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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공항 근처에 버리고 간 차량들이 많이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 차 키를 가지고 갈 여유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기에 차키가 꼽혀 있는 차들이 많았다. 시동을 켜고 도망간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린 것인지 전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온 온전한 차량에서 배터리를 분리해와 멀쩡해 보이는 차량에 시동을 걸었지만 뭐가 문제인지 걸리지 않았다.
" 젠장... 주변에 감염체 봐라.."
" 조용!!"
사람들은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몇몇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를 챘고 가능한 소리 없이 제거를 해갔지만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몰려온 감염체는 그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 젠장!! 우선 내가 유인 할께!"
" 얌마!!!"
난 큰 칼을 잡고 버려진 버스 위에 올라가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들고 허공에 대고 한 발을 쐈다.
" 탕!!!"
" 꾸르르..."
" 팅..."
조용한 거리에 울려 퍼진 한 발의 총성 소리는 감염체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모두 나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도망가면 의욕을 잃고 방향을 돌릴 수 있었기에 나는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권총을 쏴서 감염체의 이목을 끌었고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도로를 가득 메운 감염체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 젠장...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골목길 대로변 건물 차량 할 것 없이 어디서든 튀어나오는 감염체로 인해 긴장감이 흘렀다. 순간 방심하면 아무리 슈트를 입고 있다해도 위험할 수 있었다.
" 탕!!"
" 젠장.."
권총 할 발을 쏘고 다시 주변을 살피니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감염체가 보였다.
"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겠지?"
차량을 구하기 위한 팀이 우선이었기에 가능한 멀리까지 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램은 얼마가지 못해서 멈춰버렸다.
" 정면 돌파...를 해야 하나..."
이제는 더 이상 나갈 곳이 없었고 곳곳에서 몰려든 감염체를 상대해야만했다. 그래도 가장 적은 쪽으로 그리고 도망치기 수월한 곳을 택하여 등에 매고 있던 칼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 흠... 체력을 최대한 아껴야 하니..."
칼에 기능인 초 진동 기능을 작동시키고는 무섭게 달려 나갔다. 한 번의 칼질에 수십의 감염체의 육체를 잘라냈지만 워낙 많은 숫자이기에 금방 그 자리를 채우고는 밀려들어왔다.
" 쾅!!! 콰광!!"
차량 위를 뛰어다니며 감염체를 베어 나갔고 상가로 보이는 건물 2층으로 뛰어들었다.
" 와장창!!!"
" 크엑..."
꽤 단단한 유리였는지 하마터면 제대로 깨지도 못하고 떨어질 뻔했다. 2층으로 뛰어 들어간 나를 보고 감염체들이 1층에서 허우적거렸고 몇 명은 계단을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생각보다.. 지능이 높은 감염체도 있네.."
예전과는 약간 다른 반응을 보이는 감염체가 있어 놀라웠다. 예전에는 시야에 의존하는 녀석들로 보였는데 지금 보니 약간의 지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도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 흠... 뭐지..."
가까스로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계단 밖에서 감염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잠긴 문을 부수고 나갔고 옆 건물로 뛰면서 이동을 시작했다.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권총을 허공에 발사하고 가끔 모습도 보여주면서 감염체를 이끌고는 일행과 멀어져갔다.
“ 허억...허억...”
건물 옥상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챙겨온 물을 마셨다. 일행들과 제법 멀어졌기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이제 문제는 내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멀리 온 상황에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해도 넘어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옥상 문을 단단히 잠그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혹시 몰라 챙겨둔 요깃거리가 허기를 달래 주었고 근처 건물을 뒤져 챙겨온 담요와 매트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다들 내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고 무리를 해서라도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하루쯤은 이런 식으로 지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 하암..”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보니 무척이나 피곤했고 매트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이미 노을의 붉은 빛이 하늘을 물들였고 머릿속에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뇌를 휘졌고 다녔다.
“ 크르르..”
건물 밑에는 나를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는 수많은 감염체가 있었다. 내가 안 보이니 제대로 찾을 수도 없을 것이고 더 이상 권총을 쏴서 소리를 내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들은 더 이상 나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 응?!!”
몰래 지켜본 감염체들 무리 중 제법 멀쩡한 육체를 가진 녀석들도 보였다. 마치 감염체의 우두머리 마냥 경호를 받는 듯 한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 휙!!”
“ 응??!!!”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고개를 돌리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보통 감염체와는 다른 눈. 눈에는 생기가 가득했고 결정적으로 나를 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보였다.
“ 하... 설마...”
정서 형님이 말한 그런 무리 중에 한 명일 걸까?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건물 옥상 벽에 서서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 오호.. 도망치지 않는군요.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 말도 하네요..”
“ 당연하죠. 인간인데요.”
“ 그런데 왜 감염체의 공격을 받지 않죠?”
“ 글쎄요...”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는 녀석에게 살인충동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녀석을 죽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주변에 보이는 감염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 흠... 제 시선을 정면으로 받고도 무서워하지 않다니.. 대단한데요?”
“ 뭐가 무서워야 하죠? 감염체도 숫자가 많아 귀찮을 뿐. 현재 저에게 큰 위협이
되는 상황도 아닌데요.“
“ 자신감이 넘치는 군요.”
“ 그쪽이야 말로.. 혼자서 그렇게 다니다니.. 그것도 멀쩡한 인간이면서 감염체를
몰고 말이죠.“
“ 뭐.. 이 안에 있으면 당신처럼 위에서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눈치 채기
힘들죠.”
“ 그나저나 이런 대화... 왜 하는 건지..”
“ 하하! 그렇군요. 정서씨는 아직 한국에 안 들어 왔나보군요?”
“ 정서 형님을... 아시는 군요..”
“ 그럼요. 그러니 당신을 이렇게 두는 것이죠.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 존재가
탄로 난다면 좋을 것이 없는데 말이죠.“
“ 흠...”
도대체 뭔 생각으로 저렇게 감염체를 몰고 다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본다고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 뭐.. 얼마 후면 정서씨도 돌아올 것이고... 그 때부터 일이 시작되겠지요.”
“ 일..말입니까?”
“ 네.. 한국은 아직 생존자가 너무 많아서요.”
“ 혹시... 제주도를...제주도를 공격하셨습니까?”
“ 흠.. 저는 아닙니다. 들어본 적이 없군요.”
“ 그렇군요..”
대화를 하던 중 5층 높이 건물에서 속삭이듯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저 사람이나 나나 정확히 알아듣고 있었다.
“ 흠.. 이제 서야 눈치 채셨군요.”
“ 설마.. 당신도...”
“ 뭐.. 당신만 변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내가 슈트를 입고 있다 해도 예전 정서 형을 본다면 나와 거의 비슷한 능력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최소 나랑 동등한 힘이라면.. 감염체까지 몰고 다니는 녀석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내가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칼에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런 모습을 봤는지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전 일이 있어 지나가는 길이니.. 그냥 가도록 하겠습니다. 뭐 정서 씨의 아시는
분이니 충고하나 하자면..“
“ 하자면..?”
“ 방어에 자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섬을 피해서 지내는 것을 추천하죠.”
“ 네?”
“ 섬은.. 당신들이나 우리나 길이 한 개뿐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녀석은 할 말을 끝내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갔다. 마치 경호원들과 산책이라도 나온 듯 평온하게 걸어가는 모습.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다시 마음을 잡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한 참을 달려 도착한 공항에는 나를 본 사람들의 모습은 안도와 미안함이었다.
“ 뭘 그렇게봐?”
“ 어디까지 갔다 온거야?”
“ 제법 멀리... 차량은 구했어?”
“ 응.. 덕분에..”
“ 은혜는 모르지?”
“ 응. 말은 안했어. 단지 근처에 있다고만 했지.”
“ 고맙네..”
박 중사와 김 중사가 내가 사라진 것을 알면 걱정할까 은혜에게 거짓말을 했고 덕분에 은혜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감염체를 몰고 간 덕분에 제법 많은 차량은 구할 수 있었고 주유소에서 남은 기름까지 가져올 정도의 여유도 있었다. 나는 내가 본 그 녀석에 관한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단지 주변에서 그냥 서성거렸다는 것만 말해줬고 대령님도 우리가 구한 차량을 보고 바로 내일 출발하자고 했다.
“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 알겠습니다.”
“ 저랑 기태. 박 중사는 국제공항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 알겠네. 위험하다 판단되면 바로 복귀하게나.”
“ 알겠습니다.”
대령님의 허락을 받고 우리는 수송기 안에서 자리를 잡고 누웠다. 피곤한 상태라 그런지 바로 잠에 빠져들었고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다들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하암...”
“ 우리는 먼저 출발할까?”
“ 그럴까?”
나와 기태. 김 중사는 먼저 출발하기로 했지만 은혜도 같이 간다고 말하는 상황이라 당황되었다.
“ 위험할 수도 있는데.. 굳이 같이 가야겠어?”
“ 괜찮아요!”
“ 하아...”
생각보다 완강한 그녀의 태도에 난처해졌고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기태와 박 중사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 치사한 자식들...’
속으로 두 녀석에게 한 바탕 욕을 해주고 어쩔 수 없이 은혜와 함께 국제공항을 향하여 이동을 시작했다.
“ 다행이 감염체가 없네요? 어제는 엄청 많았다고 들었는데?”
“ 뭐.. 그 녀석들도 한 곳에 있는 성격이 아니니.”
“ 신가하네요..”
차마 내가 어제 왕창 몰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내 사정을 아는 기태와 박 중사도 그냥 신기하다는 말만 할 뿐 별다른 제스처는 취하지 않았다.
“ 생각보다 가깝네...”
꽉 막힌 고속도로라고 생각했지만 예전에 우리가 지낸 곳이다 보니 어느 정도 정비를 해 둔 모습이었다. 공항 초입에 진입했지만 원래 있어야 할 근무자가 보이지 않았다.
“ 이상한데... 초소를 뒤로 옮긴 건가?”
거리를 두고 살폈지만 근무자가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차를 몰고 갔지만 몇 개의 초소를 지나도 근무자는 보이지 않았다.
“ 뭐지...”
“ 자멸..인가?”
“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 감염체...다..”
“ 응??”
다리가 끝나는 지점. 섬으로 들어가는 부분에는 많은 숫자의 감염체가 죽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공격을 받았나봐?”
“ 그런데..왜 여기만 감염체 시체가 있는거지? 초입 초소에는 뭘 한 거야?”
“ 서로 내전중이라 감염체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나봐요..”
“ 우선 조금 더 들어가보자.”
“ 조심하고... 주변을 잘 살피자..”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세세하게 주변을 살피며 우리가 묵었던 곳으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