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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준장은 다른 중대장들과 무언가를 열심히 말을 하고는 솔직히 말하면 지시겠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속속 건물에서 무기를 꺼내왔고 부족한 탄약을 채워 넣었다. 간단하게 초코바를 챙겨먹고 허기를 때웠고 가설 벽 넘어 넘어진 철책을 보수하고 최대한 감염체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작업을 했다. 이제 해가 지고 하늘에는 샐 수 없을 만큼의 별이 뜬 상태였다. 하지만 언제 감염체가 밀고 들어올지 몰라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늦은 밤에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 그쪽으로 더 설치를 하십쇼!”
“ 저쪽에 파이프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 이곳도 부족하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 철조망 남은 것 있는 팀 있습니까?!”
“ 여긴 없는데..”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며 시설을 보수하고 있었다. AVT를 이용하여 주변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남아있는 감염체를 정리했고 무전병들은 계속해서 다른 구역과 소통을 했다.
“ 지금 B구역이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우세하지만 숫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 그래도 그곳은 입구가 좁아서 방어는 수월할 텐데?”
“ 지상에서 밀린 것이 아니랍니다.”
“ 응??”
“ 지하 통로를 이용해서 이동했다고 합니다.”
“ 말도 안 돼! 지하 통로에는 강철 격벽으로 폐쇄가 가능한데?”
“ A구역에서 폐쇄를 못했다고 하더라도 B구역에서 가능한데?!”
“ 아직 정확한 내용은 받지 못했지만 지상보다 지하를 이용해서 이동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 어떻게...”
“ 지금 당장 내려가서 격벽을 폐쇄하고 격벽 중간에도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이동을 막는다!“
“ 중대장님 저희는 H구역입니다! 여기까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일찍 막았다가는 다른 구역의 피난도 막는 셈이고 저희 스스로 막다른
길로 가는 명령입니다!“
“ 우선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인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아직 제대로 밀린 상황도 아니고 감염체가 다가온 것도 아닌데 지래 겁을 먹고 유일한 지하 통로를 막는 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다간 무덤을 파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중대장은 얼굴까지 붉어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 준장님의 명령이다! 다른 구역과 격벽으로 폐쇄하라는 명령이다!”
“ 왜 지래 겁을 먹고 행동하는 겁니까?!”
“ 유비무한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다!”
“ 이것은 준비가 아닙니다!”
“ 말이 많다! 준장님의 명령이다!”
하지만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팀들은 무시하며 자신들이 하던 행동을 계속해서 했다. 그들이 생각해도 준장의 명령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 스스로가 무덤으로 뛰어드는 행동을 하는 명령을 들을 리가 없었다. 중대장은 더 큰 소리로 우리를 다그쳤지만 다들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 군법으로 처벌..컥...”
“ 말이 많네.. 여기 군인이 얼마나 된다고..”
덩치가 꽤 좋은 남자가 중대장의 배를 강하게 치고는 다시 돌아섰다. 생각해보면 여기서 생활하는 인원 중 제대로 된 군인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다. 우리 일행들 반 정도도 무늬만 군인인 상태였으니 저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 과격한데?”
“ 죽더라도 남 때문에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 우선 대충 부비트랩이랑 철책은 손을 봤으니 경계인원을 제외하고 들어가도록
하죠.“
“ 그럴까요?”
명령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준장이 명령권을 받았다고 했으면 우리 주변에서 납득할 만한 명령을 했어야 하는데 안전한 곳으로 숨고는 중대장이 우리를 명령한다면 우리가 고분고분하게 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건가?
“ 뭐 하는 짓인가?!”
“ 준장님..”
언제 나왔는지 준장이 나와서 우리를 매섭게 노려봤다. 아마도 자신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 준장님의 명령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명령은 저희를 사지로 모는
행동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겨우 B구역에 공격을 온 것인데 H구역인
저희가 벌써 격벽을 막는다고 하면 다른 구역과 단절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조금 전 중대장의 배에 시원하게 펀치를 날렸던 남자가 준장 앞에 똑바로 서서 바라보고 말했다. 준장도 자신의 명령이 너무 과한 것을 알았는지 바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 흠.. 내 실수를 인정하겠네. 적어도 G구역에 감염체가 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버티도록 하고 감염체 제거를 우선으로 해서 숫자를 줄이는 것으로 하겠네.“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네.. 이름이 뭔가?”
“ 이 문섭이라고 합니다.”
“ 기억하겠네.”
“ 영광이군요.”
약간 비꼬는 말투로 응수를 하고는 팀별로 제비뽑기를 해서 경계 순서를 정했다. 우리는 운이 없게도 중간에 지정이 되었고 주변을 정리하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 우선 대충 씻고는 한 곳으로 모여 자도록 하자. 우리 숙소를 전번 근무자에게
알려줄테니 방부터 정하자.“
“ 가장 입구에서 가까운 방이 박 중사 방이니 그곳으로 할까?”
“ 뭐.. 나는 상관이 없어.”
“ 여자들은 입구에서 가장 먼 내 방에서 모여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 그래. 재원이 방이 가장 입구에서 머니까 그곳으로 하고 혹시 모르니 한 명은
그 방에서 같이 있도록 하자.“
“ 앵? 다 안 나가고?”
“ 여자들만 있는 방이라는 것을 알고 몹쓸 짓을 하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 놈들을 대비해야지. 지금까지 감염체도 무섭지만 같은 인간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잖아?“
“ 하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으니.”
“ 우선 씻고 모이자.”
“ 그래..”
우리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 땀에 쩐 옷을 갈아입기로 했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역시나 걱정스럽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은혜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최대한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다녀왔어. 많이 걱정했지?”
“ 다친 곳은 없어요? 밥은요? 배는 안고파요?”
“ 하하! 걱정마! 다친 곳도 없고 배도 그렇게 안고파.”
“ 방송으로 비전투원은 방안에서 대기 하라고 하던데.. 방으로 비상식량을 직접
배달해 주던데요?“
“ 그래? 별일은 없었고?”
“ 네. 긴급한 일이 아니라면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해서.. 그리고 대령님이 다녀
갔어요.“
“ 대령님이?”
“ 네. 복구하면 잠시 들르라고 하던데요?”
“ 무슨 일이시지..”
“ 급한 것은 아니라고 했으니 우선은 쉬고 있어요. 샤워부터 하고요!”
“ 응! 샤워부터 하고 나올게요.”
“ 네!”
나는 뜨거운 물을 틀고 온몸의 불순물을 씻어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샤워를 끝내고 방을 나왔다. 은혜는 이미 짐을 쌓고 피난을 준비하고 있었다.
“ 벌써부터 준비한 거야?”
“ 혹시 모르니까요...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요.”
“ 아직 모르는 거야. 그리고 오늘부터 다른 여자애들도 이곳에서 잘거니 방을
정리해두고“
“ 아.. 저희 만요?”
내심 불안했는지 내게 물었다.
“ 우선 재효를 이곳에서 머물게 할꺼야. 혹시 모르니까.”
“ 네..”
“ 너무 걱정 하지마. 재효도 절대 약하지 않으니까.”
“ 네. 자기가 있는데 뭘 걱정해요.”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약간은 가슴이 아팠다. 나를 굳게 믿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 확신을 줄 수 없는 것이 슬펐다. 방을 최대한 넓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는 것에 불편함이 없게 만들었고 미란이와 보미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 재효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박 중사 방으로 갔다. 박 중사 방은 성격에 맞게 무척이나 깔끔했다. 우리도 무기를 점검하고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왜 우리는 어디를 가나 명령체계가 제대로 된 곳이 없냐?”
“ 에휴...”
“ 우리도 잘못이 있지.”
“ 우선 사람들이 남을 믿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지. 이미 한국은 쑥대밭이 된 상황에 갈 곳도 없고
살아남을 희망도 점점 줄어드니 죽기 전에 자신의 신념과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 참네..”
“ 그리고 이제는 단순한 감염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 전술을 펼칠 수 있는
명령권자가 있는 감염체라는 것이 문제지.“
“ 명령을 내리는 녀석만 잡는다면 무서울 것이 없는데. 이곳 무기도 상당히
효과가 좋잖아?“
“ 그렇기는 한데.. 도대체 왜 A구역은 밀린거야?”
“ 방심한 것 아닌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구도 좁은 곳으로 일렬로 밀고 들어오는 감염체를
제대로 상대하지도 못하고 밀렸다?“
“ 일본 쪽 구역이라고 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신중한 성격 아닌가?”
“ 알 수가 없군.”
“ 현재 B구역은 밀렸다고 했나?”
“ 우선 막아내기는 했다고 들었어. 방벽을 막고 중간 중간에 부비트랩도
설치했고 최악의 경우 폭파한다고 했는데..“
“ 흠...”
지하 건물 구조는 알파벳 순서대로 A부터 Z까지 26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고 육각형 구조로 주변을 둘러 차례대로 알파벳 순서대로 구역이 정해져 있는 곳이었다. 위에서 본다면 육각형이지만 옆에서 본다면 마지막 Z구역은 나머지 구역보다 더 깊은 지하에 지어져 있는 최후의 보류구역이었다. 이곳은 어떤 국가도 정해져 있지 않은 구역으로 각 구역에서 피난을 가기위해 구역 당 한 개의 통로만이 존재했고 Z구역에서 따로 외부로 나가는 통로의 길이는 수십 킬로미터라고 했다. Z구역의 룰은 간단했다. 그곳에서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밀린 곳의 구역을 파괴하고 신속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잠시 정비를 위한 공간이지 그곳에서 농성전을 펼치기 위해 만든 공간은 아니라고 했다. 혹시나 모를 전투로 인해 생긴 감염자가 감염을 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 하지만 정확한 구역이 어디 있는지 우리는 모르니까.”
“ 뭐...”
“ 도대체 누가 왜 이런 건물 구조를 만들었을까?”
“ 모르지.. 알고 지은 느낌도 있고..”
“ 여기나 저기나 문제가 많구만..”
“ 하음...”
“ 우선 다들 조금이라도 자두고. 상황은 조금 지켜보자.”
“ 그래.”
우리는 넓지는 않지만 각자 잘 곳을 자리를 잡고 누웠다.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지나갔고 우리의 근무 시간이 다가왔는지 전번 근무자가 우리를 깨우기 위해 들어왔다.
“ 일어나십쇼. 20분 후 교대입니다.”
“ 네..”
“ 그럼..”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났고 사막지형이라 한밤중에는 무척이나 쌀쌀했다. 각자 옷을 챙겨 입고 비몽사몽으로 걸어가 지상으로 올라갔다. 쌀쌀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고 달빛도 없는 하늘로 인해서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기태의 능력이 있었기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고 가설 벽을 살펴보거나 철책을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 은근히 쌀살하네.”
“ 온도차이가 너무 큰데.”
“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곳이네.”
“ 하음..”
우리는 긴장감 없이 근무를 섰다. 그도 그럴 것이 기태도 있었고 내 능력도 서서히 살아나는 것을 느꼈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놀랄 일은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 그나저나 그 녀석은 뭘까?”
“ 응?”
“ 감염체에 명령을 하는 녀석..”
“ 글쎄...”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별 생각은 없었다. 그런 녀석이 있지만 우리 상황이 나쁜 것에서 더 나빠진 것 뿐. 이미 개판인 상황에서 더 개판이 되는 상황은 크게 감흥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