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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섬 입구에 마련된 초소는 별 것이 없었다. 그냥 컨테이너 건물에 들어가 창문으로 섬으로 들어오는 길을 감시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어느 정도 밝아야 가능했지 구름이라도 낀 밤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더군다나 주변에서 들리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로 청각을 이용해 감시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 생각보다 최악인데?"
" 뭐 넌 상관없잖아?"
"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 섬 입구와 육지 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해야겠다. 길에는 뭘 설치해봐야
효과도 없을 것 같고."
" 그래도 주변에 공사장이나 건축자재를 가진 공장이 많으니 내일부터 움직여서
뒤져보자."
" 대령님은 생존자들을 모을 생각일까?"
" 응? 무슨 말이야?"
" 솔직히 우리 인원은 너무 적어. 아무리 소수의 인원이 좋다고 하지만 30명 정도 되는 인원으로 뭘 할 수 있겠어?"
" 하지만 인원이 많아지면 네가 걱정하는 일이 또 일어날 것 아냐?"
" 여긴 우리가 만든 곳이야. 우리가 규칙을 정해서 움직인다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나도 많은 인원은 반대지만 지금은 너무 없으니."
" 그렇다고 해도 생존자를 찾아야 하는데... 뭔 수로 찾아. 지금 당장 걱정할
것은 아닌 것 같다."
" 하긴..."
지금까지 움직여서 생존자를 본적이 없는데 너무 급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컨테이너 주변을 돌며 감염체를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고 매우 부실하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움직였고 덕분에 시간은 꽤 빨리 흘러갔다.
" 벌써 교대시간이네?"
" 와웅..."
" 그나저나 둘이서 한 것 치고는 엄청난데?"
" 슈트를 입고 있으니... 거의 중장비 수준인데?"
주변 컨테이너를 가져와 벽을 쌓고 철제 간판을 가져와 입구를 임시로 막았다.
다음 근무자들이 놀랠 정도로 일을 한 우리는 간단한 인수인계를 하고 펜션으로 돌아갔다.
이미 깊은 잠에 빠진 은혜를 보고 다시 정원으로 나왔다. 평온한 하늘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수많은 별들을 보여줬다. 난 슈트를 벗고 가볍게 몸을 풀며 해변으로 갔다. 칼을 휘두르며 나름 효율적인 공격 방법을 몸으로 습득하기 위해 연습했다. 누군가에게 배울 수도 없는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봐야했다.
" 허억..허억... 왔으면 물이라도 던져줘."
" 열심히다 너도.."
" 쳇.."
어느새 다가온 기태는 나에게 물 한통을 던져줬고 누운 상태에서 작은 물통 하나에 가득 든 물을 한 번에 비웠다.
" 억울했나봐?"
" 상당히..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서있던 내가 한심하더라."
" 그래도 우리는 상대할 생각도 못했는데 넌 했잖아? 너무 자책하지마."
" 고맙다. 정서 형님이 한 이야기도 있으니... 한 번 믿어봐야지."
" 정서 형님도 특이하지? 무슨 생각이실까?"
" 뭔가 사정이 있겠지.."
" 늦었다. 어서 들어가라."
" 넌 왜 나왔어?"
" 그냥..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아서.."
" 그래..."
난 기태를 뒤로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실컷 땀을 흘리고 들어왔는데 생각해 보니 펜션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 이대로 잘 수도 없고.. 난감하네.."
지금까지 그래도 최소한의 전기가 공급되는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곳에서만 지내다보니 우리의 현재 상황을 잊어버렸다. 난 다시 펜션을 나와 근처 저수지를 찾았고 제법 깨끗한 물 상태인 것을 확인한 후에 옷을 벗고 몸을 씻었다.
" 으.. 차가워..."
" 여기서 밤중에 홀딱 벗고 뭐하냐?"
" 그러는 넌 밤중에 홀딱 벗은 남자 몸을 보고 뭐하냐?"
이미 박 중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 잠이 안와서.."
" 오늘따라 왜 잠 안오는 애들이 많냐.."
" 누가 또 나왔냐?"
" 조금 전에는 기태. 그리고 저 앞에는 재효가 혼자 달밤에 체조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보지도 않고 잘 안다?"
" 뭐.. 이제는..."
대충 몸을 씻고는 옷을 갈아입고 박 중사 옆으로 갔다.
" 무슨 일이야?"
" 아니..낮에 일이 생각나서.."
박 중사도 기태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나온 것이었다.
" 신경 쓰지마.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 하아.. 그래도.. 내가 약한 것 같네.."
" 슈트를 안 입어도 충분히 강한 녀석이 왜 그래?"
" 널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 참네... 너무 신경 쓰지마. 앞으로 우리 살아남을 생각이나 하자. 낮에처럼
그런 녀석이 얼마나 되겠어."
" 아예 없다는 보장도 없잖아?"
" 많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러니 없다고 생각해."
" 넌 뭔가 평온해 보인다?"
" 그냥... 걱정거리 안고 사는 것보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란다."
" 속편한 자식."
" 어서 들어가. 그래야 내일 제대로 움직이지."
" 알았다!"
난 보이지는 않겠지만 박 중사에게 살짝 미소지어보이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다들 말을 안했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각자의 방법으로 풀 생각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러 나온 것이었다.
" 에헤이..."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며 은혜 옆에서 잠을 청했고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나와 박 중사. 대령님은 차에 타서 국제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중간 중간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확보하며 이동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상태를 처음 본 대령님은 크게 실망한 표정이었다.
" 허허.. 이런..."
" ..... "
우리는 말없이 대령님을 바라봤고 몇 분간을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먼 산을 바라보던 대령님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서 우리에게 말했다.
" 우선 무기고로 가보지. 이런 상황이라면 무기가 남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 알겠습니다."
대령님은 예전 기억을 되짚어 보며 우리를 무기고로 안내했고 잠겨있는 문을 보고 약간의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 이런 상황인데도 무기고가 잠겨 있다라.. 좋은 건가?"
" 이곳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최악이었겠지."
" 하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감염체가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무기고를 잠그고 있을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 쾅!"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니 빈 상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도 온전한 탄약
상자와 무기들이 보였고 나와 박 중사는 가져온 차량에 적재를 시작했다.
" 뭐.. 꽤 있네.."
" 일반 탄약 박스는 많네.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나?"
" 탄창에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면 힘들었겠지."
" 하긴.."
우리는 부지런히 무기를 옮겼고 대령님도 우리를 도와 무기를 옮겼고 어느새 가득찬 차량을 보고 출발 준비를 했다.
" 잠시 들를 곳이 있다네."
" 네?"
대령님의 말에 우리는 약간 의아했다. 이미 상황이 끝난 섬에서 뭘 알아보시려는 걸까?
" 본부대로 가지."
" 알겠습니다."
우리는 대령님의 말에 본부대로 갔고 본부대에서 대령님의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대령님을 묵묵히 따라갔다. 본부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5층짜리 건물에 들어갔다.
" 흠..."
꽤 튼튼한 문에 전기로 작동되는 키패드가 설치되었지만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니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았고 박 중사와 내가 힘을 합쳐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 어라?!"
" 와... 이런 곳도 있었어요?"
" 뭐.. 그래도 반격 거점으로 삼았던 곳인데.. 이런 곳은 있어야지."
각종 의료장비와 기계들이 보이는 곳은 창문이 제대로 없어서 무척이나 어두웠지만 감염체가 있을 만한 건물은 아니었기에 크게 무섭지는 않았다.
대령님은 한참을 이곳저곳에 뭔가를 찾아다니셨고 냉장고처럼 생긴 곳에서 원하는 것을 찾은 듯 꽤 큰 통을 들고 탁자위에 올려놨다.
" 다행히 남아 있었군..."
" 뭔가요 이게?"
" 자네들이 발견했던 독초로 만든 액이라네. 칼이나 창끝에 칠해도 꽤 오랜
시간 유지되고 탄에 쓰려면 담갔다 빼서 말리면 된다네. 예전 것을 보안했다고
하면 되겠군."
" 와... 그럼 이제 머리를 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런데 이게 왜 아직도..."
" 무기로 상용화되기 전에 전멸했으니.. 별 수 있나. 어딘가 찾아보면 많이
남았을 것이니 오늘은 이것만 가져가고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 그런데 왜 이걸 이제야.."
미국에 가기 전에 줬으면 꽤 유용하게 이용했을 것인데 이제야 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 난 여기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이 없었으니까. 처음에 개발초창기에만 잠시
와서 성능시험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 대령님이 못 들어오실 정도면..."
" 뭐.. 위에서든 밑에서든 나를 경계했겠지. 그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
했으니..."
뭔가 일이 있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독초가 더 일찍 보급이 됐다면 이런 사단이 나지 않았을 것인데 이렇게 연구소에서 보관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 그런데 이렇게 완성돼서 보관까지 하고 있는데.. 왜 미리 보급해주지 않은
것입니까?"
" 그때 당시 내가 아는 바로는 많은 양이 제조되지 못했다네. 1차에 제조된
독초들은 다른 곳으로 이송이 됐다는 것 밖에 모르네. 뭐 또 뒤가 구린 녀석
들이 어디론가 빼돌렸겠지."
" 그런 녀석들은 신기하게도 끝까지 살아남더라고요."
" 세상은...어쩌면 정말 불공평한 건지도 모르지.."
무표정으로 말씀하시는 대령님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건물에서 물건을 챙겨 다시 섬으로 출발을 했다. 올 때와 다르게 묵직해진 차량은 더디게 속도가 올라갔고 이제는 무척이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섬으로 돌아갔다.
도착해서 우리는 가져온 탄약과 물품을 나눴다. 섬 입구 컨테이너 박스 안에 기관총과 유탄을 장착했고 육지 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혹여나 생존자가 우리가 설치한 부비트랩을 역으로 이용할까 보이지 않게 잘 설치를 했고 중간 중간 침입자의 존재를 알 수 있게 알람도 설치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낼 공간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문을 보수하고 잘 곳을 청소하며 시간을 보냈고 혹시 모를 감염체에 대비해 창문이나 다른 문도 보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펜션이라고 해봐야 말만 펜션이지 다세대 주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시설적인 면보다 감염체의 접근이 어렵고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서 지내기로 했고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 여기가 좋겠다. 입구도 돌계단이라 감염체가 올라오기 힘들 것 같고 밑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니까."
" 선착장도 있던데.. 한 번 가볼까?"
" 그럴까?"
본격적으로 우리가 지낼 건물을 선택하고 선착장에 가보기로 했다. 선착장에는 갯벌에 처박힌 배들이 대부분이었고 유람선으로 보이는 배도 기운 채 갯벌 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러 대의 유람선과 요트들이 뒤엉켜 있었다. 이상할 만큼 많은 요트와 배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 아.. 감염체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저 위에 요트 클럽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꽤 많이 모였고 무슨 대회 같은 것도 했다고
들었는데...기억이 안 나네.."
" 뭐.. 부자들의 잔치인가보지."
우리는 항구를 대충 둘러보고는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고 짐을 정리하고 건물 내부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