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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53화 (5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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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연수원은 예상외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들 긴장하며 지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단지 근무를 서는 인원들만이 예전보다 긴장하며 주변을 돌았고 수풀 하나하나까지 관찰하며 또 다른 생존자의 침입을 경계했다.

" 그래. 다녀왔는가?"

" 네. 대령님."

" 시내는 상황이 어떤가?"

" 좋지 못합니다."

대령의 방에 앉아 우리는 도심에서 봤던 감염체의 숫자와 움직임에 대하여 보고를 했고 우리의 보고를 들은 대령의 표정은 심각했다.

" 허허. 자네들 예상과 같이 겨울이 지났기에 감염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도심에서 생활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남쪽에서 다시

올라온 것인지 현재로써는 알 길이 없군."

" 네.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많지만 현재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입니다. 다행인 것은 도심 밖에서 보이는 감염체의 숫자는 아직까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직까지는.."

김 중사가 아직까지라는 말을 두 번이나 쓰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김 중사의 생각은 이제 연수원 근처에서도 발견되는 감염체들의 숫자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듯했다. 물론 기태와 내 생각도 비슷했다.

" 현재까지 감염체들의 움직임 습성. 활동반경이나 그 어떠한 것도 파악된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소리와 움직임으로 생존자의 유무를 판단하고 락스를

피한다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다른 생존자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입니다. 현재 그래도 콘도텔 인원들이 조금 더 호의적이라고 생각

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재 산속에서 생활하는

생존자들에게도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 중사의 말이 맞습니다. 동맹이던 적이던 어느 정도 교류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야 저희도 대비 아닌 대비를 할 수 있고 그들도 섣불리

움직임을 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재원군 생각은 어떠한가?"

" 솔직히 초반이라면 반대했겠지만 현재 몇 번의 정찰 결과로는 지금까지의

예상과는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는 지금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현재까지는 안전한

연수원이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죠."

" 흠. 정말 난감하군."

" 며칠 더 지켜보고 행동할까요?"

" 최대한 그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난 후 결정하도록 하지. 앞으로 일주일.

그 이상은 힘들 것 같으니 일주일만 지켜보고 결정하도록 하세."

" 알겠습니다."

" 수고했네. 그리고 앞으로는 도심에 들어가는 행동은 자제해야겠네. 자네들을

잃는 것은 우리로써는 엄청난 손해니까. 한사람의 손도 아쉬운 판국에 괜히

무리해서 하려고 하지 말게나."

" 네."

" 그럼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나."

우리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방을 나왔다. 서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주변을 둘러봤다.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는 커플. 그리고 흙을 고르며 무언가를 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하나하나 지나치며 난 내 카라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제의 사건이후 난 카라반을 건물 끝으로 완전히 이동시켰다. 계속 그 자리에 두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사람 느낌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굳이 이동을 시켰다. 카라반에서 캠핑용 의자를 꺼내어 앉아 담배를 피고 있자 건물에서 나온 한 여인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담배하나만 주시겠어요?"

" 네?"

" 담배하나만 달라고요."

크게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나와 재효와 미란이의 관계를 알고 있을 여자인데 보자마자 담배를 달라니.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딱히 주지 않은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몇 개 남지 않은 담배를 건냈다.

" 여기요."

" 고마워요."

능숙하게 담배를 물고 피는 모습을 보니 원래부터 흡연자인 듯 했다. 담배를 피는 여자에게 선입견이나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 저도 한 대 치고 싶겠네요?"

" 물론이죠."

" 하지만 여자를 치는 남자는 아니겠지요?"

" 평범한 세상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남자 여자 구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생존자일 뿐이죠."

너라고 못 때릴 이유 없다는 것을 돌려서 말했고 말뜻을 이해한 듯 가볍게 웃어 보이는 민희였다. 정말 맞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 제가 뭘 잘못했죠?"

" 네?"

" 제가 솔직히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가 다 그런 것

아닌가요? 그리고 결혼한 사이도 아니잖아요?"

멀쩡히는 아니지만 아직은 사귀는 사이에 접근하여 뺏으려는 사람이 내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물론 뺏는 입장에서는 동성이 못하는 아니면 소올하는 부분을 파고들어서 호감을 사는 것은 당연하게 행하는 일종의 전술이다.

만약 모르는 사이였다면 그냥 넘겼을 것이지만 내가 아는 사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민희는 그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냥 아는 사이지만 그래도 폐쇄된 공간에서 안전하다는 전재조건 하에서는 계속해서 봐야하는 사이였다.

"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썩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군요."

" 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심각한 사이는 아니니 때리지 마세요."

" 무슨..?"

" 그냥 서로 원하는 것만 충족시켜주는 사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자를 처음 봐서 그런지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재효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저렇게 딱 잘라 말하니 반박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남자들이 더 하면 했지 덜 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쪽도 나이도 있으니 경험도 있을 것 아니에요?"

" 잘못 생각하셨군요. 전 예전사회에서 그런 관계를 해본 적도 좋게 생각한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 다들 말을 그렇게 하지요."

" 말은 그렇게 하는 사람과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전

삶의 룰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최대한 양심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고 제가 한 행동에 후회한 적도 없습니다. 모든 남자가

지금까지 당신이 겪었던 남자와 같다고 생각하지 마시죠. 솔직히 저보다 더

배운 사람이니 당신이 말하는 논리가 어디가 잘못됐는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 풋. 알지요. 하지만 현재 상황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활했던 사회는 아닙니다.

어째보면 정말 원초적인 본능만 충족시키며 살 수 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요?

사회의 규범과 도리. 규칙 법규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내가 먹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남보다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에서 살기위해 살아남는 것이 아닌 정말 그냥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재효에게 화를 냈던 것은

제 카라반에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이 화가 났던 것입니다. 제가 솔직히

당신이랑 이런 대화를 하는 이유도 모르겠군요."

" 당신도 절박한 상황이 온다면 제 말을 이해할걸요."

" 제발 그런 상황이 안 왔으면 하네요."

" 풋. 그래요."

말을 끝낸 민희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린 후 발로 끄고 다시 건물로 돌아갔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부분을 충족시키는 사이라. 내 생각은 아마도 흔들리고 있는 재효를 더 흔든 것은 그녀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치 너도 원해서 하는 거야 라는 일종의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내가 아는 재효는 저런 사이를 좋게 생각하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틀리니까 몰랐다. 아니면 정말로 변한 것일지도 모르고. 난 다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려고 하자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은혜로 인하여 불을 붙이지 못하였다.

" 언제 왔어?"

" 아까요."

" 그럼 내가 대화하는 것을 봤겠네?"

" 네. 무슨 이야기 했어요?"

" 음. 이런저런.."

난 민희와 했던 이야기를 은혜에게 해줬고 은혜도 꽤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했다.

" 상당히 무섭네요."

" 응. 대단하지?"

" 미란이 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 미란이는 아직 재효에게 마음이 남아있지?"

" 엄청 많이 남아있죠. 저런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 보면

모르겠어요?"

" 더 대단한 것은 민희가 아닌 미란인건가?"

" 난 절대 그런 것 못 보니까 꿈도 꾸지 마요!"

" 풋. 내가 뭐가 좋다고 여자들이 꼬이겠어?"

" 흠. 평소 자신감 있는 말투와는 다른데요?"

" 그래도 내 상황을 알고 있다고."

" 솔직히 오빠는 처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이 나타나는 성격이죠. 뭐랄까

굉장히 아빠 같은 푸근함과 친오빠 같은 편안함과 친구 같은 친근감. 그리고

챙겨주지 않는 척 하면서 다 챙겨주는."

" 칭찬 고맙구려."

" 하하! 그래도 이런 세상이지만 내가 그래도 잘 버틸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 나도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 핏."

은혜는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내 허벅지에 앉아서 내 품에 안겨왔다. 캠핑용의자는 무척이나 좁고 불편했지만 은혜의 행동은 싫지 않았다. 잠시 은혜의 체온을 느끼고 있을 때 순간적인 인기척이 느껴졌다.

" 잠시만!"

" 네??"

" 방에 들어가 있어. 뭔가.."

" 네!"

난 은혜를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고 은혜도 내 표정을 보고는 별 말없이 뛰어 건물로 들어갔다. 난 아직 가지고 있던 저격 총을 들고 빠르게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내가 있던 방향으로 근무를 서던 인원이 들고 있던 망원경을 빌려 주변을 살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은밀하게 숨어있는 인원이 보였다. 정말 유심히 보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눈치 못 챌 정도로 숨은 모습이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며 근무자에게 말했다.

" 내가 방금 본 구역에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인원을 불러 나가보도록

하죠."

" 네! 알겠습니다!"

근무를 서던 인원은 바로 뛰어서 내려가 인원들을 모았고 인원들은 빠르게 정문을 열고 나가 내가 말한 쪽으로 나갔다.

" 움직이면 쏜다! 그대로 있어라!"

" 허튼 짓 하지 말고 있어!"

소총을 들고 나간 약 10명의 인원들은 은밀히 숨어있던 녀석에게 외쳤고 당황한 녀석은 빠르게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 젠장! 쏴라!!"

김 중사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도 훈련 받은 군인들이라 정 조준을 하고 사격했지만 나무가 너무 많아 쉽게 맞추기는 어려웠다.

" 탕!!!"

" 컥!!"

그래도 쏘는 양이 있었기에 맞기는 했지만 치명상은 아닌 듯 나무 넘어 숨겨둔

ATV를 타고 빠르게 도망쳤다. 분한 듯 김 중사가 거칠게 말했다.

" 젠장!! 놓치다니!"

" 그래도 얼마 못 갈 것 같습니다. 어깨 쪽에 맞은 모습이었습니다."

" 흠. 도대체 어느 무리인 걸까?"

콘도텔 인원인가 아니면 산속의 인원인가 이제는 정확하게 알아야만 했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맹이 되야 하는지 알아야하는 중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 한 명만 온 것도 이상한데? 보통은 최소 2명이상 다니지 않나?"

" 군인이나 그렇지 일반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까지 할까?"

"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근무나 정찰은 2명으로

짜는 것이 보통 아닌가? 정말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그렇다면 저렇게 허술하게 도망가지도 않았을 것 같고."

" 그나저나 넌 어떻게 알았어?"

" 그냥. 뭔가 그런 느낌 있잖아?"

" 가끔 보면 넌 신기한 녀석이야."

" 흠. 우선 내일 아침에 콘도텔로 가서 우리가 식량이 부족하다고 하고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우리의 약점을 밝히는 것처럼. 그리고 산 속의 인원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보고."

"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지. 이대로 당하기만 할 수는 없잖아?"

" 넌 어느쪽이라 생각해?"

"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모르지. 둘 다 의심이 가는 상황이고."

" 우선 대령님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행동하자."

" 응. 기태는 어디 갔어?"

" 혹시 몰라 애초부터 인원을 쪼개서 반대로 보냈어."

" 철두철미 하네."

" 우선 들어가자. 대령님에게 상황보고는 해야지."

" 알았어. 인원 몇 명은 남겨서 흔적이라도 찾아야겠지?"

" 벌써 찾고 있으니 걱정말고!"

" 응."

나와 김 중사는 바로 대령의 방으로 들어갔고 역시나 대령의 표정에서 현재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군."

" 네. 정말 우리의 적인지 아니면 그냥 살피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 적이 아니었다면 그냥 살피러 왔다면 투항하지 않았을까?"

" 모르지. 겁먹고 우선 도망간 것일지도."

" 그리고 대령님.."

나는 대령에게 나의 생각을 말했고 대령의 생각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 그럼 내일 바로 콘도텔 인원에게 가보도록 하고 김 중사와 같이 산 속의

인원에게도 가서 상황을 살피도록 하게나!"

" 알겠습니다."

" 절대 무리하지 말고! "

" 걱정 마십쇼!"

" 오늘은 우선 둘 다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내일 할 일에 대하여 의논하고

행동하도록 하게나!"

" 네!"

나와 김 중사는 방에서 나왔고 잠시 후 도착한 기태와 내일의 행동에 대하여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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