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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52화 (5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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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 쳇. 실제로 보니 더 기분이 좋지 않은데."

카라반 안에서 나오는 두 명은 예상대로 재효와 민희였다. 이야기만 듣고 있던 상황과 실제로 본 상황은 달랐다. 미란이와 내가 모르는 사이도 아닌 상황에서 저런 장면을 보니 기분이 더러웠다. 은혜는 가능한 참견하지 말라는 의견이었지만 상황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지만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바로 창문으로 뛰어 지면에 착지했다.

" 쿵!!"

" 응??!!"

생각보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착지했고 눈앞에서 마주한 재효의 표정은

놀랐다기보다 예상했다는 표정이었고 옆에 있는 민희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내 카라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 형."

" 왜?"

" 아냐."

뭔가 핑계를 말하려는 건지 지금 상황에 대한 변명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저런 태연한 표정이 나를 화나게 했다. 미란이와의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연수원 상태가 긴장감에 빠져있는 상황인데 여유롭게 즐긴 녀석의 행동에 실망했다.

" 열쇠 내놔."

" 자. 여기."

별다른 말없이 카라반 열쇠를 주는 녀석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무런 변명도 없는 표정 변화도 없는 녀석의 태도에 화가 끝까지 차올랐다.

" 퍽!!"

" 크흑."

강하게 얼굴을 맞은 재효의 몸이 바닥을 뒹굴었고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옆에 있던 민희가 재효를 부축하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솔직히 이렇게 끼어든 것이 후회되었다.

" 참네. 상황파악 좀 하고 살아라. "

" 미안."

" 미안? 미안하다고?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어차피 네 인생이고 네가 만든

상황인데? 미안하다는 것을 아는 녀석이.."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싫은 난 바로 등을 돌려 건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와 은혜에게 내가 본 장면을 이야기했고 은혜는 나의 말을 듣고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예상외인데? 자기가 더 격하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 자기 말대로 남의 연애사일뿐. 그래도 미란이 언니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좋겠죠?"

" 그래야지."

"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 있는 사실 그대로 하는 것이 좋겠지. 차라리 내가 말할까?"

" 아뇨. 제가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같은 여자이고 자기보다는

제가 편할 테니까요."

" 그래. 언제 말할 건데?"

" 지금 바로 가야죠. 당장 할 일이 없으니 아마 방에 있을 껄요."

" 재효가 있다면?"

" 제가 죄 졌나요? 있다면 나가라고 해야죠. 아니면 둘이 나와 따로 이야기를

하던가."

" 혹시 모르니 핑크를 데려가. 다른 여자에게 눈 돌아간 남자만큼 위험한 것도

없으니."

"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되지만 안 데려가면 안 보내줄 생각이죠?"

" 잘 알면서 그러네."

" 그럼 다녀올게요. 핑크야 가자."

" 무슨 일 생기면 소리쳐."

" 너무 확대 해석 하지 마요."

은혜는 문을 닫고 나가면서 말했고 난 방에 남아 몇 개 남지 않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방에 들어온 은혜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 뭐라디?"

" 이미 알고 있던데요?"

" 뭐?!!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반응을 안 한거야?"

" 오래된 상황은 아닌가 봐요. 언니도 오빠가 크게 빠져들 사람은 아닌 거란 걸

알았는지 그냥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나 봐요."

" 뭔 소리야?"

" 제가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여자들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고."

" 응?"

" 원래 민희 언니가.. 쉽게 말하면 엔조이를 즐기는 타입인가봐요. 재효 오빠가

처음도 아닌 것 같고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쉬쉬했던 것뿐이죠."

" 그래서 미란이는 어쩐데?"

" 며칠 간 모른 척 해달래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 잘도 알아서 하는 아이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 뭔데?"

" 언니는 잘 할 거예요. 믿어 봐요."

" 에휴."

이미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 미란이가 새삼 대단했다. 아직까지는 재효에 대한 사랑이 더 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침대에 몸을 던졌고 앞으로는 신경 끄기로 했다. 이래서 남의 연애는 조언도

충고도 상관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연수원은 긴장감이 돌았다. 예전보다 근무자들도 긴장한 모습이 표정에서 보였고 이제는 외부상태도 체크하기 위해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아무래도 인원을 많이 늘리기보다 외부 상황도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변환한 모양이었다. 아직 변한 근무에 대한 전달을 받지 못한 상황이기에 대령의 방으로 들어갔다.

" 아. 오셨습니까?"

" 네. 근무 방식이 바뀌었나요?"

" 네. 어제 대령님과 이야기해서 의견을 종합해서 바꾼 모양입니다. 근무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정찰조와 수색조를 나눠서 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대령님이 오시면 말씀.. 아! 마침 오시네요."

" 편히 쉬셨습니까?"

" 아. 그래. 재원군도 왔군. 바로 들어오겠나?"

" 네. 뭐.."

난 대령의 방으로 바로 들어갔고 대령은 책상에 앉아 말문을 열었다.

" 눈썰미 좋은 자네라면 근무 방법이 바뀐 것은 말 안 해도 알겠고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주기적으로 정찰을 나가는 인원을 편성하기로 했다네. 대신 정찰조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근무는 면제해 주고."

" 수색조는 아닌가보군요?"

" 수색까지 편성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정찰조는 지금 발견된 생존자 외에도

다른 생존자들까지 염두하고  움직여야 한다네."

" 감염체에 방어는 없나요?"

" 현재 감염체의 발견 횟수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네. 우리 위치가 워낙

외진 곳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감염체들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급한 것은 감염체가 아닌 다른 생존자 이니."

" 하지만 너무 인간만 생각하는 것도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만?"

" 맞지. 하지만 지금 있는 인원들의 대부분이 바로 앞의 위협만 피하려는데 급급

한 모습이야. 아쉽지."

" 정찰조는 뭘 하는 거죠?"

" 내용은 간단하다네. 다른 생존자 두 곳에 대한 정찰과 다른 생존자들의 발견.

그리고 시내 중심부를 들어가는 것이라네."

" 내용만 간단하군요. 시내 중심부라니."

" 위험하다는 것은 안다네. 하지만 시내 중심부에도 생존자가 있을지 모르니까.

위험한 곳에서 생존자들이 터를 잡고 살 이유는 없지 않은가?"

" 맞죠. 하지만 그 위험한 일을 하려는 인원이 있을까요?"

" 그래서 말인데.."

" 제가 첫 번째 군요."

" 아니. 두 번째 라네. 처음은 김 중사가 한다고 했네."

" 혼자하기 싫어서 나를..."

" 하하! 둘이 웬만큼 호흡도 맞고 둘 다 다른 사람들 보다 발달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 말은 다른 사람들 보다 생존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어떤가?"

" 뭐. 나쁠 것은 없습니다. 차라리 밤에 푹 자고 낮에 움직이는 것이 좋겠네요."

" 알겠네. 그리고 나가서 구하는 물품들은 암묵적으로 자네들 것이니 알아서

사용하도록."

" 뭐. 물건을 구하러 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 오늘부터 움직이면 된다네. 가능하다면 기름정도는 알아서 구하게나. 겨울도

다 지나서 많은 양을 소모할 상황은 아니지만 비축분이 많이 줄어서 아껴야

할 것 같네."

" 알겠습니다. 김 중사를 보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 나가는 시간이나 복귀 시간은 자유라네. 특별히 보고할 필요도 없고 근무자들에

게만 말해주면 된다네. 그럼 그들이 알아서 할테니까."

" 네. 그럼 쉬세요."

" 조심하게나. 무리하지 말고."

" 감사합니다."

난 대령님과의 말을 끝내고 나왔고 앞에서는 김 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 하기로 했어?"

" 응. 어? 기태도 가는 거야?"

" 응! 아무래도 두 명은 너무 적은 것 같고 네 명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 잘 됐네. 지금 바로 나갈 생각이야?"

" 너만 괜찮다면 상관없는데?"

" 잠깐 방에만 갔다 와서 출발하자. 그래도 은혜에게는 말을 해줘야지."

" 알았어. 다녀와."

난 서둘러 방으로 올라갔고 방에 들어가니 은혜도 아침에 일을 끝내고 온 모습이었다.

" 웬일이에요?"

" 아.. 말할게 있어서."

난 은혜에게 변화된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해줬고 내가 앞으로 해야하는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은혜는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에서는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지금처럼 무리해서 하면 안돼요!"

" 걱정 마. 은밀하게 다녀야 하는 상황이니 가능하면 나서지 않을게."

" 에휴. 잘 다녀오고요."

" 응. 다녀올게."

난 방에서 보관중인 저격총을 꺼내서 들었고 남은 탄을 확인 후에 내려갔다.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는 긴장감을 풀려고 영양가 없는 대화들이 오고 갔다. 우선 우리는 시내 중심부로 가기로 결정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말이 없었고 시내 초입부에 도착 후 차량을 외진 곳에 주차한 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 크윽."

잔인하게 죽은 시신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날이 풀리면서 시신들이 부패하기 시작했고 역한 냄새가 거리를 메워갔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이동하면서 주별을 살폈다. 다른 생존자들의 흔적이 있는지 남은 감염체들이 있는지 확인을 하면서 움직였지만 워낙 긴장하며 움직였고 흔적을 찾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시간에 비하여 움직인 거리는 많지 않았다.

" 아무래도 우선 높은 건물을 찾아 움직이자."

" 그래 우선 주변을 탐색 후에 움직이도록 하자."

" 좋은 생각이야."

우리는 주변 건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을 선택하여 움직였다. 20층 높이의 건물은 당연히 걸어서 올라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퇴로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지금 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었다.

" 최대한 조심하고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튀자."

" 제발 아무것도 없기를."

" 가자!"

우리는 비상구를 찾아 건물을 돌았고 올라간 옥상에서 주변을 살폈다.

" 시신이 엄청 많다."

" 저쪽 길은 다니기 편하겠다. 차량들이 별로 없네?"

" 매장들도 생각보다 온전하네. 아무래도 시내 중심부라서 사태직후 감염체가

많아서 지금까지 들어온 인원은 얼마 없나봐?"

" 그런가?"

" 저기 움직이는 것이... 감염체군."

" 저쪽에도 있어. 무리지어 이동하네."

" 역시 시내 중심부다보니 남은 감염체도 많은가봐."

" 흠..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데."

" 앞으로는 건물보다는 외부에서 움직이도록 하자."

" 알았어."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그리고 깊숙하게 도심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감염체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고 더 이상 그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들었다. 소리 없이 제거하면서 움직였지만 한계가 있었고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감염체가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 훈아! 기태야! 더 이상 무리야! 벗어나자!"

" 젠장! 정말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네! 이 많은 감염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서 여기 있었던 거야?"

" 훈아! 어서!"

" 알았어!"

우리는 더 이상의 전진은 힘들다고 단정하고 빠르게 돌아갔다. 이미 우리의 존재를 알아버린 감염체들이 몰려왔지만 기껏해야 걷는 속도보다 약간 빠른 감염체들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우리를 따라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중 속도감이 있는 녀석들도 몇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을 주차해 둔 곳에 도착했고 시동을 걸고 도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많이 없던 감염체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며 우리는 힘겹게 완전히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잠깐 쉬었다가자."

" 응. 정말 힘들다."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한꺼번에 피곤이 몰려왔다. 솔직히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근처에는 감염체가 없어 시내에도 많은 숫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거의 모든 감염체들이 도심에서 뭉쳐 다니는 것 같았다. 한 숨 돌리며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고 김 중사와 기태도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물을 들이켰다.

" 어쩐지 근처에 안 보인다 했더니 시내에 몰려있었군."

" 무시무시한 숫자인데?

많은 시간을 시내에서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몰려든 감염체의 숫자를 보아하니 우리가 생각했던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추측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마치 겨울 동안 몸을 웅크리며 있었던 것 같았다. 날이 풀리며 활동을 시작하는 동면하는 동물처럼 그들의 활동이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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