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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하지만 예상 외로 잠시 후 준장이 직접 찾아왔다. 난 굉장히 화를 낼 것을 대비해 준비를 했지만 준장은 웃으며 말을 했다.
" 하하! 내가 실수를 했군. 하긴 쉬는 날까지 부르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 ..... "
" 미안하네. 그래서 내가 직접 왔다네."
" 무슨 일이십니까?"
" 별일은 아닐세. 우선 앉게나. 단 둘이 이야기 하고 싶은데?"
" 그럼 저희가 이동하죠. 두 명 때문에 이 많은 인원이 움직이라고 하는 것은
별로니까요."
" 알겠네."
준장님과 나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조금 전 나에게 호출을 말했던 남자는 나를 계속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나는 준장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 무슨 일이십니까?"
" 우선 소문은 들었네. 일주일도 안 돼서 슈트를 입고 밖에 감염체를 제거했다고
들었네."
" 네. 맞습니다만."
" 지금까지 자네처럼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은 없었네. 그런 자네가 슈트를 입고
전투를 하기보다 치료제와 무기 개발을 위해 다른 곳으로 투입이 되었으면
하네. 강제적으로 변경을 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자네 생각을 듣고 싶다네."
" 흠.."
" 큰 위험이나 체력적 부담도 없고 오히려 슈트 전투원 보다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장담하지."
꽤 솔깃한 정보였지만 믿음은 가지 않았다. 저번에도 연구원들이 나를 지칭하던 실험체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지금 준장님이 하는 말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항체가 있다는 확신도 없는데 무슨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이고 내가 뭘 잘한다고 무기 개발에 투입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인지 의심 가는 말이었다.
" 개인적인 생각은 저는 슈트 전투원이 좋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무기 개발이나 이런 쪽으로 간다면 다른 사람 눈에도 좋게 보일 리 없습니다."
이미 준장에게 한 짓이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기로 했다.
" 흠.. 그런가?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 우선은 슈트에 완벽 적응을 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면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치료제야 어차피 제 피를 양껏 뽑아갔으니 부족하면 말씀하시고
제 생각은 차라리 제가 나서서 감염체를 죽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아쉽군."
" 완벽한 거절은 아닙니다. 우선 슈트 전투원으로 활동을 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쌓고 준장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바꾸겠습니다."
" 그때도 그 자리가 있다는 보장은 없네."
" 뭐 그럼 그것이 제 운명이겠죠. 하지만 지금은 저는 절대 감염체를 제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나?"
"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 알겠네.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내 방으로 찾아 오게."
" 감사합니다."
준장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나도 내 행동을 조금은 후회했다. 아무리 내가 싫다고 해도 명목상 현재는 중사라는 계급을 달고 있고 군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상황이다. 남들이 보기에도 무척이 좋게 보일 리 없는 행동이었지만 우리 일행 외에는 보는 사람도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 내 능력을 알기에 배짱을 튕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만약 고분고분하게 나가면 나는 분명 동물원 안에 호랑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었지만 생활은 부족함 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야생의 배고픈 호랑이가 낫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약간은 삐딱하게 나간 것이다. 이일로 쫓겨날 것까지 각오했지만 은혜와 다른 친구들 생각에 후회도 밀려왔다.
" 괜히 삐딱선 탔나?"
건물 옥상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고 준장님 없는 옥상은 근무자들이 몰려와 나를 끌어내렸다.
" 서럽군."
다시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왔고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었다.
" 뭐 이상한 연구에 동참하자는.."
" 그 분 외모와 다르게 비열한 면이 있다고 했는데."
" 뭐 외모로 판단을 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서 거절했어."
"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냐?"
" 그래도 나름 성적이 좋은 편이니 바로 해코지는 하지 않겠지만 뭔가
제재를 가하거나 삐딱하게 나가겠지."
" 흠.. 너도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우선 그 성격부터 고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가끔씩 형이 그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다고!"
" 건강에도 좋구만 뭘.."
" 말이 되는 소리로 핑계를 대라고!"
" 참네.."
" 너희 둘 정말 친형제 같다."
" 뭐 알고 지낸 시간은 오래 되지 않지만 마음이 잘 맞아서 잘 붙어 다녔으니."
" 그래서 재효 오빠가 오빠한테 몹쓸 것만 배워서.."
" 내가 무슨 몹쓸 것을 알려줬다고?"
" 있어 그런게!!"
" 참네."
나는 뜨거운 커피를 입에 넣고는 미란이를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는 그래도 살이 붙어 있었는데 먹는 것이 부실하다보니 은혜와 비슷하게 야위어 가는 모습이었다. 꽤 안쓰러웠지만 이곳이 아니었다면 이미 다들 한참은 굶고 있었을 상황이었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다른 생존자들에 비하면 정말 호화 그 자체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라 별 말없이 지금까지 쉽지 않은 생활을 잘 헤쳐 나온 것이다. 물론 상황파악 못하고 징징되는 것도 있었지만 금방 제 정신을 차리는 모습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 내일부터 다시 훈련이네."
" 하아.. 골병 나겠군."
" 형은 이제 뭐해?"
" 이제는 움직임에 무리가 없으니 외각에 있는 감염체를 제거하지 않을까 싶어.
철책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놈이라도 더 없애야지."
" 은혜도 생각을 해."
내 옆에서 속삭이며 재효가 말을 했고 재효의 말을 듣고는 무의식중으로 바라본 은혜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그리고 의지할 사람이 내가 전부인 은혜는 내가 위험한 곳으로 나가는 것을 당연히 반기지 않았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꺼려하는 것이 표정에서 나타났다.
" 뭐. 그래도 몸은 사려야지. 내가 봉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 몸 불살라
감염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니까. 최대한 몸 사려야지. 눈치껏 행동을 하면서
여기 분위기도 파악을 하고."
" 이곳이 마음에 안 들어?"
" 글쎄...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다는 느낌? 의심도 많이 들고."
" 무슨 의심?"
"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지만 다른 국가의 연구원들이 이렇게 많은 것도
이상하고 마치 이곳은 이런 상황이 터질 것을 염두하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 아직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 지금까지 너무 신경쓰면서 살아와서 괜한 느낌일 수 있어. 솔직히 이런 사태가
발생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견고하고 튼튼하게 짓거나 다른 많은 기술자들이
이곳에 있었겠지.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가능할 수준의 인력과 기술자들을
모아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 하긴.. 네 말을 들어보니 괜한 생각일 수 있겠네."
" 흠.."
계속해서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이어가기에는 은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표정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자자!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은혜야! 도서관에 책 중에서 한글로 된 것은
없는 거야? 순 영어로 된 책 뿐이던데."
" 네?! 아!! 몇 권 있기는 해요. 기술서적이나 뭐 그런 것들은 몇 개 있던데요?"
" 그럼 은혜는 영어로 된 책을 읽어? 대단한데?!"
" 우와.."
" 아..아니.."
순식간에 은혜에게로 이야기가 쏠려갔고 정신없이 질문들을 퍼부었다.
" 대단하네? 순식간에 화두를 돌리다니?"
언제 옆으로 왔는지 미란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 뭐.. 이 정도 임기응변쯤이야."
" 잘 좀 챙겨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무리 은혜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야."
" 하아.."
요새 만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같이 있어도 예전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 권태기인가.."
" 권태기라기보다 오빠가 소홀한 거야."
" 하지만!"
" 하지만이 아냐. 은혜는 단순한 면이 있어서 자신을 바라보고 믿어주는
사람에게 빠지는데 처음과 다르게 오빠는 점점 변해가고 바쁘다는 핑계로
의미 없는 이야기만 하고. 요 며칠 잘해보려고 했지만 다시 원점인거 알아?
노력을 하란말야! 노력을!"
" 에구.."
" 떠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란 말야."
"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군."
" 은혜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더 우울해 할 수 있어. 아무리 내가 그 시간을
채워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 가능하면 오빠가 그 시간을 채워야해. 솔직히
오빠는 너무 쉽게 미인을 얻었어."
" 그런가.. 하하!"
" 웃지만 말고 심각하게 받아들여!"
" 알아! 알아!"
" 가끔은 이기적일 필요도 있단 말야. 너무 받아만 주는 남자도 매력이 없어."
"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 새겨들어."
" 그래.."
나는 미란이의 충고에 잠시 생각에 잠겼고 생각에 잠기는 내 모습을 보는 은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바라보지는 않았다. 시간은 흘러 다들 방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고 나와 은혜도 팔짱을 끼고 방으로 돌아갔다. 도착하는 내내 말없이 걸어왔고 방에 들어와서도 씻으러 간다는 말 외에는 대화가 없었다. 마치 냉동실에 들어온 것 마냥 쌀쌀해진 우리의 감정은 점점 더 얼어 붙어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 너무 얼어버릴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생활하는 방식의 잘못이 컸다. 애써 밝은 척을 하는 은혜의 모습을 보고 정말로 밝게 생활한다고 착각에 빠져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 은혜야..?"
" 네??"
씻고 나온 은혜에게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고 나는 침대에 앉고는 은혜에게 옆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은혜는 표정변화 없이 내 옆으로 와서 앉았고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했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내며 지금까지 은혜가 나에게 실망했던 것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물어봤다. 처음에는 꺼려하며 말을 하지 않았던 은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생각보다 쌓인 것이 많았던 것인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말에 제대로 대꾸조차 못했다. 결국은 흐느끼며 말을 하지 못하는 은혜를 안고 토닥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미안해요. 너무 내 생각만 했네요."
" 아냐.. 내가 미안하지. 쌓인게 많았네."
" 그래도 울고 나니 조금은 편해졌어요."
" 앞으로는 울리지 말아야 하는데.."
" 피! 그래놓고 맨날!"
" 미안 미안! 나이가 들어도 능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네."
" 이런 건 능숙해지면 오해 받아요."
" 하하!"
짧은 시간에 숨까지 헐떡이며 울던 은혜는 부어오른 눈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러고 우리는 말없이 꼭 껴안고 침대에 누웠다. 때로는 많은 말보다 한 가지 행동이 진심을 전한다는 것을 믿었다. 은혜는 멈추지 않은 딸꾹질을 하며 내 품에서 서서히 잠이 들어갔다. 은혜의 고요해진 숨소리를 듣고는 나는 방을 나갔다. 경계병의 양해를 구하고 옥상에 올라 달빛에 보이는 감염체를 바라봤다. 언제까지 뜸들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서서히 내 힘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공포를 심어주기로 했다. 말 잘 듣는 진화인간인 아닌 그들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진화인간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뽑아내야 했다. 어차피 이 속도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더 이상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을 때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 슬슬... "
건조한 모래바람을 뚫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은혜 옆으로 들어가 은혜를 꼭 안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은혜와 같이 일어나 아침마다 운동을 다니는 은혜와 함께 헬스장을 데려다 주고 나는 다시 훈련장을 찾았다. 연구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슈트를 입고 훈련준비를 하였고 내 몸에 맞게 개량된 검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했다.
" 부웅!!"
강하게 휘두르는 검을 따라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연습을 하기보다 감염체를 상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연구원에게 말을 했다.
" 이러는 것보다 차라리 밖의 감염체를 상대하겠습니다."
" 아직 상부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는 무리입니다."
" 그럼 지금 바로 물어봐 주세요."
" 조금 더 익숙해지면 가는 것이.."
" 이런 방법보다 실전에서 하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내가 뜻을 굽히지 않자 연구원은 허가를 받기 위해 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잠깐의 통화가 끝나고는 나에게 말을 했다.
"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이제부터 밖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바로 가지요."
" 혹시 모르니 지원부대를 요청 하겠습니다."
" 많은 수는 필요없으니 최소로 부탁합니다."
" 네."
나는 지원부대가 오기를 기다리며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10명의 지원부대와 함께 건물 밖을 나갔다. 내 상태체크를 위한 노트북을 가진 연구원 한 명과 보조 연구원 한 명. 그리고 지원부대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가 감염체가 많이 몰려 있는 철책으로 갔다.
" 그어어어!!"
" 쿠오!!"
살아있는 인간을 보자 흥분한 감염체들의 움직임이 거칠어 졌고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남들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중얼 거렸다.
" 시작이군."
나는 철책을 넘기 위해 뛰어서 강하게 도움닫기를 하고 감염체 무리에서 약간은 떨어진 곳에 착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