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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아침이 되어 정비가 끝난 장갑차 10대가 공터에 모였다. 박 중사 팀이 추가로 지급받은 장갑차가 모이니 꽤 거대한 팀이 되었다.
" 인원이 상당하네요."
" 네. 저희 인원들만 40명이 넘으니까요."
"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십니까?"
" 이번에도 도심으로 갈 생각입니다. 현재 가장 많은 감염체가 몰려 있는 곳이
도심이고 약간의 소음만 유발한다면 감염체를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고요."
"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 중사님처럼 감염체 제거를 위해서 나가나요?"
처음 설명 받았던 내용과 다른 점이 많아 물어봤다.
" 아닙니다. 저희와 다른 한 팀을 제외하고는 그저 나갔다 오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 그럼 왜... 박 중사님은..."
굳이 남들이 하고 있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였다.
" 저희 팀원들 대부분은 감염체 사태 후 가족을 잃거나 친구들을 잃은 인원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인원들이 모여 지금의 팀을 만든 것도 있고요."
" 대단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도 못하는 행동을.."
" 어차피 탄약도 남고 무기도 남아돌고 있습니다. 공항 안에는 자주포나
다연장 로켓포도 있는 상황입니다. 뭐 사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 그래도 무기는 상당합니다?"
" 네. 사태가 악화되기 전 이미 모인 인원들도 많고 대부분의 수방사 인력과
장비가 모여 있었습니다. 단지 명령을 내리는 인원이 없어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 뿐이죠."
" 하아.."
" 뭐 지금은 다행히 많이 나아졌습니다. 탄약이야 가서 쓰는 놈들도 없으니
저희가 넉넉히 지급받을 수 있고 식량문제만 해결 된다면 이곳도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닙니다."
" 네.."
" 이제 움직이시죠. 이번에는 며칠간 밖에서 지낼 예정이니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것입니다!"
" 알겠습니다!"
박 중사가 웃으며 말했고 나도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장갑차가 무려 10대나 움직이는 상황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혹시나 감염체가 또 밀고 들어온 것이라 생각했으니 뛰어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보였다. 우리는 장갑차 내부 여유 공간에 탄약을 가득 싣고는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심으로 들어갔다. 지금 현재 가장 급한 것은 공항 근처에 있는 감염체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감염체의 특성상 한 번 마주하면 수천이 넘는 숫자를 상대해야 했지만 남한의 인구가 몇 이던가? 하루 한 번에 삼천의 감염체를 제거한다고 해도 백일이라고 해봐야 30만이다. 일 년을 꼬박해도 백만을 죽이기는 힘들었다. 우선 공항 주변을 점령하고 점점 우리의 영토를 늘려가야만 했다.
" 현재 시야에 잡히는 감염체는 없습니다."
"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
"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감염체의 무리는 찾기 어려웠다. 찾을 때는 없고 없어도 되는 시간에는 나타나고.
" 그때 그 감염체가 이 근처 감염체의 전부인가?"
" 그래봐야 만 명도 안 되는 숫자였습니다."
" 하긴.."
" 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합니다. 이 안쪽은 본부대에서 정한 최고
위험지역입니다."
" 상관없다. 어차피 탁상위에서 정해진 구역이다. 그대로 전진."
비장한 표정으로 박 중사는 무전으로 계속 전진을 명령했다. 현재 내 옆에 있는 김 중사의 표정을 보니 불안한 표정이었다.
" 왜??"
" 아.. 생각보다 박 중사가 무모한 면이 있어서."
" 그런데 네가 고참 아냐? 왜 박 중사가 명령을 하고 있어?"
" 이곳의 지리와 상황은 박 중사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어서 내가 익숙해지기
전까지 지휘를 넘겼어."
" 흠.."
" 상황과 지리를 잘 모르는 나보다 박 중사가 훨씬 더 효율적인 전투를 지휘 할
후 있겠지."
" 맞는 말이지만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 어려울 것이 뭐 있어.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익이지."
멋쩍게 웃어 보이는 김 중사의 표정을 뒤로 하고 우리는 빠른 속도로 도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 정방에 감염체 무리가 보입니다.”
“ 숫자는?”
“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야에 잡히는 놈들만 오천은 되어 보입니다.”
“ 여기서 전투를 하면 우리가 불리한 상황인데?”
“ 퇴로도 좋은 편이 아니고 주변에 건물이 많아 건물에서 나온다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
“ 가능한 조심스럽게 넓은 도로로 이동한다. 최대한 멀리서부터 사격을 할 수
있게.“
“ 알겠습니다.”
우리는 감염체를 피해 돌아서 이동을 시작했다. 감염체와의 거리가 약 1km 미만으로 남았을 때 장갑차의 소음으로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고는 무서운 기세로 우리에게로 몰려들었다. 물론 속도는 현저하게 느렸지만 수천의 숫자와 건물 곳곳에서 나오는 모습에 공포감마저 들었다.
“ 우선 박격포로 최대한 숫자를 줄인다!”
“ 알겠습니다!”
“ 신기하네.. 장갑차 내부에 박격포가 설치되어 있네?”
“ 아마도 설치 시간을 줄이려고 한 것 같아.”
“ 우리도 움직인다!‘
“ 퐁!!”
“ 쾅!!!”
단발로 유탄이 발사되고 우리는 다가올 감염체를 대비하고 준비했다. 유탄이라고 미사일 마냥 많은 숫자의 감염체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 더 이상은 무리 입니다!”
“ 기관총 사수들은 준비해라!”
“ 넵!!”
인원들이 장갑차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두 대의 장갑차를 운전해 뒷부분이 감염체를 보게 하고 정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 뭐 하는 거야?”
“ 어라?”
장갑차의 후면이 열리면서 기관총이 보였다. 그리고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발사되기 시작했고 다가오는 감염체들이 힘없이 쓰러져 갔다.
“ 무시무시한데..”
“ 우리가 할 일이 없는데..”
“ 우선 주변을 경계하고 있도록.”
“ 네!”
강한 화력으로 감염체를 제거했지만 쓰러지는 감염체 보다 다가오는 감염체가 더 많은 상황이었다.
“ 소총 사수들도 사격을 시작한다! 기관총 사수는 중앙을 사격하고 소총 사수는
가능한 옆쪽에서 오는 감염체를 제거한다!“
“ 네!!”
일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우리도 사격을 시작했다. 유탄 사수는 계속해서 사격을 했고 박격포 사수도 멀리서 다가오는 감염체를 보며 한발씩 신중하게 사격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감염체와 일직선으로 사격을 했기에 관통되어 피해를 입는 감염체도 많았다.
“ 더 이상 무리입니다! 전방 200m까지 접근했습니다!”
“ 100m 안으로 진입 시 후퇴한다!”
“ 기관총 사수는 철수준비를 한다!”
“ 네!”
“ 중기관총 사수들은 계속해서 사격을 하도록!”
아무리 화력이 좋아도 숫자가 월등했다. 이미 쓰러진 감염체가 한 가득이었지만 몰려오는 감염체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자랑했고 우리는 어쩔수 없이 점점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 후퇴한다! 후퇴!!”
“ 장비들 챙겨!!!”
“ 우선 직선거리로 최대한 멀어진다!”
“ 알겠습니다!”
우리는 장비를 챙겨 메고는 다시 장갑차에 올라탔고 장갑차는 무서운 속도로 감염체로부터 멀어졌다.
“ 박 중사님 한 번 더 전투하실 생각입니까?”
“ 우선 감염체가 최대한 몰려서 올 때를 기다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박격포와
유탄으로 사격을 하면서 움직이고 숫자가 줄어들면 기관총과 소총으로 마무리
를 할 계획입니다.“
“ 알겠습니다.”
“ 우선 최대한 안전거리 이상으로 감염체와 멀어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 네.”
우리를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달려 감염체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격을 하면서 발생되는 소음으로 도로 중간 중간에도 감염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장갑차 위에서 사격을 했지만 흔들리는 차량 위에서 정확히 사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 점점 감염체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계획된 위치는 이미 지났습니다!”
“ 가능한 멀리 벗어난다!”
“ 박 중사님!! 변종 감염체가!!”
“ 뭐?!!”
“ 젠장!!!”
우리가 후퇴하는 방향에 변종 감염체가 보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 커진 덩치를 자랑하는 몸으로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 우선적으로 변종 감염체를 제거한다!”
“ 사격!! 사격!!!”
“ 유탄 사수 사격!!!”
우리는 최우선적으로 변종 감염체를 제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인원이 사격을 했지만 역시나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겨우 한 놈이 쓰러지는 모습을 봤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변종 감염체가 우리를 포위하듯 몰려들었다.
“ 최대한 이곳을 빠르게 벗어난다!”
“ 지금부터 차량 단독행동으로 이곳을 벗어난다! 2시간 후 00학교에서 모이도록
한다!“
“ 알겠습니다!”
“ 다들 행운을..”
미약한 마지막 말을 끝으로 박 중사의 무전은 끝이 났고 우리는 우선 감염체를 피해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중간에 방향을 돌렸다.
“ 가능한 변종 감염체는 피하고! 숫자가 너무 많아!”
“ 후방에도 엄청나게 밀고 들어옵니다!”
“ 최대 속도로 밟고 지나간다!”
“ 네!!”
나와 김 중사는 장갑차 위에서 다가오는 감염체를 사격하며 위험천만한 이동을 시작했다. 심하게 움직이는 차량위에서 거의 연사에 가깝게 사격을 했고 그로인해 탄 소비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 차라리 기관총을 사용해!”
“ 기관총은 변종 감염체 위주로 사격을 해야지!”
“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야?!! 그냥 보이면 갈겨!!!”
“ 알았다고!!!”
나는 기관총을 잡고 보이는 감염체를 향해 마구 사격을 했다. 탄낭비가 극심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 쾅!!! 쾅!!!”
“ 수류탄!!!”
“ 젠장!!! 탄창 교환!!”
“ 밑에서 탄창 좀 챙겨줘!!”
“ 남은 탄창이 없습니다! 일일이 탄착해야 합니다!”
“ 빌어먹을!!”
준비된 탄창이 모두 소비되고 여분의 탄약만이 남았다. 그래도 다행히 기관총은 별도의 탄창을 필요하지 않았기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 시간을 벌어줘!”
“ 어서 움직이기나 해!!”
“ 아씨!!! 이게 뭐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위험 구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역시나 본부대에서 위험구역으로 지정한 것이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 하아..진짜 죽는 줄 알았네..”
“ 하아...”
아직도 몰려드는 감염체들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우리를 따라 아직도 무섭게 따라오는 변종 감염체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장갑차 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뜨거운 날씨에 장갑차 안에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긴장감에 땀이 흠뻑 젖었고 축축해진 옷이 살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찝찝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 00학교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 아마...20분 내외면 도착 할 것 같습니다.”
“ 다른 인원들도 잘 나왔겠지?”
“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크게 위험에 쳐한 차량은 없었습니다. 별일이 없다면
다들 무사히 나왔을 것입니다.“
“ 그러면 다행이고..”
달리는 장갑차위에서 남호 상병과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을 경계했다. 위험 지역을 벗어나니 확실히 눈에 보이는 감염체의 숫자는 많이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감염체는 도심의 제일 번화가에 몰려 있었던 것이었다. 강원도서도 도심 제일 번화가 주변에 감염체가 많이 몰려 있었는데 이곳도 같은 상황이었다.
“ 뭔가 이유가 있나? 번화가에 많이 몰려 있네.”
“ 사람의 습성이 남아 있나봅니다. 무리지어 행동하고 처음 터전을 잡은 곳을
옮기기 싫어하는..“
“ 하긴..”
솔직히 이사나 전학, 전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낯선 곳에 새로이 적응해야 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감염체도 비슷한 모양이다. 자신이 감염된 곳 근처나 감염체가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적이지만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도 공항에 모여 살고 있는 상황이니.
“ 도착했습니다.”
“ 우리가 제일 늦었네?”
“ 8대 모두 있네. 다행이 다들 무사한가보다.”
우리가 도착한 모습을 보고 박 중사도 안도의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 약 30분을 더 달려 낚시터에 자리를 잡았다. 낚시터는 높지 않은 산들로 둘러 쌓여있는 곳으로 꽤 넓은 공터도 있어 감염체가 와도 우리의 퇴로는 많은 곳이었다.
“ 오늘은 여기서 재정비를 하고 내일 다시 움직인다. 다들 고생했다.”
“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순번을 정해 근무를 편성했고 각자 옷을 갈아입거나 간단한 세면을 하고는 무기를 정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