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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67화 (6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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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연수원으로 돌아와 대령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박격포와 탄을 챙겨 준비를 해 두었다. 하지만 대령의 의견은 날이 밝아 움직이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가서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 지금은 소음으로 인하여 감염체가 몰려들었지만 배터리가 끝나면 생존자들이

없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아마도 계속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네. 아무리

지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 정도는 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네. 그러니 가능한

모였을 때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만."

" 알겠습니다. 저와 기태. 그리고 박격포를 쏠 수 있는 인원을 붙여 주시죠."

" 나는 왜 빼는데?!"

" 혹시 모르니 너는 남아야지. 낮이랑 달라서 위험이 더 큰데 너까지 같이 가서

일이라도 당한다면 연수원은 누가 지켜?"

" 하지만!"

" 재원군 말이 맞네 김 중사. 자네는 여기 있게나."

" 네. 알겠습니다."

대령의 말에는 꼼짝을 못하고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역시 직속상관이니 무섭긴 무섭나 보다. 기태와 나는 빠르게 차량에 탑승하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틀어 논 음악은 주변이 고요하다보니 멀리서도 희미하게 들렸고 근처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가 벗어났을 때보다 더 많은 숫자의 감염체가 모여 있었다.

" 제대로 쏠 수 있어?"

" 노력 하겠습니다."

" 노력으로 끝날 일이 아냐. 네 한방에 모든 것이 달렸어."

" 한 발 더 있는 것으로.."

" 한 발 뿐이라 생각해. 한 번에 끝낸다고 생각해."

" 알겠습니다."

내 말에 그 남자는 크게 높은 기온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긴장감에 땀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 통!"

박격포 특유의 발사음을 내며 포는 운동장을 향해 날아갔고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아마도 크레모아와 가스통들이 일제히 터진 듯 싶었다.

" 콰과과광!!!"

큰 가스통들이야 당연한 폭발력이었지만 작지만 많이 모아서 던져둔 통들도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듯 계속해서 폭발해 갔다. 불길 옆으로 이리저리 날아가는 물체들이 보였고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주변에 큰 불길이 치솟으며 타기 시작했다.

" 주변에도 불이 옮겨가네?"

" 저렇게 크게 낼 생각은 없었는데."

" 저러다 도심 전체가 타 버리면 어쩌죠?"

" 서..설마.."

운동장 주변에 심은 나무들이 활활 타기 시작했고 감염체들 수백이 불이 붙은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주변 가정집이 일반 주택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어 쉽게 불길이 옮겨 갔고 빠른 속도로 불은 점점 크게 번졌다. 어느새 주변은 대낮처럼 환하게 변했고 수만의 감염체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이제 돌아갈까?"

" 혹시 건물에 생존자가 있지는 않겠죠?"

" 없을 거야 아마. 근처에 감염체가 너무 많아 솔직히 지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상황이고."

" 도심에 감염체가 득실거리는데 누가 도심에서 지내겠어. 어서 돌아가자."

" 네."

병사는 혹시나 자기가 떨어뜨린 박격포 탄 때문에 생존자가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위로하며 다시 연수원으로 돌아갔다. 간단한 상황설명만 하고 대령의 방에서 나와 마을로 이동했다.

" 우리 도심에서 생존자를 본 적있잖아?"

" 응."

" 그런데 왜 거짓말을 했어?"

" 자기가 쏜 탄 때문에 생존자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에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저 사람 생각보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괜한 부담감을 주기는

싫었어."

" 하긴.. 하지만 있었다는 상황은 확실하지도 않으니 거짓말은 아니네."

" 뭐.. "

마을입구에 차를 주차한 후 천천히 걸어가며 이야기 했다. 기태의 숙소와 내 숙소는 마을 입구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는 상황이었다. 차량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을 입구 쪽에 주차해 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숙소까지는 걸어서 이동해야만 했다. 단 내 카라반을 끌고 이동할 픽업트럭만이 내부에 주차되어 있을 뿐 농기구를 옮기기 위한 차량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마을 입구에 주차되어 있었고 키는 입구에서 경계를 서는 인원이 관리하고 있었다.

경계하는 인원이 마음먹고 도망친다면 차량을 탈취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뭐 딱히 갈 곳도 없는 상황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 별이 많다."

" 응?"

말없이 걷고 있던 중 기태가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어느 순간부터 밤하늘을 제대로 본적이 없어 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반년 넘게 공해를 유발하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니 그동안 오염되었던 하늘이 정화라도 된 듯 밤하늘이지만 맑게 보였다.

" 요새 밤하늘을 본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예쁘네."

"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에도 살기 바쁜 지금 이 시간에도 여유는 없네."

" 풋. 너 답지 않다?"

기태의 말에 그냥 웃어넘기며 걷다보니 어느새 기태의 숙소에 도착했고 기태를 보내고 얼마간을 더 걸어 카라반으로 들어갔다. 카라반 안에는 은혜와 보미가 있는 모습이 보였다.

" 방금 기태 숙소에 들어갔는데 넌 여기 있냐?"

" 나 없는 것 알면 오겠지 뭐."

" 천하태평이다?"

" 이제 남편도 알텐데 매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 워낙 눈치 없는 녀석이니 알려주기 전에는 모를걸."

" 하긴."

" 오늘은 뭐하면서 지냈어?"

" 그냥 청소도 하고 요리도 배우고. 책도 좀 보고요."

" 다른 인원들이 뭐라고 안 해? 그래도 나가서 섞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 부르지도 않던데요? 서로 자기들끼리 뭘 하는지. 오전에는 모두 나가서 뭔가

심기로 해서 나갔는데 그 일이 끝나고는 서로 뭔가 이야기 하더니 그냥 우리만    두고 어디론가 흩어져서."

" 따돌림인가?"

" 아니면 두려움.. 이겠지."

" 응?"

" 언제 들어왔냐?"

" 방금."

" 뭔 소리야? 두려움이라니?"

어느새 들어온 기태가 자연스럽게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고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 너 점점 체력과 스피드가 몰라보게 늘고 있잖아?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이번

전투에서 변종 감염체를 단칼에 베어 버렸고. 평소 너와 나 사이처럼 알고

지냈거나 김 중사처럼 그런 인원이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이 마을은 너와

같은 인원이 처음이니 두렵겠지. 자신들은 일반 감염체를 겨우 상대하는

수준인데 넌 대형 감염체를 한 손으로 던져 버리는 괴력을 발휘하는데 보통

사람이 과연 너란 존재. 우리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맞는 말이군."

"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따돌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심히 보니까 따돌림 보다

두려워 피하는 모습이 보였어. 그런 존재의 여자인데 사람들이 피하는 것은

어째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 어떻게 보면 넌 밖에서 돌아다니는 감염체와

다를 것이 없잖아?"

" 자기!"

기태의 직설적인 말에 보미가 소리쳤다. 아마도 나의 기분을 생각해서 소리친 것이겠지만 난 크게 관여치 않았다.

" 맞지. 하지만 너도 겉으로 들어나는 것이 아닌 상황이니 조만간에 너도 비슷한

취급을 받겠지."

" 맞지. 대령님의 말 기억나지? 우리는 또 다른 감염체라고."

" 응."

" 너와 나처럼 능력이 변한 발전한 사람들끼리는 말을 안 해도 느껴지는 뭔가가    있지. 마치 감염체가 다른 감염체를 잡아 먹지 않는 것처럼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는 가설이지."

" 그래서?"

" 뭘 그래서야.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죽여가야지."

" 싱거운데?"

"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와 같은 존재들은 따로 살거나 아니면 배척당하거나

둘 중하나겠지. 서로 융합은 힘들 것 같네."

" 그런 상황이라면 손해는 일반 사람들이지. 솔직히 너와 나만 뭉쳐도

감염체에게 뜯기면서 죽는 것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을 확률이 더 큰 상황

이니까."

" 맞지. 그리고 핑크라는 존재. 이동이 가능한 주택. 남들보다 충분한 물품.

이런 상황들이 우리 외에 알려진다면 저들은 언젠가는 우리 것을 노리고 돌변

할 수 있겠지. 물론 네가 질 것 같지는 않다. 생존자는 감염체와 다르게 감정이

있으니까."

" 우리가 조심해야지. 괜히 앞장서서 우리 앞길을 막지 말고."

" 응. 그전에 각자 집에 갈 생각은 없냐? 나도 좀 쉬고 싶은데?"

" 이제 갈께!"

" 참네."

우리는 웃으면서 기태 부부를 배웅했고 나도 서둘러 씻고는 잠을 청하러 침실로 들어갔다.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어제 감염체를 공격했던 지점을 찾아갔다. 큰 불은 자연적으로 꺼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곳곳이 불타고 있는 모습이었고 타다 만 감염체의 시신과 불이 붙은 채 다니는 감염체가 보였다. 운동장 주변에 널려진 감염체가 타고 남는 특유의 재 비슷한 물질이 널려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많은 숫자를 줄인 것이라 판단되었다.

" 생각 외로 많이 죽였나보다?"

" 응. 주변에 감염체도 얼마 안 보이고. 재도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아 상당수가

제거 된 것 같은데?"

" 아직까지 타고 있는 건물들이 있네요."

" 뭐 어차피 생존자도 없는데 계속해서 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는 이미 폐허로 변한 운동장을 보면서 말했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더해야 지금 있는 이 도시의 감염체를 전부 제거 할 수 있을까? 어제 모인 감염체는 많아야 수만에 불과했다. 원래 상주하는 인구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모인 감염체와 관광객이나 그 외 상주하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었기에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나름 시 단위의 도심이니 못해도 10만 가까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 잘해야 2만이라고 해도 5번은 더해야하나?"

" 이 좁은 도시에 10만이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 살고 있다기보다 그 정도 숫자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거야. 주변에서 모인

감염체도 있고 감염체 중간에는 군복을 입은 녀석들도 있잖아?"

" 하긴.. 차라리 높게 잡고 시작하는 편이 좋겠지."

"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제거할 생각이십니까?"

" 흠. 고민 중이야. 남은 박격포 탄은 한 발. 저번처럼 크레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 저기.. 감염체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 응??"

망원경으로 보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우리에게 말을 했다.

" 지금까지는 도심을 배회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서로 뭉치는 모습입니다."

" 잠시 볼 수 있을까요?"

" 네."

망원경으로 살핀 감염체들은 한 곳에 서성이며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속속 모여드는 감염체들은 점점 많아졌고 변종 감염체들도 눈에 보였다.

" 반격을 준비하는 건가?"

" 설마. 그 정도 지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 아니면 누군가 통솔이 가능한 지능이 있는 감염체도 있을 수 있고."

김 중사의 말에 다들 말이 없어졌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다. 뭉쳐 다니는 것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인데 누군가 리더가 있다면 정말 상대하기 곤란하다. 남은 감염체는 못해도 지금까지 죽인 감염체의 몇 배가 넘을 텐데 반에 반이라도 우리의 위치로 공격해 온다면 반격은 꿈도 못꾸는 상황이다.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해야하나."

" 아마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 재수 없으면 또 이사가야하나."

" 예상한 상황아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

" 알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럴 것이라는 것은.."

" 준비하자. 느낌이 좋지 않아."

기태의 말에 다들 차에 올라 연수원으로 들어갔고 우리가 본 상황을 대령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 흠. 리더가 없다는 것을 배제하기는 힘들겠군."

" 가능성이 있을까요?"

"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최악의 경우는 육체만 감염체로 변한 경우겠지. 지능은

예전 인간인 상태 그대로인."

" 생각하기도 싫군요."

" 그래도 혹시 모르니 피난 준비를 하도록 하게나."

" 싸워보지도 않고 피난을 준비하는 것은.."

" 저 숫자가 밀고 들어오면 우리는 반격할 무기가 없다네. 탄약도 충분치 않고

이미 부비트랩 상당수도 예전 전투로 소모한 상황 아닌가? 그래봐야 도심을

뒤져서 죽은 병사나 감염체에게 얻은 수류탄과 탄이 전부이지 않은가?"

" 네."

" 더 이상 생존자가 피해볼 수는 없네. 명심 하게나 인간과의 전투가 아니라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숫자는 줄고 감염체의 숫자는 늘어가는 전투라네.

정말 최악이지."

맞는 말이다. 우리가 죽으면 감염체의 숫자만 늘려주고 내부의 적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 혹시 모르니 인원 전부를 마을로 이동시킨다."

" 무리입니다! 마을에서 넘어온 인원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옮기다

니요!"

" 차량이 부족합니다. 며칠이 걸릴지 모릅니다!"

"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우선 감염체의 움직임을 조금 더

살핀 후에.."

" 지금 현 상황에서 방어에 유리한 곳은 오히려 마을이네. 우리는 입구가 하나

인 것을 기억하게나. 감염체가 오면 정말 굶어죽는 것 외에는 없다네. 하지만

마을은 입구가 여러 곳이니 만약의 사태에는 오히려 도망갈 곳은 많지."

" 철조망 작업도 많이 끝난 상황이니 움직임은 더 더디게 될 것 같습니다."

" 이동을 시작하게나."

" 알겠습니다."

대령의 확고한 말에 다른 인원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대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수원의 인원들은 이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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