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1 / 0281 ----------------------------------------------
-2부-
식당에 들어가니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이 많았다. 우선 김 중사의 표정이 무척이나 좋지 못했다.
" 엄청 고생했군."
" 아직 걷는 것도 못했다. 너는 어떠냐?"
" 그래도 걷는 것은 성공했는데 슈트를 벗고 나니 근육통이 엄청나네."
" 재효는 완전히 뻗어서 지금 방에서 쉬고 있어. 제대로 밥도 못 먹을 걸?"
" 기태는?"
" 기태는 아직 안 끝난 걸로 아는데? 우리와 다르게 다른 슈트를 입고 훈련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 하긴 각자 맞는 슈트가 있다고 했으니."
" 다른 애들은 안보이네?"
" 박 중사는 우리와 다른 훈련을 받고 있고 여자들은 운동이 끝나면 온다고
했는데."
" 너 많은 것을 알고 있다?"
" 훗! 이래봬도 정보에 능하다고!"
" 라기보다 오지랖이 넓은 것 같은데?"
" 뭐야?!"
" 하하하!"
" 어? 자기! 훈련은 끝났어요?"
" 응. 자기는 운동하고 왔어?"
" 아뇨.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어요."
" 그래.."
사람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고 몸은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자신에게 맞는 혹은 자신이 선호하는 무기를 선택하기 위해 무기고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단순한 구조의 넓은 실내 공간에는 많은 종류의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총이 있는 곳은 탄약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고 수류탄과 처음 보는 무기들이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고 진열이 되어 있었다.
" 많은 양이네.. 이정도 양이면 밖의 감염체를 제거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 밖의 감염체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양이 없을 것입니다."
" 어라?"
" 외국 사람인데 한국말이 능하시네요?"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듣는다면 착각을 할 정도로 한국말에 능한 외국인이었다.
" 크게 유창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대화만 가능합니다."
" 그 정도면 유창한 수준인데요."
" 가끔 영어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 네."
" 우선 이곳은 제10 무기고입니다."
" 무기고가 10개나 있군요."
" 뭐 그 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큰 편이지요."
" 아.."
" 대부분의 슈트 착용 인원들은 화학류의 무기보다 원초적인 칼이나 창을 선호
하는 편입니다. 뭐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요."
총이나 수류탄은 여분의 탄약이 필요해서 한 번 전투에서 필요한 양이 엄청났고 그 만큼 무게도 엄청났다. 하지만 원초적인 무기들은 그 자체만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부수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아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다면 좋은 무기였다.
" #$%#$@$^%^"
" 어라?"
갑자기 튀어나온 영어로 인해 다들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인원은 우리 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 아!!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장소가 넓으니 천천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무기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 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무기를 찾으려 이동을 했다. 나는 검이나 칼 종류를 찾기 위해 분류가 되어있는 곳으로 가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마치 무기 박물관을 온 것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쓸 만한 무기는 많지 않았다. 한참을 둘러보다 결국 나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나왔고 다시 슈트 적응 훈련을 하러 돌아섰다.
" 어? 오늘 훈련은 끝이라고 말씀 안 드렸나요?"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던 신혜 연구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혹시 훈련이 가능한가 해서요."
" 잠시만 기다리세요."
신혜씨는 스케줄을 확인하더니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이번 분만 끝나면 가능합니다. 우선 옷을 입고 기다리세요."
" 네."
나는 내 이름표가 붙여진 슈트 앞으로가서 꺼낸 뒤 어렵게 옷을 입었다. 다시 스위치를 누르려니 아침의 그 고통이 생각났지만 순간적인 고통쯤이야 하는 마음에 다시 눌렀다.
" 크윽!!"
온몸을 뚫고 지나가는 이 고통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온 몸에 슈트가 붙은 것을 느끼고 천천히 연습실로 들어갔다.
" 이제는 걷는 것에 익숙해지셨군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 네.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해야죠."
" 흠.."
나는 사람이 빠진 연습실로 들어가 빠르게 걷거나 뛰는 것은 연습했다. 내가 내 근육을 쓰는 것과는 다르게 힘 조절이 어려웠기 때문에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을 반복하기를 몇 시간이 지나서야 비교적 자유로운 움직임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꽤 긴장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라 내 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 적응속도가 빠르시네요."
" 감사합니다."
" 최대 30배라고 했지만 평소에 낼 수 있는 평균은 10배 정도에 불과합니다.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듯 움직이려면 중사님의 체력도 달련을 해야하는 것을
명심하세요."
" 네."
" 처음부터 무리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벽에 붙은 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괜히 내 고집으로 식사를 놓치는 것이 싫어 슈트를 벗고 연구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 허억.."
" 아프죠?"
" 응. 장난이 아니네. 적응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다."
" 에구.."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오랜만에 은혜는 안마를 해줬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안마의 실력보다 해주는 사람의 마음 때문인지 은혜의 안마가 멀쩡했던 사회에서 받던 스포츠마사지보다 효과가 뛰어난 것 같았다.
" 끄엑!!"
" 이래야 근육이 풀리니 참아요!"
" 확실한 거야?"
" 글쎄요.."
은혜는 내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무식할 정도로 힘을 줬고 손아귀 힘이 쎈 편인 은혜가 누르는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 아프니까!!!!"
" 알았어요!!"
말은 알았다고 했지만 엎드려 있는 내 위에 올라탄 은혜를 뒤집기란 현재 내 체력으로는 무리였다. 난 몇 분을 더 끙끙거리고는 식사를 시작한다는 방송을 듣고 풀려날 수 있었다.
" 몸은 좀 어때?"
" 죽을 맛이야. 형은 오후에 또 갔다며?"
" 응. 난 아직은 멀쩡해서."
" 부럽다."
" 그래서 무기고에서 안 보였구나."
" 아직은 무기를 고를 생각이 없어서. 나중에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고 선택해도
늦이 않을 것 같아서."
" 뭐 우리도 딱히 고른 것은 없어."
" 기태는?"
" 아까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 그 자식도 많이 피곤한가봐?"
" 우리와 다른 훈련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전술 쪽으로.."
" 리더 역활인가?"
" 응??"
" 능력 자체가 우리와 다르니 거리를 두고 우리를 지휘할 수 있잖아? 솔직히
그런 리더가 필요하기도 하고. 전체적인 전략을 짜서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많은 수의 감염체를 제거할 수 있으니까."
" 흠.."
다들 음식을 입으로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가 상대해야하는 적은 인간이 아닌 존재. 감정이 없는 존재를 상대해야 하니 그에 맞는 작전이 필요 했다.
" 어라? 기태 온다."
" 와우.. 얼굴이 반쪽이 됐네."
" 힘들어.."
" 넌 뭐하는데?"
" 나도 기본적으로 슈트를 입고 훈련을 하고 있고 감염체를 효율적으로 상대
하기위한 전술도 배우고 있어. 외울 것이 너무 많아."
" 이제 와서 머릿속에 뭘 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 하암. 엄청난 양의 공부거리도 줬어."
" 다행이다. 내가 아니라."
다들 측은한 표정으로 기태를 바라봤고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식사를 끝내고 건물 중앙에 마련된 인조잔디가 깔린 곳으로 갔다. 간이 테이블과 약간의 차와 음료가 마련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실내에 마련된 야외형태의 카페처럼 꾸며놨고 우리는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앉았다. 여자들은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을 보고 있었고 남자들은 훈련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 그런 신기한 슈트가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
" 음모론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네."
" 저런 것이 있다면 빨리 개발해서 썼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 쉽지 않았을 걸. 부작용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물건을 쉽게 사용할리 없잖아.
지금은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무리해서라도 사용하겠지만 만약 멀쩡한
시절이었으면 사용하기까지 엄청 오래 걸렸을 걸?"
" 하긴.. 우리 전에도 많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입는다고 틀려지려나?"
" 모르지. 그래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익숙해지더라도 조심하자고."
" 밖에 나갈 수 없어서 답답한 것 빼면 이곳도 그리 나쁜 곳은 아니네."
" 응. 그래도 가끔은 햇살을 느끼고 싶은데."
" 쿵!!!"
" 응??"
순간적으로 느껴진 미약한 진동 후에 전등이 나갔다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 현재 저희 위치 근처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순간
적으로 정전이 될 수 있으니 가급적 지정된 방에서 있을 것을 권합니다."
" 하아.."
" 태풍으로 철책이 무너지지는 않겠지?"
" 모르지.."
" 왠지 무섭다."
" 다들 방으로 들어가자. 아직 이곳 지리에도 익숙하지 않은데 괜히 정전이라도
된다면 방 찾아가는 것도 힘들 것 같다."
" 그래."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고 가장 가까운 나와 은혜가 가장먼저
방에 도착했다. 은혜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물었다.
" 무슨 책을 그렇게 봐?"
" 아.. 그냥 소설책이예요. 로맨스."
" 아... 제목이 영어네?"
" 내용도 영어에요."
" 앵??!!"
난 은혜가 가지고 있는 책을 뺏듯이 낚아채고 내용을 보니 한글은 한 글자도 없는 순수한 영어로만 써져 있는 나는 절대 읽을 수 없는 글이었다.
" 자기.. 이걸 읽을 수 있어?"
" 가끔 모르는 단어가 있기는 한데 내용을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니에요."
" 대단하다..난 절대 모르겠는걸."
" 풋."
내 말에 살짝 웃음 짓고는 다시 책을 건네받은 은혜는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물어본 적도 없고 알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매번 첩첩산중에서 지내거나 공항에서도 집 보다 밖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은혜를 뒤로 한 채 샤워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어렵지 않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굉장히 운 좋게 편하게 생활했다는 알았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 다니는 현실이지만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만 살기위해 발버둥 쳤던 사람들이 생각나 미안한 감정이 사라지기도 했다.
" 젠장..."
복잡한 마음을 잊기 위해 뜨거운 물을 받아 욕조 안에 누웠고 아무 생각 없이 욕조 천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