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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묵직한 소음을 내며 수송기는 빠르게 나아갔고 다행히 별 탈 없이 이륙을 할 수 있었다. 수송기다 보니 외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 현재 본부대와 반란군이 정면충돌을 했나봅니다. 무전이 긴박하게 오가는
군요.”
“ 남은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 지금 남은 사람 걱정할때야? 우리부터 걱정하자고!”
“ 하아..”
다들 한 마디씩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앞으로 약 한 시간 남짓을 비행해야 했기에 다들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도착해서 과연 우리를 받아줄 것인가도 문제였고 괜히 가다가 격추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 확실히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라 더욱 그랬지만 공항에 남아 있었어도 비슷한 상황이니 차라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다들 같은 결정을 한 것이었다.
“ 앞으로 30분 후에 도착합니다.”
“ 네.”
어느덧 도착할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긴장하며 자리를 지켰다. 얼마 후 대령님이 내려와 다행히 착륙허가는 떨어졌다고 했지만 표정이 좋지 못했다.
“ 무슨 일 있습니까?”
“ 착륙허가는 떨어졌지만 하루 정도는 수송선 안에서 지내야 할 것 같네.
아무래도 우리 중에 감염체가 있을 지도 모르는 위협 때문에 쉽게 받아줄 것
같지는 않아.“
“ 뭐. 어디나 그랬지 않습니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허어.. 하지만 문제가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라네.”
“ 네?”
“ 정확히 얼마간 있다가 받아주겠다가 아닌 우선 수송선 안에서 대기하라고
했네.”
“ 흠..”
“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내는 동안 최소한의 물품은 지원해준다고 하네.”
“ 네..”
“ 이제 곧 착륙합니다. 준비하십쇼.”
우리는 착륙준비라는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아 충격에 대비하였다.
“ 끼이이익!!!”
듣기 거북한 소음을 내며 수송기는 착륙하였고 무전에 따라 격납고로 들어가게 되었다. 격납고도 우리가 있던 공항에서 본 건물과 다르게 임시로 만든 티가 많이 나는 건물이었다. 격납고로 들어가 수송기의 문이 열리자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은 인원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주변에 소총을 든 인원 수십이 보였다.
“ 우선 이곳에서 대기하고 명령을 기다리십쇼. 혹시 모를 감염자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이니 다들 협조 부탁드립니다.“
“ 알겠습니다.”
“ 최소한의 식량과 물품은 준비해 뒀습니다. 여러분들의 활동반경은 이 격납고
내부입니다. 격납고 외부로 나가는 인원이 발각되면 즉각 사살입니다. 명심해
주십쇼. 즉각 사살입니다.“
보호의를 입은 인원이 재차 확인을 하듯 말했다. 썩 기분 좋은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예상한 상황이었기에 별 말없이 그들의 명령에 따랐다. 격납고로 몇 개의 박스가 들어왔고 그 안에는 간단한 먹을거리와 식수.
그리고 침구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각자 지급받은 물품을 들고 격납고 한 켠에 마련된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대령님과 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가서 들어볼까하다 괜한 상황에 말려들기 싫어 물건을 챙겨 은혜 옆으로 갔다. 은혜는 매우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내 팔을 꼭 잡았고 나는 은혜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너무 걱정 하지마. 별일이야 있겠어.”
“ 여기는 지금까지 생존자 캠프와 너무 다른 느낌이 들어요. 저런 복장도 익숙
하지 않고..“
“ 자기들도 감염되기 싫으니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공기중으로 감염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텐데 뭐 하러 불편하게 저런 복장으로 있는 거야?“
“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 만약 공기 중으로 감염이 됐다면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항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럼 뭔가 치료약이 나왔겠지. 저들은 그냥 우리를 겁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보이는데?“
“ 흠... 뭐지.”
“ 우선 묵묵히 있자. 시간이 지나면 뭐라도 설명을 해주겠지.”
“ 응..”
우리는 각자 자리는 잡은 곳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부족한 잠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속과 다르게 우리는 이틀이 지나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생필품을 공급해주는 인원을 잡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가 전부였다. 다들 점점 불안해져 갔고 참다 못한 대령님이 자신이 아는 지인의 관등성명을 대며 뵙기를 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표정으로 나타난 또 다른 대령이 보였다.
“ 미안하네.. 어떻게 착륙은 허가 했지만... 이곳에 지낼 수가 없을 것 같네.”
“ 무슨 소리인가? 처음에는 받아 준다고 하지 않았나?”
“ 이미 이곳도 포화상태라네. 어렵사리 수송기를 구해 말도 안 되는 물자수송을
계획하고 이곳으로 오게 하는 것까지는 어떻게 됐지만 상부에서 허락을 해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네.“
“ 우리가 일반 생존자도 있지만 수 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인원도 있고 능력이
뛰어난 인원도 많네. 여러모로 이곳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설명하게나!“
“ 이미 말을 했지만....”
“ 자네!!‘
“ 미안하네.. 그래도 얼마간의 시간과 생필품은 지급해주기로 했네. 더불어
탄약과 무기도 말일세.“
“ 허허.. 탄약과 무기를 줘서 보낼 만큼 이곳에 있는 것을 꺼려한다는 건가?”
“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네. 정비공이 수송선을 점검하고 연료를
채우면 떠나야 한다네..“
“ 이런 상황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원래 있던 공항은 내분이 일어나 엉망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나!“
“ .....”
“ 이런!!”
대령님의 친구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못했다. 대령님은 분한마음에 소리쳤고 대령님의 대화를 들은 다른 인원들도 고개를 숙이고 망연자실했다.
“ 다시 요청은 하겠다만.. 큰 기대는 말아주게나.”
“ 못하더라도 일반 생존자들은 받아주게나. 전투병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더라도..”
“ 노력해 보겠네.”
대령님은 전원이 지내지 못하면 하다못해 일반인은 이곳에서 지내기를 원했고 친구는 마지못해 노력해 보겠다는 말을 했다. 생각해보면 일반인 보다 훈련받고 전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전투병들이 이곳에 남는 것이 더 이득인 상황인데 무슨 생각인지 모를 상황이었다. 대령님은 남은 사람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고 우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받아쳤다.
“ 뭐 그래도 생필품도 받았고 수송기 점검과 연료도 채워준다고 하니 다른
곳으로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큰일도 아닙니다.“
“ 이런 곳에 있어봐야 공항보다 좋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 미안하네..”
“ 아닙니다. 저희가 원해서 한 것인데 대령님이 죄송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도 기회라고 우선은 푹 쉬도록 하죠. 수송기도 점검을 해준다고 하니
좋은데요?“
“ 오랜만에 마음편히 쉬어보자!”
“ 난 잠이나 자야지. 지금까지 편하게 잔적이 없으니..”
“ 난 수송기 내부나 점검하련다.”
“ 난 소총 손질이나 해볼까. 탄약도 준다는데 미리 준비를 해야지.”
사람들은 저마다 웃으며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아무래도 대령님의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려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런 분위기로 인해 무거웠던 공기는 한결 가벼워진 듯 했다.
“ 조만간 답변을 해 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시죠.”
“ 하지만 대령님 왜 일반인이라도 받아 달라고 하신거죠? 차라리 전투병도 남는
것이 이곳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보통 생존자 캠프라면 전투병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 이 섬은 해변에 벽이 설치되어 섬을 두르고 있네. 아무리 감염체라고 해도 그
높고 튼튼한 벽을 부수기는 무리지. 아직은 변종 감염체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일을 없으니. 그러니 당연히 섬 안은 예전과 거의 흡사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들었네. 높으신 분들이 많으니 뭔가 다르겠지. 그런 상황에 전투병이 뭐가 필요
하겠나? 차라리 허드렛일이라도 하는 일반인이라도 이곳에 지내는 것이
좋겠지. 우리야 어찌됐든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으니..“
“ 알겠습니다. 뭐 좋은 답변을 가져오겠죠.”
“ 대령님의 오랜 친구이시니 실망시킬 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고맙네..”
“ 대령님도 우선 쉬지죠.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푹 쉬쉽쇼.“
“ 그래.. 다들 쉬게나.”
“ 네.”
대령님은 수송선으로 올라가 조종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대령님의 친구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이틀을 더 허비하게 되었다.
뙤약볕이 내리는 여름이라 격납고 내부는 무척이나 더웠다. 바닷가 근처라 습도도 높아 불쾌지수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 대령님의 친구가 드디어 답변을 해주었다.
“ 위에다 열심히 이야기해서... 우선은 전투병 숫자만큼 일반인을 받겠다고
했네.“
“ 허어..”
“ 전투병이 훨씬 많은 상황인데.. 유리한 건가?”
“ 마저 들어보자.”
“ 하지만 모두 받아줄 수는 없다고 했네. 그러니.. 일반인을 제외한 몇 명의
전투병을 받고 나머지 인원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네.“
“ 너무하군.”
“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만 받겠다는 건가..”
“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위에서는 부정적이라..”
“ 허어..”
“ 그래도 아예 나쁜 상황은 아니라네. 자네들의 능력을 들은 미국에서 받겠다고
했다네.“
“ 아니! 내 나라는 안 받아주고 다른 나라에서 받아준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 뭐..이런..”
“ 미국에서 자네들과 같이 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항체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라네. 솔직히 이 섬에는 그럴만한 연구소가 없어 불가능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조금씩 지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네. 한정된 지원이니 받는 인원이
적어야 좋겠지.“
“ 그럼... 내륙지방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 현재.. 위에서는 내륙은 포기한 상태라네..”
“ 허어..”
“ 아시아 지역은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네. 특히나
중국과 일본은 지금까지 거의 연락이 되지 않을 정도로 피해가 크고 그나마
유럽 몇 개의 나라와 미국 정도만이 도시 몇 개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라네.“
“ 흠.. 하긴 미국은 총기 소유가 허락된 나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유럽은
의외인데 “
“ 유럽은 초동조치가 잘 이뤄진 나라가 많아 그래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네.
아무리 그래도 국민의 70%가 사라질 만큼의 피해라네.“
“ 흠.. 저희가 미국으로 가서 뭘 하면 됩니까?”
“ 미국에서는 감염체를 상대하기 위한 군을 창설한다고 들었네. 그곳으로 가서
뭔가 도움을 주면 된다네.“
“ 뭔가 받은 것이 있겠군요. 미국도 자선국가가 아닌데 뭔가 요구를 했겠지요.”
“ 자세한 사항은 나도 알 수가 없다네..”
“ 흠.. 난 영어 못하는데..”
“ 저도...”
“ 그래도 이곳에서 일반인은 받아주니 우선 식구위주로 남기는 것으로 하죠.
다른 인원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 김 대령..미안하네.. 못난 친구를 둬서..”
“ 그런 말 말게나. 그래도 이것이 어딘가? 고맙네.”
“ 미안하네..”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두 분을 뒤로하고 상황설명을 하고 우선 일반인 식구를 위주로 이곳에 남기로 하고 나머지 인원은 떠날 준비를 하였다.
“ 많이 아쉽네.. 화도 나고.”
“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네.”
“ 참네... 군대도 다녀왔고 지금도 군 생활을 하고 있는데..”
“ 이곳은 다른 곳인가 봐..”
“ 에라이!”
남지 못한 인원들은 울분을 토했지만 딱히 화풀이할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위로하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 대령님의 친구는 내일 다시와 이곳에 남을 인원들과 떠나기로 했고 동시에 생필품과 무기. 탄약을 지급해 주기로 했다. 수송기에 있는 물품들은 우선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고 우리는 헤어질 사람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 대령님의 친구가 마련한 식사와 약간의 술로 오늘 밤을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