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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생각보다 얻을 수 있는 물은 많아 우리가 씻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병원도 없고 제대로 된 약도 없는 상황에 병이라도 걸리면 큰일이었다. 간단하세 손이라도 씻거나 여유가 된다면 샤워라도 하면서 몸의 청결을 유지해야만 했다.
" 다행이네. 물이 생각보다 깨끗하다."
" 응. 비라도 온다면 좋겠는데."
" 다음에 비가 온다면 빗물이라도 받아서 사용해야겠어. 공해도 없으니 바로
먹는 것은 무리라도 끓여서 먹는 다면 먹을 수 있겠지?"
" 뭐.. 일 년 가까이 사회가 멈췄는데 이 정도라면.."
" 갑자기 구름 움직임이.. 이상하네.."
" 날씨가 변덕스럽네."
멀리서 밀려오는 먹구름을 보고 비가 올 것 같았다. 바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것이 꽤 많은 양이 올 것 같았고 우리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물을 받을 수 있는 통들을 구했고 뒤뜰에 마련을 했다. 그 사이 여자들은 이미 씻고 나온 상태였고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창문을 틈새 없이 막고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작업을 했고 우리가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 집은 상당히 큰 편으로 2층 집이었고 느낌에 그냥 평범한 집처럼 보였다. 우리와
생활환경이 다른 나라니 불편한 것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뜨거운 햇빛이라도 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김 중사와 재효가 다른 집을 뒤져 필요한 물품을 구해왔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모습과 함께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 설마..태풍인가?"
" 응? 사막에도 태풍이 불어?"
"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허리케인인가?"
" 젠장.. 바람 봐.."
점점 거세지는 바람으로 더불어 우리의 불안감도 늘어만 갔다. 예전이야 태풍이 온다고 해도 서울에서만 생활했던 우리가 태풍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TV에서만 보던 태풍과 자연의 무서움을 그대로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 창문에 테이프라도 붙여야 하나?"
" 물 뿌려서 신문지라도..."
가지고 있는 태풍 대비 지식을 총 동원을 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본격적인 비바람이 불기 전에 대비를 시작했지만 오랜만에 샤워를 끝낸 일행들은 몸이 늘어져버렸다.
" 늘어진다.."
"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 역시 한국 사람이 살았나 봐요! 고추장도 있어요!"
" 응? 정말?!"
" 저장품도 상당한데요?"
" 와우..."
주방 안쪽에 마련된 찬장 속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보았던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기서 구하는 것은 가격도 비싸니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잔뜩 사들고 온 것 같았다.
" 하하! 오랜만에 부대찌개라도.."
" 그럴 까요?"
" 뭐.. 재료는 대충 있는 것 같으니.."
다들 배고픔과 나른함으로 감염체와 독수리 태풍에 대한 걱정은 저 멀리 날려 보낸 상황이었다.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했으니.
다들 부지런히 남아 있는 식량을 뒤져 요리할 재료를 찾았고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원래 집 주인이 한국 사람이 확실한 듯 한식의 재료가 많은 상황이었다. 쌀도 있는 것이 저녁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들 들떴고 재효와 김 중사는 밥을 먹기 전까지 다른 집을 수색하기로 했다. 나는 박 중사와 밖에서 빗물을 받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었고 점점 강하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 심상치가 않다..?"
" 흠...혹시 모르니 단단히 준비하자."
" 응.."
여자들은 밥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우선 우리가 들어가 창문과 문을 단단히 고정했다. 점점 하늘은 어두워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간간히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고 김 중사와 재효가 집으로 돌아왔다.
" 그래도 많이 구해왔네?"
" 응.. 그런데 집집마다 이런 안내문이 많던데.. 뭐라고 써져 있는지 알아?"
" 한 번 볼까?"
재효가 내민 A4용지에는 그림과 함께 간략한 글이 써져 있었다. 간략한 지도도 보이는 것이 마치 피난을 위한 안내문 같았다.
" 대충 보니까. 감염체를 죽이는 방법과 피난처를 쓴 것 같아. 피난처로 써 있는
곳은.. 우리가 지냈던 곳이네."
" 그럼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겠지. 급하게 이동을 계획했는지 비교적 많은 집들에
남은 식량과 물품들이 많았던 것일 수도 있고. 차고에 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들도 있으니 어디선가 이동 수단을 주고 이동을 시켰겠지."
" 그래서 온전한 집들이 많았군. 그럼 포탄을 맞은 듯 한 집들은 뭐지?"
" 감염체 제거 작전이라도 했나보지. 설마 도망만 가지 않았을 것 아냐?"
" 하긴... 그럼 어디로 간 걸까?"
" 이 안내문은 저희가 있었던 곳만 표시가 되어 있어요. 그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간다고 되어 있는데 어디로 갈지는 안 적혀 있네요."
안내문을 유심히 보던 은혜가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은혜가 영어에 능숙한데 괜히 내가 읽었네. 안내문에 써 있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감염체 사태 초반에 감염체를 피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 별로 소용없는 안내문이네. 하지만 초반에 우리와 다르게 어디론가 전부 피난
시켰네."
" 대응자체가 틀렸군. 그래서 미국에 안전한 구역이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많은
상황인가?"
" 모르지.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그래도 땅이 넓으니 안전한 구역이 많을
확률은 크지."
" 우선 식사부터 하세요. 다 됐어요."
" 그럼 먹어볼까!"
" 맛있는 냄새.."
" 어서 먹자!"
우리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점점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었지만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즐기고 있었다.
" 맛있다!"
" 워우."
" 천천히 먹어요! 아직 많아요!"
남자들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미란이가 말했다. 정말 얼마 만에 먹어보는 얼큰한 국물음식인가? 양도 상당했고 맛도 좋았기에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며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의 식사가 끝나자 집을 뚫을 듯 내리는 비로 정신이 돌아왔다. 정말로 태풍이라도 생성된 것인지 엄청난 양이 쏟아졌다.
" 와... 뭐 여긴 한 번 왔다하면 아주 그냥 쏟아 붓는다."
" 무섭게 내리네.."
" 와아..."
" 이렇게 내리는 건 처음 보는데.."
" 집중호우가 계속해서 내리는 것 같은데.."
엄청난 양의 빗줄기는 점점 늘어만 갔다. 집 안에 혹시 물이 새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튼튼한 집인지 아니면 이런 식으로 내리는 것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것인지 몰랐지만 그래도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 콰광!!"
" 헉!! 폭탄 떨어진 줄 알았네."
" 방금 바로 앞에 떨어진 것 같은데?"
" 후우.."
집 근처에 벼락이 떨어졌는지 집안이 밝아졌다 어두워졌고 바로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바람으로 창문이 흔들렸고 빗소리는 무척이나 크게 들려왔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독수리도 날지 못할 것이고 안전 구역이라 감염체도 다가오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 적어도 비가 내리는 동안은 우리가 휴식을 취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다.
" 비가 많이 내리면 감염체라도 잘 안 돌아 다니니까 오늘은 다들 그냥 쉬자."
" 그래. 그래도 집들이 많으니 우리를 발견하는 것은 시간일 걸릴꺼야."
" 비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네."
"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은 받아진 물을 끓여서 식수나 씻는 물을 저장해 두자."
" 응.. 다들 푹 쉬라고."
" 응.."
방이 4개 있었기에 커플들은 한 방에서 자도록 하고 커플이 아닌 김 중사와 박 중사가 한 방을 쓰기로 했다. 두 중사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애써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을 잘 때 편한 복장으로 자는 은혜는 그동안 같이 생활했기에 약간은 불편하게 잠을 잤고 오랜만에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은혜의 표정은 황홀할 정도였다.
" 그렇게 좋아?"
" 네! 얼마 만에 이런 복장으로 자는 건지.."
" 그래봐야 며칠인데.."
" 그래도 사람이 잠자리가 편해야죠!"
" 하긴.."
" 아웅.. 정말 편하다.."
침대에 몸을 묻고 늘어지듯 누웠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얇은 티 하나를 걸치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새하얀 팔다리와 늘씬한 몸매는 먹은 횟수보다 굶은 횟수가 많은 나날이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 뭘 또 그렇게봐요!"
" 응?? 아냐.."
" 생각도 말아요! 여기 방음도 잘 안 되어 있단 말이예요!"
" 무슨 생각이야? 난 그냥 잘 건데?"
" 풋.."
내말에 어린아이에게 웃어주듯 웃는 모습을 보고 은혜의 옆으로 누워 은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나를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은혜의 살내음을 맡으며 꿈틀거렸다. 그러면서 손은 그녀의 윗옷 속으로 들어갔지만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 여기까지.. 더 이상은 안 돼요."
" 넹..."
가벼운 스킨쉽을 이어가던 중 이상한 느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응?? 왜요?!!"
" 가만히.."
난 침대 밑에 있는 칼을 들고는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는 창문을 통해 밖을 봤다.
문 앞 도로에는 한 사람이 서있는 모습이 보였고 내 뒤에는 기태가 다가왔다.
" 너도 느꼈군."
" 응.."
" 간다!"
" 야!!!"
난 볼 것도 없이 뛰쳐나가 칼을 들고 서 있는 존재를 향해 휘둘렀다. 난 당연히 감염체라고 생각하고 단순하게 내리쳤는데 가볍게 피하는 모습이었다.
" 캉!!"
" 어?! 사람?!"
예전에 감염체를 조종하던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방향을 바꿔 베어보려 했지만 가볍게 피하는 모습이었다. 일반 생존자라면 안전 구역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존재라면 감염체를 끌고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 카앙!!!"
" 젠장!!!"
" 여전하군.. 무식한건.."
" 응??!"
난 거리를 두고 멀어지고 후드를 쓰고 있는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 사람은 별 움직임이 없었고 가만히 서 있던 중 강하게 분 바람으로 인해 후드가 넘어갔다.
" 어??! 혀...형님?"
" 오랜만이지?"
" 어떻게?"
" 어떻게가 중요한 건가?"
" 정서형님.."
남쪽의 생존자 캠프에서 사라진 형님. 그렇게 마음 좋던 형님이 지금 내 앞에 서있다. 도대체 한국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뭔가?
" 혼란스러운가 봐?"
" 하하..."
" 들어가도 될까?"
" 네??"
" 뭐 저기 다들 있는 것 아냐? 들어가서 인사라도 할 겸.."
" 하하... 형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 감염체를
몰고 저희를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 아!! 걱정마. 너희는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니."
" 뭐가.."
" 뭐..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여기서 비 맞고 이야기 하면 감기 걸려."
" 하..."
마치 어제까지 본 사람처럼 능글맞게 행동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함정이 아닐까 감염체가 있지 않을까 봤지만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 걱정마 혼자 왔으니까."
" 네.."
정서 형님은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고 집 안에 들어가서 정서 형님을 보고 나와 비슷하게 다들 놀라는 모습이었다.
" 혀..형님?"
" 어떻게..."
" 우선 앉지. 자세한 이야기는 앉아서 할까?"
" 하아.."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았고 시선을 정서 형님에게 쏠렸고 정서 형님은 미란이에게 물 한잔을 부탁하고 웃으며 우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