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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62화 (6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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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다행인지 아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간 감염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생활은 오히려 연수원보다 활기가 넘쳤다. 인원수가 많다보니 간단한 농사와 수렵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차량을 끌고 나가 주변을 수색하여 필요한 물품들을 구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얻은 물품이나 식품들은 가장 큰 집에 보관하여 각자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형태였다. 그래도 아예 사람들의 양심에는 맡기지 않고 그 곳을 관리하는 인원도 있었다. 나와 기태는 주변 수색을 담당하며 연수원에서 가져온 철조망과 기타 물품을 가지고 울타리를 고치거나 방어가 빈약한 곳을 손 봤다. 그리고 제법 이곳 사람들과 친해졌고 그들에게 먹을 수 있는 풀이나 야생동물들을 잡아 손질하는 법을 배웠다.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졌고 틈틈이 독초를 가져와 즙을 내는 작업을 행했다.

" 어라? 빗방울이 떨어지네?"

" 비가 오려나? 아침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모습이었는데."

" 제법 많이 오려나 봐요? 빗방울이 굵은데요?"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다들 들어가도록 해요."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제법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라반 근처에 배수로를 파서 물길을 만들었고 카라반으로 들어가 젖은 옷을 벗어 샤워를 끝낸 후 침대에 누웠다. 점점 더 거세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노트북을 켰다. 이제는 자체 발전기라고는 캠핑용 소형발전기와 카라반 천정에 붙은 태양열 전지판이 전부였기에 최대한 아껴서 사용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다른 집은 전기가 아예 없는 곳이기에 괜히 발전기를 돌려 사용하는 것도 눈치 보였기 때문이다. 노트북에 저장된 지도와 정보를 하나씩 읽어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잠시 후 카라반의 문이 열리면서 기태와 보미 그리고 은혜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왔는지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 뭘 하고 왔어? 다들 왜 그렇게 젖은 거야?"

" 원래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나갔던 집에 다른 사람들이 이사 가는 것을

도와줬는데 생각보다 짐들이 많다보니."

" 자기는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요?"

" 그냥 이것저것. 나도 들어온지 얼마 안됐어."

" 어서 씻자."

" 너희도 배정 받은 집이 있잖아? 왜 여기서 씻는 거야?"

" 전기가 안 나오잖아! 여기서 뜨거운 물 나오는 곳이 여기 말고 없단 말야!"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씻는 건데?"

" 대부분 물을 끓여서 욕조에 받아 놓고 씻더라고요."

" 산 중간이라 그런가 비가 엄청 오네. 잠깐 맞았는데 완전히 젖어버렸어."

" 추워. 추워."

다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내가 타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빗줄기는 점점 세차게 내렸고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엄청나게 퍼 붓고 있었다.

" 집중호우가 내릴 계절을 아닌데."

" 봄비 치고는 너무 많은데."

" 이제 곧 여름인데 봄비라고 하기도 뭐하죠."

" 하긴. 이제 점점 더워 지는게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야 하니. 예전에는

이렇게 덥다는 것은 군대 아니면 느낄 수가 없었는데."

" 그만큼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이지."

" 이 차 맛이 괜찮네요? 이름이 뭐예요?"

" 몰라요. 그냥 마트에서 널려져 있는 것 몇 개 집어온 거라."

" 흠. 상표라도 기억을 해놔야겠네요."

많이 아쉬운 듯 보미가 눈에 익히려는 듯 유심히 상표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몇 년간. 아니 어쩌면 평생 동안은 생산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차를 보는 모습을 보며.

" 비가 그치면 우선 울타리를 보수 하자."

" 못 해."

" 왜? 무슨 말이야?"

" 너무 넓어서 솔직히 불가능해. 가지고 있는 자제도 없고 그렇다고 공구가

충분해서 손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져온 철조망을 친 것이 한계야."

"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기태의 물음에 난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막막한 상황이었다. 뭐하나 충분한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톱이 있어서 나무를 잘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원래 있던 것을 어설프게 보수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감염체의 공격을 받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 비가 그치면 주변을 둘러보자.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번화가로 들어 가보자."

" 저번에도 그랬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 이번에는 네가 있잖아. 그리고 독초의 효과도 시험해 볼겸."

" 제발 뭐라도 얻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 부디."

나와 이야기 하는 동안 보미는 은혜와 뭔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은혜의 표정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 은혜가 보미를 불편해 하는군."

" 응? 아마도 보미 인상자체가 날카롭다 보니까 다가가기가 힘들지도."

" 지금까지 연수원에서 지낸 시간은 뭐지."

" 그래봐야 마주친 시간은 얼마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니까."

"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아무 말도 못하네."

" 신기하네."

분명 둘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은혜의 표정은 뭔가 혼이 나고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 재미있는 광경에 우리는 말없이 둘을 바라봤고 우리의 시선을 느낀 보미가 기태에게 말을 했다.

" 왜? 할 말 있어?"

" 어? 아니. 이제 우리도 돌아갈까? 오래 있으면 실례지."

" 이미 실례인 상황이 지났으니 어서 가라."

" 어쩜 가란 말을 그렇게 쉽게 하냐?"

" 꺼져 그럼."

" 풋. 들어간다. 푹 쉬어라."

" 참네."

우리 둘은 악담 아닌 악담을 하며 헤어졌고 보미가 나간 후 은혜의 표정은 조금 전 보다 한결 편해졌다.

" 왜? 보미가 뭔가 불편하게 해?"

" 아니 그건 아닌데요. 뭔가 포스가 있다 보니 자꾸 주눅 들어요."

"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마치 혼나는 표정을 짓고 있어?"

" 아직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무리 자기 친한 친구의 아내라고 해도

저에게는 아직 불편한 사이니까요."

" 편하게 생각해. 인상이 그런 것이지 성격까지 그런 것은 아니니까."

내말에 뭔가 생각을 하는 표정이다가 이내 침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상하의가 세트로 이뤄진 벨벳 추리닝을 입고는 내 옆에 앉아 몸을 눕고는 마치 고양이 마냥 밀착시키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은혜 특유의 말없는 애교 중 하나였다. 잠을 잘 때도 품에 안기여 부비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며 잠들기 전까지 한참을 품속에서 꼬물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또한 싫은 이유가 없었다. 한참동안 이어진 은혜의 애교는 은혜가 잠든 후에 멈췄고 난 빗소리를 들으면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이 되어서도 비는 세차게 내렸다. 땅을 뚫어버릴 듯 한 기세로 내리는 비는 맞으면 아플 정도였고 다른 작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날씨였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시야도 좋은 편이 아니라 밖을 나가서 물품을 구해 오는 것도 힘들었고 더군다나 빗소리로 인해 다가오는 감염체를 발견하기 힘든 것도 한 이유였다. 어느 하나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요건이 없다보니 무리해서 나가는 것은 자제하기로 했다. 차량을 이용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것 외에는 오늘 할 일은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도로가 아니라면 차량이 진흙에 빠져 나오기도 힘들었고 쉴틈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를 무색하게 내리는 비로 인해 바로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 이런 비는 처음인데요?”

“ 네. 마치 여름철 집중 호우를 보는 것 같네요.”

“ 이런 식으로 계속 내리면 저희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차안에서 나와 기태. 그리고 성대씨가 내리는 비를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하루하루 긴장감에 살아가는 상황에서 이런 날씨는 더욱 더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 배수로를 파거나 그런 행위를 해야하지 않을까요?”

“ 산사태가 날 것도 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 배수로는 문제가 없지만 산사태는 조금 걱정되네요. 날씨가 급격히 풀리고

비가 이렇게 내리니 위험 할 수도 있겠네요.“

“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전부군요.”

“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구나.”

“ 감염체도 어떻게 못 하는 상황인데 뭘 할 수 있겠어.”

“ 하아. 제발 비라도 그쳐야 할 텐데요.”

“ 금방 그칠 비는 아닌 듯 싶습니다.”

우리는 차 방향을 돌려 다시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카라반에서는 은혜가 걱정스럽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날씨가 많이 나빠서 평소보다 걱정이 되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기태와 보미가 카라반 안으로 들어왔다.

“ 왜 또?”

“ 인사도 하기 전에 악담이냐!”

“ 볼일 있어?”

“ 할 이야기가 있었서.”

“ 뭔데?”

나의 말에 기태가 보미에게 눈치를 줘서 둘은 메인 침실로 들어갔고 나와 기태만이 거실에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 흠. 우리 비가 그친다면 이동하는 것이 어때?”

“ 뭔 소리야? 우선 여기서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가 움직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별 이야기 없다가 갑자기 그러는 이유가 뭔데?“

“ 여기 사람들이 이야기 해줬는데 남쪽에서는 서울 근교에 생존자 캠프가 있다고

믿고 올라간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

“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오히려 반대 아냐?”

“ 맞아. 그러니 우리가 움직여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으자는 거야.“

“ 왜?”

“ 왜라니! 힘을 모아서 가능한 멀리 뛰기 위해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화력을

모았다가 한 방에 터뜨리자는 말이지!“

“ 그러기 전에 감염체들을 좀 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

이라고 생각하는데?“

“ 너와 김 중사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 그리고 나도 있고.”

“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우리 넷만 움직여서 다니는 것인데 너 보미를 두고 다닐

수 있어? 난 못해.“

“ 다 같이 움직이면..”

“ 인원이 많아지면 그 만큼 시간이 지체되고 네가 말했던 계획에 점점 차질이

생길거야. 솔직히 일반 승용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면 웬만큼 왕복이

가능하잖아? 하지만 우리가 전부 움직인다면 짐이 점점 늘어가고 그 만큼

움직이는 차량의 연비는 떨어지지. 더 멀리 가기 위해서 기름을 더 싣고 이동

해야 하고 그러면 또 차량은 무거워 지고 악순환이야.“

“ 알아. 하지만 이렇게 한 곳에만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뭔가

해보면서 상황을 바꾸도록 노력해야지!“

“ 힘은 여기서 모아도 충분해. 오히려 잘못 움직여서 힘이 떨이질 수도 있잖아?

여기서 웅크리고 있다고 생각해. 네 생각은 알아. 나도 네 의견에 충분히

동감하고.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

“ 넌. 언제라고 생각되는데?”

“ 앞으로 한 달. 한 달 동안 지켜보자. 그러고 나서 움직여도 늦지 않아.”

“ 한 달 뒤에 뭘 할 건데?”

“ 우선 우리가 만든 독초 액을 시험해 보고 가능한 이 곳의 방어를 튼튼하게

할 방법을 찾자. 지금 당장은 답이 없지만 컨테이너 박스를 싣고 와서 벽을

만든 다거나 다른 방법을 찾도록 하자.“

“ 지금까지 이 곳 사람들도 뭔가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했잖아.“

“ 상황이 다르잖아. 지금까지는 다른 생존자의 협박과 약탈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다르지. 이 곳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생존에 대한 의지가 더 높다고

생각해. 뭔가 개척을 하고 지내려고 하잖아? 우리야 군인 출신들이 많으니

당연히 방어면에서는 뛰어났지만 여기는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이 많이 있잖아.

그런 두 곳의 집단이 뭉쳤으니 조금 있으면 뭔가 빠르게 변할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마.“

“ 넌 나갈 생각은 있는 거야?”

“ 물론. 나라고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는 없지. 떠도는 이야기 중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들만 골라서 가장 가능성 있는 곳부터 찾자.“

“ 알았어. 한 달이다?”

“ 응. 정확히 한 달 뒤에. 움직이자.”

“ 응. 그리고..”

“ 응?”

“ 마실 것 좀 없냐? 손님이 왔는데 아무것도 안 주냐?”

“ 네가 언제부터 손님이 됐어?? 그리고 왜 매번 여기서만 찾냐?”

“ 네 성격상 분명 뭐든지 가득히 챙겨뒀을 거 아냐? 빈손으로 왔을리도 절대

없고.“

“ 쳇. 거기 찬장 열어봐. 마실 것 몇 개는 있을 거야.”

“ 와!! 편의점이냐? 뭔 음료수가 종류별로 있냐?”

“ 틈틈이 챙겨 둔 거야. 넌 빈손으로 나왔어?”

“ 난 너랑 다르게 개인적인 공간이 없잖아. 그래봐야 차 한 대 있는 건데

그 곳에 모아놨다간 다른 사람들이 전부 훔쳐 갔을걸.“

“ 하긴.”

기태는 찬장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어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음료수에

기태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마치 군대에서 초코파이만 주다 어느 날 초코파이와 시원한 사이다를 받았을 때의 표정이랄까? 그런 모습은 나를 웃게 만들었고 그런 내 모습도 모르고 기태는 음료수를 다 마시고는 보미를 불렀다.

“ 여보! 여기 마실 것 많아! 뭐 줄까?”

“ 야! 네 것도 아닌데 왜!!”

“ 친구사이에 그런게 어디있어! 혼자 언제 이렇게까지 모아 둔거야?”

“ 와! 나 이거 마실래!”

“ 하아...”

내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둘은 찬장에서 꺼낸 음료수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 그냥 둬요. 저기 말고도 많이 있으니까요.”

“ 알아. 그냥 투덜거리는 거야. 그냥 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잖아.”

“ 자기도 보면 가끔 심술이 있어요.”

“ 풋. 그런 것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남겠어.”

은혜는 내 말에 웃으며 쇼파에 앉았다. 나와 기태는 은혜가 보미를 어려워하지 않게 여러모로 노력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부디 실종자분들이 전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구조자 분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발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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