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9 / 0281 ----------------------------------------------
생존
다행히 밤사이에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속적인 정찰을 다녀왔지만 감염체는 숫자만 늘어날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최대한 숫자를 늘려 한 번에 쓸어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압도적인 힘 차이로 눌러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려는 전술. 우리도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현재로써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 이제 다리 위 작업은 완료된 상황입니다. 그저 지속적으로 탈 것들을 구해와
던지는 것이 전부입니다."
" 지도에서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한 번 모이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 쪽으로
오려면 그 길은 반드시 지나와야 합니다. 물론 산길을 이용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현재로서는 두 곳의 방어선이 생긴 상황입니다."
" 인원을 편성하여 그 곳에도 작업을 하도록 하죠."
" 확실히 그 도로를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 물론 산길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도 엄청나게 멀어지고 산을 넘어오는
구불거리는 도로입니다. 일반 차량으로도 몇 시간이 걸리는 도로를 감염체가
넘어 온다면 며칠은 걸리겠지요. 그리고 숫자도 많으니 길게 이어져서 오면
좁은 길목에서 상대하면서 속도를 늦출 수도 있습니다."
" 그런데 왜 다들 감염체가 모두 뭉쳐서 다닐 거라 생각 하는거죠?"
" 응??"
" 만약 지능이 있는 감염체가 있다면 무리를 나눠 서로 다른 길을 올 수 있는
상황 아닌가요? 우리의 눈을 벗어난 감염체 무리가 다른 길을 이용하여
넘어가고 있고 지금 움직이지 않는 감염체는 그들과 속도를 맞추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요?"
재효의 말에 다들 말이 없어졌다. 그 생각은 못해봤다. 단지 감염체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뭉쳐 다니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 만약 그렇다면 큰일인데."
"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통신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 감염체가
그런 전술을 피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능이 거의 없는
일반 감염체가 그런 전술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고요."
" 솔직히 두 분의 추측이 맞다 틀리다 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재효씨가 말한 것도 대비를 해야겠군요."
" 무리입니다. 그 길은 여기서도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만약 그 길을 이용해
온다면 차라리 산에 불을 질러 버리면 되니 크게 방어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찰조를 한 번 보내보도록 하죠."
" 알겠습니다."
우리는 간단한 회의를 끝내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작업을 했을까.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 무슨일이지?"
" 뭔일이 생겼나?"
" 큰일입니다! 도심의 감염체가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 약 30분 전부터 도심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 예상 도착시간은 현재 5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후 3시에는 이곳에 도착
할 것 같습니다!"
" 젠장! 너무 빠른데?!"
" 우리는 빠른 상황이지만 감염체는 늦었다고 생각하나보지!"
" 아까 말씀했던 다리까지 차로는 얼마나 걸리나요?"
" 차로 약 25분 정도 걸립니다."
" 지금 남은 물건들이 있나요?"
" 네! 있습니다!"
" 우선 마을에 지금 상황을 전달하고 남은 인원들은 이곳에 남아 감염체를 상대
하도록 하겠습니다!"
" 나와 재원이는 그 다리로 간다! 가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봐야지!"
" 알았어!"
" 기태는 어디 있어?"
" 마을에 있어!"
" 그럼 마을도 알고 있을 수 있겠군."
난 김 중사와 군용트럭에 물건을 몇 개 싣고는 빠르게 이동을 하였다. 약 30분 가량 달려 도착한 다리 위에 물건들을 던졌고 다리를 채우기에는 다리의 규모도 상당했고 우리가 가져온 물건은 너무 적은 양이었다.
" 우선 주변의 건물을 뒤져서 최대한 모으자!"
" 아직 감염체 수색도 못한 곳이야!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위험 할 수 있어!"
" 그럼 보이는 곳의 물건만 챙겨서 던지자!"
" 인원 몇 명은 경계를 세워!"
" 문 하사! 거기 인원 두 명은 주변을 경계한다!"
" 네!"
" 다른 인원들은 최대한 시야에 보이는 물건만 모아오도록! 금속은 제외한
어떤 물건이라도 상관없어! 하다못해 비닐 조각이라도 괜찮으니 가능한
많은 양을 모아온다!"
" 알겠습니다!"
김 중사의 명령에 다들 주변의 물건들은 끌고 와 다리에 던졌다. 하지만 다리 건너 바로 앞에 있는 마을에서 다리까지도 200m가 넘는 거리였기에 시간이 상당히 소모되었다. 나와 김 중사가 덩치가 큰 것들을 가져왔지만 다른 인원들이 옮기는 물건들은 크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을이라고 해봐야 편의점 한 곳과 소형 아파트 한 동 그리고 몇 개의 집들만 있는 곳이었기에 가져올 수 있는 물건도 많지 않았다.
" 감염체가 여기까지 오는데 걸리는 예상시간은 얼마야?"
" 두 시간 가량."
" 쳇. 이제 얼마 안 남았나?"
" 최대한 끌어 모아서 감염체가 오는 것이 보이면 바로 일을 시작하자!"
" 알았어!"
난 김 중사와 같이 간판이나 벤치를 가져와 던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양은 많아졌다.
" 감염체가 전방 500m 지점까지 도착하였습니다!"
" 뭐?!"
" 생각보다 느리네."
" 세 시간 가량 걸렸네."
" 여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면 우리가 있는 다리까지도 세 시간이 걸릴 거고
그리고 다리에서 우리 마을까지도 세 시간. 총 9시간이군."
" 어디까지 예상이지."
" 응."
" 이제 불을 질러!"
"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 잘 붙는 것들 위주로 불을 붙여라!"
우리는 저마다 한 곳에 휘발유를 뿌리고 잘 타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있는 곳에 불을 내었고 수십의 인원이 낸 불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올라왔고 어느새 다리를 막고 크게 불타기 시작했다.
" 감염체의 움직임은 어떤가?!"
" 현재 계속해서 전진 중입니다. 잠시 후면 다리 초입에 도착합니다!"
" 불을 보면 뭐라도 하겠지."
우리는 크게 번지는 불을 보고 말을 했다. 그래도 불을 두려워하는 감염체인데 설마 밀고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 감염체가! 다리를 건너옵니다!"
" 뭐??!"
" 뭐야?!"
우리는 크게 당황하였다. 설마 그대로 밀고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속도는 늦출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냥 타버릴 것을 각오하고 오는 모습이라니.
" 몇몇 감염체는 멈칫 거리는 모습이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밀고 들어올 모양
입니다. 속도를 늦추지 않습니다.!!"
" 우선 최대한 후퇴한다! 내려와!"
" 알겠습니다!"
건물 위에서 상황을 전달하던 병사가 내려왔고 우리는 차량에 탑승하고는 다리가 잘 보이는 최대한 먼 곳에서 서서 다리를 지켜봤다.
" 하하.. 그냥 밀고 들어오는 거야?"
" 미친.. 아무리 그래도.."
" 그래도 속도는 많이 늦출 수 있겠다."
불을 향해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선두의 감염체들은 그대로 타버렸고 타버리지 못한 감염체들은 뒤에서 밀고 밀어서 결국 타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감염체들로 우리가 쌓아 놨던 물건들은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차량과 다른 무거운 물건들로 인해 쉽게 꺼지지는 않았지만 저 속도로 밀고 들어온 다면 오래 걸릴 것도 아니었다. 뭔가 작심이나 한 듯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급하게 만든 구조물이었으니 허술한 것은 당연했지만 그래도 생각이상으로 버티고 있었고 우리는 신속하게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네."
" 흠. 감염체도 뭔가 진화를 하나? 아니면 감염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또 다른
감염체가 있는 건가?"
" 지금 상황에 뭐가 됐든 우선 다음 다리를 조금 더 보강을 해야 해. 불에 타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밀고 들어올 줄이야. 심각한데?"
" 이제는 감염체와 인간의 중간쯤에 있는 존재를 상대하는 느낌이야.
최악인 상황이야. 가진 탄약도 거의 없고 인원은 늘었고 인원을 이동 할
차량도 얼마 없는 상황인데."
" 식량이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네. 뭐든 것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니까."
" 그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서 나와 김 중사는 암울한 이야기가 오갔다. 길어야 하루나
이틀이면 우리의 운명이 정해질지도 모르는 상황. 힘들고 긴 반 년 넘게 이어진 피난 생활 중 가장 큰 위험을 맞이하고 있었다.
" 다들 어서 움직이세요!"
" 간단한 짐들만 챙기고 가능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짐을 줄여야 합니다!"
" 가능한 인원은 다리로 가서 최대한 물건을 적재하고 방어하도록 하세요!"
" 어서 움직이세요!"
마을에 돌아와 현재 상태를 말했고 다들 피난 준비를 하였다. 밤을 틈타 마을을
벗어난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틈이 생기면 마을을 벗어날 것 같았다. 그래도 열정적으로 일을 도와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나는 카라반으로 돌아갔고 카라반에는 재효와 미란이. 보미와 은혜가 짐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 재효. 넌 상황을 봐서 짐을 옮기고 나서 카라반을 마을 가장 끝으로 이동시켜
놓고 상황을 봐. 현재는 별 일이 없지만 만약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지면
가장 먼저 노려지는 것이 우리야. 알지?"
" 응! 알았어. 형!"
" 미란이와 보미. 은혜는 재효 말을 잘 듣고 움직이고 가능한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이제 와서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없으니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껴서 사용해야지. 난 먼저 가볼게. 몸 조심히 있어."
" 조심히 다녀와요."
" 너무 걱정 말고. 무슨 일 생기면 소리쳐."
" 소리치면 들려요?"
" 글쎄.."
난 뜻 모를 웃음으로 보이며 김 중사가 있는 다리를 향해 이동을 했다.
도착한 다리 위에는 잡동사니가 한 가득 쌓여 있었다.
" 감염체 도착 예정 시각은?"
" 20분 전 정찰조에 의하면 바리게이트를 쳤던 다리를 건넜다고 합니다.
거리상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면 이 곳 도착 예정시간은 약 4시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 남은 탄은?"
" 박격포 탄 1발과 수류탄 30개. 유탄 40발.실탄은 인당 탄창 두 개 분량이 전부
입니다. 탄창은 한 개당 약 15발 정도만 넣었습니다. 운 좋은 녀석이라면
20발이 든 탄창을 챙겼을 지도 모르죠."
" 크레모아도 두 개 있습니다."
" 절대 불리한 상황이군."
" 이탈하는 인원이 늘고 있습니다."
" 웃기는 군. 여기서 이탈해봐야 어디로 간다고."
" 살고 싶은 욕망이지."
" 대부분 남쪽으로 내려가겠네?"
" 뭐. 그동안 소문에는 남쪽에는 생존자 캠프가 있다고 했으니까요."
김 중사와 기태. 그리고 몇몇의 인원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계속해서 물건은 쌓으면 바리게이트를 만들고 있지만 감염체의 숫자에 비하면 역부족이었다.
" 하지만 이리로 온다는 보장은 있나? 예상과 다르게 다른 길로 간다면 정말
난처한 상황인데."
" 이동 루트를 본다면 최단거리로 오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이 곳으로 올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됩니다."
" 제발 그래야 할 텐데."
" 신이 있다면 우리를 버리지 않겠죠."
부사관 한 명이 김 중사의 중얼거림을 듣고 말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담배를 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 신은.. 이미 우리를 버렸을 지도."
난 천천히 다리를 벗어나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