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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97화 (9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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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박 중사가 말을 했다.

“ 바로 결정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희도 충분한 의논을 해야 하고

그리고 그쪽에서 하려는 계획과 저희의 계획이 비슷한 것도 알아야 합니다.

덜컥 결정하기에는 저희가 하려는 일이 생각보다 위험해서요.“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을 하는 박 중사를 보고 온화한 외모와는 다르게 여우같은 면이 있었다. 우리의 결정을 바라면 당신들의 계획을 말하라. 좋은 방법이었다.

“ 흠.. 그렇다고 세부 계획을 저희도 덜컥 알려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와 함께 한다면 절대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을 장담합니다.“

남자도 교묘하게 박 중사의 말을 빠져나갔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에 무식한 녀석을 보낼 리가 없었다. 말솜씨가 좋고 능수능란한 사람을 보내야 자신들에게 흡수될 수 있을 테니말이다.

“ 대답을 바라기에는 너무 빠른 것 같군요. 저희도 어제 그 편지를 받고 오늘

그 부분을 논의하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 생각은 하고 계셨군요.”

“ 저희도 살아야 하니까요.”

“ 하하! 역시!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격이시군요!”

“ 저희를 알고 있습니까?”

“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문이란 것이 있으니까요.”

무슨 소문을 듣고 저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쁜 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남자는 다시 능글맞은 표정으로 변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 그래서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 흠.. 저희가 물어보죠.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 네?”

내 말에 남자가 당황하며 다시 물어왔다. 이 녀석은 왜 자기가 소속된 곳에 자꾸 들어오라고 하는지. 난 거꾸로 그에게 물었다.

“ 무슨..”

“ 그쪽이 저희에게 오라는 말입니다.”

“ 허...”

우리 일행도 약간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설마 우리와 같이 하자는 말을 할 줄은 몰랐나 보다. 물론 나도 생각 없이 말 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 활동하는 집단의 힘을 모르는 상황이다. 저들도 당연히 우리의 힘을 모를 것이라 생각되었다.

“ 꼭 저희가 움직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저희 쪽으로 오시죠.”

“ 하하! 솔직히 저희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저희가

움직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말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전부라는 것은 알고 있나보다. 아마도 대령님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난 테이블 위에 있는 뜯지 않은 캔 음료를 재효에게 던졌다.

“ 턱!!”

재효는 무의식적으로 캔을 잡고 나를 바라봤다. 난 웃으며 재효에게 말했다.

“ 그대로 터뜨려.”

“ 응.”

“ 치익!!”

“ 오호..”

재효는 한 손으로 캔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캔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 음료가 세어져 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표정변화 없이 저렇게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변함 사람이 많아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고 남자는 놀라는 표정으로 재효를 바라봤고 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인원수가 많다고 힘이 큰 것은 아니죠. 그리고..”

“ 응?!!!”

“ 우리는 양보다 질이 좋은 집단입니다.”

“ 허억!!!”

난 순식간에 그 남자 앞에서 사라지며 뒤에서 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 어..언제..”

“ 뭘 이런 것으로...”

난 다시 그 남자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다른 인원들도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나를 본 적이 없어 눈동자는 놀라고 있었지만 표정 변화는 없었다.

“ 인원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죠. 화력이 좋다고 감염체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인원의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 허허... 서..설마..인원...전체가..”

“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저희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

“ 예상외군요.”

“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도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하며 말을 이어갔다.

“ 정보가 부족했군요. 이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난 대답대신 표정으로 보여줬고 남자는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 난 단지 두 명의 능력을 보여줬는데 저 남자는 우리 일행 전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 분명 아무 말도 안했는데 혼자서 착각에 빠진 것을 보아 내 계획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 그럼 저희도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이런 상황은 예상을 하지 못해서..”

“ 저희도 시간이 필요하니 잘 됐군요.”

“ 조만간에 다시 찾아 와도 되겠습니까?”

“ 저희가 찾아가죠.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 알겠습니다. 저희는 00빌라입니다.”

“ 네.”

남자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갔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은 나를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 바라봤다.

“ 뭘 그리 봐?”

“ 너... 언제부터?”

“ 뭘 언제부터야. 보여줄 상황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이 움직임은 체력적으로

엄청 무리가 온다고. 지금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난 말을 하고는 소파에 앉았다. 박 중사는 나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 너 보면 정말 적이 아닌 것이 다행이야.”

“ 뭘..”

“ 그나저나 어쩌려고 그랬냐? 그 남자는 아마 우리 인원 전체가 재효 같다고

생각할 텐데. 거짓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일이 복잡해 질텐데.“

“ 난 우리 인원전체가 그랬다는 말은 안했어. 그냥 그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뿐이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실수 했다는 것을 느낄걸. 그리고

밝혀지기 전에 결정을 해야지.“

“ 시간을 벌기 위해서?”

“ 응.”

“ 얼마나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 그래도 당장은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며칠 후 대대적인 감염체 소탕작전이

이뤄진다고 했으니 시간은 더 얻은 셈이지.“

“ 하긴..”

“ 최대한 지금은 다른 집단과의 접촉을 피해야해. 그들 생각은 혁멱이겠지.

실제로는 반란이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거랑 다른 것이 없지.

솔직히 지금 체계도 안정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들이 실권을 잡으면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돼.“

“ 흠..”

“ 네 생각과 다르게 저들이 우리 쪽으로 온다고 한다면?”

“ 저들도 쉽게 결정할 수 없을걸? 자신들이 가진 것을 버리고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우리에게 온다? 힘을 가지기 위해 몰래 움직이고 있는데 그 힘을

버리려고 할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 하긴 저들이 바라는 건 자신들의 힘이지 지금 있는 사람들의 안전이

아니니까.”

“ 그런 글은 편지에도 써있지 않았지. 그저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것 외에는.“

“ 응. 아마 이번 감염체 소탕 작전으로 앞으로 이곳의 운명이 바뀔것이야.”

“ 응?? 무슨 소리야?”

“ 감염체 소탕 작전은 실패 할 수밖에 없어. 얼마나 실패할지가 관건이야.

잘못하다간 본부대의 힘이 완전히 소멸할 수도 있으니.“

“ 실패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해? 이번에 많은 숫자가 온다고 했는데? 무기

탄약. 인원, 장비가 충분하다면 해볼만하지 않을까?“

“ 재원이 말이 맞아. 실패는 확실해. 얼마나 실패할까가 관건이지.”

“ 김 중사님도?”

“ 나도 동감이야.”

박 중사도 나의 의견에 동의를 표해왔다. 저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 아무리 많은 장비와 화력이 있다고 해도 일반 감염체만 상대하는 것이 아냐.

변종 감염체들도 상대해야해. 그런 존재들을 눈앞에서 보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 차라리 도심을 폭격하고 그 후 잔존하는 감염체를 처리하기 위해서 움직인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왜 도시를 지키려고 저렇게 기를 쓰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상태로는 실패야.“

김 중사와 박 중사가 차례로 말했고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도시를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판세는 기울고 기울었는데 어떻게 다시 돌릴 수 있다고 믿는지. 이런 소모전을 계속하다 지금 이 상태까지 온 것이라 생각하는 인원이 없는 건가? 무슨 금은보화를 도시에 숨겨놨다고 저렇게 기를 쓰고 지키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지금까지 왜 폭격을 가하지도 광범위한 공격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야. 이런

소모전은 의미가 없어. 오히려 살아남은 사람들의 희망만 꺾을 뿐..“

“ 하지만 많은 수의 장갑차와 전차라면 희망은 있지 않을까요?”

“ 그랬다면 지금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겠지. 처음부터 그런 작전을

고집했으니까.”

“ 다들 부정적으로 보시는 군요.”

“ 어쩔 수 없지. 다들 지금까지의 상황을 봤으니.”

“ 하아..”

다들 집안에 대충 앉아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의 수장격인 우리 셋 다 모두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니 분위기는 암울하게 변했다. 이러려고 말을 한게 아닌데..

“ 그렇다고 너무 암울하게 있지말지? 지금 현재 상황이 안 좋은 것이지 우리가     상황이 안 좋은게 아니야. 우린 우리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너무

남에게 의지하지 말자.“

박 중사 말에 다들 침묵을 유지했다. 사람이란 존재는 혼자보다 여럿이 뭉쳐야 힘을 발휘하다보니 적은 인원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 지금까지 우리는 잘 살아남았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리고 지금은 더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니 지금까지보다 더 안전할 것이야. 그리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들 나를 바라봤다.

“ 지금까지 내가 힘을 숨긴 이유는 하나야. 재효도 숨겼을 것이라 생각되고.

우리가 힘이 커지면 우리를 견제하는 인원이 늘어나게 되고 그로인해 집에

혼자 있게 되는 여자애들이 걱정돼서 그런 것이야. 그런데 그런 행동이

오히려 다른 집단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면.. 더 이상

힘을 숨기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고... 압도적인 힘으로 우리를 건들일 생각

조차 못하게 하도록 하지.“

내가 힘있게 말하며 은혜를 쳐다보자 은혜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난 그런 은혜를 보며 움직였다.

“ 휙!!!”

“ 응?!!”

“ 그리고 앞으로는 최선을 다할게.”

난 어느새 은혜 옆에 앉아 말했고 사람들은 소리의 근원지인 은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두 번이나 봤지만 여전히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난 아무렇지도 않게 음료수를 마시며 그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며칠 후 공항에는 대규모 장비와 인원이 입항했다. 수 십대의 전차와 장갑차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끊임없이 내렸고 공항 옆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들은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반강제적인 징집이 이뤄졌고 반발도 있었지만 참여하는 인원에게는 승리 후 많은 혜택을 준다고 약속을 했기에 많은 반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지원이 마무리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틀 후에 도시로 들어가기로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아직 하루나 이틀정도 더 걸릴 것이라 했고 우리도 그에 맞게 준비를 했다. 본부대로 복귀하여 나와 기태. 재효가 계급을 달았고 장갑차 정비와 많은 수의 탄약을 지원받았다. 대령님의 꼼수로 우리는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울 탄약을 더 받아 집 옆에 주차를 시킨 후 집안으로 옮겨 놨다.

“ 지켜야 할 것이 늘었군요. 저와 석 하사로는 무리일 수 있어 인원을 조금 더

불렀습니다. 지금까지 저와 같이 살아남은 녀석이라 믿을 만 한 놈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쇼.“

“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저희야 말로..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 네.. 그래야죠. 그럼 내일 모레쯤 오시겠군요.”

“ 네. 현재는 추가된 인원들과 물자를 정리하고 있어 며칠째 야근중입니다.

이래저래 빨리 오고 싶군요.“

“ 하하!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 대령님 성격이 오죽해서요..”

“ 하긴..”

잠시 시간을 내어 방문한 이 중사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무작업이 얼마나 많은지 컴퓨터도 많이 없는 상황에서 일일이 종이 작업으로 진행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 이제 슬슬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니 준비하고 있는 편이 좋겠군.”

“ 응. 과연 얼마나 없앨 수 있으려나.”

" 피해가 적어야 할텐데.. 한 번 싸워서 대파하면 정말 답도 없는데.“

“ 아무리 못 이길 것을 알지만 너무 극단적인거 아냐?”

“ 그런가?”

“ 하아.. 너란 녀석..”

“ 참네..”

박 중사와 집으로 돌아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능한 우리는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행동하자고 했고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치자고 이야기 했다. 가뜩이나 적은 인원인데 여기서 피해가 있다면 앞으로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기에 피해는 최소. 아니 아예 없어야 했다.

“ 내일은 집에서 쉬고 모레 출발할 것 같네.”

“ 응. 정비도 거의 끝났다고 했으니 이제 뭔가 명령이 내려오겠지.”

“ 중사가 되니까 어때?”

“ 뭐. 허울 뿐이지. 나에게는 의미도 없는데. 내가 말했잖아. 중령쯤은 줘야..”

“ 뭐라니 자꾸..”

“ 에잉!!!”

중사도 대단하다면 대단했지만 왠지 중령이 더 탐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쳤다고 나에게 그런 계급을 줄 리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박 중사와 헤어지고 집안으로 들어갔고 역시나 집안에는 동네 반상회 수준의 인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 참네... 그래도 이제야 사람사는 곳 같네.”

“ 왔어요?”

“ 응. 뭐해?”

“ 그냥 수다도 떨고 이것저것 하고 있었어요.”

나를 반기는 은혜를 보며 집안으로 들어갔고 어느새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서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수다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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