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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142화 (14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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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멀리서 감염체가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큰 위험은 아니었다. 자리를 잡고 이륙을 준비하고 서서히 속도를 높여가는 수송기 저편에서 익숙한 체형의 사람이 보였다.

" 정서 형?"

서있는 모습이 마치 다 예상을 했다는 듯 감염체들 끝에서 평화롭게 서 있는 모습. 이미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를 찾기 위해 몰려다니는 감염체를 뒤로 하고 수송기는 지상을 떠나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 생..생각보다... 날씨가..."

" 쿠엑!!!"

이륙한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위아래로 흔들리고 가끔씩 뚝뚝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비행하자니 사람들은 멀미를 시작했다. 심하게 덜컹거리며 한 참을 비행하고서야 안정을 되찾았고 사람들은 피곤에 찌든 상태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내 옆에 은혜도 힘들었는지 금방 깊은 잠에 빠졌고 나도 은혜에게 기대어 잠을 청했다.

" 끼익!! 끼익!!!"

" 응?!!"

" 착륙했나?"

심한 마찰음을 내며 착륙한 곳은 꽤 익숙한 곳이었다.

" 제주도? 그런데... 왜..."

온전한 사회였을 때 일 년에 한 두 번은 찾았던 곳. 미국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조국.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황폐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가장 온전한 생존구역이었고 감염체가 가장 적은 곳이었는데 왜 이렇게 까지 변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주도에 태풍이 훑고 지나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이럴 줄을 몰랐다. 그래도 감염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인데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 착륙을 했는데도.. 오는 사람이 없네.."

" 이상한데... 이 정도일 줄은.."

" 뭔가 일이..."

" 이곳에도 감염체가 온 거야?!"

" 흠... 그런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활주로에서 나와 주변을 본 모습은 폐허 그 자체였다. 유리창이 모두 깨어진 건물과 반쯤 무너진 건물. 도로에 불타버린 차량들이 보였고 차량 주변에 생존자인지 감염체인지 확인이 안 되는 시신들도 보였다.

" 감염체가... 있었군.."

" 그런가? 그래도 이런 피해를 입을 정도는.."

" 너무 평화로웠기에... 그런 것 아닐까?"

" 흠..."

기태는 주변을 살피고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 낮이라 무척이나 덥고 습한 기운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바다의 향기가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 대령님 어쩔까요?"

" 우선 주변을 살피고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 보게나."

" 알겠습니다."

" 감염체가 이곳에도 있다면 제주도에서 머무는 것은 크게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는 막다른 골목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 감염체가 물을 피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 아니면 새로 들어온 생존자 중 감염된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 이미 생존 캠프로 오랜 시간 사용된 섬이라 남은 물건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뭐 별다른 생산시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저희가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변을 살펴보도록. 재원 군과 박 중사는 차량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도록 하고! 세 시간 안에 복귀를 하도록!"

" 알겠습니다."

" 다른 인원들은 수송기 점검을 끝내기 전까지 이곳에서 대기하고 주변을 경계

하도록 한다!"

" 넵!"

대령님의 명령에 따라 다들 움직였고 슈트를 챙겨 입고 무기를 들고 가져온 차량을 가지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공항 근처에는 감염체가 상당수 있었던 것인지 많은 수의 시신들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고 간혹 움직이는 감염체도 보였다.

" 외각에 방벽이 있어서 감염체가 외부에서 침입했을 가능성은 적은데.. 정말

내부에서 감염이 시작된 것인가?"

"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황폐해진 도로와 건물들. 도로 곳곳에 포탄의 흔적이 보였고 감염체가 나타났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 그래도 시신의 숫자가 많지 않으니 도망간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 아직 모르지. 어딘가 수두룩하게 모여서 지내고 있는 감염체가 있을지도.."

"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 멀리 가볼까?"

" 그러자. 어차피 밀리는 곳도 없을 것이고 속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내기 위해 가속 페달을 깊게 눌렀고 탄력을 받은 차량은 시원하게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분을 달려도 생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감염체의 시신이나 움직이는 감염체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공항을 벗어나니 건물들은 온전한 상태였다. 세월이 흘러 보수가 되지 않아 낡은 것이지 포탄이나 물리적인 피해를 입어서 손상된 집은 없어보였다. 을씨년스럽게 이어진 주택들을 지나 한적한 바닷가에 도착했고 세상의 위기와는 상관없이 평온한 모습의 바다는 조용하게 파도만 출렁이고 있었다.

" 하아..."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고 나를 바라본 박 중사도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 감염체다."

" 응?!"

마치 해변을 산책하듯 걸어 다니는 감염체 수십이 보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돌아다니는 감염체를 손쉽게 처리했고 감염체의 상태를 살폈다.

" 상태를 보아하니.. 감염된 지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아."

" 흠.. 그럼 섬에서 감염된 것인가? 이 녀석은 몸에 총까지 맞았는데?"

" 옷도 그렇게 오래 된 것 같지는 않고.. 군복까지 입고 있는 녀석도 있네."

" 그래도 꽤 많은 인원이 여기서 지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적은

숫자인데? 미리 알고 도망치다 뒤늦게 감염된 사람들인가?"

" 우선 다른 곳도 한 번 가보자!"

우리는 다시 차량에 올라탔고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약 30분 남짓을 달려 도착한 주거지역에 도착했고 사람만 살지 않는 휑한 동네로 변한 모습이었다. 군용천막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피난을 갔는지 책상과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모습이었고 이것저것을 뒤지다 피난에 관한 문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긴급피난 계획.."

" 응??"

" 찢어져서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뭔가 급박한 상황이 생겨 떠난 것 같네.."

" 급박한 상황이라.."

" 설마 정서 형님 집단이 이곳을 공격한 것인가?!"

" 하지만 이런 곳까지 공격을 했다간 정말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 집단에서도 의견이 갈린다고 했으니 모르지. 그나저나 정말 급하게 떠났나봐.

소총이나 탄약도 그대로 있는데?"

" 그럼 서서히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급박하게 터져서 미쳐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처럼 변한 것이 아니라면 소음이

있다고 해도 총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엄청난 무기인데.."

" 조금 들어가 볼까?"

천천히 차를 몰고 아파트와 주택이 몰려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그냥 휑한 모습일 뿐 감염체가 공격해서 시신이 있다거나 피가 흥건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선전포고를 받고 부리나케 도망간 모습 같기도 하고 도통 상황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생존자가 한 명도 없다는게 말이 되나?"

" 아직 우리가 발견 못한 것이겠지. 그래봐야 한 시간 남짓 돌아다녔는데 쉽게

발견될 생존자라면 우리보다 감염체가 먼저 발견 했겠다."

" 감염체도 별로 없는데 뭘.."

주변 건물 내부와 도로를 살폈지만 상황을 짐작할 만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곳에 머무르고 있던 우리 일행도 큰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공격받아 도망간 것이 아니라면 피난 갈 시간은 있었다는 상황이니까.

시간이 지나 나와 박 중사는 다시 공항으로 복귀를 했고 주변 상황에 대하여 대령님에게 보고를 하였다.

" 흠... 크게 감염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신들이 보이는 상황도 아니고.. 공항을

제외하면 큰 전투는 없는 상황이라니.."

" 감염체의 공격을 받아 다급하게 피난을 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뭔가 일이

일어나기 전에 피난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 허..."

" 저희가 둘러본 지역의 상태는 온전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지낼 생각이십니까?"

"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가 뭐한 상황이군.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떠났을 텐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야 우리도 떠나든가 지내든가 할 것

아닌가?"

" 지금 당장은 큰 위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머물기에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 수고했네. 우선 쉬도록 하게나."

" 네."

대령님에게 상황보고를 끝내고 수송기 밖으로 나갔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내리쬐고 있었고 간간이 부는 선선한 바람이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 응??!"

발밑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

" 이상하네.. 뭔가 느껴졌는데..."

" 재원아!! 거기서 뭐 해?!"

" 아.. 아냐!!"

뒤에서 나를 부르는 김 중사의 외침을 듣고 난 고개를 돌렸고 김 중사는 차량을 끌고 나에게 오고 있었다.

" 무슨 일이야?"

" 대령님이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변을 살펴볼까하고.. 박 중사는 같이

간다고 했는데 너도 갈 생각없어?"

" 그래? 그럼 여긴 누가 지키고?"

" 지금까지 큰 위험은 없는 것 같고.. 감염체도 얼마 없고 재효도 있고 다른

인원들도 몇 명 있고 만약 일이 생긴다고 해도 수송기 안에만 있으면 큰

피해는 없을 것 같고.."

" 대령님 허락은 떨어졌어?"

" 응! 너무 늦지만 말고 혹시 일이 생기면 무전하라고 하셨어."

" 그럼 가볼까?"

어디서 구했는지 고급 SUV를 가지고 나타난 김 중사와 박 중사와 함께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갔고 낮에 갔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 시원하다.."

" 하아.. 감염체만 아니라면 참 살기 좋은 곳인데..."

" 지금은 감염체도 없는데 뭘.."

"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곳을 떠난 걸까?"

" 글쎄..."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겨났지만 머리만 아팠지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뻥 뚫린 도로를 한참을 달렸지만 감염체 몇몇만 보일 뿐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세세하게 살펴볼 상황은 아니었기에 빠르게 이동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 흔적이 보일 법도 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에 많은 게스트 하우스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 내부 상태를 봤지만 감염체 사태 이후 사람이 찾은 흔적이 없어보였다. 아마도 생존 캠프 때에도 쓰인 건물 같지는 않았다. 태풍이 쓸고 지나갔는지 어지럽게 변한 정원과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침구류를 보고 건물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 여긴 처음부터 쓰인 곳이 아닌가봐."

" 응..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우리가 몸을 돌려 걸어가는 순간 정원 한 곳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고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잡고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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