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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온 나는 그대로 들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 부웅!!"
" 크엑!!"
" 쿵!!"
내가 휘두른 칼로 인해서 모래바람이 일어났고 사정거리에 있던 감염체들이 모두 몸과 머리가 분리 되었다. 보통 이런 장면을 봤다면 평범한 인간이라면 겁에 질려 물러났겠지만 적은 인간이 아닌 감정이 없는 감염체에 불과했다. 앞에서 죽어가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감염체를 상대로 나는 단순하게 베는 것을 위주로 앞으로 전진해갔다. 예전과 다른 감각과 힘으로 밀어 붙이니 많은 숫자이지만 어렵지 않게 제거해 갈 수 있었다. 초 진동 커터 칼의 위력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힘이 늘어난 것을 체감할 수 없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어렵지 않게 감염체를 상대하는 것에 만족했다.
" 대단하군요."
" 기대 이상입니다."
" 지금까지 실험체중 가장 성적이 뛰어나군요."
' 실험체?'
난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듣다 실험체라는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여기서 따지고 들면 내 능력이 발각될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일부러 신체검사에서도 내 능력보다 낮게 나오려고 노력했던 것이 허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는 척을 하고 다시 감염체를 베어갔다. 수백이 넘는 감염체는 불과 30분도 채 안 돼서 남은 숫자가 얼마 되지 않게 되었고 나는 손쉽게 남은 감염체를 처리하고 다시 철책을 넘어 연구원들 곁으로 다가갔다.
" 수고하셨습니다."
" 아닙니다. 슈트의 도움이 컸습니다."
" 그래도 가장 빠른 발전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감염체를 모두 제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되는 군요."
" 저 혼자 제거해봐야 얼마나 제거한다고 그러십니까? 다른 사람들도 같이 해야
예전과 같은 사회를 만들 수 있겠죠."
사람들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지만 나는 조금 전에 들은 기분 나쁜 소리로 인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크게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도 우리를 그냥 실험체로 보는 상황에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고 신용이 가지도 않았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건물로 돌아갔고 훈련장에 슈트를 벗어 놓고 방으로 돌아갔다.
식사시간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내가 슈트를 입고 감염체를 제거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내 주변에 몰려들며 슈트를 입고도 움직일 수 있는 요령을 물어봤고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었다.
" 이제 식사를 하도록 두시죠. 벌써 몇 번째 입니까?"
은혜가 옆에서 목소리를 낮게 깔고 무섭게 노려보며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했고 은혜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꼬리를 내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만약 은혜가 아니었다면 내가 먼저 폭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물러나자 우리 일행들이 내 옆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재효를 제외하면 기태와 훈이도 움직임에 익수해져 간다고 했다.
" 힘들다."
" 내일은 쉰다고 했으니 다행이네."
" 일주일 내내 할 줄 알았는데 쉬는 날도 있네?"
" 역시 선진국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주 5일을 지키다니."
기태가 비아냥거리며 말을 했고 다른 일행들도 웃으며 식사를 했다. 휴식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쉬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몸을 늘어지게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어진 휴식이니 집에서 푹 쉬기로 했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나가는 것은 허락이 되지 않았다. 괜히 나갔다가 감염체를 자극해 숫자만 늘릴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 외부로 나가는 것이 허락된 인원은 경계를 위한 인원 몇 명만이 허락되었다. 물론 옥상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미리 허락을 구한다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경계를 서는 인원에게 양해를 구해 밖을 보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해가 지면서 만들어진 노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염체 무리들이 계속해서 철책을 흔들고 있었다.
" 저 철책도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 큰일이군요.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뭐 마지막 철책은 꽤 단단하기 때문에 버티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저것들이 저 철책을 뚫는 다고해도 남은 철책은 4개나 있고 건물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식량이겠죠."
" 혹시 식량은 남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까?"
" 정확한 양은 모르지만 소문에는 일 년은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 어디서 경작이 가능한 곳이 있나 봐요?"
" 아직 미국은 안전지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워낙 땅이 넓고 평지가 많으니
방어에 유리한 곳이 많겠지요. 군사 강국이었으니 대응도 쉬웠겠지만 총을
솔 인원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 흠.."
" 저희도 대부분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저희가 버틸 수 있는
최대 시간이 1년도 채 안 된다는 것을.."
" 네.."
" 조만간 대규모 공격계획이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 제가 한국 공항에 있었을 때도 공격을 했지만.. 변종 감염체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도 알 수가 없네요."
" 이곳은 뭔가 다르겠지요."
" 이제 내려가실 시간입니다. 저희도 다른 곳을 점검할 곳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 뭘요.."
나는 근무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내려갔고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본체력과 근력이 좋을수록 슈트를 입고 나오는 힘이 늘어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였고 나도 따라서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을 키우는 일보다 체력을 늘리는 것에 집중했고 어차피 제대로 된 코치도 없는 상황에 무식하게 운동을 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 허억..허억.."
낮에는 우리 외에 사람들이 사용을 하고 오후에는 슈트를 입는 인원이나 근무자들을 위해 가급적 사용을 자제한다는 암묵적이 규칙이 있었다. 열심히 운동에 집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태와 박 중사가 보였다. 박 중사는 진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의 근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 오랜만이네?"
" 응?! 재원이구나! 소문이 자자하던데?"
" 보자마자 그 소리냐? 요새 어때?"
" 뭐 비슷하지. 근무를 서고 경계를 서고 근무를 서고.."
" 그 말이 그 말 아냐?"
" 그 짓이 그 짓이다 인마!"
" 하하!"
박 중사도 무척이나 지겨웠나보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운동을 했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 우리도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 미란이가 잔소리하겠다."
" 잡혀사는 군."
" 형도 조심해. 미란이 말로는 은혜가 잠자코 있는 것뿐이지 쌓아둔다고 하던데?"
재효의 말에 등에 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요 근래 소홀하기는 했지만 다른 곳에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없지 않았지만 내색을 안 하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은혜는 꽤 쌓인 것이 많았나보다. 쉬는 날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줘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이미 씻고 잘 준비를 하는 은혜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들어온 모습을 보자 온화한 웃음으로 나를 반겼고 나는 가볍게 은혜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자 은혜는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다. 평소라면 은혜와 사랑을 나눴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행위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 요새 심심하지?"
" 뭐..자기가 바쁘니 어쩔 수 없죠."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느낌은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 미안해요. 내가 너무 한 곳만 생각했나 봐요.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랑
생활하는데 자기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
"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섭섭한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나봐?"
어두운 방안이었지만 은혜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은혜를 안아주고는 등을 토닥이며 말을 했다.
" 캠프를 지키고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 미안해요.."
" 내가 미안하지."
" 하지만 자기는 해야 할 일이 있자나요. 저는 그런 것도 없고."
" 자기가 가장 중요한 위치지. 내 옆에 있어야 하는!"
" 말은 잘해요!"
" 하하!"
" 생각해보면 자기와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안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래?"
" 자기 내가 영어가 유창하다는 것도 이곳에 와서 알았죠?"
" 응.."
" 난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도 보통 연인처럼 그 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뭘
했는지 잘 알지 못해요. 자기도 마찮가지고요."
" 하긴..."
" 앞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 너무.. 이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요. 가끔 살벌할 때도 있어요. 이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 죽어가는 것도 무뎌지고.. 세상이
변했지만 우리 둘 사이는 변하지 말았으면 해요."
" 그럼!"
은혜가 계속해서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 변명할 말이 없었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껏 하지 않았던 식구들이야기. 지내왔던 이야기 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내 품에서 몸을 말고 잠이 든 은혜의 모습이 보였다. 큰 키는 아니지만 귀여운 모습이 상대적으로 덜한 외모였지만 잠버릇을 보고 있으면 마냥 귀엽기만 했다.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고 옆으로 누운 모습으로 평온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했으니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아침을 먹으라는 방송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점심이 한참은 지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 몸이 개운한데?"
" 오랜만에 푹 잤어요!"
" 자기 잘 자던데?"
" 풋! 자기는 코까지 골면서 자던데요?"
" 그래??"
" 아직까지 익숙해지기 힘든 소리란 말이예요!"
" 미안미안! 피곤하면 어쩔 수 없어."
" 으구!!"
은혜는 거실에 마련된 휴대용 가스버너를 이용해 뜨거운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실내 온도는 생활하기 편한 온도로 자동적으로 맞춰졌기에 덥거나 춥지는 않았지만 뜨거운 커피 한잔의 여유는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 카아!! 역시..."
" 자기는 이 커피를 참 좋아해요."
" 아직 입맛이 어른이 아닌가봐. 난 아메리카노나 드립커피는 영.."
" 달지 않아서 싫죠?"
" 잘 아는구만!"
내 말에 은혜는 미소를 지어보였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워 껴안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 은혜가 살아왔던 이야기등 서로를 알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방송으로 다시 저녁을 먹으라는 방송이 나왔고 아침과 점심을 굶은 우리는 저녁까지 굶을 수 없었기에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이미 도착한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와 은혜는 미란이와 재효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 낮에 안 왔던데?"
" 늦잠을 잤어. 오후에나 일어났거등."
" 밤새 뭘 한 거야?"
미란이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난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같이 지낸 시간은 오래됐지만 서로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고. 지금까지 나만 생각해서 너무 소홀한 것 같아서."
" 뭔가 깨달음이 있었군."
" 응."
" 그래도 누구처럼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네."
미란이가 재효를 노려보며 말했다. 재효도 둔한 편은 아니었지만 미란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정도는 아니었나보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였지만 나는 꽤나 집중을 하고 들었다.
그 동안 밥을 먹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듣고 넘겼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대화를 이끌었다. 가끔은 내 능력을 올리기 위해 감염체를 제거하기 위해 이들을 잊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했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조잔디에 마련된 야외용 테이블에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은 우리들과 달리 여자들은 그런 기회가 적었기에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도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고 준장님이 찾는다는 말을 전했다.
" 오늘은 쉬는 날이니 내일 보겠습니다."
" 준장님의 말입니다. 명령입니다."
" 긴급 상황도 아니고 쉬는 날에 이유도 모른 채 부르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고
들을 정도로 제가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일어서서 그 남자 앞에서 말을 했다. 나보다 큰 키에 체격도 다부졌지만 난 굽히지 않고 고개를 들고 말을 했다.
" 당신은 중사입니다. 준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따라야 정상 아닙니까?"
" 평소라면 그렇죠. 같은 말 계속하게 만들지 마시고 쉬는 날 용건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직접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명령 불복종 입니까?"
" 명령이라... 사적인 시간에도 별 일도 아닌 것으로 명령이라뇨.."
내가 으르렁 되며 말을 하자 당황한 표정으로 박 중사가 말려왔다.
" 너 답지 않게 왜 싸우고 그래!"
" 준장님이 부르시니 가봐!"
" 내가 동내 개냐? 부르면 가고 가라면 가냐?"
" 재원아!"
" 내가 그랬지? 난 군대 명령권에 익숙하지도 익숙해지기도 적응하고 싶지도
않아.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쉬는 날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고."
내가 다시 앉으며 말을 했고 준장님의 말을 전하러 온 사람은 포기하고 말을 했다.
" 이번일 확실하게 보고 할 것입니다. 각오하시죠."
" 각오는 누가 할지 생각해봐. 난 솔직히 이곳을 나간다고해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 내가 이곳에 잠자코 네 녀석들 실험체가 되어도 잠자코 있는 것은.. 내
친구들때문이야."
내가 실험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자 녀석의 표정이 변했고 녀석도 몸을 돌려
우리 곁은 떠났다.
" 무슨 자신감이냐?"
" 두고 봐. 난 절대 온순한 야수가 될 생각이 없으니."
내 말에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