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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시간이 흘러 예정보다 2시간이 늦어 감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긴장감에 6시간을 넘게 있다 보니 사람들이 지쳐갈 때쯤 나타난 것이다. 숫자가 많아 단순히 늦어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사기까지 생각해서 늦게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최악인 감염체들에게는 최상인 상황인 셈이었다.
" 바리게이트 중간 지점에 오기 전까지 불을 붙이지 마라."
" 연사로 사격하지 말고 조준해서 사격을 하고 가능한 도망가면서 사격을
하도록. 나눠준 탄은 방어용이 아닌 피난용이야. 그러니.. 다들 살아남아라."
" 네."
김 중사의 말에 다들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난 그런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감염체가 넘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정말 끝이 어딘지도 모를 엄청난 숫자들이 다리 넘어 도로를 가득 메운 감염체를 보고 있으니 현실 같지가 않았다. 감염체들이 바리게이트에 걸려
제대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순간 모닥불 수준의 불이 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번지며 감염체 무리로 불이 번져나갔다. 처음 다리와는 다르게 그래도 시간이 충분했고 제법 많은 양을 쌓았기에 처음과 같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불을 보고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감염체들은 큰 불을 보고도 두려움 없이 밀고 들어왔지만 워낙 큰 불이었기에 감염체는 어렵지 않게 타버렸다. 하지만 숫자가 숫자다 보니 제대로 타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감염체들이 생겼고 그런 녀석들을 보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뒤에게 계속해서 밀며 움직이고 있었다.
" 박격포 사격."
" 하지만! 한 발뿐입니다!"
" 그 한 발로 가능한 많은 숫자를 죽일 수 있다면 지금 뿐이야. 쏴!"
" 알겠습니다!"
김 중사의 명령에 다리 넘어 감염체 무리 정중앙에 떨어지는 포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메워지는 감염체 무리였다.
" 유탄 사거리가 된다면 가진 것을 모두 쏴 버려."
" 네."
유탄 사수들이 유탄을 장전하고 한 발에 많은 숫자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길이가 500m가 넘었기에 유탄의 사거리 안에 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리해서 다리 중간에 쏠 수도 있었지만 괜히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감염체들은 줄어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유탄사수. 바리게이트 넘어 모두 쏜 후.. 후퇴한다."
" 네?!"
" 더 이상 있어봐야 의미가 없다. 가능한 모인 감염체들의 숫자를 줄이고 우리가
후퇴하고 마을에서 피난 가는 시간이라도 버는 것이 이득이야. 가진 유탄을
모두 쏴버려!"
" 알겠습니다."
" 재원아. 너 수류탄 던질 수 있겠어?"
" 직선거리라면 시간 안에 던질 수 있겠지만 포물선을 그리면서 던져야 하는
상황이라 장담할 수는 없어. 상대가 인간이라면 그래도 공중에서 터지면
이득이라도 있겠지만 감염체라면 전혀 소용없는 짓이니까. 차라리 중간에 부비
트랩을 만드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 유탄사수가 쏘는 동안 다른 인원은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설치하지 않는
인원은 그대로 마을로 돌아간다. 돌아간 후에는.. 각자 알아서 이동하도록.."
" ..."
" ......"
마을로 돌아가서 피난을 가려해도 정해진 곳이 없다. 다른 인원과 합류하여 같이
뭉쳐서 이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남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냥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느냐는 각자의 몫이었다.
" 넌 우리가 밀릴 생각을 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갈 곳을 정하지도 않았냐?"
" 갈 곳이 어디 있어? 이 많은 인원을 끌고 갈 차량. 식량. 무기 어느 하나
풍족한 것이 없는데?"
" 대령님은 뭐라고 했는데? 그래도 어디로 이동하자는 말을 했을 것 아냐?!"
" 대령님은 서울 쪽으로 가신다고.. 같이 갈 인원이 있다면 같이 움직이자고
했어."
" 왜 그 이야기를 내가 물어야 해 주는 거야? 내가 안 물었으면 따로 떨어질
생각이었어?"
애초에 피난을 가려면 어떻게 갈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지만 계속해서 피난가라는 이야기만 하는 상황에 답답하여 물었더니 자기들끼리는 이미 피난 갈 장소를 정해둔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이미 공공연한 비밀인데. 몰랐던 네가 더 웃기다."
" 응??"
" 너만 빼고 다 알고 있을 걸? 지금까지 뭐했냐? 대령님도 알았으니까 대외적
으로 말을 안했지. 괜히 같이 가자고 떠들었다가 잘못되면 다들 남 탓으로
돌리겠지. 선택은 스스로 했으면서"
" 맞는 말이긴 한데. 난 처음 듣는 이야기다?"
" 이미 연수원과 마을에서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이나 무리를 지었던 사람들은
피난 갈 곳을 정해서 무리지어 움직이는 상황인데 넌 뭐 어디 낀 곳도
없었냐?"
" 응."
" 참네. 그럼 너도 서울로 갈래?"
" 서울로 가려는 이유가 뭐야?"
" 정확히 말하면 국제공항으로 갈 생각이야."
" 응? 공항?"
" 우리가 통신이 원할 했을 때 마지막으로 교신을 받은 내용이 국제공항으로
간다는 것이었어. 살아남은 군대와 민간인. 생존자들을 모아서 그 곳에서
방어한다는 것이었으니까."
" 하긴. 진입로가 엄청나게 긴 다리 두 곳이 전부이니까."
" 응. 하지만 나쁜 점도 많아. 감염체가 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면 물이라고
다를 것이 없으니까. 바다를 건너서 올 수도 있겠지. 아니면 쓸려 내려오는
감염체라도. 그리고 우리가 도망갈 곳도 2곳이 전부라는 것.“
" 희망은 있다고 보냐?"
" 뭐 그래도 지금까지 가장 확률이 높은 지역 중 하나야. 만약 연수원이 밀렸을
경우 우리가 잡은 피난처도 공항이니까."
" 그럼 그 곳으로 이동하지."
" 쉽게 정한다?"
" 생각해봐야 정답도 없는 질문인데 그냥 쉽게 쉽게 가자."
" 참네. 너 답다."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쯤 유탄 사수가 탄을 전부 소모하고 마을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은 수류탄과 크레모아로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우리도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차량에 탑승했다.
도착한 마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미 통제력을 잃은 상황이라 서로 갈 길을 가기위해 차량을 가지고 이동하는 사람들과 짐을 싣고 이동하는 인원. 그리고 대령과 몇 명의 인원들은 차량을 준비하고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디로 갈 생각인가?"
" 대령님을 따라가죠. 딱히 갈 곳도 없습니다."
" 그런가? 그럼 1시간 후에 출발할 것이네. 준비하고 마을 뒷문에서 만나세."
" 알겠습니다."
감염체가 다리를 건넜다고 해도 마을까지는 최소 2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마을은 이미 통제가 되지 않아 서로 떠나기 정신없었고 나는 카라반이 주차된 곳으로 달려갔다.
" 짐은 다 챙겼어? 이동 준비는?"
" 다 했어. 언제 출발하려고?"
" 앞으로 한 시간 후에 뒷문에서 보기로 했어. 더 챙길 것은 없고?"
" 이미 공동창고가 털려서 남은 것도 없던데."
" 심각하군. 우리는 피해는 없지?"
" 다행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 흠.. 우선 준비하고 미리 이동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시간 맞춰 가도록 하자."
" 그런데 우리 차량은 5인승인데 지금 인원이 6명인데.."
" 기태가 운전하고 여자 3명은 뒷좌석에 있어도 크게 불편함이 없을 거야.
난 차량 적재함에 서서 갈게."
" 너무 위험해! 적재함에 카라반이 걸려 있는데?!"
" 큰 코너링만 아니라면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 마. 그리고 혹시 주변을 경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트인 곳이 편하니까. 그나마 기태가 운전을 한 경력이
많아서 괜찮을 거야.“
“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최대한 다급한 모습으로 행동하자. 우리가 여유가
있는 모습을 보이면 반감을 사서 저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 괜한 자극을 주지 말라는 소리지?”
“ 응. 있어도 없는 듯 움직이자. 모습을 봐서는 대령님을 따라갈 인원은 연수원
인원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 같으니까.“
“ 그리고 저들은 아마 이런 사태의 원인을 우리로 볼지도 몰라. 그러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자.“
우리는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다. 군중심리가 무섭다는 것을 몇 번의 사태를 경험하고 뼈저리게 느꼈기에 가능한 저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대령의 일행보다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아직 대령일행이 출발하려면 40여분이 넘게 남은 상황이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있는 것도 무리라고 판단되었고 남은 인원들이 정신없이 움직일 때 빠져나가기로 했다.
“ 우리는 국도를 이용해서 이동할 계획이니까 여기서 보자.”
“ 응. 만약 우리가 없거나 너희가 한 시간 후에도 도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따로 간다고 생각해.“
“ 응.”
“ 그리고 문제가 이 국도 내가 알기로는 산을 넘어가는 도로잖아? 길도 좁고
험해서 잘 안다니는 도로인..“
“ 맞아. 그래서 이 도로를 정한거야. 그래도 중간중간 쉴 곳은 많은 편이니
너무 걱정 하지마.“
“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게 아냐. 중간에 만약 감염체라도 마주치면 정말
오도가도 못 하는 수가 생겨. 그리고 저 군용트럭으로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일반 승용차도 힘든 그 도로를?“
“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최선의 선택이니.”
“ 하아. 너희가 이동할 차량은 넉넉한 편이야?”
“ 응. 군용 트럭 2대에 인원은 약 20명. 일반 승용차 한 대로 이동할거야.”
“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가지는 않네?”
“ 뭐 뜻을 다르게 하는 인원도 있고 다른 인원들과 움직이는 인원도 있고.
각자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겠지.“
“ 하긴. 그럼 잠시 후에 보자.”
“ 응. 몸조심하고.”
“ 너부터.”
난 김 중사와 악수를 나누고 바로 헤어져 카라반을 끌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약속장소는 마을에서 차량으로 약 40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일반 승용차로 30분 정도면 가는 거리이니 군용차임을 감안하면 약 40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약속시간을 정했다. 우리는 가능한 천천히 이동을 하며 마을을 벗어났고 우리 앞뒤에는 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감염체가 이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에 남은 인원도 있었고 방어가 유리한 연수원으로 돌아가는 인원. 그리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소문의 생존자 캠프를 찾으러 떠나는 인원도 있었다. 그나마 차량은 넉넉한 편이었기에 차량으로 인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인원이 떠난다고 했다면 부족했겠지만 남는 인원과 많은 수의 차량이 필요하지 않는 연수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인원이 많아 불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남네.”
“ 뭐. 이곳을 찾을 수 없다고 확신하겠지. 내 생각은 다르지만.”
“ 나는 반반인데. 형은 감염체가 이곳으로 온다는 확신이 있다?”
“ 올 것이야. 반드시.”
내 말에 재효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태의 능숙하지 않는 운전 실력으로 차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뒤에서 추월하는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옆으로 지나갔다. 어차피 한정된 연료에 느린 감염체임을 인지했다면 최대한 연비운전으로 단 몇 미터라도 멀리 가야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운전을 했다. 마주 오는 차도 없으니 사고 날 일은 없었지만 연료가 바닥다면 뼈저리게 후회할 행동이었다.
“ 도착했어.”
우리는 약속장소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대령의 일행이 오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주변을 살폈다. 혹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감염체가 있지는 않을까 긴장하고 둘러봤지만 이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지만 대령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느린 군용트럭으로 시간이 더 걸리는 모양이었다.
“ 늦네.”
“ 기다려봐. 아마 차량이 느려서 시간이 좀 걸리나봐.”
“ 하긴 군용트럭이 속도가 나봐야 얼마나 빠르겠어.”
“ 혹시 모르니 최대 30분까지만 기다리고 그때도 안온다면 우리만 이동을 하자.”
“ 응.”
“ 너 혹시 담배 가진 것 있어?”
“ 이제 몇 개 없는데.”
“ 이제 마지막인가.”
“ 뭐. 언젠가는 떨어질 담배니까.”
우리는 몇 개 남지 않은 담배를 피고 잡담을 이어갔다. 약속된 시간이 약 15분 정도 지나자 군용트럭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 미안! 늦었지!”
“ 응.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 마을이 엉망이라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어. 중간에 마음을 바꿔 이동을
결심한 사람들도 생기고 차량을 가지고 있으려는 인원들도 있어서 서로 싸움이
나서.“
“ 해결했어?”
“ 아니. 그냥 빠져 나왔어.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 그래. 바로 이동할 생각이야?”
“ 두 시간 정도면 어두워져. 여기서 한 시간만 가면 산 정상에 휴게소가 있어.
그 곳에 캠프를 치고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야.“
“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어?”
“ 노력해야지.”
김 중사의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는 두 시간이 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성능 떨어지는 차들만 모여 있었고 거기에 짐과 사람까지 가득 싣고 이동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차량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 우선 휴게소 내부를 수색하고 다른 인원들은 주변을 살피도록 한다!”
“ 알겠습니다!”
“ 내일 일찍 출발할 것이 아니니 가능하면 꼼꼼하게 살피도록! 가능한 오늘 밤은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내일 정오에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다!“
“ 네!”
김 중사는 인원을 짜서 휴게소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도 나와서 주변을 살폈고 산세가 험한 산에 정상에 있는 건물이라 다행이 감염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 세 명씩 인원을 편성해 근무를 짜고 텐트를 쳐서 잘 곳을 마련하도록!”
“ 그리고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인다. 혹시 모르니까.”
“ 네.”
우리 일행 모두는 신속하게 움직이며 잘 곳을 마련했고 근무인원은 제외한 모든 인원들은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