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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본부대에 마련된 철창 속에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뭐 체포하면서 별다른 말도 없고 도대체 왜 나만 끌고 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순순히 끌려 온
것은 그 녀석 처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지만.
" 쳇.. 왜 나만.."
" 뭐 별수 있나 그 녀석을 탓해야지."
" 강 중령님."
" 또 그 녀석이군. 자네랑도 악연이야."
" 그렇게요. 도대체 왜 저런 녀석은 죽지도 않는지.."
" 감염체들이 보는 눈이 없나 보군."
" 전 언제 나갈 수 있나요?"
" 이제 나오게나. 어차피 쌍방에 싸움인데 자네만 여기 있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 진수는.."
" 뭐 집에서 잘 쉬고 있겠지. 나름 여기서 계급이 높은 사람의 아들이니."
" 더럽군요."
" 맞지..맞아.."
"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뭔가?"
" 분명 그 녀석은 다른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다른 곳이 어디입니까.."
" 흠.. 입이 싼 녀석이군.."
" 말 돌리지 마시고.."
" 우선 나오게나. 내가 오늘 저녁에 자네 집으로 가겠네."
" 알겠습니다."
" 우선 가서 쉬고 있게나. 다른 인원들도 불러오고.."
" 네.."
" 한 시간 정도 걸릴걸세."
말을 끝낸 강 중령님은 침울한 표정으로 나갔고 나는 본부대에서 마련해준 차량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나를 걱정한 인원들이 나를 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다행이다! 별 일 없었구나!"
" 왜 형만 끌고 간거야?!"
" 뭐랍니까?!"
" 한 명씩 말해.. 잠시 후에 강 중령님이 오신다니 기다리자."
" 네.."
" 우선 씻고 올게."
난 길지 않은 시간동안 샤워를 하고 나왔고 거실에는 이미 강 중령님이 오셔서 은혜가 내어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 대단하군.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런 먹을 것이 있다니.."
" 뭐.."
" 어?! 대령님."
" 어라?"
예상과 다르게 대령님도 우리 집에 왔다. 다들 소파에 앉아 중령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여기 온 후에 다들 가끔씩 뜨는 비행기를 본 사람들이 있겠지?"
" 네.."
" 그 비행기는 사실 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네. 그 비행기는
다른 국가로 가는 인원들이 탑승하는 비행이라네.."
" 네?!!"
" 다른 국가는 멀쩡한 것입니까?"
" 뭐 멀쩡하다고 하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피해는 있다네. 아시아권은
대부분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라네. 미국과 호주. 유럽이 조금은 상황이 좋은
편이고 아시아 아프리카는 쑥대밭이라네."
" 하아.."
" 그럼.."
" 미국에서는 우선적으로 감염이 되지 않은 인원들을 받아 준다고 했네. 하지만
워낙 거리도 멀고 남은 비행기도 없다보니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라...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대령급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네."
" 그럼.. 사태 직후에.."
" 대부분이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공항에 머물다가 떠난 상황이라네. 원래
계획은 가장 군사력이 큰 미국에 모여 한 번에 병력을 투입시켜 감염체를 제거
한다는 것이었지만.. 도심에서 전투가 힘들고 그렇다고 도심에 폭격을 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 ...."
다들 말없이 중령의 말을 경청했다.
" 솔직히 내 나라도 난장판인데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힘들지.. 그래서
계속해서 계획은 미뤄지고 있다네. 내 생각에서는 식량과 약간의 탄약을
지원받다가 어느 순간 끊어질 것 같다네."
" 그럼 미국이나 호주, 유럽은 상황이 좋은 것입니까?"
"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시 하나를 지킨 경우도 많다네. 미국이야
워낙 총기도 많고 테러대비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국가 중 하나 아닌가?
그리고 호주는 인구밀도가 워낙 적다보니 피해가 적었고 유럽은 신기하게
많은 감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네."
"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군요."
" 현재 추측하기로는 북한에서 화학실험이나 화학탄으로 인해 감염된 사람들이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네. 얼마 전 포격도 한 적이 있고 가장
많은 희생자가 생긴 지역도 중국이다보니.."
" 그럼 왜 우리는 피해를 입은 것이죠?"
" 아마도 바람을 타고 쓸려왔거나 감염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그러다 감기처럼 진화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겠지. 감기는 실제로 치료약이
없다고 하잖아."
" 그럼.. 이 사태에도 치료약은 없다는.."
" 모르지. 나야 전문가도 아니니 그냥 추측이지."
" 비슷하다네. 우리도 그런 상황을 생각해서 연구 중이지만 제대로 된 연구소는
섬 밖에 은밀한 곳에 있고 그마저도 시설을 좋지 못하다네.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치료약이 개발 된다고 한들 우리에게 좋은 것은
없다네."
" 어째서요?"
" 솔직히 자국이 안전하다면 시간을 두고 지켜봤다가 다른 나라에 가서 사태를
진압해서 그 국가를 자신의 영토로 해버리면 되는 것이니까. 감염체라고
영원히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몇 년이면 사태가 진정되겠지. 그럴
때를 기다렸다가 남은 국가들이 쑥대밭이 된 국가들을 상대로 한 영토 전쟁이
일어날 지도."
" 맞다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별다른 이득이 없지."
" 어째서요?"
" 뭐 석유가 나오기를 하나 넓은 평지가 있기를 하나? 분단국가니 휴전선
근처에는 아직도 수많은 지뢰가 있고 위치상 내륙국가랑 가깝다고는 하지만
철도가 깔린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일본보다 못한 위치지. 차라리 일본이 중간
기점의 기지로는 효율적이지 않겠나?"
" 흠.."
" 그래도 다행인 점은 식량과 탄약은 충분하게 지원받고 있다네. 아직은 전
세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니.. 보는 눈이 있으니 지원이 오긴 한다네."
" 그럼 나중에 비행기가 와서 진수녀석이랑 그 식구들이나 나머지 높은 사람들을
태우고 가겠군요."
" 하아.."
" 젠장..."
자기들 먼저 살겠다고 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애초에 제대로 대응만 했어도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것인데..
" 그래도 현재 위성으로 살펴 본 결과 대표적인 도시를 제외하면 많은 숫자의
감염체는 없다고 전달 받았네. 물론 우리 위성은 아니지만.자네들이 강원도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대부분의 감염체가 큰 도심에 몰려 들어가서 가능했
던 것이네."
" 그럼 다음 비행기는 언제 오는 겁니까?"
" 내일 저녁 8시에 출발이라네."
" 넘어가는 인원은.."
" 대략 150명 정도.."
" 중령님은 안 가시는 겁니까?"
" 갈 자리도 없고 가봐야 뭘 하겠나.. 이미 식구들도 없는 상황에.."
" 그럼 언제까지 인원들이 후송되어 지는 겁니까?"
" 이번이 마지막이라네.. 이미 수 십차례는 왔다갔고 더 이상 미국에서 받아줄 것
같지도 않고. 넘어갈 인원들은 넘어갔으니 무리해서 요구하지 않겠지."
" 하하하..."
" 서럽네.."
다들 이런 상황에 헛웃음을 내며 웃었다. 자신들이 먼저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 미안하네..."
" 중령님이 왜 사과하십니까.."
" 어른들의 이기심을... 미워하게나.. 차라리 자네와 같은 인원들이 갔어야.."
" 아닙니다. 저희는 아직 살아있지 않습니까? 뭔가 방법이 있겠죠."
" 허허.."
이야기를 끝내고 다들 침울함 표정이었다. 누구를 탓하리. 우리가 힘이 없고 권력이 없고 돈이 없는데..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받았으니 만족해야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힘 있는 사람에게 붙어 행동하려는 사람과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우리였기에 함부로 집을 비울 수도 없었다. 우리는 집에서 머무르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야만 했다.
" 별다른 계획이 있어?"
" 없지. 솔직히 여기서 나가면 굶어 죽을지도 몰라."
" 흠.."
" 다른 생존캠프도 비슷하지 않을까?"
" 공항이라고는 섬에 있는 것은 제주도와 이곳이 전부야. 내륙은 솔직히 힘들 것
같고.."
" 하아.."
" 오늘 저녁 8시라고 했나?"
" 응??"
" 마지막 비행기.."
" 왜?! 설마.."
" 뭐??"
" 탈취하려는 것은 아니지?"
" 아니..뭐 하러.."
" 그래..."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챙겨 먹고는 다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대령님과 중령님의 생각은 있어봐야 도움도 안 되는 사람들을 보낸 후에 뭔가 계획을 짜서 움직일 것 같았다. 차라리 그 방법이 우리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 시간은 흘러 어느덧 마지막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 되었다. 활주로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륙하는 비행기는 볼 수 있었기에 건물 옥상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봤다.
" 쾅!!!!!"
" 응??!!"
" 뭐..뭐야?!!"
이륙 직후 지면에서 멀어진 비행기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공중에서 폭발하여 버렸다. 그 불길로 순간적으로 밝아지며 엔진과 동체에 불이 붙은 비행기는 힘없이 바다로 추락하였고 바닷물 위에는 큰 불이 나며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헬기나 구조 차량이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시야가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이미 포기했는지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 뭐..뭐지.."
"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
" 응??"
" 정비실수라기 보다 맨 처음 불길이 동체 중간에서 일어났으니..뭔가가 터진 것
같았어."
" 하하..설마..."
" 흠.. 그래도 누군지...정말 대단하다.."
" 그냥 그렇게 보인 거 아냐?"
" 그럴지도.."
" 마지막 비행이가 허무하게 떨어졌네."
" 그래도 비행기는 많지 않나?"
" 네. 격납고에 몇 대 있다고 들었습니다."
" 다른 나라에서 생각이 있다면 보내주거나 하겠지."
" 지금까지 살아남았는데 허무하게 갔네."
" 다행이네. 감염체 숫자를 늘려준 것이 아니라."
" 잔인한 놈."
난 불타고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고 내 중얼거림을 들은 기태가 말을 했다. 다들 나와서 폭음이 들린 곳을 바라보며 말을 했고 이미 사태가 종료된 상황이라 나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편히 잘 수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뜻하지 않게 한 집에서 모든 인원이 지내고 있었다. 어제의 사건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집에 혼자 있는 여자들 때문에 나를 포함하여 기태와 재효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 차라리 한 명이 집에서 여자들을 지키는 것이 어때?"
" 지금도 인원이 빠듯한데.."
" 그럼 여자들도 같이 다닐까?"
" 힘들어. 아예 나가서 생활하는 것도 아닌데.."
" 하아.."
물론 어제 비행이게 진수가 탔어야 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라 알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본부대로 가서 어제의 사망자를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하고 있어야 했다.
" 사무실도 한통속이란 것을 알았으니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네."
" 빌어먹을 것들."
" 저들 나름대로 생존 방식이야."
" 어처구니없는 생존 방식이다."
여자들을 두고 떠나기도 껄끄럽고 같이 다닐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누구하나 믿을 수 있는 인원이 없기에 우리는 한 동안 고민에 빠져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지며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내가 나가서 문을 열자 며칠 전 그 포스 넘치는 남자와 그 일당들이 서 있었다. 난 그때의 앙심을 품고 왔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 대령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앞으로 여기 계신 여성분들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세상에.. 대령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