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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아침이 되어 난 침대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 동안 한가롭게 지내서 인지 온 몸에 근육통이 몰려와 걷는 것도 힘이 들었다. 계속해서 은혜가 몸을 주물러주어 한 낮이 되어서는 그나마 괜찮아 지기는 했지만 움직임이 커지면 어김없이 온 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다.
" 꾸엑!!"
" 그냥 누워있지 왜 움직여요?"
" 답답해.."
" 으구.."
변종 감염체를 상대했을 때도 이렇게 심한 근육통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거의 기어가다 시피 마루에 있는 소파까지 움직일 수 있었고 노트북의 전원을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노트북의 상태가 전원 연결 상태로 뜨지 않았다. 난 전원을 연결하지 않았나 플러그를 확인 했지만 정확하게 콘센트에 끼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리모콘을 들어 티비를 켰다.
" 딸깍. 딸깍."
" 젠장... 설마?"
" 왜 그래요?"
" 자기 미안한데 전등 좀 켜줄 수 있어?"
" 대낮인데 전등을 켜요?"
" 우선 켜줘 봐."
" 네."
은혜가 거실 전등 스위치를 켰지만 전등은 변화가 없었다. 몇 번이고 껐다 켰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전자제품도 마찬가지였다.
" 전기가 끊어졌군."
" 큰일인데요."
"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는데.. 뭐 그래도 지금까지 편하게 살았으니."
" 보급 받는 식량은 어디다 보관하죠?"
"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닌데.."
" 우선 먹고 살아가는 상황이 급하죠!"
" 알아. 카라반 안에 냉장고는 작동하니까 너무 걱정 하지마. 그리고 보급 받는
식량 중에 냉장 보관할만한 것이 있어?“
“ 어.. 아뇨.. 거의 대부분이 즉석 조리식품이고 가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주기도 하구요.“
“ 말도 안 되는 것?”
“ 무 하나 띨렁 줄때도 있고 감자 하나. 옥수수 하나.. 뭐 이런 식으로 주는
경우도 있어요.“
“ 생색내기 보급이군.”
“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모와서 조리할 경우도 있고 이래저래 구색 맞추기
라는 느낌이 강한 경우도 있어요.“
“ 그래도 주는 것이 어디야.”
“ 뭐.. 아무것도 안 주는 것보다야 좋기는 한데 받아도 뭐 해먹을 수 있는게
없는 것도 많아서..“
“ 우선 냉장고에 있는 식량은 카라반으로 옮기자.”
“ 네.”
은혜와 나는 몇 개 없는 식량을 가지고 카라반으로 옮겨 놨고 카라반 냉장고를 가동시켰다. 내장 배터리 용량과 태양열 집열판에서 얻어지는 전력은 냉장고를 충분히 가동시킬 수 있었다. 다른 집 사람들도 전기가 끊어진 것을 알고 나와서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군용차가 보였고 집집마다 들러 무언가를 나눠주는 모습이었다.
“ 이게 뭡니까?”
“ 공고문입니다. 읽어보십쇼.”
공고문이라니. 전기가 끊어지기 전에 주는 것도 아니고 전기가 끊어지고 나서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라고. 난 병사가 준 공고문은 천천히 읽어나갔다. 어디서 종이를 구했는지 몰라도 A4용지 2장의 분량으로 구구절절한 글들이 써져 있었다.
“ 뭐예요?”
“ 핑계.”
“ 네?”
“ 뭐... 별 내용은 아니고.. 한 번 읽어봐요.”
종이에는 더 이상 여분의 연료가 없어 발전기 가동이 힘든 상황이라 본부대와 주요 시설을 제외하고는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는 것과 현재 상황에 대한 글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종이에는 예상 단전 날짜가 써져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단전이 되었고 수정할 시간도 없이 급하게 나눠 준 것 같았다. 차라리 사람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하지 프린터나 복사기도 전기로 작동되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받고 이해할지도 의문이었다. 은혜도 대충 읽고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집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상회를 공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집이 회의실로 변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 먹을 것이 가장 많았다.
“ 역시나 말도 안 했는데 다들 모여드는군.”
“ 반상회가 이런 기분인가요?”
“ 반상회를 해 본 적 있어?”
“ 아뇨..”
“ 나도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해 본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모여 들고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단전이 빨리 진행되었네.”
“ 응. 며칠은 더 있다가 할 것 같았는데.”
“ 식량 배급도 끊긴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 하아..”
“ 아침에 대령님과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
“ 뭐라시는데?”
“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일이 진행되어 대비할 시간이 없다셔.”
“ 일?”
“ 대규모 도심 진입 작전을 한다더라.”
“ 뭐?!!”
“ 네?!”
“ 언제?? 우리는 왜 지금까지 몰랐지?”
“ 기밀 사항이고 다른 생존 캠프와 협력으로 우선 바로 앞 도심을 시작으로
진압할 계획이래. 인원과 물자는 배로 들여올 예정이고. 빠르면 5일 안에 도착
할 예정이라 지금 우리도 준비하느라 바빠.“
박 중사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몰래 아니 공항인원 전체가 알 수 없게 준비했다는 것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것인지가 의문이었다.
“ 젠장..”
“ 왜?”
“ 진입하면 100% 전멸이야.”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 응??”
“ 생각해봐. 폭격을 가하고 진압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보병만 투입한다고?
보통사람이 변종 감염체와 그 고양이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 거의 희박하다하고 봐야지.”
“ 무기는 충분한가?”
“ 우리도 이번 전투를 위해서 비축분을 따로 관리 했다나봐. 대령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시는 것이 없다고 했고 중령님도 잘 모르신다고 했어. 예전부터
준비한 사항이라 대령님은 더더욱 모르시고.“
“ 허어..”
“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따로 나갈 수가 없어.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진행되기 전
까지 단독행동 금지라고 했고 집에서 대기하란다.“
“ 참여 인원은?”
“ 우선 다리 위 초소는 최소 근무자를 제외한 현재 군에 소속된 인원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야. 다른 캠프도 사활을 걸고 움직이는 상황이라
많은 인원이 온다고 했어.“
“ 정확한 참여 인원은 알 수가 없군.”
“ 일일이 수작업으로 일을 진행하니 정확도가 떨어지겠지.”
“ 그럼 군에 소속되지 않은 나와 기태 재효는?”
“ 아.. 너희는 계급이 정해질 거야. 재원이랑 기태는 중사로. 재효는 하사로.”
“ 짜다..”
“ 뭐... 중위라도 받을 줄 알았어?”
“ 아니 소령은 될 줄 알았지.”
“ 얼씨구..”
“ 중사가 뭐야 중사가... 에잉..”
“ 뭐냐 그 말투는..”
김 중사가 내 말에 노려보며 이야기 했다. 난 웃음을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고 박 중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뭐 소탕작전 직전에 너희에게 계급을 부여할 것이고 그 전까지는 집에서 대기
하라고 하셨어. 다른 사람의 눈도 있어서 계급은 원래 군대에서 지냈던 것처럼
하라고 하셨고. 갑자기 계급을 주는 것도 이상할 수 있다고..“
“ 뭐 불편하게 됐네.”
“ 왜요?”
내 중얼거림에 은혜가 말을 걸었다.
“ 완전히 군 소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규율이라는 것도
있고. 난 그런 것은 싫은데..“
“ 하지만 대신 혜택도 있으니 걱정마라.”
“ 무슨 혜택?”
“ 대령님은 우리 팀의 리더를 너로 정하셨다.”
“ 거부. 네가 해.”
“ 뭐??!”
박 중사의 말에 단박에 거절하고 말했다. 리더는 무슨 놈의 리더. 책임만 많아지고 귀찮은 자리였기에 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했던 것이다.
“ 지리를 잘 아는 네가 리더가 적합하고 난 리더 체질이 아냐. 욱하는 성격
이라 감정적으로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고 분위기에 휩쓸려 명령을 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그런 면에서는 네가 월등히 나아.“
“ 하지만 대령님이..”
“ 내가 잘 말씀드릴게. 솔직히 불편하기도 하고 굳이 네가 적임자인데 그 자리를
내가 들어가는 것도 눈치 보여.“
“ 그런 것이 어디 있어? 적임자라면..”
“ 내가 내 자신을 알기에 말하는 거야. 네가 더 적임자니까 계속해서 네가
명령을 하는 것이 나아. 지금 팀원의 대부분도 너를 따르는 인원인데 갑자기
중사 계급을 달고 와서 명령한다고 그들이 순순히 받아 줄 것 같지도 않아.“
“ 그런 애들은 없다.”
“ 알아.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에서 그냥 네가 해.”
“ 너 귀찮아서 그렇치?”
“ 응.”
“ 역시나..”
기태의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해 줬다. 그런 나의 말에 박 중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난 음료수 한 잔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
“ 귀찮은 것도 있고 알다시피 내 행동을 봐온 사람이라면 내 행동은 팀의
리더라기보다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커서 적합하지 않아.“
“ 너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네?”
“ 뭐.. 칭찬으로 듣지.”
다들 입으로는 주전부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모여 봐야 할 이야기가 정말 군대이야기 뿐이라 여자들은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자기들끼리의 수다에 빠져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고 기태와 담배를 피기 위해 발코니로 나갔다.
“ 스스슥!!”
“ 응??”
어디선가 움직임이 느껴졌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재빠르게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전기가 끊어진 상황이라 집안에서는 촛불을 켜 논 상황이었고 커튼까지 쳐놔서 밖에서는 집안을 보기 힘들었을 것인데 저 둘은 무엇을 노리고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빈집이라고 생각해서 온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 안 쫓아가?”
“ 뭐 하러. 사람 있는 것을 알았으면 안 오겠지.”
“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왔겠지. 이 집에 지금 뭐가 있는지 까먹었어?”
“ 아!!!”
우리 집에는 지금까지 모아온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넉넉한 식량과 물품들이 있었다. 어디선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아마 노리고 온 것 같기도 했다.
“ 그렇다면 심각한데.”
“ 더 심각한 이야기 해줄까?”
“ 응??”
“ 너. 요새 감염체 느낌이나 사람이 다가오는 느낌을 가진 적 있어?”
“ 아...아니.. 없어..”
기태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지금도 만약 기태가 능력이 살아있다면 분명 느꼈어야 정상인데 나도 그렇고 기태도 그렇고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심에 들어가서도 감염체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훨씬 미약해져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정도였다. 나야 아직은 근력이라는 능력이 있어 문제는 없었지만 기태는 하나만 가진 능력이라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 너무 걱정마. 아마 감염체들이 변종으로 변하면서 약해진 것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
“ 그랬으면 좋겠지만 난 이 능력이 전부인데.”
기태가 도심에 들어가서도 감염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거의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
“ 아마 알지도 몰라. 단지 이야기를 하지 않겠지. 예전과 다르게 네가 감염체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이 줄었으니까.“
“ 하아..”
“ 너무 걱정마. 다른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서 감염체를 제거하면서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능력이 약해졌다고 네가 필요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거야.“
“ 하지만..”
“ 하지만이 아냐.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경험과 능력이 있잖아? 물론 네 능력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약해졌다고 해도 다들 눈치껏 감염체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까지 왔어. 그러니 조바심을 버리고 여유를 갖자.“
“ 고맙다.”
“ 뭐가 고마워. 그나저나 네 말대로 저 녀석들이 문제인데..”
“ 흠...의도가 뭘까?”
“ 뭔 이야기들을 하시나?”
“ 민구구나. 방금 두 명의 사람이 우리를 감시하다 발각되어 도망갔어. 우리가
가진 식량과 물품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중이야.“
“ 뭐?! 설마!! 우리가 물건을 나르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 건가?”
“ 불빛도 없는 상황에서 옮겼는데 누가 봤겠어? 봤다고 한들 그게 식량인지
제대로 볼 수도 없었을 텐데.“
“ 흠..”
“ 누군가 누설했다는 생각은 안 해?”
“ 그럴 리가 없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쉬는 날에는 집에서
정말 쉬니까.“
“ 그럼 내가 여기서 재원이랑 같이 있을게. 너희는 돌아가 봐.”
“ 그래도 될까?”
“ 다 같이 있는 것을 본다면 저들도 우리가 대비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냥 다들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면 별 것 아니라고 대수롭게 넘긴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게 만들어야지.“
“ 응. 혹시 모르니 탄약을 두고 갈게.”
“ 아냐. 탄약은 나도 있어. 저격총도 있는데.”
“ 넌 도대체 없는 게 뭐야?”
“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운은 아니야.”
“ 참네..”
“ 우리는 돌아갈게. 기태는 재원이 잘 부탁한다.”
“ 누가 누구를 부탁하는지는 몰라도 하나보다는 둘이 좋겠지.”
“ 몸 조심하고 우리는 가본다.”
“ 응. 조심히 들어가. 그리고 너희도 모르니까 대비는 하고.”
“ 우리 쪽으로 온다면 저들이 바보지. 남자가 몇 명인데..”
“ 그럼 우리에게 오는 녀석은 더 바보지. 누가 있는데..”
“ 하하하!”
“ 참네..”
박 중사와 기태는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었고 박 중사 일행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기태는 집에 남아 대비를 했다. 은혜와 보미가 한 방을 쓰고 나와 기태는 거실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고 두 시간씩 돌아가며 주변을 감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