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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55화 (5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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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대령의 표정은 마치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한 표정이시네요?"

" 아. 뭐 이 나이까지 살다보면 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처음 이야기를 들었

을 때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네."

"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 해주셨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지시할만한 것은 아니었다네. 지금 와서 맞아 떨어진

것이지 처음부터 이야기 했다한들 자네들이 신용이나 했겠나? 그리고 내 생각

만으로 지시한다면 책임자로서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근거 있는 이유와

그래도 나름 정확한 추론이 있어서 지시해야지 자네들이 따라올 것 아닌가?"

" 네."

확실히 대령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군인들은 물론 사회생활에서 봤던 상관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리의 판단과 의견을 존중해주고 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 그런 성격 때문에 지금까지 연수원이 원활하게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단독행동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움직이고 판단하며 살아온 나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생활을 해서 인지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이었다. 솔직히 대령님이라면 많은 인원이라고 해도 잘 이끌어 가며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난 사람이 북적거리는 상황이 싫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상 입이 많아서 좋은 경우가 없어서 일지 몰라도 아무리 감염체로 득실거리는 상황이라 해도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 내 생각에는 아마 그들도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네. 그리고 특히

콘도텔에서 상주하는 인원이 현재는 더 위험하다고 판단되네. 자네들이 말하는

그 산에서 생활하는 생존자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이기 보다 아마도 과거의

경험으로 쉽사리 우리의 접근을 꺼릴 수 있네. 상처 입은 동물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은가? 어딘가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니 우리의 접근을 더 꺼리는

상황일수 있으니 우선 천천히 상황을 정리하도록 하지."

" 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까요?"

" 뭘 어떻게 하나? 그냥 우선은 이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야지. 괜히 우리가

부산하게 움직여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네. 그들도 어떤 방법이든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움직임은 더 큰 물결을 일으켜

그들이 필요이상으로 움직일 명분을 줄 수 있으니 지금 당장은 그냥 지금과

같이 생활하게나."

" 알겠습니다."

" 오늘 수고했네. 내일까지는 푹 쉬고 움직이게나."

"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벼운 묵례와 함께 방을 나왔다. 난 홀로 옥상으로 올라갔고 근무 인원들은 주변을 살피는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난 난간에 걸터앉아 담배를 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홀로 걸어 다니는 재효가 보였다. 표정에서는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 고민이 제발 내가 생각하는 고민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던 중 보미와 산책을 하는 기태가 보였고 정면으로 마주친 세 사람은 간단한 인사를 했다. 지나쳐 지나가던 기태가 갑자기 보미에게 뭔가를 이야기 하더니 보미 혼자 건물로 돌아갔고 기태는 재효를 불러 세웠다.

" 재효야. 시간 있어?"

" 네? 네."

"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아..저.."

"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 알겠습니다."

평소 저렇게까지 존대어를 사용하며 대화한 기억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재효가 불편한 것 같았다. 둘은 바로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 고민있어?"

" 아뇨."

" 그래? 아니라면서 얼굴에는 한 가득 고민이 있다는 것이 나타났는데?"

" 하아.."

재효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재효의 모습을 보며 기태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예전에 나와 재원이가 어렸을 때. 뭐 지금도 어리다면 어리지만. 나와 재원이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친구 사이가 유지 된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안 맞는 성격을 가졌지. 시간약속에 철저한 재원이와

시간약속을 지킨 적이 얼마 없는 나. 일 년에도 몇 번씩 여자 친구가 바뀌는

나와 다르게 재원이는 한 여자를 몇 년이나 사귀는 여하튼 다른 사람들이 봐도

우리 둘이 친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지."

" 네.."

" 그러던 중 우리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만나던 사람들끼리 만난 일이

있었어. 그 당시 재원이는 꽤 매력적인 여자 친구를 그 모임에서 만나서

사귀게 되었지. 그 모임에서 짝사랑 하는 남자 많은 아이었어. 솔직히

재원이가 그 아이를 사귈 것이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못했지. 더 놀라운 것은

사귀자고 말한 아이가 그 여자였지. 물론 나도 은밀히 작업을 걸었던 아이였고.

그러다 어느 날 술자리 모임이 있어서 술을 마시다 그 아이를 짝사랑 하던

남자 놈 하나가 취해서 재원이에게 시비를 걸었어. 그 남자 놈은 흔히 말하는

엄친아인 녀석이었고. 그 녀석은 모두 다 있는 상황에서 재원이에게 말하더라.

자신의 남은 인생 모든 것을 걸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으니

헤어지라고 하더라.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엄청 놀라서 그냥

멍하니 재원이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 그 때 재원이의 여자 친구까지도.

난 그 당시 재원이가 했던 말이 아직까지 잊지 못해."

" 뭐라고 했는데요?"

" 지금 들으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었지만 그때는 주변 사람 모두가

정말 재원이게 그 아이가 반한 이유를 알았지."

기태가 하는 말을 들으니 나도 그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났다. 20대 초반. 막 군대를 전역해서 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자주 만나며 술을 먹었던 일이 있었다. 그 때 당시 만났던 여자 친구는 2년 넘게 사귀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헤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태의 말에 그 당시 일들이 기억나면서 나를 웃음 짓게 했다. 철없이 놀던 시절. 그 때는 그 때의 재미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 그 말을 듣던 재원이는 무표정하게 소주 한잔을 원샷하며 말했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다. 그 당시 내가 했던 이야기를 생각하니 나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차마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고 그 때 상황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 하하! 오늘 정말 힘들었다."

" 그래도 난 이번에 끝이다!"

" 난 다음 주까지인데. 괜히 다음 주까지 한다고 했나. 너무 힘들다."

각자의 일을 끝내고 가진 술자리에서 다들 담소를 나눴고 시간이 지나 평소와 다르게 술이 과하게 들어갔다. 이미 계약이 끝난 인원도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계약기간을 가진 인원도 있었지만 내일 쉬는 날이다 보니 다들 마음 편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난 여자 친구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 했고 끝자리에 앉아있던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녀석이 다가와 내 여자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 넌 왜 저런 녀석을 만나냐?"

" !!!!!! "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혀 꼬부라지는 말을 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정확하게 들었다. 다들 그 녀석을 말리며 제재했지만 뿌리치고 말을 이어갔다.

" 난 너에게 내 남은 모든 인생을 걸고 잘해줄 자신 있어! 그러니 저런 녀석

말고 나랑 만나자고!"

" 미쳤어?!! 너 왜 그래!!"

여자 친구도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나만 바라봤고 사람들은 그 녀석에게 비난을

했다. 그런 상황이 재밌는 나는 살짝 웃으며 그 녀석을 바라봤고 내 반응에 더 열 받은 그 녀석과 내 반응이 신기한 주변의 사람들로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난 내 앞의 비어있는 소주잔을 들어 여자 친구에게 들었고 내 행동을 보고는 주춤거리다 내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줬다. 난 소주를 원샷하고는 말을 했다.

" 남은 인생을 걸겠다. 그런가요?"

" 그래! "

" 아쉽네요. 전 다음 생의 인생까지 걸었습니다. 한 번 해보시죠."

내 말에 다들 나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런 시선을 즐기며 말했다.

" 내가 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이 아이에게 잘해주는 것을 아나요? 시간이

지나도 소홀히 할 수 있는 것까지 챙겨주는 줄 아십니까?"

" ....."

내 말을 들은 그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 누군가를 짝사랑 할 때의 감정을 저도 잘 알죠. 저도 짝사랑이란 것을

해봤으니까요. 내가 죽도록 원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이유를 그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게 되었죠.

내가 죽도록 노력하지만 짝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은 죽음 이상을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을요. 그래서 전 이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이 이 아이를

원하는 사람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 할 것입니다. 우리가 웃느라

눈물 흘릴 때 누군가의 눈에는 피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이 아이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자리인 것을 알지요. 그런 이 아이를

고작 남은 인생을 걸고 움직이려는 당신과 다음 생까지 걸고 있는 저와 게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정말 오글거리는 말이었지만 그 당시 내 여자 친구는 꽤 감동했다고 했다. 내 말을 들은 녀석은 계속해서 뭐라고 소리쳤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기억이라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그 녀석과 끝에 싸우기는 했지만.

" 참 오글거리는 말이지? 그래도 그때는 상황도 그랬고 다들 술이 들어가서

꽤 멋있는 말이었지. 마지막 말이 압권이었지만."

" 몰랐던 이야기네요. 뭐라고 했는데요?"

" 쫄리면 뒈져야죠 라고."

" 하하. 형 답네요."

" 마지막 말 덕분에 광분한 녀석을 말리느라 술집이 엉망진창이 되었지."

기태는 내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까지 기억을 하고 있었다. 정말 기억력도 좋은 녀석이었다.

" 솔직히 그 당시 그 말을 그냥 넘겼는데 후에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더라.

바람도 많이 피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닐 때 내 옆에 있던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재원이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었지.

내가 한 행동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라는. 그리고 내가 정말 사랑했던 여자를 놓치게 되었지. 그 때서야 재원이가

했던 말들이 조립이 되면서 느꼈지. 저 녀석은 절대 동갑이 아닌 녀석이라고.

내가 20대 후반이 되어서 알게 된 것을 저 녀석은 20대 초반에 이미 알고 행동

하고 있었으니까. 헤어지고 나서 1년을 방황하다 호주로 유학을 가게 되었지.

1년 동안 재원이랑 마신 술만 팔아도 소형차는 샀다고 농담을 하곤했지.

그리고 유학을 가서 만난 보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

네."

기태는 과거를 회상하며 웃음 지었고 나도 우리 둘이 지냈던 일들이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네가 고민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봐. 과연 네가 결정하려는

선택에 후회는 없을 것인지. 너와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했던 결정이 나에게

얼마나 크게 돌아왔는지 겪었던 경험자로서 말하는 거야."

" 제가 지금 선택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한 행동을 후회하는 것이에요.

제가 백번 천 번 잘못했다는 걸 알아요."

말문을 연 재효는 이야기했다. 원래 처음부터 이런 관계는 아니었고 단지 미란이와의 고민을 나눌 상대가 필요했지만 은혜는 부담스럽고 그 와중에 여기 와서 친해진 누나인 민희가 여러 가지 상담을 해줬다는 것이다. 미란이와 2세에 대하여 고민하던 중 재효는 민희를 찾아 이야기를 했고 약간은 낯 뜨거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 술을 몇 잔 먹었다가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희가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오며 미란이에게 우리관계를 이야기 한다고 했고 재효는 어쩔 수 없이 민희에게 잡혀버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재효도 짜릿한 일탈이었기에 흥미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일은 커질만큼 커진 상황이었다.

" 지금 와서 미란이를 보는 것도.."

" 풋. 말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후에 후회

해도 늦지 않다. 어서 가봐라."

" 그래도 될까요?"

" 뭐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직

기회는 있다고 본다."

" 감사합니다. 형님."

" 뭐가 감사하냐. 내가 해 준 것도 없는데."

" 아뇨. 형님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그래? 다행이네. 마지막으로 네 결정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까?"

" 뭔데요?"

" 내 친구 중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도 슬퍼하지 않는 녀석이 있었어. 그냥

가볍게 만나고 지낸 사이가 아닌 것을 아는데도 몇 년을 만나고 지냈던

사람과 헤어져도 그리움은 보였지만 보통 사람이 하는 술 먹고 슬퍼하거나

그런 행동이 전혀 없는 녀석이었지. 그냥 그리움만 보이는. 그래서 물어봤지.

슬프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재효는 말없이 기태만 바라봤다.

" 다시 만나도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데. 사람이 후회하는 것은 그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알기 때문이라나. 다시 만난다고 해도 자기는 더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가 없다더라. 만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부족하다고 떠난다면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더 발전하는  것

외에는 없는데 당장 되는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며.."

재효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생각보다 기태는 내가 했던 말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둘의 대화가 끝나고 내가 일어나려고 한 순간 기태가 말했다.

" 계속 엿듣지 말고 내려와."

" !!!!"

기태는 처음부터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놀라며 바라보고 있자 고개를 들고는 내가 있는 곳을 보며 말했다.

" 부끄러워하지 말고 내려오지 그래?"

" 너.. 어떻게 알았냐?"

" 거기서 중얼거려 봐야 난 안 들리니까 내려와서 이야기 해."

난 그대로 건물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 쿵!!!"

꽤나 둔탁한 소리를 내고 깊게 내 발자국이 찍힌 흙바닥을 보고 신발을 털며 말했다.

" 어떻게 알았어?"

" 그냥. 왠지 네가 있을 것 같더라."

" 그런 것 치고는 내 위치를 정확하게 보면서 웃더라?"

" 너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누군가 있고 없고는 느낄 수 있어. 지금까지

다녀봐서 대충 눈치로 알 줄 알았는데?"

" 전혀. 그리고 변한 것이 있다면 대령님처럼 서로 알 수 있었는데 넌 아냐."

" 우리가 지금 변한 상황을 전부 아는 것도 아니잖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 하긴. 남의 이야기를 잘도 하더라?"

" 덕분에 도움이 되면 좋은건데 뭘. 남 연애 관계 안하는 네 성격을 알기에

내가 대신 해 준거야."

" 참네. 여튼 고맙다."

" 됐네요! 들어가자."

" 그래!"

기태는 내 등을 몇 번 치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 행동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친구. 이런 친구가 있어서 그간의 내 인생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 왔어요?"

방으로 들어가자 은혜가 나를 반겼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고는 헐렁한 바지와 큰 박스티를 입고는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난 어제의 미란이 상황을 물었다.

" 미란 언니가 이제 한계인 듯 힘들어 하더라고요. 정말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재효오빠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 뭐. 내일이면 달라질 것 같으니까 지켜보자."

" 무슨 일 있었어요?"

" 일? 기태가 큰 일을 해줬지."

" 기태 오빠가요?"

" 응. 그 녀석은 나랑 다르게 남녀관계에 해결점을 잘 아는 녀석이라."

" 그래요?"

은혜가 신기한 듯 대답했고 난 내가 봤던 모습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 몰랐어요? 기태오빠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 응. 전혀. 솔직히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는 능력은 우리의 생존에 엄청난 이득이니까."

" 오빠도 전에 누군가 왔다는 것을 알았잖아요?"

" 약간은 다르지. 난 미약한 소리와 움직임을 느끼고 알았던 것이고 기태는

그런 움직임이 없어도 알았던 것이니까."

" 그런데 왜 기태오빠는 그 때 왜 몰랐던 걸까요?"

" 모르지. 알았는데 이야기 안 할 수도 있고. 정확하게 들은 것이 없어서

나도 몰라."

" 신기하네요."

" 응.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야."

" 그런 말 하는 오빠도 인간이면서. 가끔 보면 오빠는 외계인 같아요."

" 차라리 외계인 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침대에 풀썩 엎드리자 은혜가 등을 치며 말했다.

" 씻고 누워요!"

" 잠깐이잖아!"

" 그래도! 밖에 나갔다오면 최소한 손을 씻어야죠!"

" 알았다고! 잔소리쟁이!"

" 오빠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아요!"

오늘도 신나게 잔소리를 들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잡혀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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