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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57화 (5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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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아침이 되어서 대령의 방에 불려간 우리 둘은 엄청나게 깨졌다.

" 내가 자네들에게 나가는 것을 허락한 것은 이렇게 무모하게 나가서 정찰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네! 자네 둘이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올 거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 죄송합니다."

" 마음을 알겠지만 너무 무모하게 나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네! 앞으로는

계획 없이 어제처럼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네!"

" 네."

" 자네들은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네.

앞으로 우리가 감염체를 제거하고 다시 예전과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될 인원들이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 죄송합니다."

거의 반 시간 가깝게 이어진 불호령에 우리를 주눅들게 했고 그런 우리 표정을 본 대령은 질책을 멈추고 우리가 얻은 정보를 말하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움직임과 추측한 습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줬고 추측이긴 했지만 꽤 요긴한 정보도 있는 상황이었다.

" 흠. 우선 락스말고 다른 유해물질로 실험을 해보자는 건가?"

" 네."

" 하지만 락스 외에는 그런 강한 냄새를 가진 액체도 몇 개 없지 않은가?

자네들이 양잿물 냄새를 아는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액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인데."

" 그리고 감염체들은 도심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제 완전히

날씨가 풀리면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큰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 좋은 소식도 있군."

" 그리고.."

한 동안은 감염체에 대한 습성과 행동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언제 혼이 났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제대로  된 연구 결과가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보고 겪는 것 외에는 없었다.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른 생존자 무리들과의 접촉은 피하기로 했다.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더 이상의 접촉은 무의미했기에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에 가닥을 잡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마트나 매장의 식량과 물품을 필사적으로 모아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생존자와 다툼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에게 양보할 여유 따위는 없다.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상황에 사람은 잔인하고 이기적으로 변한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다. 난 은혜와 내 친구들만 지킬 수 있다면 한 없이 잔인해 질것이라 다짐하며 방을 나왔다.

" 후아. 이제는 점점 더워지네."

" 응. 그래도 아직까지는 바람은 선선하니 다행이다. 여름에 어떻게 버티지."

" 제대로 된 냉장시설도 없어서 식량보관이 가장 관건인데."

" 지하에 굴이라도 파고 묻어야 하나?"

" 과학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네."

우리는 맑고 청량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예전 사회에서는 계절이 바뀐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었다. 단지 입을 옷을 옷장에서 꺼내고 이제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는 행동이 전부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했던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 많은 가전제품과 전기가 해결해 주는 상황에 태어나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우리들이 과연 이런 생활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지금이야 그래도 약간이나마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시간이 지나 아무것도 없을 때 과연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 엄청난 거리를 걸어갈 수 있고 무거운 짐들을 가지고 이동할 수도 있고 소총이 아닌 일반 무기로 감염체를 상대해야 하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 순간이 오는 상황을 최대한 미뤄야 했고 그러기 위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아끼며 생활해야만 한다.

" 힘들겠군."

" 응?? 뭐가?"

" 아니. 혼잣말이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생활을 생각하다보니."

" 지금만 생각하자. 지금도 힘든데."

" 그래.."

괜히 오지도 않은 상황을 생각해서 우울해하는 것보다 현재의 생활을 바꿀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나와 기태. 그리고 김 중사는 차량을 타고 콘도텔 인원을 살피러 갔다. 멀리서 지켜본 콘도텔은 여전히 움직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나처럼 몇 명의 인원이 그냥 주변을 순찰하는 것이 전부였다.

" 도대체 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올 생각을 안 하냐?"

" 신기하네. 아니면 인원이 없는 건가?"

" 응?"

" 우리가 본 다른 인원이라곤 아이와 보호자로 추정되는 여자 한 명이

전부잖아?"

" 다른 인원이 없다."

" 아니. 그런 것 치고는 뒤에 버려진 쓰레기 양이 너무 많았어. 내가 본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 그럼 도대체 뭐지?"

"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것일지도."

" 참네."

" 더 이상 감시해봐야 얻는 것도 없겠다. 산으로 이동하자."

" 그래."

김 중사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산으로 이동 할 것을 제안했고 우리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산 중턱까지 이동했고 산 속의 인원들은 콘도텔 인원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넓은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고 사람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보였다. 텃밭을 일구는 사람이나 나무로 지어진 허술한 방벽을 손보는 사람까지. 상식적으로 상대적인 방어가 튼튼한 콘도텔이 더 여유가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와 정반대인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지금 보이는 광경만 본다면 그냥 여유로운 시골의 한 풍경과 다를 것이 없었다.

" 이곳은 감염체의 공격을 받은 적이 없나? 왜 저렇게 여유롭지?"

" 신기하네. 아무리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염체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 저들은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 응? 무슨 소리야?"

" 상식적으로 보통 감염체를 상대하고 쫓기고 다녔다면 저렇게 허허벌판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울타리 수준에 불과한 방벽을 치고 생활할리 없잖아?

우리만 봐도 엄청 높은 벽에 그것도 모자라 각종 부비트랩에 철조망까지

설치하고도 모자라 24시간 근무를 서면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상황인데

저렇게 어린아이들이 뛰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것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 아냐?"

김 중사의 말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활했던 건물의

특징은 튼튼한 벽에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처음 펜션도 그렇고 생존자 캠프에서도 그리고 지금의 연수원도 튼튼한 벽이 우리를 지켜주는 안도감이라는 것이 있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런 생활방식을 유지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한 듯 외국의 시골 한적한 곳의 농장마냥 생존구역을 만들고 지내고 있었다. 울타리에는 아직 개화가 되지 않은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아마도 저 나무들이 자라면서 주변 시야를 막을 것이라는 생각에 심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자연스럽게 시야를 가리는 용도라면 효율성이 높았지만 방어력이 제로인 상황인데 참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 그런데 참 평화스러워 보인다."

" 응."

우리는 망원경으로 본 사람들의 표정에 우리와는 다른 여유가 보였다. 솔직히 생활면에서는 우리가 월등한 상태였다. 전기도 공급이 되고 튼튼한 건물에 저들보다 막강한 화력까지. 하지만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우리처럼 긴장하며 살아가는 표정은 아니었다. 물론 완전히 긴장을 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여유가 보였다. 사람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주변 주거건물이지만 텐트와 임시로 만든 집들에서 생활하는 모습. 몇 대 없는 차량과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된 기구들을 사용하는 모습.

" 돌아가자. 더 이상 봐야 뭐가 있겠어."

" 응."

우리는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났고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며 연수원으로 돌아갔다. 도착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즉석식품을 억지로 양을 늘려 만든 음식이라 간이 하나도 없는 그냥 배만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있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듯 점점 먹는 음식들이 부실해져만 갔다. 점점 더 멀리 구하러 가기는 했지만 위험이 너무 컸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우리가 저장할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었다.

" 더 안 먹어?"

" 괜찮아. 배가 별로 안고파."

" 내가 먹어도 돼?"

" 응."

식성이 좋은 김 중사는 내가 거의 먹지 않은 음식을 보고 말했다. 덩치도 좋은 김 중사의 체격과 체력을 유지하기에는 먹는 것이 부실했으니 무척이나 배가 고팠을 것이다. 그리고 매번 이렇게 움직이니 활동량도 많아 더더욱 그랬을 것이고. 난 담배를 하나 물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로 앞의 바다는 예전 휴가 철에 왔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 후아."

깊게 연기를 들이마신 후 뿜어내니 담배 연기가 하늘 높이 퍼져갔다.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난 건물을 내려가 근무하는 인원에게 말을 한 후 연수원을 나가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이 지겨워 질 때 쯤 무식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망대가 있고 등대가 위치한 곳을 목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차량을 타고 움직이면 볼 수 있었던 주변의 사물이 빠르게 사라지는 광경을 내 스스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며 등대가 위치한 곳에 금방 도착했다.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발로 차버리고 바위 끝자락에 몸을 기댔다. 잔잔한 바다에 반사되는 햇볕을 느끼며 누워있는데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물론 해변에 비해 수심은 깊은 편이지만 이렇게까지 물고기들이 오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현재의 사태가 생태계까지 바꿨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어류의 양도 엄청났는데 포획은 줄어들었으니 개채가 늘어난 것일 수도 있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을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는데 문뜩 왜 지금까지 바다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해변에서 낚시하는 멍청이가 없긴 했지만 그건 예전의 모습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곳에서 낚시를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보였다.

" 오호. 좋은 상황인데?"

난 다시 연수원으로 들어갔고 혹시 낚시도구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다행히 상주했던 부사관 중 낚시가 취미인 인원이 있었기에 잠시 도구를 빌려 같이 동행을 하였다. 나도 간간히 바다낚시를 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혼자 실력으로는 무리였기에 같이 가기로 했다.

" 이렇게 시야에 보일 정도라니, 놀라운데요?"

" 그렇죠? 보통은 이렇게까지 오는 것은 보지 못했는데요."

" 흠. 이 정도라면 해볼만 하겠는데요?"

" 네!"

우리는 가져온 음식물찌꺼기를 미끼삼아 그리고 모형 미끼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간간이 낚이기는 했지만 먹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게 작은 크기였다. 먹자니 먹을 것도 없었고 다시 놔주자니 아까운 계륵 같은 녀석들만 잡히다 보니 슬슬 포기하기 이르렀다.

" 보이기만 할뿐 잡히진 않는군요."

" 네. 녀석들이 생각보다 굶주린 상태가 아닌가 봐요."

" 흠.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요?"

" 조금 더 해보죠.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남는 것도 시간인데 낚시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낚는 것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 하긴. 낚시의 묘미중 하나죠."

예전에 낚시를 했던 경험상 낚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신기하게 별 생각 없이 낚시만 하는 사람이 어획량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실력과 운도 따라줬겠지만 초초해 하지 않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나도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상태로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낚싯대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반응에 괜히 낚싯대를 들어서 기운빼기는 싫었기에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묵직한 힘이 느껴지며 낚싯대가 바다쪽으로 빨려들어가듯 휘었다.

" 오오오!!!"

" 너무 강하게 당기지 마세요! 천천히 기운을 뺀다고 생각하시고!!"

우리 둘은 처음으로 괜찮은 입질이 온 것에 흥분상태였다. 몇 분간의 사투 끝에 조심스럽게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 바늘에 걸린 물고기는 웬만해서 물속에서 노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줄이 끊어지거나 매듭이 불량하면 놓칠 수 있었지만 가장 많이 놓치는 경우는 바로 수면위에서 당겼을 경우 고기의 입이 찢어지면서 놓치는 경우다. 난 경험상 수면 바로 밑에서 끌고 오듯이 당겼고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었을 때 수면위로 당겨 잡았다.

" 와!! 크다!!"

생각보다 큰 몸집을 자랑하면 펄떡거리는 녀석을 보며 우리 둘은 웃었다. 지금까지의 헛손질하면서 놓친 미끼들이 밑밥 역할이 되었던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갔던 부사관도 입질이 오기 시작했고 나보다 낚시 경험이 많아서 훨씬 많은 마릿수를 낚았다.

" 이 정도면 오늘 밤 식사는 문제 없겠는데요?"

" 그러게요. 대충 열 댓 마리는 되어 보이는데요?"

" 정확히 14마리네요. 그것도 튼실한 놈으로."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고기들이 낚이기 시작하자 그 전에 잡아뒀던 작은 녀석들은 나줬고 먹을 수 있는 큰 녀석들만 챙겨서 연수원으로 돌아갔다.

연수원은 우리가 잡아온 물고기로 들떴다. 회를 쳐서 먹을 양은 아니었지만 지금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기에 다들 서둘러 손질했고 급하게 저녁메뉴가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재료가 충분하니 맛도 뛰어났고 다들 웃으며 식사를 끝냈다. 오랜만에 맛있고 배부르게 먹어 기분이 좋았고 내일부터는 돌아가며 낚시를 하기로 했다. 농사는 불가능해도 수렵은 가능한 상황이니 앞으로 식량수급에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 작품 후기 ============================

중복되어 올라간 점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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