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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집으로 돌아오니 핑크와 은혜가 반겨주었다. 마치 일을 끝내고 들어온 가장이 된 기분이 들었다.
" 수고했어요! 별 일은 없었죠?"
" 응! 자기는 뭐하고 있었어?"
" 그냥 본부대에서 해준 작업을 하고 식량을 타왔어요. 핑크랑도 산책도 하고
주변 텃밭에 심을 것도 구해오고."
주변에 짓다만 건물들이 많아 남는 땅이 많아서 다들 종자를 구해와서 먹을 것들을 심고 있었다. 배급받는 식량으로는 부족했기에 다들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 전기와 수도는 잘 나와?"
" 네. 약하기는 하지만 수도는 괜찮게 나와요. 뜨거운 물도 나오고."
" 다행이네."
" 배고프지 않아요? 뭐라도 해드릴까요?"
" 아니 괜찮아. 오늘은 피곤해서 어서 씻고 자고 싶은 마음뿐이야."
" 어서 씻어요. "
" 응."
난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속옷도 배급을 받는 상황이라 많은 양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지고 있던 것들이 많아 부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은혜는 배급을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맞는 싸이즈가 없어서.
" 개운하다."
" 자기가 고생이 많네요. 자기 덕분에 나도 편하게 지내고."
" 뭘 그런 걸 다 그래. 자기가 편하게 지내면 된거지."
" 자기가 나갈 때 마다 걱정돼요. 무사히 돌아올까하고.."
" 걱정마. 혼자서도 잘 버틴 나야. 더군다나 장갑차에 탄약도 충분하니 너무
걱정 하지마. 나는 자기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그게 더 걱정이야."
" 종종 미란이 언니와 보미 언니랑 놀러 와서 괜찮아요. 집에서 몰래 티비도
보고 숨겨 논 먹을 것도 먹고 해요."
" 몰래?"
" 다른 사람들이 보면 좀 그래서.."
" 잘 생각했네. 사람들은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질투를 느끼니까. 괜히 문제일으
키는 것보다야 낫지."
" 네."
" 하암.."
" 오랜만에 안마해 줄게요. 침대에 누워요."
" 그래?! 그럼 부탁좀 할께!"
" 풋.. 그렇게 좋아요?"
" 자기가 장갑차 안에서 자봐.. 죽을 맛이야. 이제는 점점 더워져서 난 정말
힘들다고."
" 아.. 자기 더위를 많이 타죠?"
" 응. 정말 죽을 정도로."
" 에어컨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 이런 상황에 에어컨은 무슨! 자기 안마로도 충분히 시원해요!"
난 침대로 몸을 던져 누웠고 은혜는 내 엉덩이 위로 올라타 안마를 해줬다. 은혜의 긴 손가락이 내 살을 훑고 지나가자 짜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보다 뭉쳐있던 근육들이 풀어지며 느껴지는 감정이 더 좋았다. 딱히 유흥거리가 없는 상황에 이런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율은 큰 편이었다. TV도 나오지 않고 컴퓨터도 있어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 단지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 그래서.. 언니가.."
은혜는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안마를 해줬다. 나도 은혜의 말에 호응을 하며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 오늘 신기하게 비행기가 착륙하던데요?"
" 그래? 뭐 간혹 온다고 했으니.."
" 굉장히 큰 비행기였는데.."
" 군용인가?"
" 아니에요. 00항공이라고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군용은 아닌 것 같아요."
" 신기하네.."
" 뭐가요?"
" 뭘 싣고 다니는 건지 항공을 이용하는지 모르겠단 말야."
" 다른 나라와 교류가 있는 건 아닐까요?"
" 흠.. 그럴지도 모르지만 뉴스가 정확하다면 세계적으로 퍼진 상황인데 과연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 멀쩡한 나라가 있나 봐요? 그래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죠."
" 그랬다면 좋겠지만.."
은혜가 안마를 끝내고 내 옆으로 누워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난 그런 은혜가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팔베개를 해주고 내 품으로 안아줬다. 행동은 애정행각을 이어갔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돌아 다녔다. 지금까지는 아는 바가 없지만 현재 여기서 마주친 사람들 중에 흔히 말하는 높으신 분들은 없었다. 본부대에서도 계급이라고 해봐야 소장 한명이 전부였다. 준장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마주친 적이 없으니 알 수도 없었고 대부분이 중, 대령이었다. 그래서 연수원에서 같이 머물던 대령님도 단번에 꽤 비중 있는 직책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고. 머릿속으로 처음 사태가 일어난 시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심야 통금시간이 생기고 거리에는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늘어났고 곳곳에서 범죄가 늘어났다. 국가는 시민들의 외출을 자제토록 했고 대부분의 서비스업이 무너지면서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회사를 갔다가 회식이나 다른 놀이거리를 할 것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처음 독감이라는 소리에 다들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해 다녔기에 거리를 엄청 붐볐고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상황이었다. 거리에 술집, 음식점, 피시방, 당구장등이 우선적으로 문을 닫았고 그나마 자금력이 있는 체인점들과 덩치가 큰 업장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일할 사람도 가게로 먹거나 놀러 오는 사람이 없으니 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실업자가 늘면서 옷가게나 학원, 가전제품 매장등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한 때 번화가인 동네의 먹자골목도 거리 전체가 죽은 거리로 변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6개월도 되지 않았다. 내 친구 10명중 6명이 백수로 변했으니 말 다했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마트나 슈퍼는 끝까지 망하지는 않았다. 마트는 배달 업종으로 전략해 버렸고 슈퍼는 잠시 왔다 가는 정도였기에 큰 무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 흠.."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 응??"
내 옆에서 처음부터 내 표정을 지켜본 듯 은혜가 물어왔다.
" 아니. 처음에 어떻게 사태가 시작된 건지 생각해 보고 있었어."
" 아.. 뭐.. 거의 집 밖에 나간 적이 없으니.."
" 자기는 어떻게 살았어?"
" 뭐 저야. 행사가 있으면 가서 알바도 하고 미란 언니 도와서 일도 하고했죠."
" 난 원래 여행을 갈 생각이었는데."
" 들었어요. 그래서 저 카라반도 산거라고.."
" 응. 크게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해외로 출장을 가신 상황이라
집을 줄이고 여유금액으로 한 동안 여행을 다니다 보면 상황이 나아 질 것
같았는데.."
" 그래도 자기가 산 카라반 덕분에 우리가 남들보다 편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잖아요."
"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캠핑카를 사는 건데.."
"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그랬으면 다들 안전한 곳으로 떠났겠죠."
" 하긴..누가 이렇게..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군.."
" 네??"
" 생각해보니 흔희 말하는 중요한 인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데..
자기 말을 들으니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안전한 곳으로 먼저
피난을 간거였군."
"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나요?"
" 잘해야 제주도 정도겠지. 아니면.."
" 아니면요?"
" 우리나라만 이 지경이거나.. 아니면 아시아 정도? 유럽이나 미국은 사태가
수습되어서 정리 중일지도 몰라."
" 왜 그렇게 생각해요?"
" 우선 아시아는 인구가 많고 밀집도가 높아서 감염위험이 크지. 그리고 제대로
대응할 경험이 부족해. 하지만 미국만 봐도 예전 마라톤 테러 상황 후 어떻게
테러범을 잡았는 줄 알아?"
" 어떻게요?"
" 내 동생이 그 당시 보스턴에 있었는데 완전히 도시를 폐쇄해 버렸다고 했어.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다 범인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고 했어. 필요한
물품이나 급한 것은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하고는. 도시 전체가
폐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하더라."
" 와.. 대단하네요."
" 뭐 여러 차례 겪은 경험에서 나온 결정이었기도 했지만 시민들도 신고정신이
투철했고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결합되면서 빠르게 범인을 잡았다고 하더라.
집 뒤편에 보트에서 잡았다고.."
" 아.."
"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위협이 전혀 없었고 하다못해 화재 경보가 울려도
너무 오작동이 많아 실제로 화재가 일어나서 울려도 피하지도 않고. 그런
경고와 경보에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국가에서 심야 통금
까지 걸었는데도 처음에는 걸린 사람이 많아서 열흘 만에 벌금을 웬만한 월급
반 정도까지 했더니 그제야 어기는 사람이 많이 줄었잖아."
" 맞아요. 저도 그때 집 앞에서 떠들고 노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 뭐 미국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니까."
" 우리나라도 좋은 점도 많은데요."
" 그렇지. 하지만 그 좋은 점이 이런 상황에서 힘을 발휘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야."
"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기 말대로 온전한 국가가 있다면 도와주겠죠."
" 응.."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대충 가닥은 우리나라와 주변 국가만 이렇게 변한 가능성이 컸다. 군용 수송기가 아닌 일반 여객기가 다닌 다는 것은 꽤 장거리 비행일 가능성이 컸고 지급되는 물건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내 생각이 맞다 해도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 보다는 내일의 생존이 더 중요했으니 우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다시 탄약을 지급받고 정비가 끝난 차량을 끌고 왔다. 바로 나가기보다 주변에 있는 번화가였던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약간의 작전도 필요했다.
" 우선 저번처럼 감염체가 우리를 둘러쌓게 되면.."
" 그리고 가능한 감염체와 일직선이 되어서 사격을 해서.."
" 장갑차도 개조가 필요합니다. 지금 있는 인원으로 사격을 해봐야.."
" 그럼 소총보다 기관총을 장착할까? 옆으로 해서 쏠수 있게?"
" 하지만 총안구 크기가 기관총은 무리입니다."
" 흠.."
" 총 안구를 좀 크게 할 수 없나?"
" 대 작업입니다. 철판을 자르고 처리하는 것이.."
" 이래저래 제약이 많군."
" 시간이 조금 걸려도 상관없다면 장비야 충분하니 개량은 가능할 것입니다."
" 시간은 우리 흘러넘치는 것 아냐? 뭐 하루에 잡아야하는 감염체 숫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가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정비해서 나가는
것이 우리가 안전하게 한 놈이라도 더 잡을 수 있겠지."
" 하긴.. 솔직히 우리가 급할 이유가 없잖아?"
" 네.. 생각해보니.."
" 어차피 한 대는 내부가 상당히 넓고 적재할 공간도 충분해. 그러니 생각을
해봐서 제대로 개조해 보자."
" 네."
우리는 간단한 도면까지 그리며 작업을 이어갔다. 우선 장갑차 옆면에 총 안구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워낙 장갑도 두껍고 뚫었다고 해도 높이이가 높아 우리가 원하는 감염체와의 일직선이 불가능했다. 차라리 기관총의 탄약을 더 적재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일반 차량처럼 쉽게 튜닝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비창에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실질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워낙에 뛰어난 성능을 가진 장갑차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의 전투에 개념을 둔 차량이지 감염체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차량은 아니었다.
"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 음.. 그래도 외부 카메라와 야간 투시장비는 쓸만 하겠지?"
" 원래 달려있던 것을 몰랐던 주제에 마치 설치해준 마냥 이야기 하는 녀석은
뭐하는 녀석이야?"
"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원래 우리 군이 가지고 있던 모델도 아니고 어쩌다
한 대 얻어 걸린 건데 이해해주셔야지요."
" 쩝.."
장갑차에서는 별 소득은 없었지만 다른 장비들은 꽤 소득이 있었다. 탄창을 더 얻을 수 있었고 기관총의 예비 총열과 새로 소총을 지급 받았다. 수류탄과 크레모어등 부비트랩을 설치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받았다. 그리고는 여분의 전투복과 전투화와 옷들을 챙겨왔다. 최소한 일주일은 못 들어온다는 가정 하에
장갑차 내부에 차곡차곡 정리를 시작했다. 우리가 정비창 한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다른 장갑차 인원들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남호 상병의 이야기로는 대부분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밖으로 나가고 나간다고 해도 많은 전투를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지금과 같은 전투를 하기위해 지원한 것인데 대부분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상황에 회의감이 들어 이번에 다른 조로 옮겼다고 했다.
" 너도 참 무모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차라리 저런 쪽이 편할텐데."
" 전 싫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갈 생각입니다."
" 예전에도 말했지만 무모한 행동은 하지말아."
" 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불타오르는 남호였다. 물론 식구들이 희생된 상황이라 이해는 갔지만 저런 무모함이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는 법이다. 얼추 정리가 끝나고 점심을 간단하게 챙겨먹은 후에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사무실로 가서 일지를 작성하려 했지만 웬일인지 거부 당했다.
" 무슨 일입니까? 저희가 왜 못나가는 상황입니까?"
" 현재 도심에 많은 숫자의 감염체가 발견된 상황입니다. 본부대에서는 만약을
대비하여 전원 대기하라는 명령입니다."
" 선수를 쳐서 때리면 안됩니까?"
" 명령입니다. 자택에서 대기하세요."
" 그런 긴박한 상황인데 자택에서 대기하라는 것은 말이되나?"
" 차라리 장갑차에서 대기하라던가 아니면 초소로 가서 인원을 늘리던가."
" 참네.."
이해할 수 없는 본부대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무전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것은 시간이 걸릴텐데. 차라리 초소마다 장갑차를 보내서 감염체를 대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텐데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투덜거리며 남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표정으로 각자의 집으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