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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두둑 해진 탄약통과 기관총 설치와 고속 유탄을 설치하고 다시 1초소를 나갔다. 초소를 나가기 전에 아직 덜 치워진 감염체 시체들이 보였고 곳곳에는 당시의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수십의 인원들이 혹시나 살아있을지 몰라 확인 사살을 하며 시체를 한쪽에 쌓아 놓고 불태우는 현장이 보였다.
“ 잘 타네..”
“ 한 때는 그래도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인간의 육체가 저렇게 잘 타다니.”
“ 감염이 되면서 육체도 변했나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태와 내가 이야기를 나눴고 다리를 건너 10분간 이동을 했을 때 무전으로
김 중사의 말이 흘러들어왔다.
“ 오늘은 도심으로 들어갈 예정이야. 이동시간은 약 50분 정도로 예상되니
다들 긴장하고. 복귀시간은 최소량의 탄이 남았을 경우다.“
“ 무모한데? 그 말뜻은 감염체를 마주치지 못하면 우리는 복귀도 못한다는
말이잖아?“
“ 맞아. 탄을 받았으니 탄값은 해야지.”
“ 솔직히 꽤 많은 양을 가져왔는데 웬만한 감염체 무리가 아니면 하루만에
복귀하는 것은 힘들 것 같은데?“
“ 초반이라 아마도 윗선에서 우리를 주시할 것 같다는 정보야. 탄을 주기는
했지만 정확한 양을 측정하기는 어렵고 탄피를 수거해 오라는 말은 못하겠지.
그러니 한 동안은 감염체 제거에 신경을 쓰도록 하자고.“
군 시절 사격보다 힘든 탄피 수거가 생각나며 헛웃음이 나왔다. 10발 사격해서 10개의 탄피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지만 한 발이라도 없으면 그날 막사로 복귀하는 것은 포기해야했다. 사격훈련을 하러 나온 건지 탄피수거 훈련을 하러 나온 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 알았어.”
“ 그럼 근처에 도착해서 무전 할게.”
“ 수고.”
김 중사와의 무전을 끝내고 장갑차 상판에 설치된 기관총을 잡고 이동을 시작했다. 아직은 도심을 진입하기 전이지만 혹시나 감염체가 올지도 모르고 장갑차 내부에서 외부로의 시야는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차라리 외부에서 보는 편이 나았다. 감염체가 장갑차로 뛰어들 확률은 극히 낮았으니까.
“ 보이는 것이 있어?”
“ 현재는 아무것도 없음.”
“ 알았어.”
지속적으로 무전으로 주변 상황에 대하여 주고받았지만 감염체가 소문이라도 들은 것인지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 정작 찾을 때는 없고 오지 말라는 경우에는 엄청나게 밀고 들어오고.”
“ 삶이 그런 것 아니겠냐.”
“ 지긋지긋하다.”
“ 도심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 이제 20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 응.”
드디어 시야에 도심의 건물들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신기하군.”
“ 젠장..”
“ 뭐 이런..”
도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지만 정말 한 놈의 감염체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다리를 공격한 녀석들이 지금 이 근처에 있는 감염체의 전부라도 되는 양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는 녀석이 없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원래 도심에는 감염체가 많다고 했잖아?”
“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만.”
“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다들 잔뜩 긴장하고 도심으로 들어왔지만 폐허가 된 거리만 보일 뿐이었다.
마치 우리의 생각을 읽은 것 마냥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 젠장.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 조금 더 돌아보자.”
“ 아니면 소리라도 질러볼까?”
“ 흠.. 탄을 몇 발 쏴보는 것도 좋겠다. 소음을 내면 몰려오겠지.”
“ 응.”
“ 탕!! 탕!!!”
우리는 몇 발의 탄을 건물을 향해 발포했고 그나마 온전한 유리창이 깨어지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감염체는 보이지 않았고 몇 시간을 도심을 배회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 오늘은 이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나?”
“ 위험해. 아무리 지금 감염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야. 섣불리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것은 위험해.“
“ 설마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건가?”
“ 정보가 없으니 알 수가 있나.”
“ 쳇..”
이런 조용한 거리에서의 장갑차 소음도 상당한데 소총까지 쐈는데도 불구하고 감염체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더 긴장되었다. 그 많은 감염체가 갑자기 사라질
이유도 없고 설마 대부분의 감염체를 제거했을 경우도 없기 때문이다.
“ 우선 근처 학교나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자.”
“ 그래. 지도를 보면 여기서 약 20분 거리에 대학교가 있으니 그쪽으로 이동
하자.“
우리는 대학교로 이동하여 넓은 운동장 한 가운데를 지나 가장 끝의 건물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주변을 탐색했다.
“ 건물이 대부분 잠겨 있고 깨지거나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 상태를 보니 사태이후 누군가 들어온 흔적은 없습니다.”
“ 그래? 그럼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다시 움직이도록 하자.
“ 그래도 시야가 좋은 곳이고 길이 한 곳이니 감염체가 온다면 바로 발견할 수
있을 위치네.“
“ 응. 우선 자리를 잡고 쉬자.”
나는 긴장이 풀리며 한 곳에 널브러지며 누웠다. 기태의 감각에도 내 감각에도 걸리는 것은 없었다. 기태도 의아해하면서 혹시 자신의 능력이 소멸된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능력소멸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느낄 수 있고 지금 기태와 같이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현재는 내 능력을 숨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간단하게 뭐라도 먹자.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잖아.”
“ 응.”
“ 그래도 공항에서 생산이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 하지만 생산량이 많은 상황은 아닙니다. 저희야 이렇게 공항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약간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지만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많은 양을 배급받지는 못합니다.“
“ 그래?”
“ 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소초로 지원하거나 저희처럼 장갑차로 외부를
정찰하는 인원이나 물자를 수색하는 인원으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너도 그래서 지원한거야?”
“ 아닙니다. 전 더 이상 지켜야할 사람이 없어서.. 차라리 감염체를 한
녀석이라도 더 죽이자는 생각으로 지원했습니다.“
남호 상병은 아마 사태가 터지고 나서 가족을 잃었던 것이다. 복수심에 감염체를
사살하기 위해 수색조로 지원을 했고 전차 운전병 특기라 쉽게 보직을 얻을 수 있었다.
“ 너무 무리는 하지마.”
“ 네.”
“ 더 먹어. 난 별로 생각이 없네.”
“ 괜찮습니다.”
“ 먹어둬. 난 많이 먹어봐야 몸만 무거워져.”
“ 감사합니다.”
한창 먹을 나이에 최소량의 배급은 저들에게 힘이 들었을 것이다. 난 얼마 먹지 않고 남호에서 밥을 넘겼고 남호는 배부르게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 해가 지네.”
“ 이해가 안되네.”
“ 뭘 이해하려고 해? 어차피 감염체가 이해되지 않는 존재인데.”
“ 천하태평이다 넌?”
“ 보이면 죽이고 없으면 끝난 거야. 지금 상황은.”
“ 하아.. 넌 예전 생활이 그립지 않아? 일 끝나면 소주한잔이?”
“ 그립지. 시원한 맥주와 치킨도 그립고 삼겹살에 소주도 그립고 마음 편히
놀러갈 수 있던 그 시절이 그립고 부모님도 보고 싶고.“
“ 하지만 네 표정은 별로 그리움이 없어보여.”
“ 그립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잖아. 그때 그 문명을 다시 세우려면 족히
수 십년은 걸릴 일이고 지금은 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에서는
포기한 것 같아.“
“ 냉정한 면이 있군.”
“ 냉정하게 변한 것일지도.”
생각해보면 처음 우리 집 근처 마트에서 사람을 찔렀을 때부터 변한 것 같았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이 시점에서 가장 연장자인 내가 변해야 했던 것이다.
“ 하암.. 오늘은 아무 일 없겠지?”
“ 그랬으면 좋겠다.”
“ 보초는 장갑차에서 한 명씩 하는 걸로 하고 일찍 자자. 내일 해가뜨면
바로 이동을 시작하도록 하고.“
“ 그래. 편히 쉬어.”
“ 너라면 저런 곳에서 편히 쉴 수 있겠냐. 하하하!”
김 중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장갑차 안으로 들어갔고 초번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를 깔고 누웠다.
“ 일어나...”
“ 으응??”
“ 일어나! 주변에 감염체가 한 가득이야!”
“ 뭐?!!”
기태의 말에 잠이 달아났다. 장갑차에서 소총을 쏘기 위한 곳으로 가 뚜껑을 열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감염체 머리가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 도대체 여기까지 밀고 들어올 동안 왜 아무도 몰랐던 거야?!!”
“ 근처에 배회하는 몇 마리가 있어 괜히 소음을 내서 죽이기 보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났어. 이렇게 몰려오기까지 몇 분도 안걸렸어.“
“ 정말 함점을 파고 있었군.”
“ 젠장. 도대체 어디서 숨어있던 놈들이야!”
“ 김 중사! 어떻게 할 생각이야?”
“ 감염체가 아마도 우리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아.”
“ 이건 아마도가 아니잖아? 우리가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몰려든 상황인데?”
“ 밀고 나가자.”
“ 너무 가까워서 수류탄이나 유탄은 쏘기에는 무리니까 조명탄을 쏘고 주변의
시야를 확보한 후에 움직이자!“
“ 응!”
“ 다들 준비하고 난 기관총으로 사격을 할께!”
“ 알았어!”
“ 푸슛!!!”
조명탄이 발사되고 컴컴했던 주변이 약간은 밝아졌고 감염체의 모습이 보였다.
“ 젠장..”
주차장 한 가득 메우고 있는 감염체를 보니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감염체들은 나를 보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했는지 장갑차 외부에서 팔을 벌리며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 사격해도 돼?”
“ 네! 사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 그럼!!!”
김 중사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우선 장갑차가 지나갈 길을 만들기 위해 앞쪽의 감염체를 집중적으로 사격을 했고 힘없이 쓰러지는 감염체 위로 다시 다른 감염체들이 몰려들어왔다.
“ 이대로는 힘들어! 이동한다!”
“ 네!”
아예 장갑차로 밟고 지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고 장갑차가 그래도 수월하게 지나 갈 수 있게 최대한 앞쪽의 감염체만 쐈고 기태도 올라와 소총으로 감염체를 사격하기 시작했다.
“ 숫자가 너무 많아!”
“ 최대한 벗어나야 해!”
“ 누가 몰라?! 이대로 밟고 지나갈 수 있냐?!”
“ 아직은 버틸 만 합니다!”
“ 주변 감염체들도 문제지만 앞에 더 많은 상황이야! 재원아 넌 유탄을 사격해!”
“ 알았어!”
주변의 감염체도 문제지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감염체의 숫자도 문제였다. 최대한 소총 탄약을 아끼기 위해 유탄과 수류탄을 사용해가며 감염체를 제거했지만 계속해서 몰려들어 오는 감염체의 숫자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젠장! 변한 게 없잖아!”
“ 뒤에 산길로 갈 수 있어?!”
“ 무리입니다! 나무가 많아서 지나갈 수 없습니다!”
“ 그래도 내리막 길이라 조금은 수월한 편입니다! 저기만 벗어나면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그럼 어서 밟아!!!”
장갑차 엔진소리가 커지면서 심하게 덜컹거렸다. 감염체들이 바퀴에 깔리면서 기분 나쁜 소리를 만들었고 쉴틈 없이 기관총에서는 수백발의 탄들이 쏟아져 나갔다.
“ 이제 감염체들이 거의 없습니다!”
“ 그럼 뒤에 녀석들은 제거하자!”
“ 좋았어!”
감염체 무리를 지나 한적한 곳으로 탈출에 성공을 했고 뒤에서 따라오는 감염체를 향해 안정적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아무리 죽여도 죽여도 밀고 들어오는 감염체를 보며 공포감마저 들었다. 마치 게임에서 리스폰되는 몹을 보는 듯 착각에 빠져들 만큼 엄청난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감염체를 보고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김 중사의 생각은 달랐다.
“ 최대한 이곳에서 탄을 쓴다!”
“ 네??!”
“ 뭐??!”
“ 괜히 더 움직여서 다른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더 나아!”
“ 찬성!”
“ 에라이!!!”
다들 쉽게 포기하고 감염체를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최소한의 복귀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탄약을 제외하고 전부 소모한다고는 했지만 워낙에 가져온 탄약의 양이 많았다. 정말 이 탄을 전부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