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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42화 (4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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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며칠간 휴식을 취하며 한가한 날을 보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로 인해서 인지 능력이 점점 발전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글도가 초반의 무거움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이었고 스피드 또한 발전해 가고

있었다. 대형 감염체와의 사투 후 자심감이 늘었고 수련은 아니지만 조금 더

효율적으로 정글도를 사용할 방법을 연구했다. 부사관들의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지식을 배우며 연습했고 덕분에 수월한 움직임을 익힐 수 있었다.

" 열심히 하시네요..? "

" 응?? 아...민희씨..라고 하셔죠? "

" 네... "

" 칼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

" 아뇨...적절한 주인을 찾아 간 거죠."

이제 연구를 할 수가 없어 지하에서 나와 지내는 상황이라 적지 않게 마주쳤다.

연구복이 아닌 몸에 붙는 벨벳 츄리닝을 입은 모습을 보니 약간은 어색함이

감돌았다. 단발머리에 귀여운 얼굴을 한 민희는 은혜와는 정반대의 스타일

이었다. 160이 안 되는 키와 약간은 통통한 체구에 귀여운 스타일이 강한

아이였다. 몇 초간 적막감이 흐르고 있던 찰나 재효가 다가왔다.

" 형!! 어.. 민희누나도 있네? "

" 서로 말 놓는 사이야? "

" 응!  그냥 편하게 지내기로 했어."

민희와 재효는 둘이 한참을 이야기 하는 모습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설마 재효가 미란이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닐 테고 다른 용무 가 있어서 찾아온 듯 보였기 때문이다.

" 아!!! 형!!! 맞다!! 형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

" 뭔데..?"

" 어....어.....뭐였드라..."

" 뭐냐!! 까먹은 게야? "

" 아...갑자기 생각이 안나..."

" 이 녀석 봐라... 체력만 늘었지..머리는 그대로네.."

한참을 괴로워하며 자신이 무슨 용무로 왔는지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모습의 재효

를 바라보며 한심하게 쳐다봤다. 땀이 온몸에 흘러 찝찝한 느낌이 지속되자 난

운동을 그만하고 방으로 향하였다. 내가 움직이고 한참을 걸어가도 재효가 왜

나에게 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아!! 개운해!! "

" 운동하고 왔어요? "

방에서 책을 보던 은혜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귀여운

하트 모양의 수면원피스잠옷을 입고 긴 다리를 꼬아 소파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요염해 보였다. 원피스 잠옷은 아슬아슬한 위치까지 말려

올라가있는 모습이었고 탑형태의 원피스는 은혜의 큰 가슴을 다 가리지 못하고

가슴골이 노출되어 있었다. 내 음흉한 시선을 느꼈는지 황급히 무릎담요로 몸을

가려버렸다.

" 응큼해...."

" 보이는 걸 본건데 뭘..훔쳐 본 것도 아니고.."

" 정말 능글맞다니까.. 늑대마냥.."

" 원래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지..히히.."

난 소파로 몸을 던져 은혜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보들보들한 살결의

느낌이 뺨에 전달되었고 나는 연신 고개를 까딱이며 피부감촉을 느꼈다.

"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린아이랑 다를 것이 없네요.."

" 히히...좋은 걸 어떻게.. 아.. 부드럽다.."

" 에휴... 남자친구가 아니고 애기 키우는 느낌이예요.."

" 아무렴 어때.. 자기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내가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은혜의 긴 손가락이 내 뺨을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떨어져서 은혜를 찾았던 3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같은 침대에 누워

지냈기에 보통의 커플 보다는 오랜 시간 지낸 것이 되어 서로 빠르게 알아가는

중이었다.

" 정말 자기는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 나도 자기 볼 때마다 좋아...헤헤.."

" 간지러워요... 수염 좀 깍아요. "

" 응?? 괴롭혀야지!! "

수염이 약간 자라기 시작하는 시점은 은혜에게 매우 따가운 감촉을 느끼게 했다.

나는 턱을 허벅지에 마치 빗자루 마냥 쓸고 다니자 은혜는 내 머리를 잡고 들어

내 괴롭힘을 중단시켰다.

" 그만! 나도 그럼 간지럼 태울 거예요."

" 안돼. 괴로워! "

" 저도 괴로워요! 왜 자기만 생각해요! "

" 난 즐거우니까..헤헤.."

한참을 옥신각신 떠들고 나는 은혜의 허리를 안고 품에 안겼다. 다 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긴 모습.. 은혜 특유의 살내음을 맡자 운동 후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

했다. 은혜는 한 손으로는 내 배를 어루만지고 남은 한 손으로는 머리를

만져주었다. 마치 엄마의 품속에 있는 듯 한 느낌... 나는 그런 포근함을 느끼며

서서히 잠이 들어버렸다.

" 오빠! 일어나요..."

" 응?? 왜..."

" 너무 오래 자면 밤에 못자요.. 밥이라도 먹어요.."

" 흠...그럴까? "

하늘은 보니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두워진 모습이었다. 은혜는 내가 너무 오래

자는 것이 걱정되어 중간에 나를 깨워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게 만들었지만

이미 잠에 취한 나는 별다른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침대에서

뒹굴 거리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은혜가 말을 했다.

" 그렇게... 하루 종일 침대에서 있으면 허리 안 아파요? "

" 응? 어차피 자기가 안마도 해주고 한 자세로 계속 있는 것도 아니니까 크게

무리 되는 것 없어. 하루 정도 이렇게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니까.. 자기도 와! "

" 아니예요... 저는 저녁에 미란이 언니랑 보미언니랑 약속이 있어서.."

" 무슨 약속? "

" 식사 준비를 이제 다 같이 하기로 했어요. 사람도 부족하고 남자들은 계속

수색에 투입되니까 여자들도 뭐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다들 모여서

식사꺼리를 만들기로 했어요."

" 그래? "

" 네.. 그러니까 앞으로 몇 시간은 오빠 혼자 있어야 해요! "

" 흠...난 그냥 자고 있을게.. 자기 다녀와.."

" 그래요.. 그렇게 늦지는 않을 예정이니까 집에서 쉬고 있어요."

식량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급식형태의 식사를 공급하기로 결정 하고

여자들은 대부분이 식사 준비를 위해 투입이 되는 상황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남자들은 근처 마을이나 항을 수색하였지만  갈수록 구해오는 식량은

적어 이제는 제법 먼 거리까지 나가서 구해와야만 했다. 지금 당장은 급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넉넉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계절이니까. 그래도 넉넉하게 구해오는 탄약과 무기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당장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무기는 있으니 식량은 두 번째 문제였다. 부족하다고 해도 한 달은 넘게 지낼 수 있는 양이었기에 조급함은 없었다. 사람이 가장 최소한으로 필요한 의식주중 대부분이 안정권에 있었다. 겨울이라고 얼어 죽을 정도의 추운 날씨도 아니었고 현재 굶어 죽을 정도의 식량도 아니다. 그리고 제법 좋은 위치의 튼튼한 벽을 가진 주거지역도 있었으니 사람들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봄이 오고 기온이 풀린다면 먹을 식량은 여유가 있을 수도 있다. 가까운 바다와 산이 있다. 옷이야 여름이라고 겨울보다 못할 것도 없고 길에서 잔다고 해도 죽을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주거지역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시간이 흘러 은혜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고 꽤나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아보였다.

" 고생했네."

" 그래도 내일 먹을 음식은 대충 완료했어요. 여자들이라고 그냥 있을 수는        없죠."

" 하긴. 그래도 우리가 얼마나 여기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동안은 최선을

다해야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해?"

" 아뇨. 내일 아침은 당번이 아니라서요. 자기는 일찍 일어나야해요?"

" 아니. 난 수색을 위주로 하는 팀이라. 경계는 웬만하면 제외돼."

" 다행이네요. 아침잠도 많은데 오늘은 푹 자요."

" 내일은 우선 쉬고 다음날은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인원이 많으니

소모량도 많아서 금방 금방 떨어지는 상황이라 구할 수 있을 때 구해놔야

나중에 고생안하지."

" 준비성은 철저하네요. 내일을 뭐하려고요?"

" 우선 카라반도 손 보고 차량도 점검을 해보고 이것저것 해야지."

" 어디 또 이동하게요?"

은혜의 표정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계속 이동하며

지냈기에 이동하는 생활이 얼마나 불편하고 두렵고 힘든지 잘 아니 가능하면 더 이상 이동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 만약을 대비하는 거야. 만약을. 아직은 움직일 생각이 없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준비를 해야지."

" 네. 전 먼저 씻을래요."

" 그래. 난 노트북에 있는 자료를 보고 있어야겠다."

난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사태가 일어난 직후 모았던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캠핑에 관련된 내용이었고 먹을 수 있는 식물종류를 나열한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니 잘 이해되지도 않았고 이런 상황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니 천천히 읽어나갔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은혜도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긴 생머리는 덜 마른 상태였고 큰 목욕가운으로 감은 몸 밖으로 보이는 다리는 처음 봤을 때 보다 조금 야윈 듯 보였다. 그 동안 아무리 잘 챙겨먹었다고 해도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니 살이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중간에 잠시 영양상태가 좋은 상황도 있다보니 살이 오른 모습도 있었지만 감염체 사태가 일어난 직후부터 먹는 것은 크게 좋지 못하였다. 내가 한참을 은혜를 바라보자 내 시선을 느낀 은혜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말을 했다.

“ 왜요?”

“ 응? 아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서.”

“ 제대로 몸무게를 관리 하는 것은 아닌데 느낌상 빠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빠져 보여요?“

“ 응. 처음 봤을 때보다는 확실히.”

“ 그래요?”

“ 응. 내 입장에서는 살이 빠지는게 솔직히 좋은 것은 아니네.”

“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금 저는

오빠 덕분에 상당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목욕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챙겨주려고 하고 오빠가 분명 좋아하는 것인데도 저에게 양보하고 일부러

충분한 척 행동하는 것들을 알고 있어요. 오빠가 아닌 척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려는 것 이상으로 제가 혜택 아닌 혜택을 받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오빠가 하는 행동으로 제가 철없이 행동해도 넘어가는  것도

느끼고 있어요. 이런 상황인데도 오빠에게 미안하기만 한데 오빠는 알고 있으

면서 저만 챙기려고 하는 것도 더 미안해요.“

“ 그런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행동은 그 사람에게 다시 무언가를

바라고 행동한 것은 아니야. 내가 얼마 살지 않았지만 자기보다 조금 더 많이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내가 한 행동은 언젠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야.

내가 한 악한 행동은 다시 내게 돌아오고 내가 한 선행은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느꼈어. 세상은 작용 반작용법칙이 철저하다는 것을 느껴서 그런 것이지

무언가를 바라고 한 행동들은 아냐. 내 옆에 자기가 있어서 난 너무 좋고

행복하니 당연히 자기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지 자기에게 다른 뭔가를 바라고

하는게 아니니까.“

“ 오빠랑 이야기 하다보면 가끔 아빠랑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어요.”

“하하!! 내 별명이 애늙은이였긴 했지!”

“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

“ 사람은 지금 상황이 안정되면 분명이 지금 상황보다 좋은 상활을 바라고

원하게 되지. 지금 자기보다 못한 상황의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고 예전 자기

모습들은 잊고서는. 난 그렇고 싶지 않아. 물론 사람은 발전해야하는 것은

맞지. 하지만 자기가 격었던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가는 것이 싫어. 내가 왜 술을 잘 먹는 체질인데도 술을

안 먹는 이유를 알아?“

“ 네. 재효 오빠한테 듣긴 했어요.”

“ 잘 알겠네. 한 번의 충동적인 술자리로 쓴 몇 만원은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몇 천원을 벌어가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서 웬만하면 그런 충동

적인 행동을 안 하려고 한거야.“

“ 듣기는 했지만 오빠는 너무 철저하게 룰에 의해서 살아가는 방식인데 그런

방식이 너무 힘들지 않아요?“

“ 힘들지. 하지만 말야 순간만 지나면 난 미래에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그리고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늦었으니까 어서 자야지.“

“ 그래요. 머리만 말리고 잘게요.”

“ 응! ”

은혜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했다. 하던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진 것이 있었지만 잠깐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느낀 모습이었다. 침대에 몸을 누워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품속을 파고드는 은혜를 느낄수 이었다.

“ 역시 오빠 품이 제일 따듯해.”

“ 풋! 자기 살은 차가워서 너무 좋은데?”

“ 오빠가 너무 뜨거워서 그래요.”

내 품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은혜를 보며 말을 했다. 편하게 입은 복장으로 다른 사람들은 보기 힘든 속살들이 노출이 되었고 그런 모습으로 인해 내 이성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성보다 잠이 필요한 본능의 승리로 인해 은혜를 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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