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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78화 (78/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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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고 감염체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일반 소총탄으로는 2명 이상 관통하여 피해를 주는 것이 힘들었다. 정확히 머리를 맞춘다고 해도 뒤이어 따라오는 감염체와 키가 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명상이 이어지는 경우는 적었다.

" 가능한 정조준하여 사격하도록!"

" 7초소에 연락해 대비하도록 지시해!"

" 부비트랩은 터졌는데 아직도 저 정도라니.."

" 그래도 10초소까지 밀릴 것 같지는 않은데?"

" 오늘은 집에 들어갈 수 있겠지?!"

" 사격!!!!"

김 중사의 사격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큰 폭음을 내며 사격이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밀고 들어와 우리도 뒷걸음질 하며 사격을 했고 무전으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 현재 감염체들은 더 이상 없다고 합니다! 외부에 있는 장갑차에서 무전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탄약이 떨어져 더 이상 다가올 수 없다고 합니다!"

" 그래도 어디야!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 알겠습니다!"

이제 눈 앞에 있는 감염체가 전부라는 소식에 다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후속부대로 온 기관총 사수들도 차량에서 쏘면서 이동을 시작했고 혹시 살아있을지 모를 감염체를 확인사살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 끝입니다."

" 피해 상황은?"

" 사망자 3명. 부상자 13명입니다."

" 부상자?"

" 뭐. 탄약을 나르다 다친 인원도 있고 장갑차에서 떨어진 인원도 있습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부상자는 없습니다."

" 초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 큰 피해는 없습니다. 단지 구멍이 많이 뚫렸죠. 뭐 보수하는 것도 오래 걸릴

정도는 아니라 문제는 없습니다."

" 다행입니다."

" 본부대에서는 장갑차인원은 들어와 차량을 점검하고 초소 인원들은 교대자가

올 때까지만 초소를 지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혹시 몰라 1초소는 인원과

탄약을 3배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 흠..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내가 비아냥거리며 말했지만 들은 인원은 없는 듯 했다.

" 우선 우리는 복귀하자."

" 장갑차 피해는 없는 건가?"

" 별다른 피해는 없는데 탄약을 전부 사용했고 감염체를 밟으면서 이동했으니

차량 하부를 점검해야겠지."

" 참네. 다들 남의 집 불 구경하듯 있었던 놈들이 마치 자기들이 다 한 듯

행동하네."

멀리서 장갑차 인원들이 환호하며 이동하는 것을 보고 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 그래도 덕분에 다들 움직였잖아."

" 애초부터 움직였으면 얼마나 좋아."

" 다들 공포라는 것이 있잖아. 너와는 다르게."

" 나도 무섭고 두려워. 하지만.."

" 다 너와 같지는 않아. 넌 힘이 있지만 다른 사람은 없어. 넌 이제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있어."

" 쳇."

김 중사의 말에 약간은 기분이 상했다. 마치 나를 전혀 다른 존재로 여기는 말투가 싫었다. 그래봐야 같은 인간인데.. 나와 정 하사는 장갑차에 올라타고는 다시 정비지로 복귀를 했다. 복귀를 하는 도중 감염체 처리반과 마주쳤다. 불도저와 장비를 싣고 이동하는 것을 보고 어째보면 한심한 면도 있었다. 차라리 처리반에 편제된 인원을 초소나 감염체를 막을 수 있는 곳으로 편성시켰으면 더 많은 감염체를 처리할 수 있을 텐데.

" 차량은 이곳에 맏겨 두시고 싸인 부탁드립니다."

" 얼마나 걸릴까요?"

"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내일 오후 중으로 마무리 됩니다. 연락이 없다면 내일

모레 출발이 가능합니다."

" 알겠습니다."

" 육안으로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된 것이 없으니 별 이상을 없을 것 같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장갑차를 정비소에 입고시키고는 숙소 근처에 마련된 일종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우리의 출차와 입차를 적어야 했고 피해상황이나 다른 정보를 적게되어있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다행이 별다른 피해는 없으셨군요."

" 네. 그래도 많이 밀려온 상황이고 소음이 컸기 때문에 한 동안은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 네. 보통은 여러 번 걸쳐서 공격해 왔으니 조만간 또 밀고 오겠죠."

" 그렇군요."

" 네. 그래도 이번에는 별로 안 밀고 들어왔네요. 보통은 10초소까지는 금방

밀고 들어왔는데."

" 그런가요?"

" 네. 보통 10초소까지는 금방 밀고 들어오더라고요. 10초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워낙 실력이 좋은 것도 있고. 담당이 천상 군인이라.."

" 언제 시간이 되면 만나봐야 겠군요."

보통 1초소가 아니면 바로 지나가기 때문에 잘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여기가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소모한 탄의 수량과 사용한 대략적인 연료량을 체크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난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김 중사와  대령을 만나기 위해 본부대로 이동하였다.

" 대령님. 김 중사와 재원씨가 찾아왔습니다."

" 들어오게나."

아담한 사무실에 대령은 책상 한가득 쌓여있는 서류 틈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 도대체 저 많은 종이들이 어디서 나온거란 말인가?

" 그래. 수고했네. 자네들 사이에 무전을 들어서 알고 있네."

" 대령님도 수고가 많으시네요. 저 많은 서류를 보니."

" 하하! 연수원과 여기는 다르니까. 세상이 이렇게 되어도 서류 작업이라니..

알 수가 없단 말이지."

" 뭐.. 이곳은 뭔가 다릅니까?"

" 하아.. 뭐 이곳이라고 별 수 있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네. 섬에

있는 인원이 만 명정도 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칠천 명도 안 되는 것 같아.

인원수가 계속 늘어갈 뿐 사망자는 빠지지 않고 작업했더군. 그리고 탄약은

어찌나 숫자가 맞지도 않은지. 서류상 얼마 없다고 해서 야근까지 해가며

만들었더니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지 않나. 생필품이 필요한 곳에 탄약이 가고

탄약이 필요한 곳에 생필품이가고.. 여하튼 엉망일세."

" 그래서 그것들을 전부 손보고 있는 것입니까?"

" 전부는 아니고 우선 중요한 탄약이라도 제대로 배급 될 수 있도록 작업을 하고

있다네. 수색조와 초소에 우선적으로 양을 지급하고 보급품을 나눠줄 인원도

편성하고 있다네."

" 그 많은 작업을 혼자서.."

" 아닐세. 강 중령과 여러 명이 같이 하고 있다네. 솔직히 내 계급이 대령이니

망정이지 중령만 됐어도 씨알도 안먹힐 의견이었네."

" 흠.."

" 강 중령 말로는 남쪽에 있던 생존 캠프 1구역 책임자들이 여러 명 있다고

하더군. 애초에 이 곳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았다고 날뛰더군."

" 역시.."

" 그럼 탄약관리는 대령님이 하시고 계시는 겁니까?"

" 우선은 그렇다네."

" 그럼 저희 쪽에 많은 양을 부탁드리죠."

" 이유는?"

" 생존자 탐색보다는 감염체 제거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 응??"

" 생존자들은 이미 근처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는 매우

희박한 확률입니다. 그리고 장갑차를 끌고 다니는 인원을 보니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요. 차라리 몇몇 뜻있는 인원들이 모여 감염체를 제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그런 부대를 편성할 생각이네. 그리고 재원군 자네도

조만간 계급을 줄 것이니 그리 알게나."

" 제가 무슨 계급입니까."

" 장갑차부대나 초소에 있는 인원의 거의 대부분. 아니 전부라고 해도 되겠지.

전부가 계급을 달고 있다네. 그런 상황에서 자네는 계급이 없는데 오늘 같이

그런 무전을 날리기보다 남들보다 높은 계급으로 눌러 버리는게 좋겠지."

" 계급이 깡패군요."

" 뭐 내가 싫어하는 말이지만 부정은 하지 않겠네. 지금까지 자네의 행동과 강

중령이 말한 자네의 행동을 봤을 때 계급을 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네. 남들

시키기에도 편하고. 어차피 군 체계이니 특이상황인 만큼 계급을 준다고해도

반발할 인원도 없고 윗선이야 자기들보다 높은 계급이 아니니 신경 쓰지도

않겠지."

" 알겠습니다. 결정되면 말해주세요."

" 며칠 안에 결정이 날 것이니 기다리게나."

" 네."

" 그리고 덩달아 김 중사의 계급도 올라갈 예정이라네."

" 감사합니다!"

" 뭐.. 감사할 것 까지야."

" 그럼 수고하세요."

" 그래.. 온 김에 홍 소령과 강 중령이나 보고 가게나."

" 네."

우리는 대령의 방을 나와 홍 소령과 강 중령을 차례로 찾아 인사를 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나눴다. 홍 소령은 이곳에 와서 희욱이 누나가 출산을 했고 어엿한 사내를 얻었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에 다들 와서 축하해 주기로 하고 우선 숙소로 복귀를 했다. 숙소에는 미란이와 재효가 와서 은혜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예전만큼 애정이 살아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광경이었다. 식사와 생필품이 모두 배급제라 때가 되면 사무실로 물건을 받으러 가야했다. 식사는 아침과 점심은 급식소에서 먹고

저녁만 집에서 조리해서 먹을 수 있게 일정량을 나눠줬지만 솔직히 받은 것들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이 몇 집씩 모여서 조리를 해서 한 곳에서 먹던가 아니면 일정량을 나눠서 가져가는 형태였다.

" 홍 소령님이 득남하셨단다."

" 와!! 정말요?! 한번 찾아 뵈야 겠어요."

" 시간이 되면 한 번 가봐."

" 네!"

" 뭐 하고 있었어?"

" 이것 저것요. 티비도 보고 책도 읽고."

그래도 전기가 공급되는 곳이기에 어느 정도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전기는 일정량 이상을 사용하면 자동으로 차단이 되는 형태였지만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리는 없었다. 솔직히 양이 적은 것은 있었다.

한 번은 은혜가 티비를 보면서 드라이기를 사용하는데 전기가 떨어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드라이기가 워낙 용량이 큰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냉장고가 연결된 점도 있었고 순간적으로 온수기가 작동하여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뭐 특별히 사용하는 전기도 없었지만. 얼마 후 기태부부도 우리 집을 찾았다.

" 동네 반상회도 아니고 다 여기 모여 있네."

" 동네 반상회도 아니고 너도 여긴 뭔일이야?"

" 다들 여기 모여 있다고 해서 심심해서."

김 중사는 다른 인원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와 다르게 짝이 없는 김 중사는 다른 간부와 생활을 했고 기태가 여기서 모여 있다는 말을 해서 다들 모여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자들끼리 수다에 빠져 있을 때 남자들은 나와서 담배를 피며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 여기라고 안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최소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것들은

챙겨놔야 할 것 같아."

" 하지만 여긴 배급제라 챙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 우선 대령님에게 탄약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라면 감염체를 제거하면서

근처를 수색하자. 그래도 아직까지 남은 마트나 편의점이 있을테니까. 우리가

제재를 받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니."

" 하긴. 다른 장갑차 부대 인원들도 그럴지도 모르지. 이번 행동으로 보아하니

감염체를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장갑차 부대원이 됐다냐."

" 이런 장점이 있으니까. 남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챙기고 얻을 수 있으니까."

" 에휴.."

" 그렇다고 우리라고 그냥 지낼 수는 없어. 최대한 비축분을 마련해야지."

" 나랑 같이 생활하는 녀석이 그러는데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면서 피하는 부대가

장갑차 부대라고 하더라. 이미 물건들을 가져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있고 상부에서도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하던데? 지금까지 가장

사망자가 많은 부대이기도 해서 약간의 혜택이랄까? 원래는 금지되어 있지만

그래도 넘어가는 편이라고 하던데?"

" 하긴. 처음에는 장갑차가 50대는 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30여대 정도가

전부라고 했으니."

" 장갑차에서 왜 사망자가 나오지? 솔직히 무리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도 없는데."

" 변종 감염체가 있잖아."

" 대부분이 변종 감염체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어."

" 흠. 그래도 이번에는 변종 감염체가 공격해오지 않아서 다행이네."

" 모르는 일이야. 지능을 가진 녀석도 있을 수 있으니까."

"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 순위는 최대한 많은 물품을 구하고 그리고 많은 숫자의

감염체를 제거해야할 것이야."

" 응."

" 그나저나 훈이 너만 짝이 없는데.. 어디서 구해봐."

" 야! 이런 상황에서 어디서 여자를 만나냐?!"

" 왜 그래도 찾아보면 있잖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 됐다. 때가 되면 다 만나겠지."

" 다음 생에 만날지도 몰라."

" 닥쳐!"

" 하하하하!!"

우리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약간의 다과와 숨겨놨던 주류를 꺼내어 마셨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알코올 기운으로 다들 기분이 들떴고 밤 늦게까지 과음을 하게 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숙취에 시달리며 침대에서 일어났고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정비에 들어간 차량을 오후에 찾는 것이었다. 차량이 없다면 우리가 나갈 수가 없기에 일찍부터 일어나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멀쩡한 내가 김 상병과 같이 정비소에 들러 차량을 찾아왔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우리는 연료와 탄약을 채워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나가보기로 했다. 탄약은 원래 공급받던 양보다 훨씬 많이 받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수색 보다는 감염체 제거라는 명목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더니 상부에서도 말없이 탄을 주기로 결정한 듯 싶었다. 오후에는 각자의 화기와 장갑차 내부를 정리한 후 지도를 펼쳐 우리가 이동할 루트를 정하기로 했다. 가능한 도심을 위주로 나가기로 했다.

변종 감염체만 마주치지 않는다면 일반 감염체는 장갑차로 충분히 밀고 들어가고 소총이나 기관총으로 제압이 가능했기에 많은 숫자가 밀집되어 있는 도심에서 제거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물론 그 만큼 위험성이 따르지만 이 정도 화력과 탄약이라면 천 단위가 넘어도 제거가 가능했다.

" 내일 부터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움직이자. 이제 조는 나와 재효. 유 하사와

기철 상병이 한 조. 그리고 재원이와 기태. 정 하사와 남호 상병이 한 조로

움직이자."

" 응."

" 네."

" 장갑차 운전병은 당연히 운전에 집중하고 기관총 사수는 하사들이 맡고 나머지

인원들이 소총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하자."

" 기관총 탄약은 충분해?"

" 충분하게 받았어. 소총 탄과 유탄. 수류탄. 크레모아까지."

" 좋군."

" 대신 제약이 걸렸어. 탄약을 많이 받는 대신 감염체를 제거했다는 증거를

남겨야해. 그래서 차량 앞에 카메라가 달려서 감염체와 전투를 하게 되면

녹화를 해서 사무실에 넘겨야해. 계속 녹화를 하는 것은 아니라서 우리도

물건을 챙기는데에는 지장이 없어."

" 다행이네."

" 뭐. 그래도 탄약을 많이 받는 것 치고는 큰 제약은 아니네."

" 우리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로 했으니까 저번처럼 복귀 명령이 내려와도

복귀하지 않아도 무방해. 단 무전에서 우리를 지목해서 복귀하라면 해야하고."

" 그건 당연한 일이고."

" 응.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제대로 움직여 보자."

" 알았어!"

" 알겠습니다!"

" 그럼 해산!"

우리는 내일의 계획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도망이 아닌 감염체와의 전투가 목적으로 바뀌게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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