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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89화 (8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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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50명의 인원이 쏘는 탄환의 숫자도 엄청났지만 밀고 들어오는 감염체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정확히 뇌에 타격을 주거나 아니면 척수가 끊어져야 비로소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감염체이기에 다른 곳에 맞는 것은 무의미했다. 고통을 느끼거나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니 옆에서 죽어나가는 감염체가 있어도 먹잇감인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젠장! 매번 이런 식이야!"

" 탄창 교환!!"

" 탄창 교환!!"

" 탄 남은 사람 있어?!!"

" 여기!!"

여기저기에서 탄창을 교환하거나 탄이 없어서 찾는 인원이 늘어갔다. 서서히 장갑차를 움직이며 일정거리를 유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갑차가 움직이는 거리가 늘어갔다. 그 많은 탄약을 언제다 소비했는지 장갑차 내부에는 빈 탄약 통들이 굴러다니는 모습이었다.

" 남은 탄약은?!!"

" 3호차에 몇 개 있답니다!"

" 젠장!!"

" 3호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 소비되었습니다!"

" 말도 안 돼!! 가져온 양이 얼마인데?!!"

" 쏘는 양을 생각해보십쇼!"

" 기관총 탄약도 떨어졌습니다!"

" 박 중사님!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 탄약이 없습니다!!"

" 제길...."

불과 두 시간 남짓의 전투에 가져온 탄약이 전부에 가까울 정도로 소비되었다.

탄약 차량과 같이 움직이는 상황이 아니니 장갑차에 적재할 수 있는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 대에는 많은 양을 싣고 움직였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단 두 번의 전투에 가져온 탄약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 박 중사님!!"

" 공항으로...공항으로 복귀한다.."

" 네!!"

박 중사가 힘없이 말했다. 분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저 많은 숫자의 감염체를 상대로 총 없이 덤비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물론 나와 김 중사는 어느 정도의 숫자를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정말 최악의 경우에만 백병전을 해야만 했다. 몇 명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장갑차에 탑승했고 먼저 탑승한 인원들은 최후까지 감염체을 향해 사격을 했다. 우리는 신속하게 이동을 하면서 공항으로 복귀를 했다.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원거리 사격이 많아 장갑차의 상태는 양호했지만 인원들은 극도의 피로감과 긴장감으로 녹초가 되었다. 정비창에서 소총과 장비를 모두 점검을 부탁했다. 엄청난 사격 때문에 총열이 과열되면서 총구가 휘었을 지도 모르고 내구성에도 의심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분의 소총을 가지고 다녔지만 여분의 소총도 사용량이 많았다. 우리는 정비창을 나와 다음 탄약 수령을 위해 탄약고를 찾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 아니 왜 탄약을 줄 수 없는 것입니까?"

" 두 팀의 탄약 소비량이 전체 탄 소비량의 60%가 넘습니다. 위에서 탄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챙기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상황이라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탄약을 드릴 수 없습니다."

" 90%가 아닌 게 어디야..그래도 누군가는 쏘고 있다는 건가?"

" 저희는 이미 말씀드린 것으로 아는데요. 대령님에게 말씀드려보면.."

" 대령님이 직접 지시하신 내용입니다."

" 하하.."

대령님도 뭔가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도 우리에게 탄 공급을 원활히 해주시기로 했는데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을 보면.

" 우선 돌아가고 결정이 나면 그때 다시 오도록 하죠."

" 어째서.. 도대체.."

" 박 중사님의 말씀대로 탁상이지 않습니까? 저희야 잘못한 것이 없으니 두려워

할 것도 없고 만약 이대로 탄약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이 섬도 여기

까지 인거죠."

" 죄송합니다. 박 중사님..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 자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탄약을 배급해주는 인원이 오히려 박 중사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이었다. 탄약을 몰래 챙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 우선 돌아가죠. 뭐 이런 기회에 좀 쉬고 재충전을 한다고 생각하시고!"

" 우리만 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 기운 내십쇼! 우선 다들 집에서 푹 쉬시고 결정이 나면 움직이도록 하죠."

" 네.."

많은 인원들이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알아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싸우는데 오히려 그런 사기를 꺽어 버린 모습에 화가 났다. 난 그대로 방향을 돌려 박 중사와 김 중사와 함께 본부대로 향했고 대령님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 올 것이라 생각했네. 조금 늦었구만."

" 왜 그러신 겁니까?"

" 안 주는 것이 아니라 못 준다네."

" 네??"

" 남은 탄약이 이제 없으니까 말일세."

" 무슨 소리십니까! 분명 여기서도 탄약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만들기야 하지. 하지만 화약과 금속이 어디서 나오나?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다시 구하려면 육지로 나가서 찾아야 하는데 지금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은 자네가 더 잘 알지 않은가? 명목상 자네들 탄 소비가 심해 잠시

줄인다고는 했지만 실제는 재고와 전혀 맞지 않은 상황이라네! 조만간 미국 측

에서 탄약을 보내주기로 했지만 언제일지 기약도 없으니.."

" 오기는 하는 것 맞습니까?"

" 우선은 다음 주로 계획은 되어 있지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보니.."

" 전혀 연락이 안 되는 것입니까?"

" 서로 회선상태가 좋지 않아 연결되는 것도 힘들다네."

" 탄약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 정확한 것은 현재 조사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네. 자네들이 지금처럼

소비하면 아마 열 번도 채 못 나갈 상황이라네."

" 하아.."

" 우선 공급이 되면 자네들에게 제일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네. 어차피 다른 팀은

나가서 몇 발 쏘지도 않고 복귀하니까."

" 미국도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군요."

" 눈치는 빠르군."

대령의 표정에서 확신이 없는 것을 보고 물었지만 아니길 바랐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 미국도 현재 변종 감염체의 대량 등장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받은 내용은 없다고 알고 있네. 그리고 현재 10여 곳인 생존자 캠프중

3곳이 연락 두절이라네."

" 네??!"

" 지금 가장 큰 생존지역은 제주도라네. 우리야 인원이 적지만 공항이라는 이점

때문에 장비는 충분했지만 점점 힘든 상황이네. 제주도로 피난을 갈 상황도

아니고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네. 연락이 두절된 캠프로 인원을

편성해서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네."

" 서..설마.."

" 아마도 감염체의 공격으로 와해된 것이라 추측되네. 가끔 하는 연락이긴

하지만  다른 캠프들도 감염체의 공격을 받는 횟수와 공격을 해오는 숫자가

늘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네."

" 현재 저희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 우선은 자네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장갑차 부대원들은 계속해서 나가겠지만

자네들은 섬에서 대기하게나. 자네들도 봤겠지만 지금 도심의 감염체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보네. 자네들만 그런 숫자를 봤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다른

팀들도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상황이라네. 원래 그 도시의 인구보다 많은

숫자의 감염체. 자네들은 뭐라고 생각하나?"

" 저희를 찾고 있는 것이군요."

" 우리도 그렇게 본다네. 만약 그 숫자가 전부 이곳으로 온다면 우리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네."

" ....."

" 전멸하거나 아니면 다리를 끊어버리거나."

" 다리를 끊죠."

" 그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라네. 그럼 정말 우린 고립되는 상황이니.."

" 강 중령은 뭐라고 하나요?"

" 강 중령은 최대한 버티자고 했고 대부분의 다른 인원들도 마찬가지라네.

다리를 끊는 것은 정말 최악의 경우지."

" 지원은 없군요.."

" 현재 확실하게 지원을 오는 항공편은 한 대라네. 그 안에 식량이 들었는지

탄약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어쩌실 생각입니까? 뭔가 계획이라도.."

" 흠... 그 이야기는 따로 하도록 하고 우선 집으로 가게나."

" 네.."

" 마음 단단히 먹게나. 어쩌면 정말 우리는 더 이상 갈 곳도 없을지도 모른다네."

" 설마요.."

대령님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 우선은 특별한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자택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희가 나가봐야 쓸 탄도 없고.. 현재 상황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고요."

" 대부분은 이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다시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정오에 정비창에서 뵙는 것으로 하죠."

" 알겠습니다."

김 중사와 박 중사의 대화를 끝으로 다들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기태와 재효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경호를 하고 있는 이 중사가 나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수고 했다는 말과 함께 이 중사와 석 하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 여기도 별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야. 감염체들이 우리를 찾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 어디나 비슷하군요."

" 응.. 정말 도망갈 곳이 없나봐.."

" 하아... 매번 같은 상황의 반복이냐.. 안정될 것 같으면 도망가고 안정될 것

같으면 또 도망가고."

" 빌어먹을.."

" 우선 확실하게 상황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아직 아니라고 봐.

하지만 대비는 해야겠지."

" 여기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어딨다고?"

" 배도 없고.. 비행기도 없는데.."

" 배는 없지만.. 비행기는 있다고 했는데.."

" 하지만 기장이 없잖아."

" 쩝.."

" 그리고 미국에서 우리를 받아줄 지도 의문이고."

" 지금 식량이 얼마나 남았어?"

" 저희가 가지고 있던 식량은 많이 남았어요. 여기서 배급받는 양이 적은 편이

아니라서.."

" 무기는?"

" 현재 카라반에 유탄하고 소총탄. 그리고 네가 가져왔던 저격총 정도?"

" 흠.."

" 미국으로 가면 너희 부모님이 계시잖아? 받아주지 않을까?"

" 우리 부모님이 정계인사도 아니고 그냥 건설업하시는 분들인데.."

" 혹시 모르니까.."

" 그래도 미국은 우리처럼 엉망은 아니라니 희망은 있지."

혹시나 부모님이 살아계실 희망은 생겼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부모님의 생사조차 확인이 안 되었으니까.

" 누구 아는 조종사 없나? 있다면 수틀리면 바로 날라버리게."

" 관둬라. 비행기가 자동차인줄 아냐? 바로 날아갈 수 있게? 정비 시간도

엄청나고 관리해야하는 인원도 많은데 그런 인원이 한가로이 다른 비행기를

점검한다?"

기태의 말에 내가 타박하듯 말했다.

" 모르지.. 그들도 생각한 것이 있을지도."

" 조심스럽게 알아보는 것은 좋지만 너무 말이 퍼져나가도 위험해. 그러니

상황을 보고 행동하자."

" 아웅.."

" 우선 다들 피곤하니 집에서 쉬고 내일 정오에 정비창에서 보자."

" 그래.. 푹 쉬어.."

" 너도.. 잘 들어가."

각자 정해진 숙소로 돌아갔고 나도 샤워를 끝내고는 은혜가 누워있는 침대로 들어갔다.

" 데자뷰 같아요. 이런 상황."

" 나도 그래. 너무 싫다.."

" 힘들어요.."

내 품에 안겨 은혜가 처음으로 힘들다는 말을 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또 다시 피난을 가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 동안 참아왔던 것들이 터졌던 것이었다. 내 품에서 울고 있는 모습에 난 해줄 말이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나는 나가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싸우니 마음 고생도 심했을 것이다. 한 참을 울고 나니 은혜가 조금은 풀렸는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미안해요. 자기도 힘든데.."

" 괜찮아. 자기가 더 고생이지. 다 울었어? 이제 조금은 편해?"

" 네.. 매번 자기에게 의지하네요.."

" 별 걱정을 다하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자기가 잘 버텨주고 있는데."

" 고마워요."

" 내 옆에 있어줘서 그게 더 고마워요."

섬에서 죽는 사람들 중에 감염체와 전투에서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살하는 사람도 상당하다고 했다. 알려진 것은 많이 없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들려오는 자살 소식은 상당했다. 물론 그 중에 섬을 나간 사람도 많았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입을 건너가면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은혜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을 시켜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혜는 잠이 들었다. 난 그런 은혜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본 후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왔던 과정들이 생각났다. 처음 집을 나왔을 때. 강원도 펜션. 생존자 캠프. 강원도 연수원. 그리고 이곳. 이제 반년을 훌쩍 넘긴 시간이 지났지만 5곳을 거쳤다니.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곳을 거쳐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젠장.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우리는 안전한 곳에 정착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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