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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60화 (6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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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소총을 들고 사격을 하려 했지만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쏴봐야 소용없는 행위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듯 누구 하나 사격을 하라고 지시 하거나 사격하는 인원은 없었다.

" 쓸 때 없는 짓이야."

"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뭘 할 수 있는데?!"

" 끄에에엑!!"

벽 밑에서 우리를 보고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괴상한 소리를 내는 감염체를 보니 공포감마저 들었다.

" 젠장!"

" 쏘..쏠까요?"

" 쏴!!!"

" 탕! 탕!"

우리는 한발씩 신중하게 사격을 했고 대부분이 머리에 맞으며 감염체들이 쓰러져 갔다. 하지만 그 위로 바로 다른 감염체가 쓰러지면 바로 다음 감염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메웠고 아무리 쏴도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도로 끝까지 줄지어 있는 감염체를 보면서 전의를 잃은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기를 바라며 사격을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 이대로는 끝이 없어. 무의미한 짓이야."

사격을 멈추며 김 중사가 말을 했다. 지금까지 수백 발을 쐈지만 처음과 다를 것이 없는 감염체 모습을 보며 총구를 떨어뜨렸다.

" 이렇게 한 번에 무너질 줄이야."

" 아직 무너진 것도 아니잖아! 벌써부터 그러면 네가 군인이냐!"

"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녀석들 인거야! 지금까지 얼마 보이지도 않다가!"

" 지금 그게 문제야?! 어서 쏘라고!"

김 중사의 행동에 다들 분열이 일어났다. 건물에서는 짐을 챙겨서 나오는 인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동안 감염체가 뜸하다는 이유로 탄약을 구하러 가는 것을 소홀히 했더니 바로 결과가 드러났다. 그 동안 조금씩 소모된 탄약들이 시간이 지나자 무시 못 할 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구하러 간다고 해도 얼마 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지금 있는 감염체의 숫자를 약간이나마 덜어낼 뿐.

" 우리 대체할 무기가 없나? 연구소에 뭔가 없어?"

" 지하는 그냥 전자기기 뿐이야."

" 젠장."

생각을 하자. 생각을.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난 한 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잔뜩 구름이 끼어 있는 모습으로 보아 저녁 늦게나 새벽이 되면 비가 올 듯 했다.

" 비?"

" 왜? "

" 비가 내린다라.."

" 무슨 소리야?"

" 우리 지금 휘발유가 얼마나 남아있어요?!"

" 세 드럼 넘게 있습니다만."

" 600리터라."

" 도대체 뭔데! 말 좀 해줘!"

" 불 지르자."

" 응?"

" 가능한 멀리서부터 불을 질러서 감염체를 태우자. 전에도 겪었지만 감염체는

잘 타니까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 그러다 불길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주변에 마른 나무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 이제 막 자라기 시작했으니 수분을 머금어서 그렇게 쉽게 타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방벽이 있으니 어느 정도 버틸 것 같고. 제독차가 있으니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워서 벽이나 주변에 물을 뿌리면 어느 정도 방어는 될테니까."

" 너무 위험해. "

" 그럼 지금 다른 방법이 있어?"

" 불을 낸다고 치자. 어떻게 입구서부터 불을 낼 건데?"

" 말통에 담아서 힘껏 던져보자."

" 야! 아무리 힘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백 미터나 날아가겠냐?"

" 쳇. 무리인가."

" 차라리 들고 나가서 던지는 게.."

" 응?"

" 제가 최대한 들고 나가서 입구에서 불을 피울게요."

" 재효 네가?"

" 네. 그래도 50kg은 들고 달릴 수 있으니 꽤 많은 양이라 생각되는데요?"

" 넌 남아. 내가 간다."

" 뭐?!"

" 나 혼자 간다. 재효보다 훨씬 많이 들 수 있으니까 내가 더 유리하지."

" 형! 매번 형만 위험하게.."

" 나도 간다."

" 김 중사님!"

" 우리 둘이 메고 간다면 위력은 두 배가 넘겠지. 재원이 너 혼자 계속 이런

상황에 혼자 보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 무슨 자존심 타령이십니까!"

" 쳇. 한번 나가볼까?"

" 응! 가서 최대한 통들을 구해 와서 담도록! 그리고 제독차에 물을 넣고 주변

벽에 물을 뿌리고 다시 가득 담아놓고 대기하도록!"

" 하지만!"

" 명령이다! 움직여!"

" 재효 너도 가."

" 나도 같이 갈 생각이야. 말릴 생각 하지마."

" 말려? 누가? 넌 그냥 안돼."

" 왜! 매번 형에게 이런 짐을 떠안게 할 수 없어!"

" 누가 떠안아?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당연히 우리가 살기 위해 하는 것 뿐

이야."

" 하지만 매번 이런 일 때마다 걱정하는 은혜는 생각 안 해? 남들보다 배는

걱정하고 살아야 하는데!"

" 둘다 죽느니 차라리 한 명이라도 살아야지."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너야 말로 그만 떠들고 내려가서 도와."

" 안가!"

" 억지 부리지 말고 가라면 가!"

내가 소리치자 재효가 움찔하면서 포기하고 벽을 내려갔다. 난 김 중사와 감염체 무리를 한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 가볼까."

다른 인원들이 준비한 각종 통에 담겨진 휘발유를 챙겨 들고는 움직임에 지장이 없게 잘 메고는 후문으로 다가갔다. 은혜가 나를 걱정스럽게 처다 봤지만 난 웃으며 말했다.

" 걱정마. 그냥 뛰어갔다 오는 일이니까."

" 제발.. 몸 생각 좀 해요."

" 다녀오면 안마 해 줄거야?"

" 다신 이런 행동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요!"

" 약속할게. 이번이 마지막이야."

" 약속해요!!"

" 그럼! 이제 마지막!"

난 은혜의 손을 잡으며 말했고 뒤 돌아 서서 표정을 굳히며 작게 중얼 거렸다.

"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김 중사와 나는 후문을 나가자마자 멀리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감염체들의 눈을 피해 멀리 멀리 돌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아서 메인 도로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미 도로에는 한 가득 감염체들이 모여 있었고 우리는 가능한 연수원에서 먼 곳이지만 감염체가 많은 곳을 향해 뚜껑을 열고 통을 던졌다. 통들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감염체들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던지고 마지막으로 화염병에 불을 붙이고 던졌다.

" 화륵!!"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감염체들은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 불이 붙은 감염체가 옆 감염체를 그 감염체가 또 옆 감염체에게 불길을 옮기며 삽시간에 불길은 크게 번졌다.

" 됐다!"

우리는 다시 빠르게 뛰어 후문으로 들어갔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 불길이 움직이는 방향을 주시했다.

" 빠르게 번지는데? 그리고 확실하게 우리 쪽으로 오겠다."

" 응."

역시나 예상한 방향으로 불길이 움직이고 있었다. 단지 생각보다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것이 문제였다. 그 말은 감염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주변 나무들까지 불길이 옮겨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주변에 물을 뿌리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우리 모두의 생사를 걸고 하는 도박.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해볼 것은 다 해보고 죽어야 억울하지도 라도 않을 것 아닌가?

" 감염체들이 흩어진다."

" 하지만 우리 앞에 있는 감염체들은 멀쩡한데?"

" 우선 숫자를 줄인 것에 만족하자."

" 계속해서 지켜봐야지. 이제 해도 완전히 졌는데 불길 때문에 밝아서 좋긴

하네."

" 넌 네가 불 지르자고 하고 걱정도 안 되냐?"

" 인간이 하는 걱정의 90%가 쓸 때 없는 걱정이라잖아."

" 지금은 10%라는걸 모르냐!"

" 됐어."

" 정말 천하태평이다 너도."

" 온다."

불길이 점점 우리를 향하여 이동하였고 불길에 휩싸이는 감염체들이 늘어갔다. 하지만 튼튼한 콘크리트벽으로 인해 불은 연수원 안으로 넘어오지 못했고 주변의

감염체를 태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마른 가지들을 태우고 나무들을 태웠갔지만 큰불은 아니기에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무에 물을 뿌리면서 타는 것을 방지했기에 벽 근처에서는 크게 불이 번지지 못한 채 꺼져갔다. 하지만 뒤편 감염체들의 사정을 달랐다. 서로 엉키면서 불은 점점 커져만 갔고 어느새 도로를 가득 메운 시신들과 연수원 밖 도로에서는 강하게 불이 타올랐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자 내려가 대령님을 찾았고 지금의 상황을 보고했다.

" 다행이네! 정말 잘했네!"

" 솔직히 실패했으면 저희는 모두 지금 여기 있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감염체에 죽나 불길에 죽나 죽는 건 똑같지 않은가! 어차피 죽을 것을 안다면

해보고 싶은 것을 다해봐야 죽어서도 억울하지 않지!"

" 누구랑 똑같은 말을.."

" 우선 인원의 반은 근무를 서도록 하고 비전투원들은 짐을 풀지 말고 건물에서

대기 하도록 한다!"

" 네!"

" 어디서 또 몰려올지 모르니 철저히 감시하고! "

" 알겠습니다!"

" 자네 둘은 남게나."

" 네?"

나와 김 중사는 따로 할 말이 있다며 대령이 잠시 방에 남을 것을 지시했다. 다른 인원들이 모두 방을 나가고 우리는 대령의 말을 기다렸다.

" 우선 우리 인원에 관한 이야기일세. 현재 성대씨 일행과 많이 섞여 있다 보니

혼란스러운 것도 있고 이제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물품이나 식량도 잘 해야

한 달이라고 들었네."

" 네."

"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그 산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떤가?"

" 네?! 하지만 이미 산에서 저희 쪽으로 온 인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인원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 아니. 모든 인원을 말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 둘을 말하는 거야."

" 네?"

"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 무기가 있다면 우리 연수원은 요새와 다를 것이 없지.

하지만 이제 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의 위치는 빠져나갈 곳도 없는

그냥 구석의 쥐에 가까운 상황이야. 차라리 이런 곳 보다 어떻게 보면 성대씨

일행이 있는 곳이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 하지만 그 곳이라도 지금까지는 감염체의 공격을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 알아. 하지만 그 곳은 넓은 곳에 위치했고 감염체가 시야에 들어온다면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네. 그 넓은 지역을 덮을 정도로 많은 감염체가

온다면 상황은 다르겠지만 그 정도 감염체가 움직인다면 그전에 알 수

있을테니 지금의 감염체 움직임을 보면 차라리 그 곳이 더 안전할 것 같네."

" 저희만 보내는 이유가 있습니까?"

" 뭐 다른 인원들은 여기 생활에 만족하는 모습이고 이곳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니 다른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자네들의 능력은

현재 우리의 상황을 벗어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네. 기태군의 능력과

조금 모자라지만 재효군과 자네 둘. 이 네 명으로 게릴라식으로 감염체를

제거해 간다고 하면 승산은 있다고 보네."

" 대한민국 국민의 반만 감염되었다고 해도 2천만입니다. 어느 세월에 그 많은

감염체를 죽이고 다닌답니까."

" 모두 죽이라는 것이 아닐세. 어느 정도만 죽이면서 우리가 이동할 여력만

생긴다면 인원을 모아 감염체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인원이 늘어가는 상황을 바라지 않습니다."

" 아네. 하지만 이제 생존이 아닌 공격을 하고 점령을 해야 한다네! 그런

상황에서 우선 인원이 늘어서 공격을 할 수 있는 전투원이 늘어야 하네!

그리고 넓은 지역에 연수원 같은 벽을 만들고 산 속처럼 농경지를 꾸며 최소한

먹을 것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일세."

" 흠.."

"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들이 최우선적으로 생존해야 한다네. 전투라는 것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네. 그런 상황에서 자네들은

분명 소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 것이라 생각되네. 하지만 지금 현재 연수원을

꾸리고 있는 내 입장에서 자네들의 그런 행동은 말리고 싶다네.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오늘 같은 일이 생긴다고 자네들이 안 움직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인원들은 어쩌고.."

" 여기나 거기나 우리 인원은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라네. 하지만 자네들은

다르지."

" 솔직히 네 명 모두 그리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 네. 여기를 비워두고 간다는 것이 조금.."

" 그럼 적어도 반반은 흩어지게나. 한쪽이 위험에 빠지면 한쪽은 살아남을

환경을 만들어야지."

" 내가 재효랑 갈게."

" 아니. 기태랑 가."

" 왜?!"

" 넓은 지역이라서 기태의 능력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재효는 나랑

있으면서 이것 저것 좀 알려주게."

" 난 핑크가 어느 정도 감염체가 접근을 하면 알 수 있어서 기태까지 같이 간다

는 상황은.."

" 그래봐야 훈련도 받지 않은 개 잖아? 너무 믿지는 마."

" 하아.."

" 우선 둘이 알아서 정한 후에 나에게 알려만 주게나."

" 알겠습니다."

" 그럼 오늘은 혹시 모르니 순찰을 강화하도록 하고."

" 네. 그럼."

우리는 대령의 방을 나와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고 아직도 불씨가 꺼지지 않은 도로를 바라봤다. 과연 대령의 말이 맞는 걸까? 우리가 정말 예전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담배를 피며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말없이 김 중사는 내려갔고 나도 은혜가 있는 카바란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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