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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우리는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공존했다. 공항에는 이미 많은 인원이 도착하였지만 다들 표정이 좋지 못했다.
“ 복귀한 사람의 관등성명을 적어서 제출하여 주십쇼.”
“ 알겠습니다.”
“ 다음 토벌작전에는 새로운 조를 짜서 나갈 예정입니다.”
“ 빌어먹을 이런 상황인데 또 나가란 말이야?!”
“ 젠장! 도대체 뭔 작전이 이 모양인데?!”
“ 지들은 안 나간다고 이따위 작전을 만든 거야?! 이것도 작전이라고?!!”
“ 진정해!”
사람들이 또 토벌작전을 나간다고 하니 참았던 분노가 터져 나오며 언성이 높아졌다. 애꿎은 사무직원만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랐고 중대장은 소리치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우선 다들 장비를 반납하고
들어가서 쉬도록.“
“ 중대장님!”
“ 명령이다.”
“ ......”
사람들은 말없이 장비를 반납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왔다. 난 사무직원에게 얼마나 많은 인원이 복귀했나 물어봤다.
“ 혹시 지금까지 얼마나 복귀를 한 것입니까?”
“ 현재 30%가량이 복귀했습니다. 대부분의 인원이 복귀하는 중이고요.”
“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까?”
“ 현재.. 10개 조의 인원이 복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무직원이 침울하게 말했다. 정확한 인원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복귀한 사람들의 비율로 따지면 그렇다고 했다.
“ 생각보다 피해가 큰 상황인데.”
“ 하아..”
“ 돌아오지 못한 인원의 대부분이 변종 감염체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저희를
공격했던 호랑이 같은 녀석들이 어느 순간부터 도시에서 엄청나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 이제는 일반 감염체가 문제가 아니군.”
“ 간혹 비둘기에게 공격 받은 인원도 있다고 합니다.”
“ 미치겠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봤던 변종 감염체를 설명했고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생물이 변한 것 같았다. 일반 감염체도 버거운 상황에 변종 감염체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말 최악의 경우였는데 그 상황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 괜한 공격으로 그들을 자극했다는 느낌이 드네.”
“ 응. 주변의 변종 감염체들도 모여들겠지.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먹이일
뿐이니. 그런 먹이가 한 곳에 득실거리며 모여 있는데 감염체 입장에서는
이곳이 노다지겠군.“
“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군.”
“ 하아..”
우리는 집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기태와 재효. 김 중사, 박 중사 모두 힘이 없어보였다. 우리는 운 좋게 살아왔지만 다음 작전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인원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전히 무섭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집으로 들어갔고 집안에는 이 중사가 나를 마중 나왔다.
“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 네. 별일은 없으셨죠?”
“ 네. 은혜씨가 많이 걱정했습니다.”
“ 네..”
난 가볍게 웃으며 말했고 방에서는 은혜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지금 가시는 겁니까?”
간단한 짐을 챙기고 있는 이 중사에게 물었다.
“ 네. 무사히 복귀하셨으니 저의 일은 끝입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경호가
되겠군요.“
“ 이 중사님도 이제 작전에 참가하는 건가요?”
“ 네. 듣자하니 많은 인원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상황에 한 사람이
아쉽겠지요.“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별말씀을요. 김 중사님이야 말로 몸조심 하십쇼.“
“ 네.”
이 중사와 악수를 나누고는 석 하사와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굉장히 처량해 보이는 뒷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전기가 끊어진 집안을 밝히는 것은 지급받은 초가 전부였다. 화장실에는 전기가 잠시 나오는 시간동안 받아 놨던 물이 가득했고 나는 대충 씻고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은혜가 깊게 잠든 침대 옆으로 눕고는 자리를 잡자 은혜가 잠결에도 내 품에 안겨왔다.
“ 이 아가씨는 난줄 알고 안기는 건지..”
내가 헛웃음을 보이고 내 품에 안겨온 은혜를 안고는 잠이 들었다. 밖에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로 꽤 씨끄러웠지만 피곤한 상태라서 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자기 일어나요!”
“ 응??”
“ 언제까지 자려고요? 이제 한시가 넘었어요!”
“ 벌써? 피곤해서 그랬나? 아웅..”
은혜가 나를 흔들며 깨워서 억지로 일어나게 되었고 거실로 나가 탁자위에 놓여진 물을 마시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 엄청나게 내리네? 한 시가 넘었다고 했는데 아직 한밤중 같은데?”
“ 그래서 저도 늦게 일어났어요. 눈을 떴는데 주변이 아직도 어두워서..”
“ 뭐 일찍 일어난다고 할 것도 없는데..”
“ 원래 자기가 복귀하면 미란언니가 놀러온다고 했는데 안오네요.”
“ 그쪽도 피곤해서 늦잠 자나봐. 우리처럼 잠이 많으니까.”
“ 잠은 자기가 많죠.”
“ 자기도 보통 사람에 비하면 많은 편이야.”
“ 핏.”
은혜와 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간단하게 식사를 챙겨먹었다. 보급 받은 식량이 형편없어 카라반에 숨긴 식량을 찾으러 나가려는데 은혜가 막아섰다.
“ 카라반 대령님이 가져갔어요.”
“ 뭐?!”
“ 자기가 작전에 투입되고 얼마 안 돼서 대령님이 찾아와서 카라반 가져간다고
전해달래요. 제가 격하게 반대했지만 내부는 절대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앞으로 우리 생활에 절대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 왜 굳이 내가 없을 때 가져가신거지?”
“ 아!!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알거라는데요?”
“ 뭐라고?”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 그렇군..”
“ 무슨 소리죠?”
“ 대령님이 계획하신 것이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손해가 있을 계획은 아니라서 다들 묵묵하게
따르고 있는 중이야.“
“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어야 비밀이죠.”
“ 맞지.”
“ 하암...”
은혜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집에만 있어서 답답한 공기 때문인지 졸립지 않았지만 나도 하품이 났고 비가 많이 왔지만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
“ 쏴아아앙!!!”
“ 무식하게 퍼붓네.”
창문을 열자마자 밖에서 나는 빗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이미 주변의 땅은 고인 빗물로 한 가득이었고 어디선가 계속해서 물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간간히 들리는 포성으로 아직 복귀하지 못한 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항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청력이 좋아져 멀리서 들리는 포성도 가깝게 들리는 경우가 있어 정확한 거리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리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 뭘 그렇게 봐요?”
“ 응?? 아냐..”
은혜가 내 뒤에서 나에게 물어왔고 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은혜를 봤다.
편한 박스 티를 입고 하의는 짧은 바지를 입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상의 속옷을 입지 않아 돌출된 두 곳에 시선이 갔고 내 시선을 눈치 채고는 은혜는 몸을 돌려 방으로 달려갔다. 나도 따라 달려가서 쉽게 은혜를 잡을 수 있었고 뒤에서 들어 침실로 들어갔다.
“ 왜 또!! 아직 낮이란 말이예요!”
“ 해도 없는데 뭐 어때!”
“ 아흑!!”
내가 힘을 주어 은혜의 가슴을 잡자 약간은 괴로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야릇한 신음으로 난 더욱 흥분을 했고 은혜의 상의를 벗기는 순간 우리의 아니. 어떻게 보면 나만의 즐거운 시간을 깨어버린 소리가 들려왔다.
“ 쿵쿵!! 형!!”
“ 젠장.. 하필 와도..”
“ 아아.. 살았다..”
“ 뭐가 살았다는 거야? 자기는 나랑 사랑을 나누는게 싫은가봐?”
내가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말하자 은혜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 아..아뇨... 그냥..”
“ 뭘 그리 굳었어. 그냥 장난친 거야.”
“ 히유..”
내가 표정을 풀며 말하자 은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은 은혜가 나를 쥐고 살지만 내가 정말로 정색하고 말하면 절대 은혜는 내 의견이나 행동에 반대하지 않았다. 은혜도 나와의 행위가 싫은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 시간이 너무 길다보니 힘들어하는 것 뿐이었다.
“ 왜?”
“ 심심해서..”
“ 뭐가 심심해?! 넌 피곤하지도 않냐? 어라? 뒤에 애들은..”
“ 안녕!”
“ 하아.. 박 중사..너까지..”
“ 조금 있다 김 중사도 온다고 했으니 너무 섭섭해 말아.”
“ 넌 내 표정이 섭섭하다고 느낀 거냐?”
“ 뭐...”
굳이 들어오라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아서 잘만 들어왔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은혜가 반갑게 맞이하였고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촛불하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어제 그때 우리를 찾아왔던 남자가 집으로 왔었어.”
박 중사가 거실에 마련한 과자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 카라반도 없어 얼마 없는 주전부리인데...
“ 어라? 벌써?”
“ 응. 대답을 듣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알다시피 우리가 작전에서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힘들다고 했지. 그래서 뭐라도 하는 척이라도 해야 그들이
의심하시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모인거고.“
“ 흠.”
“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지. 이래저래 걸리는 부분이
많아.”
“ 그리고 어제 대부분의 인원이 복귀했는데 전투에 참여했던 인원의 25%가 사망
장비가 30%손실됐다고 하더라.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인원은 맞는 것 같아.“
“ 피해가 엄청나네요.”
듣고 있던 은혜가 말을 했다. 물론 그에 따른 감염체를 제거한 숫자도 엄청났다. 하지만 감염체는 우리보다 월등하게 많은 숫자다. 비율적으로 따진다면 굳이 우리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 그리고 탄약이 문제라고 하더라. 거의 반 가까이 소모해서 다음번 작전을 변경
한다는 소문이 자자해.“
“ 차라리 바뀌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무식한 계획을 짠 인간이 누군지..”
“ 아참! 그리고 공항 쪽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도 있어. 우리가 작전을
나가고 나서 착륙한 수송기가 몇 대 있나봐. 대부분 전략 수송기로 보인다고
했고.“
발이 넓은 박 중사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 아무래도 다른 국가에서 뭔가를 지원해준 것 같은데 윗선에서 챙겼다는 의견도
나오고 그냥 인원을 실어갈 수 있는 수송기를 지원해줬다는 의견도 있고..“
“ 의견이 아니라 소문이겠지.”
“ 뭐.. 그거나 이거나..”
“ 하아.. 도대체 대령님은 무슨 생각이신거지? 내 카라반도 가져가시고는..”
“ 아!! 우리 장갑차도 가져갔다던데?!”
“ 응?!”
“ 어제 정비를 맞기고 오늘 아침 정비창에 들릴 일이 있어 갔는데 밤새
우선적으로 수리를 하고 새벽에 대령님이 가져가셨다더라.“
“ 허어..”
“ 흠...”
우리는 도통 대령님의 생각을 알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왜 내 카라반과 우리 장갑차까지 가져가신 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집 밖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당장 모든 인원들은 본부대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지금 당장 본부대로 모든 인원들은 집합하십쇼!“
“ 뭐지?!”
“ 어제 들어왔는데 왜!!”
“ 우선 가보자!”
우리는 서둘러 신발을 신고서 빠르게 본부대로 달려갔다. 본부대에는 이미 모인 수 백의 인원들이 모여 있었고 비가 오는 중에도 우산을 쓰는 인원은 없었다. 이미 흠뻑 젖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봤고 단상위에서는 대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여기 온 후로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 현 시간부로 방어 태세 2단계를 발령합니다.”
“ 응?? 방어 태세 2단계가 뭐야?”
난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는 표정으로 박 중사를 바라봤다.
“ 너..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설명 듣지 않았냐?”
“ 어떻게 다 기억해.”
“ 딴 건 몰라도 저런 건 기억 좀 하지..”
“ 아 됐고 빨리 말해봐.”
“ 방어 태세 3단계는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이고 2단계는 전투 인원 전체가
완전 무장으로 집이나 본부대에서 대기하고 명령을 기다리는 거야. 초소
인원은 평소보다 2배로 늘리고 공항에 있는 모든 무기가 가동하는 거고.“
“ 그럼 1단계는?”
“ 공격 받는 전제하에 하는 행동인데 우리의 전력이 약해지면 한 곳의 다리를
끊어버려서 한 곳에 집중한다는 내용이고. 뭐 무기는 당연 풀가동이고.“
“ 지금이 2단계라면..”
“ 본부대에서 가지고 있는 공항에 있는 모든 탄약과 무기를 나눠주는 것이지.
아마 조별로 한 곳에 모여서 모여 있는 곳을 등록하고 그 곳에서 대기해야만
하고. 군대가 아니라서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방법이지.“
“ 흠...."
" 우선 무기와 탄약을 받고 너희 집에서 지내자. 아무래도 너희 집이 가장 크고
움직이기도 편한 곳이니 무리는 없을 거야.“
“ 응.”
우리는 차례차례 무기와 탄약을 받고 무거워진 군장과 군장이 없는 인원은 가방을 메고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