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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80화 (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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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탄창에 넣어둔 탄약을 전부 소모하고 이제는 탄통에서 탄약을 꺼내어 탄창에 다시 넣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 작업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움직이는 차에서 하기란 쉽지 않았다.

“ 우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정비를 하자! 더 이상 쏠 수 있는 탄약이 없어!”

“ 기관총 탄약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젠장! 저기서 변종 감염체가 몰려와!!”

“ 뭐?!!”

멀리서 뛰어오는 변종 감염체. 다른 감염체 보다 덩치가 두 배정도 큰 녀석. 확실히 다른 녀석들보다 지능도 있고 움직임도 빠르고 웬만한 총격에도 큰 피해를 주지 못하는 녀석이라 지금 상황에서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 가능한 멀리 벗어난다!!”

“ 최대한 남쪽으로 이동한다! 혹시라도 공항으로 간다면 위험해!”

“ 알겠습니다!”

우리는 방향을 돌려 최대한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변종 감염체가 무서운 속도로 뛰어오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장갑차의 속도를 넘을 수는 없었다. 도심을 벗어나니 넓게 펼쳐진 농지가 보였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농경지가 많이 있는 지역이었다. 30분을 달려 도로 한 곳에 토종 닭을 판매하는 식장에 자리를 잡았다. 지역이 평지로 넓게 있기에 감염체가 다가오는 것을 봐도 우리가 충분히 대응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날이 밝아올 테고 우리는 그때까지만 안전하게 버티면 상황은 조금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주변을 경계하는 인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장갑차에서 무기를 재점검했고 탄약을 보충했다. 기철 상병과 남호 상병은 장갑차 외부를 점검했고 김 중사는 무전으로 본부대에 우리의 상황을 알렸다.

우리가 뭔가 구조를 바라고 무전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답은 우리를 상당히 기분 나쁘게 했다.

“ 현재 병력이 모자라는 상황이라 구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 구조를 바라고 무전을 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저희 상황을..”

“ 그럼 무사히 복귀하도록 이상.”

“ 저..저기!!”

일방적으로 무전을 끊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마치 포커에서 버린 카드 신세가 되어버린 우리 모습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 참네! 보고를 철저히 하라고 할 때는 뭐고 지금 저 반응은 뭐야?”

“ 어이가 없습니다.”

“ 탄약은 얼마나 남았지?”

“ 현재 반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가져온 탄창이 많아 생각보다 많은 양을 소모

했습니다.“

“ 뭐 그 정도면 양호하지.”

“ 훈아! 어쩔 생각이야?”

“ 지금은 여기서 머무르며 체력을 보충하고 무기를 재정비한다. 상황이 여유가

된다면 조금 자두는 것도 나쁘지 않고.“

“ 그래..”

우리는 각자 무기와 탄약을 정비했다. 많은 양의 탄을 소비한 터라 소총을 깨끗이 닦았고 혹시 모를 고장에 대비했다. 탄약을 넣으며 별 생각 없이 멍하게 일을 하다 갑자기 몇 가지 의문점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 여기서 가장 오래 지낸 인원이 누구지?”

“ 저입니다.”

“ 정 하사? 얼마나 됐어?”

“ 이제 일년 가까이 되어가는 군요.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공항근무 때문에

계속 있었습니다.“

“ 그럼 사태 후에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것을 봤어?”

“ 네. 지금도 간혹 이착륙을 하면서 저희에게 물자를 전달해 주곤 합니다.”

“ 어디서?”

“ 네??”

“ 생각해보면 식량이야 그렇다고 하고 이런 많은 양의 탄약과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도 나름 규모 있는 공장이 필요하고 원자재도 필요한데 그런

물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적 있어?“

“ 정확히 본 적은 없습니다만..”

“ 이상한데..”

“ 뭐가?”

내가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자 기태가 물어 왔다.

“ 생각해봐. 내륙지방은 이미 초토화 수준이고 이런 금속이나 화약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지금까지 탄약은 부족함 없이 지급이 된 상황이고 식량도

부족하기는 하지만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야.“

“ 그런데?”

“ 아무리 다른 생존자 캠프에서 지원을 해준다 해도 인원이 인원이니 엄청난

양이 소모되는데 현재 이런 양을 소화할 정도의 공급처가 있을까?“

“ 아...”

“ 저도 예전부터 궁금하기는 했습니다만 정확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도

그저 다른 생존자 캠프에서 가져왔다거나 공항에 마련된 공장에서 만들었다는

대답이 전부였습니다.“

“ 그리고 비행기가 이착륙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 왜? 보통 전시에는 물자를 비행기로 날라야 빠르잖아?”

“ 그거야 기본 베이스가 튼튼했을 때 이야기지. 만약 세상이 전부 이런 사태라면

더 이상 석유시추가 되지 않을 텐데 그럼 배가 효율적이지. 시간을 걸려도 한

번에 많은 양을 싣고 다닐 수 있으니까.“

“ 흠..”

“ 만약... 이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났다면?”

“ 뭔 소리야! 처음 뉴스를 봤을 때 세계적으로 일어 난 일이라고 했잖아..”

“ 어디까지나 뉴스잖아. 우리가 실제로 본 것도 아니고.”

“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처음 공항에는 미군과 다른 나라의 군인도

있었습니다만 언젠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 솔직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장갑차 정식으로 생산된 모델도 아닐 텐데?”

“ 어..어떻게 그걸..”

“ 예전에 인터넷에서 잠깐 본 기억이 있어서. 솔직히 장갑차 엠블런스 치고는

너무 크잖아?“

“ 프로도 타입인가..”

“ 어찌됐든 지금까지 살아남을 때는 몰랐는데 생존자 캠프에 오고 나서부터

이상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냐.“

“ 참네 궁금한 것도 많다. 뭐가 그리 이상한데?”

“ 대통령은 어디로 간 거지?”

“ 응??”

“ 너 군인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런 상황에 가장 먼저 보호하고 가장

삼엄한 보안을 자랑하는 곳에 살고 계시는 대통령. 어디서 살고 있는 거야?“

“ 그러네? 사태 초기부터 있었던 공항이라면 적어도 이곳에 있어야 정상아냐?”

“ 왜 군함 한 척 안 보이는 거지?”

“ 사태 직후에 헬기가 다니는 것 외에는 본 적도 없는데..”

“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해. 아직은 선뜻 확신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 군인이라면 명령에 따르면 되는거야. 뭘 그리..”

“ 명령이라면 이미 제대로 따르지도 못했잖아. 이 사태 후에 분명 군에서

감염체를 제거하라고 했을 텐데 제대로 못했으니 이 지경이 됐잖아.“

내가 쏘아 붙이자 김 중사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다른 애들도 있어 약간은 미안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점이 늘어만 갔다.

“ 하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 다른 사람은 뭐 이상한 점 없어?”

기태가 묻자 다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김 중사가 있는 상황에 제대로 대답을 해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상관인 김 중사니까.

“ 천천히 생각하자. 우선은 이곳을 벗어날 생각부터 하자.”

“ 탄약은 다 채웠고 기관총 탄약도 얼마 남지 않았지?”

“ 네. 반통 가량..”

“ 뭐 마주치면 바로 다 소모해 버리자고.”

“ 알겠습니다.”

지금 이 분위기를 몰고가봐야 좋을 것이 없었기에 말을 돌려 다른 쪽으로 유도했다. 김 중사는 우선 주변을 둘러보기 전에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자고 했고 다들 제대로 잠을 잔 인원이 없었기에 모두들 찬성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근무를 서기로 했고 6시간 후에 출발하기로 하고 다들 차량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 시작했다.

“ 끄으응..”

“ 아고..허리야..”

“ 정말 덥다..”

그늘 하나 없이 허허벌판에 세워진 장갑차 내부의 기온을 건식사우나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딱딱한 바닥에 침낭을 깔고 푹신하게 한다고 해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못자는 것보다야 백배는 나았기에 다들 일어나 기지개를 폈고 우리는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 현재 우리가 이곳에 있고 새벽에 공격받은 곳은 이곳이야.”

“ 그럼 오늘은 이곳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군.”

“ 내일 오후에 공항으로 복귀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자.”

“ 연료는 충분한가?”

“ 네. 많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합니다.”

“ 수시로 연료량을 파악해서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말하고.”

“ 알겠습니다.”

“ 내일까지 버틸 식량은?”

“ 충분합니다. 나올 때 일주일정도를 예상하고 나온 것이라.”

“ 부족한 것은 탄약인가..”

“ 탄약도 이번처럼 공격받는 것이 아니라면 무리는 없습니다. 여분의 소총도

있으니까요.“

“ 그래. 다들 무리는 하지 말자. 아무리 감염체를 제거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더 많은 녀석들을 제거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 네!”

“ 알겠습니다!”

힘 있는 대답과 함께 다시 장갑차에 탑승했고 어제의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심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도심은 포탄과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곳곳에 무너진 건물로 인하여 흉물스럽게 변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술집이나 유흥주점이 몰려있는 일종이 먹자골목인 곳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던 것 같았다.

불타버린 차량들과 건물들. 썩어가는 시체들과 엄청난 숫자의 비둘기들. 이미 비둘기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몇 배는 커져버린 모습에 징그럽기까지 했다.

“ 저게 비둘기야?!”

“ 와.. 대단하다..”

“ 날아가기는 한답니까?”

“ 닭 아냐?”

잡식성으로 알고 있는 비둘기는 도심에 먹을 것이 없자 썩어가는 시체들을 먹고 몸집이 불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니라 부리와 발톱도 날카롭게 변했고 색도 흔히 볼수 있는 색보다 더 진해진 느낌이었다.

“ 무섭기까지 하네.”

내가 시체를 쪼아 먹고 있는 비둘기를 보며 말을 했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장갑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어라?!!!”

“ 누...눈이... 없어?!!”

비둘기의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 눈이 없는 것이 보였다. 눈 대신에 마치 더듬이 같이 긴 촉수가 나와 있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개중 덩치가 크다 싶은 것들은 대부분이 눈 대신에 촉수가 나와있는 모습이었다.

“ 말이 돼.”

“ 저 녀석들도 감염된 거야?”

“ 그럴 리가 사람의 질병이 다른 종에게 감염될 리가..”

“ 이미 감염체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잖아? 이제 와서..”

우리는 살벌하다 못해 괴기스러운 비둘기를 보고 서둘러 그곳을 지나갔다. 비둘기가 저렇게 변했다면 다른 동물들도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 이제 날씨가 완전히 풀리고 활동이 왕성해지니 저런 녀석들도 나타나네.”

“ 자칫 잘못하다간 공항도 위험 할 것 같습니다. 저런 녀석들을 상대할 무기가

없는데 말입니다.“

“ 하긴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저 녀석들을 맞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지.”

“ 우선 빠르게 이곳을 벗어난다!”

김 중사도 비둘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라고 지시했고 우리는 더 깊숙이 도심안으로 들어갔다.

“ 타탕! 탕!!”

“ 저쪽에서도 몰려옵니다!”

“ 역시 이래야 정상아냐?!”

도심에 진입하자 장갑차의 엔진소리를 듣고 산지사방에서 감염체가 몰려들었다.

다행히 한 번에 몰려오는 것이 아닌 적은 숫자들이 모여들어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고층건물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감염체들을 정조준으로 제거해갔지만 우리 차량이 포위되는 것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 어서 벗어나!!”

“ 탄약이 없습니다!”

“ 여기 받아! 우리는 아직 조금 남았어!”

“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도록!”

“ 공항으로 갑니까?”

“ 우선 방향으로 그쪽으로 하되 바로 복귀는 위험하다! 괜히 저 녀석들이 따라

오기라도 한다면 위험해!“

“ 알겠습니다!”

“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감염체가 오지 않는 다는 확신이 들면 복귀한다!”

“ 네!!”

우리는 공항고속도로 옆 아직은 개발이 덜 된 구역으로 이동을 했고 근처에 널브러진 수풀과 나무들로 차량을 가리고는 미행하는 감염체를 경계하였지만 수 시간이 지나도 다가오는 감염체는 없었다. 우리는 안심하고 그대로 차를 돌려 공항으로 복귀했고 다시 초소를 지나 정비고에 차량을 맡기고는 사무실로 들어가 우리가 전투했던 영상과 탄 소모량을 적었다. 물론 우리가 소모했던 양보다 많이 적어 거의 모든 탄약을 소비한 것처럼 적었다. 언제 탄약점검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가능한 은밀한 곳에 숨겼고 우리는 간단한 신체검사. 혹시나 남들 모르게 난 상처나 감염이 의심되는 상처를 찾는 것을 끝내고 각자의 숙소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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