허억..."
" 하....대단한데? "
" 죽을 것 같아..힘들어..."
대형 감염체와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했다. 생각보다 강한 나의 힘과
스피드를 느꼈고 덕분에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 공격했던 것이 크게 작용한 듯
했다. 병사들과 기태는 나와 김 중사의 모습을 보고 환호 했다. 대형 감염체를 상대로 승리했으니 저들에게 희망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덕분에 나 또한 자신감을 얻었고 김 중사도 자신감을 얻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철문이 열리지 않아 나갈 수가 없었기에 우리는 차를 몰고 빠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대단하십니다! 대형 감염체를 상대로! "
" 아닙니다. 운이 좋았죠. "
" 운도 실력입니다! 이제 우리도 저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셨습니다!"
" 이제!! 우리도 희망이 생긴겁니다! "
다들 한껏 들떠 김 중사와 나를 치켜세웟다.
복귀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하였다. 계획에 없던
1박이라 연수원에서 걱정할 것은 안 봐도 뻔했기에 잡혀 사는 기태와 내 처지에
지금의 안전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저..천천히 좀 가면.."
"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사고 나서 죽나 늦어서 죽나 피차 일반
입니다. "
" 아..아니..그래도.."
" 부아아앙!!! "
답답할 정도로 느린 군용트럭은 아무리 엑셀을 밟아도 80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가장 발전해야 할 군에서 70년대에 운용된 차량이 지금
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나마 운전하는 차량은
파워핸들이었다. 내가 땅을 밟고 있는 건지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힘을 주어 밟아도 차량은 더 이상 속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 젠장!!!! 뭐 이런!!! "
" 군용차이지 말입니다! 사제차가 아닙니다! "
" 더럽게 무겁기만 하고! 기어변속도 느리고!! 연비고 개똥이고!!
이번에 수색가면 차량부터 구해야지! 에잇!! "
" 저저저저!!! 앞! 앞! 앞!!! "
" 몰라!!! "
" 퍼억!! "
도로에서 산책을 즐기는 것으로 추정되는 몇 마리의 감염체가 군용트럭 범퍼에
치여 밑으로 깔려버린 듯 차량이 덜컹 거렸다. 일반 차량이면 정면으로 밀어
버리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테지만 군용 트럭 범퍼는 거의 최강의 내구력을
자랑했고 높은 차고는 하부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과감히
밀어 버렸다. 덕분에 쫓아오는 후속 차량은 별다른 피해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어느덧 눈에 익숙한 건물과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속도를 줄여 주위를 살피며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우리를 따라오는 감염체가
생기게 되면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것이 분명했기에 조심스럽게 이동하였다.
다행이 근처에는 많은 숫자의 감염체가 발견되지 않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연수원 입구를 지나 정문으로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걱정
스럽게 바라보며 우리를 마중 나왔다.
" 무사히 왔구만! 혹시 피해는 없었나? "
" 네. 사망자는 없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넉넉하게 물품을 챙겨올 수 있었습니다.
우선 짐부터 내리고 말씀드리지요."
" 그래!! 어서 다들 물건을 내리게나! "
우리를 제일 처음 반긴 사람은 대령님이었고 뒤따라 은혜와 보미가 뛰어왔다.
" 오빠!!! "
" 하하!! 미안!! 걱정했지? "
" 응! 그래도 무사히 와서 다행이야.."
내 품에 안겨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울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지만 이정도 상황에 약해지는 것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은혜도 요새 그것을 깨달았는지 조금씩 변해가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투정을 부리거나 제대로 씻지 못해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 행동을 자제했고
약간 편식을 하는 식성을 고쳐나갔다. 점점 예전 사회의 모습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맞게 변해가는 모습이 기특했다. 난 말없이 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안아주며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날이 풀려가는 상황이라 감자나 고구마 등을 심어볼까도 했지만 그쪽으로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 몇 개만 심어 논 상태였고 수확을 하려고 해도 몇 달은 기다려야 했기에 당장 먹을거리가 급했다.
" 이제..더 이상 지근거리에 식량을 구할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서 나가봐야 합니다. "
" 하긴. 더 이상은..."
" 애초에 허허 벌판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 정도 버틴 것만 해도 오래
버텼다고 할 수 있겠죠. 연료도 점점 구해오는 양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 언젠가는...여기를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 그때가 오기 전에는 여기서 최대한 버텨야겠지.."
" ......."
"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죠. 현재까지 모아진 물품도 상당하고
다행스럽게 근처에는 생각보다 감염체가 적어 위험부담은 덜 한 상황입니다.
인구수가 많은 구역이 아니라 주유소를 털어도 많은 양의 연료를 챙길 수
있으니 좋게 생각하자고요. 번화가나 인구수가 많은 도심이었다면 우리는 더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고요."
우리는 대화를 끝내고 구해온 물품들을 정리했고 내일 식량과 연료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 전까지는 다녀온 일행들은 휴식을 취하며 내일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은혜와 함께 카라반이 주차 된 곳으로 갔다. 틈틈이 정비를 해놔서 깔끔한 모습이었다. 카라반을 가지고 피난을 시작했던 것이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가을이 다가올 때 즈음 세상이 기울어져 갔고 이제는 어느덧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이 오기 시작하였다. 물론 일교차가 아직은 크긴 했지만 낮에는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겨울이야 얼어 죽지만 않는다면 버틸 만 했다. 냉장고가 돌지 않아도 차가운 온도의 계절은 식량의 변질을 막아주었고 감염체의 신체활동도 어느 정도 더디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날씨가 풀려 여름이 오면 각종 전염병과 식중독의 위험이 증가할 것이며 사람을 지치게 만들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아무 말이 없자 답답했던 은혜가 말을 했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
" 응?? 아...미안.. 이것저것 생각 좀 하느라고.. "
" 좋은 생각은 아니었나 봐요? "
" 흠.. 나쁜 생각도 아냐... 그냥 지금의 상황에 대한 생각? "
" 오빠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사람은 아니니까... 좋은 생각이겠죠? "
" 정리가 되면 가장 먼저 말해줄게. 아직 정리 된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
" 그래요!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요! "
팔짱을 낀 손을 강하게 잡으며 말하는 은혜였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만났다면
훨씬 더 잘해 줬을 것인데 이런 상황이 아쉽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까지 살아남은 시간이 아까워서 라도 어디선가 있을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을 해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상황을 준비하여 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은혜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하나 피웠다.
" 뭐해 형? "
" 응?? 재효구나? "
한동안 바빠 재효랑 이야기 할 시간도 없었다. 조금은 소홀해진 것이 미안했지만
나름 잘 적응하여 지내는 모습이었다. 너무 기태랑 다닌 것이 아닌가 싶었다.
" 미란이가 오랜만에 은혜랑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해서 왔어. 한동안 정신없어서
다들 소홀해지는 모습인데 조금은 여유를 가지는 편이 어때?"
" 그래? 내가 그렇게 보였나? "
" 응. 형답지 않게 굉장히 바빠 보였어. 같이 일 할 때도 서두르거나 급한 모습
보인 적 없었잖아. 형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야..."
" 미안하다... "
" 뭐가 미안해... 우리 지키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모습인데.. 하지만..."
" 응?"
" 형이 말했잖아. 너무 급한 행동은 오히려 돌아가게 만든다고. 빠른 속력의
자동차는 시야가 좁아 주위 풍경을 못보고 지나치는 법이라고. 여행의
목적지에 빠르게 가기 위한 행동이 제일 바보 같다며? 목적지에 가는 길도
여행의 한 부분인데 목적지에 빨리 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여행의 참맛을
모르는 거라고. 그래서 형 여행 갈 때 굉장히 느긋하게 가는 편 아니었어?
그런 여행스타일로 인해서 카라반도 구입한 것이고.."
" 하긴... "
" 우리가 계속 부담 가지고 하지 말라고 해도 얼마 안가고...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야.."
" 하하! 내가 너에게 조언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
" 훗... 내가 처음 형을 만났을 때 형 나이가 지금 내 나이가 됐어.."
" 벌써 그렇게 오래됐구나.."
" 시간 참 빠르지? 어느새 꼬맹이였던 내가 20대 중반을 바라보다니.."
" 그래봐야 꼬맹이야 넌..."
" 참네... 은혜한테 하는 행동은 형이 더 꼬맹이다! "
" 하하!! 그래그래!! 고맙다!! "
" 아파!!! "
내가 재효의 등을 강하게 치며 웃었다. 내가 이들에게 소홀해도 이들은 언제나
나를 챙겨주고 지켜봐 주는 모습이 너무 고맙기만 했다. 담배를 다 피고 방으로
들어가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은혜와 미란이가 보였다. 재효와 나도 두 아이
틈에 끼어 서로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여 근처 번화가를 찾았다. 주유소에 들러 많은 양의 기름도 챙길 수 있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무리지어 다니는 감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흠. 대략 오백은 되어 보이네?"
" 거리가 있어서 우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테고 다행히 우리랑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네? 조금은 안심이네."
" 모르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내려올 가능성도 있으니 며칠간은 긴장하자."
" 감염체가 지나갈 때 까지 현 위치에서 대기한다!"
우리는 섣불리 움직여 감염체들의 시선을 끌기보다 조용히 그들이 물러나기를 기대하며 숨을 죽여 감염체를 바라봤다. 한 시간 가량 배회하던 감염체는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 일제히 한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당황하였지만 현재 우리 위치나 연수원의 방향이 아니었기에 안도하였고 감염체들의 움직임에 의구심이 생겼다.
" 마치 누군가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모습인데?"
" 맞아. 무리 중 리더가 있나봐?"
" 어째 연구했던 것보다 몇 번의 전투에서 얻는 정보가 더 많냐."
" 책상과 현장은 다른 법이지."
" 이제 다들 물러갔나봐. 우리도 움직이자."
" 응! 다들 이동한다! "
우리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감염체들이 쓸고 지나간 곳으로 들어갔다. 여름 휴가철로 인기가 높은 해변이지만 현재는 살아있는 존재라고는 우리가 전부였다.
음식점들을 뒤져 먹을 만한 음식들을 찾았고 간단한 생필품들을 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편의점은 이미 누군가 털어가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은 많지 않았다.
휴양지답게 좁은 거리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편의점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털려있었다.
" 흔적을 봐서는 오래전에 털린 것이 아니라면 중간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인데?"
" 발자국과 타이어 자국"
" 흠. 크게 좋은 상황은 아닌데. 근처에 누군가 있다면 분명 우리를 견제할텐데."
" 여기서 연수원까지는 거리가 꽤 되니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냐."
" 그랬으면 좋겠다만."
" 이제 움직이자. 해가 지겠다."
눈이 많이 녹기는 했지만 차량이 지나간 곳에 눌린 눈은 다른 곳보다 늦게 녹는 편이었기에 우리는 전에 누군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우리는 혹시 모를 미행을 신경쓰며 다시 연수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