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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독초의 발견과 철조망 작업으로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이제는 도심을 진입하여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작업도 수월하게 진행 될 것이었고 별다른 소음을 유발하거나 감염체의 이목을 끄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도심에 들어가서 휴대용 발전기를 구하거나 주유소를 털어 지금보다 많은 양의 기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형 발전기와 물품은 있었기 식량위주로 수색을 했지만 마을은 반대인 상황이었기에 우선 전기의 공급이 시급했다. 식량은 우선 저장해둔 양이 여유가 있었고 경작이 가능한 곳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얻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여름에 에어컨을 틀고 지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이제는 마을에서도 뜨거운 물이나 냉장고등을 가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기는 필요했고 전기를 얻기 위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도심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제는 대 인원으로 늘어났기에 부담감도 덜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짜며 몇 시간을 대령의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기나긴 계획수립이 끝나고서야 나와 김 중사와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하아. 예전부터 느꼈지만 회의는 정말 지루해."
" 우리가 세우고 진행하는 계획이지만 뜻이 다르니까 말이 많아 질 수 밖에."
" 역시 사람이 늘어나면 좋은 의견도 많아지지만 반대 의견도 생기지."
" 마실 것 좀 없어? 하도 떠들었더니 목이 다 아프네."
" 물이라도 마셔."
김 중사와 잡담을 나누면서 내가 나간 이후의 연수원 이야기를 해줬다. 재효는 다시 미란이와 사이가 나아지기 시작했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민희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며 지냈고 사람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돌았지만 별다르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 그래도 재효가 잘 돼서 다행이네."
" 미란이도 대단하지."
" 풋. 이 상황에서 헤어져 봐야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으니 함부로 헤어지는
것도 힘들지."
" 넌 잘 지내고 있어?"
" 나야 뭐. "
" 기태가 오네?"
" 저 녀석은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나타나는 거야?"
" 어? 뒤에 홍 소령님이시네?"
" 그렇게?"
나보다 훨씬 바쁜 홍 소령이었기에 얼굴보기가 힘들었고 간혹 마주쳐도 많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연수원과 마을의 유일한 의사였으니 바쁠 수밖에 없었고
집에서는 만삭이 가까운 희욱이 누나를 보살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 오랜만이에요! 요새는 조금 한가 하신가 봐요?"
" 응! 마을에서 그래도 어르신들이 민간요법을 아시는 분이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고 이제는 응급조치 정도는 할 수 있는 인원들이 많아서 예전만큼
바쁘지 않아. 다들 나에게 오지 않은 것을 보니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겠지?"
" 뭐 어지간히 아픈 것 아니면 찾아가기 힘들죠. "
" 그래도 몸이 우선이야. 작은 병이 큰 병 된다."
" 알겠습니다!"
" 희욱이 누나는 요새 어때요?"
" 뭐 먹는 것이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마을이랑 연결되어서 조금은 나아 졌어.
그래도 예전보다는 영양 면에서는 나아졌으니까."
“ 영양면에서 나아 졌다라.”
“ 매번 인스턴트에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먹었으니 오죽했겠어. 못 먹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다행이지. 마을은 감자나 고구마 따위가 많으니
다행이었지.“
“ 하긴. 차라리 인스턴트보다 그런 음식이 좋겠죠.”
이제는 여유가 생겨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마을의 방어에 힘쓰고 있을 때 연수원도 며칠 동안 수색을 하여 탄을 구했다고 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좋았고 구하면서 인명피해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군부대는 수방사가 아니라면 꽤 깊고 인적이 드문 곳에 많이 주둔하고 있다. 당연히 도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 대부분이었고 그 곳을 수색하던 중 변종 감염체 무리를 봤다는 것이었다.
다행이 같이 간 김 중사가 병사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고 소문은 퍼지지 않았다. 대형 감염체나 변종 감염체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생존자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칠 것이니까.
“ 김 중사가 그래도 병사를 제대로 관리 했네?”
“ 뭐 그런 것도 있고 다들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 흠. 그래도 대형 감염체를 마주하고도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 다행이군요.”
“ 난 대형 감염체를 상대로 싸웠다는 소리는 안했다.”
“ 네?”
“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것은 일반 감염체의 공격 때문이었어. 대형 감염체는
다행히 거리가 꽤 있는 상황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고.“
“ 도대체 숫자가 얼마였기에 당한 거야?”
“ 수십만.”
“ 네?!!”
“ 말도 안 돼..”
“ 정말 끝도 없이 밀고 들어왔어. 예전과 다르게 육체가 더 약해진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 꽤 온전한 체격을 가진 감염체도 있다고 했어.“
“ 아마도 온전한 녀석들은..”
기태가 끝말을 흐렸지만 다들 알 수가 있었다. 온전한 녀석들은 계속해서 생존자의 육체를 지속적으로 흡수 했던 것이다. 아무리 감염체라고 해도 영양 공급이 있어야 살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영양으로도 아무리 오래 버틴다고 해도 그들도 어떻게 본다면 생명체이다. 아무것도 안 먹고 마냥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자연의 법칙은 유지되고 있으니까.
“ 심각하군요. 그렇다면 솔직히 철조망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아닐 텐데.”
“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좋지.”
“ 하지만 다른 곳은 감염체가 많은데 유독 이 지역만 없다는 느낌은 뭘까?”
기태의 말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감염체들이 도심에서 잘 나오지 않는 모습도 신기했고 이 근처만 벗어나도 감염체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우선 모든 감염체가 락스에 내성이 생긴 것은 아닐거야. 우리가 오기 전부터
뿌렸으니 근처에 있는 감염체는 내성이 생겼다고 해도 새로이 들어오는
감염체는 내성이 생겼다고 보기 힘드니까.“
“ 그럼 언젠가는 독초에 내성이 생긴다는 말이군요.”
“ 약간은 다르지. 락스는 피할 뿐이지 락스에 죽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성이
없는 감염체도 주변 감염체에 휩쓸리며 이동하니까. 하지만 독초는 다르지.
운 좋게 살아남는 감염체가 내성이 생기겠지.“
“ 힘든 상황이군.”
“ 그래도 우리 주변에 감염체가 적다는 사실에 만족해야지. 지역적인 특성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사람이 없는 지역이니 감염체들도 안 오는 상황
일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 상황이야.“
“ 내 가설은 아마도 우리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 응?”
김 중사가 약간은 다른 의견을 말했다.
“ 생각해봐. 우리가 변한 것처럼 감염체도 변종이 생겼어. 그리고 지금까지 본
바로는 대형 감염체의 명령에 따르는 느낌을 받았고. 즉 감염체들보다 강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몰라. 기태가 다른 존재를 느끼는 것처럼 감염체
도 우리의 존재를 느끼고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고.“
“ 흠.”
서로 비슷한 능력의 변종이 생길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감염됐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한 때 인간이었으니까.
“ 아직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우선 우리 상황부터 신경 쓰자.”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많았다. 당장 내일을 버티는 것도 힘겨울 수 있는 판국에 너무 멀리 보는 것도 좋지는 않았다.
“ 저희는 이만 마을로 돌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마을을 비워두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요.“
“ 그래. 여기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다들 잘 지내고 있긴 하지.”
“ 뭔가 말에 가시가 있네요?”
“ 하아.”
내 말에 홍 소령이 뭔가 걱정되는 일이 있는 것 같았지만 선뜻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근심 가득한 표정일 짓고는 힘겹게 말을 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 아직은 큰 문제가 아니니까 너희에게 이야기 할 정도는 아니야. 늦었다.
어서들 돌아가 봐.“
“ 알겠습니다.”
캐묻는 다고 말해줄 성격도 아니었으니 나는 금방 포기하고 돌아섰다. 김 중사에게 약간의 탄약을 받은 후 빠르게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에는 가져온 철조망들로 꽤 많은 양의 작업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우선 일차적인 방어선이 구축되었으니 지속적으로 방어선을 늘려가야 했다.
“ 힘들다.”
“ 다녀왔어요?”
“ 응. 뭐하고 있었어?”
“ 그냥 카라반에 있었어요.”
“ 응? 마을 사람들이랑 작업한다고 들었는데?”
마을에 남은 여자들과 노인들은 우리의 식사나 기초적인 생필품을 배분하거나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만들어서 생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주 나가던 은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가는 횟수가 줄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 뭐가 문제있어?”
“ 아뇨.”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분명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뭔데 말을 해봐.”
“ 하아..”
한 숨을 깊게 쉬고는 은혜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나 저기나 간만 보고 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 있잖아요..”
“ 응??”
은혜가 해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본다면 꽤 심각한 이야기였다. 마을의 연령대는 30대 전후 반의 인원이 가장 많았고 그리고 50대. 10대 순이었다.
연수원가 다르게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집단이다 보니 흔히 말하는 끼리끼리 모이는 파벌이 존재했다. 파벌이라고 해봐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인원이 쉽게 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말없이 묵묵하게 지내는 것 같았지만 파벌의 이익이나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었다. 연수원가 다르게 군대식으로 이뤄진 집단이 아니다 보니 지도자가 있기는 했지만 행하는 모든 것들은 명령이라기 보다 부탁에 가까웠다.
파벌이라는 것은 인원이 많을수록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초반에 은혜와 보미를 포섭하려고 잘해준 인원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의 파벌에 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색해온 물품들이야 눈에 보이니 공평하게 나눴지만 그 외에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들이나 수확하는 식량들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았고 중간에 숨길 수 있는 상황이 많아서 은밀히 그런 행위들이 이뤄졌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켜만 보던 은혜도 한계를 느꼈는지 더 이상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포기했고 보미도 같은 상황이었다.
“ 솔직히 어쩔 수 없잖아. 인원이 많아지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하지.“
“ 알죠. 뭐 저도 예전 사회에서도 그랬는데요.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뭉쳐
다니는 것은 당연한데 뭔가 다른 상황이니까요.“
“ 뭐가?”
“ 민희 이야기가 여기까지 펴졌는데 다르게 퍼진 것이 문제지요.”
“ 응?”
뭔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희의 행실은 연수원에서도 쉬쉬하며 그냥 소문이었는데 그 소문이 벌써 마을까지 넘어왔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속적인 왕래가 있기는 했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수색을 나가면 몰래 챙기는 것들이 많잖아요? 자기만
봐도 절 위해서 이것저것 구해온 것도 많고.“
“ 그렇지. 암묵적으로 전체의 물품을 구하는 것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묵인하고 넘어가는 행위니까. 그런 것 까지 일일이 관여하기에는 무리가 많지.“
“ 알죠. 이번에 민희가 재효오빠랑 끝나고 바로 다른 남자를 만났잖아요.
그래서 점점 소문이 퍼진 것이죠.“
연수원 사람들은 대부분 눈치 챘던 일이지만 공공연하게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난 그저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뼈가 붙고 살이 추가되면서 이야기는 커져버린 것이었다. 마치 연수원의 여자들이 대부분이 그런 여자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가볍게 보는 인원들이 생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연수원으로 물건을 나르기 위해 갔던 인원들 중에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민희와 잠자리를 가진 인원들이 많다고 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그런 더러운 것들도 많이 있었다.
“ 미쳤군.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 뭐 덕분에 저랑 보미 언니도 옷차림이나 행동에 무척 신경을 쓰고 생활하고
있어요. 몇 몇 남자들은 굉장히 저를 가볍게..“
“ 뭐?!!”
내가 은혜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화를 냈다. 남들이 내 여자를 가볍게 봤다는 이야기를 내 여자의 입으로 듣는다는 것은 감염체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보다 어떻게 본다면 큰 것이다.
“ 이것들이 감히..”
내가 정말 화난 표정으로 인상을 쓰자 은혜가 나를 진정시켰다.
“ 뭐 그런 시선이나 말은 멀쩡했던 사회에서도 많이 들어서 괜찮아요. 모델을
하면 약간의 노출이 있는 옷만 입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
“ 하여튼 그래서 나가기가 싫어요. 솔직히 자기가 없다고 그들이 저랑 보미
언니를 어떻게 하지는 못하죠. 핑크도 있고 카라반에는 무기도 많고 보는 눈도
많으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죠. 그래서 한 동안
저희도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기로 했어요. 저희도 뭉쳐야 한다고 판단되면
그중 가장 온전하고 뜻이 맞는 곳과 어울려야죠.“
“ 쳇.”
내가 신경질 적으로 말하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평소라면 절대 카라반 안에서 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은혜였지만 지금 내 기분을 아는지 말리지는 않았다.
“ 여기도 어떻게 보면 작은 사회죠. 예전 사회랑 다를 것이 없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공격 받지 않은 공간에 식량수급도 원활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죠.“
“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제대로 흐려놨네.”
연수원과 다른 구조다 보니 파벌이 나뉜다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때를 봐서 변할 놈들이 많을 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마냥 선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라 안심하고 있던 내 실수였다. 지금 당장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내가 계속해서 자기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면 꼭
핑크와 같이 다니고.“
“ 걱정 안 해도 되요. 이런 사람들에게서 제 몸하나 지키는 것쯤이야!”
은혜가 웃으면서 말하자 나도 안심이 되는 표정을 보여주고는 은혜를 안아주었다. 물론 은혜는 내 변한 표정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게 변한 내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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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자꾸 중복 글이 올라가 죄송합니다. 제대로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원본과 현재 올리는 목차와 동일하게 작성하는 상황인데도 자꾸 실수를 하게되네요.
앞으로는 신중하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