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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94화 (9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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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하지만 어금니만 꽉 깨물었지 저 고양이 녀석에게 피해를 줄 방법이 없었다. 내 손을 벗어난 정글도로 인하여 마땅한 무기도 없는 상황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히 무기로 쓸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 빌어먹을.."

" 시간이 꽤 흘렀어. 감염체가 올지도 몰라."

" 하지만 저 녀석을 상대할 무기가.. 그래도 있군."

" 응??"

파손된 차량 옆을 보니 길지 않은 쇠파이프 몇 개가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난 재빠르게 쇠파이프 하나를 잡아 고양이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 부웅!!!"

" 키앙!!!"

공격 거리가 길다보니 유리한 것도 있었지만 방향전환이 쉽지 않았다. 길이가 길어 힘이 실리는 이점이 있었지만 막았을 때 오는 충격도 엄청나다는 단점이 있었다.

" 크윽!!"

" 괜찮아?!!"

" 와.. 나는 이 모양인데 저 녀석은 멀쩡한 것 봐.."

" 도망가자!"

" 달리는 중간에도 따라 잡혔는데 도망가는 것이 가능하겠냐?"

" 젠장!!"

" 피해!!"

" 쿵!!!"

공격은 단순하지만 힘은 엄청났고 움직임도 빨랐다. 체력 소모량으로 봐서는 월등하게 유리한 것은 고양이지 내가 아니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우리였다. 난 왼손으로 쇠파이프를 길게 잡고 오른손으로는 짧게 잡고는 왼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둘렀다. 고양이는 당연하게 뒤로 물러나며 피했고 난 오른손에 잡은 파이프를 힘껏 던졌다.

" 키야야앙!!!"

" 됐다!"

고양이 왼쪽 배에 쇠파이프가 찔리는 모습을 보고 왼손에 든 쇠파이프를 다시 오른손에 잡고 있는 힘껏 고양이를 향해 휘둘렀고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진 녀석은 내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을 강타 당했다. 묵직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 정확하게 들어간 것 같았다. 고양이는 그대로 쓰러지며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 이긴건...아니군.."

" 키야앙!!"

꽤 큰 고통인지 날카롭게 울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버렸다. 이 느낌이 말로만 듣던 고양이 앞의 쥐의 느낌일까? 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남은 쇠파이프를 잡고 뛰었다.

" 죽으라고!!!"

" 캉!!!"

내리찍는 파이프를 피해 옆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확실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배에서 흐르는 피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고양이의 움직임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타격이 들어갔지만 쓰러지지 않는 모습이었고 내 체력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몰아쉬는 숨의 양이 많아지면 파이프를 쥔 손에 힘이 부족한 것을 느꼈다.

" 훈아 주변의 파이프를 모두 주워와 줘."

" 응??"

" 때려서는 불가능 할 것 같아. 조금 전처럼 찔러야지 죽을 것 같단말야."

" 알았어! 기다려!"

옆에서 나와 같이 고양이를 상대하던 김 중사에게 부탁을 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계속해서 고양이를 몰아갔다. 녀석의 체력도 슬슬 바닥을 들어내는 듯 확실하게 움직임이 느려졌지만 죽을 정도의 피해는 아니었기에 뭔가 한방이 필요했다.

" 주변에 3개가 전부야.."

" 이거라도 어디냐.."

난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피해를 주려고 자세를 잡았지만 녀석의 자세를 보아하니 이미 내 공격을 예상한 것 같았다.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내 자세만 보고 예상은 하는 모습에 무척 놀랐다. 평소 고양이가 저 정도의 습득능력이 있던 것인지 키워 본 적이 없어 알 수는 없었지만 보통 동물이 저 정도의 지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젠장.. 예상하고 있군."

이미 공격거리 이상으로 떨어진 녀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 거리에서 창처럼 던져도 괜찮을 것 같기는 했지만 녀석의 움직임을 보면 간단하게 피할 것 같았다. 가능한 가깝게 접근하여 제대로 찔러야 하는데 녀석은 내 생각을 읽은 듯 지금까지와 다르게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천천히 다가가면 딱 내가 다가간 거리만큼 멀어지는 녀석을 보며 점점 열이 올랐다.

" 젠장.. 시간을 끌겠다는 건가?"

녀석의 표정을 보니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나를 비웃는 표정이었다. 시간을 끌면 자신이 이길 것을 아는 듯 한 표정. 그 표정을 보니 내 이성이 점점 날아가기 시작했다.

" 퍽!!"

난 남은 힘을 쥐어짜내며 힘껏 뛰어 녀석에게 다가갔다. 양손에 한 개씩 들고 있는 파이프를 휘두르며 녀석에게 다가갔고 요리조리 피하기는 했지만 마구잡이 식 공격에 몇 번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크게 힘이 실린 공격이 아니었기에 아주 잠깐 녀석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었고 그 틈을 타서 김 중사가 옆에서 강하게 내리쳤다.

" 퍽!!"

" 좋았어!! 이대로!!!"

내 공격을 피해 움직인 방향에서 김 중사가 공격하자 몸이 중심을 못 잡고 흐트러지는 찰라 난 그대로 파이프를 녀석의 배를 향해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아직 박혀 있는 정글도를 뽑았고 비틀거리는 녀석을 향해 남은 파이프 하나도 기회를 봐서 녀석을 향해 던졌고 이미 피해가 심했던 상황이라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그래도 박혀버렸다.

" 키아아앙!!!"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울부짖었고 그 옆으로 다가간 김 중사가 자신이 들고 있는 파이프를 들고 심장 위치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

" 키엑!!"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떨더니 이내 늘어지면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 몰라 목을 자르기 위해 정글도를 들고 강하게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움직임을 보이는 녀석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무섭게 노려보는 모습에 질려버렸다.

" 설마..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 젠장! 어떻게 죽이란 말이야?!!"

" 가만!"

힘겹게 일어서서 우리를 노려보던 녀석은 몇 발자국을 걷고는 이내 쓰러져 버렸다. 이미 도로에는 녀석이 흘린 피가 흥건한 상태였고 다시 움직이기는 힘들어 보였다. 내가 소총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자 김 중사가 말리며 말을 했다.

" 괜히 소리 내지 말고 그냥 도망가자.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상처가 심해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아."

" 불안한데.."

" 지금 저기 안보여? 감염체가 몰려오고 있어.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해."

" 알았어."

난 들었던 소총을 내리고는 장갑차에 탑승하고는 빠르게 공항으로 복귀하였다.

우리는 공항 근처에 자리를 잡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장갑차 내부 한가득 실려 있는 식량과 물품을 괜히 남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한 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마시고 있으니 박 중사가 다가왔다.

" 대단하네. 그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하고."

" 그대로 있다간 누군가 죽거나 다쳤을 거야. 그래도 피해가 없으니 다행이네."

" 너도 근력이 강해진 타입인가?"

" 응. 나도 김 중사도. 재효는 약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고."

" 부럽네.. 이 상황에 그런 능력이라니."

" 마냥 부러울 것은 아냐. 힘든 것도 많다고."

" 그래도 남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잖아."

" 너도 충분히 지키고 있잖아? 그리고 모든 사람을 지킬 수 없어. 그래봐야 내

주변 사람이 전부고 그마저도 힘든 경우도 있었어. 거기서 나오는 허탈감으로

한동안 힘든 적도 있었고."

" 하긴..."

" 언제 들어갈 생각이야?"

" 완전히 어두워지면. 짐을 내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 그럼 적어도 몇 시간은 이곳에 있어야 하겠군."

" 응."

" 난 그럼 장갑차에서 조금 쉴게. 혹시 무슨일 있으면 깨워줘."

" 알았어. 네 덕분에 살아남은 것도 있으니 근무는 열외로 해두지."

" 고맙다."

내가 장갑차 안으로 들어가 자기 위해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내부는 매우 좁은 편이었지만 웅크리고 자세를 잡으면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 이런 공간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 일어나. 들어가야지."

" 응??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 응. 들어가자."

" 아웅.."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어느덧 공항으로 복귀해야하는 시간이었다. 천천히 장갑차를 몰고 다리 초소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며 구해온 식량들을 날랐고 방 한곳에 가득 쌓여져 있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대단하네요. 아직도 이 정도 양이 남아 있다니.."

" 그래도 번화가 안쪽은 꽤 멀쩡한 곳이 많아. 고양이 때문에 힘들 것 같지만."

" 고양이가 왜요?"

은혜에게 낮에 상대했던 고양이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물론 잡는 과정이 죽도록 힘들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은혜는 상당히 놀라며 말을 했다.

" 세상에.. 그런 돌연변이가 정말로 존재했던.."

" 나도 말로 만 들었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다른 동물들도 변했을 지도.."

" 상대하기 어렵겠죠?"

" 소총으로 정통으로 머리를 맞았는데도 안 죽더라. 정확히는 두개골을 뚫고

가지도 못했지."

" 하아.."

옆에서 듣고 있던 미란이가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감염체도 힘든 상황에 변종 동물까지 등장했으니 걱정이 오죽 하겠는가.

"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많은 숫자가 아니라는 거야. 몇 마리 정도는 쉽지는

않겠지만 처리할 수 있어."

물론 거짓말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총탄이 거의 소용이 없는데 제거하려면 구경이 큰 소총이나 화력이 강한 무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기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만약 그것들이 몰려온다면 순식간에 전멸할 것은 뻔 한 일이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었기에 다들 거짓말을 했고 크게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대령의 방을 찾아 어제 상대했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대령의 표정에는 당황함과 난감함이 교차했다.

" 본 적이 있다는 보고는 들었지만 직접 상대해서 살아남은 인원이 말해주는

것은 처음이군."

" 본 사람도 있군요."

" 멀리서 본 인원들이 있지. 상대했던 인원들은 전멸했고."

" 하아.."

" 봤다는 녀석의 말에 따르면 달리는 장갑차를 쫓아가 넘어뜨렸다고 하더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만."

" 대비책은 없군요."

" 대 구경의 소총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봐야 기관총 정도인데 그마저 남은

탄약이 많은 상황이 아니라네. 만약 녀석들이 몰려온다면 우리의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지."

" 뭔데요?"

" 다리를 끊어버리는 것."

" 하지만 그러면 저희는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인데!!"

" 고립이 되느냐 아니면 전멸하느냐를 선택하라면 고립을 선택해야지. 그리고

다리는 두 곳이니 한 곳이 끊어진다고 해도 당장은 큰 문제는 없다네."

" 현재 감염체가 가까운 번화가에 몰려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 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겠군."

" 신기하군요. 어디나 같은 패턴이라니.."

" 그렇게 말일세.. 안정될 듯 하면 공격받고.."

" 뭔가 이유가 있겠죠."

" 이유?"

" 생각해보면 처음에 우리가 파이팅 넘친 상황에서는 별다른 감염체의 공격을

받지 않았고 생존자 캠프도 처음부터 공격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이곳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흔들리는 인원이 나오고 분열

되는 조짐이 보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감염체들이 신기할 지경이라니까요."

" 하긴.. 우리가 연수원에서 있을 때보다 마을이라 같이 지내면서 감염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지."

" 생존자 캠프도 비슷하고.."

" 우리가 모르는 뭔가의 이유가 있겠죠."

" 흠.. 우선은 들어가서 쉬게나. 내일쯤 다시 탄약과 연료를 지급하겠네."

" 보급 비행기는 왔나요?"

" 아직 연락이 없다네. 없다고 보는 것이 편하겠지."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전에 말했던 조종사는 구했다네. 지금 격납고에서 다른 인원들과 점검을

하고 있으니 그리 알게나."

" 빨리도 구하셨네요."

" 뜻을 같이 하는 젋은이라네."

" 알겠습니다. 그럼.."

" 몸 조심하게나.."

" 네.."

우리는 대령의 방을 나와 따가운 햇볕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 정말 힘든 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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