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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며칠간의 일과는 다른 점이 없었다. 섬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보강하고 경계를 서고 집으로 돌아와 정리를 하고 낚시를 하면서 물고기를 잡거나 갯벌에 가서 조개나 게 따위를 잡으며 먹을 것을 구했다. 섬 가운데 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나 찾아 봤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함부로 채집해 오기도 뭐했다.
" 흠.. 그래도 농사를 짓던 땅들이 있는데 뭐라도 있지 않을까?"
" 에구.. 덥다... 이제 미쳐 버리겠네 더워서."
" 하아..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싶다.."
" 나도..."
뭔가 먹을 것을 찾으러온 우리는 따가운 햇살로 금방 지쳤고 그늘을 찾아 앉았다.
" 아는 것이 없으니.. 뭘 할 수가 있나.."
" 덥다..."
" 감자나 고구마 이런 건 없나?"
" 글쎄..."
" 에휴..."
섬을 걸으며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나 살펴봤지만 지식이 거의 없는 우리로써는 뭔가를 채집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 그냥 돌아가서 낚시나 하자. 그게 최선일 것 같은데?"
" 그래..."
" 에휴..."
우리는 펜션에서 낚싯대를 챙겨와 선착장으로 갔다. 밀물과 썰물이 지속되면서 배들이 엉켜있는 모습이 보였다. 낚싯배와 요트. 보트. 그리고 덩치가 큰 유람선까지 배들의 공동묘지 마냥 엉켜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 참네... 저런 모습이 신기하게 보일 줄은.."
" 저 배안에 뭐라도 있지 않을까?"
" 유람선에는 뭔가 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요트에는 없지 않을까?"
" 하긴.."
선착장을 지나 섬으로 이어진 자동차는 다닐 수 없는 도로로 들어가자 우리들 눈에 보인 것은 엄청 큰 유람선이었다. 섬 뒤에 위치해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떠밀려 내려온 것인지 기운 상태로 섬 안쪽까지 밀고 내려온 모습이었고 그 위로 다른 배들이 겹겹이 엉켜있었다. 파도가 넘실거렸지만 배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많은 배들이 있었기에 가장 끝 쪽에 있는 배들만 흔들거릴 뿐 안쪽에 있는 배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 대단하네... 저런 숫자라니.."
" 덕분에 물고기는 많겠다. 저런 곳에 원래 고기가 많지 않나?"
" 물이 잔잔하니 고기들이 살기 좋겠지. 저곳으로 가서 낚시를 해볼까?"
우리는 뒤엉켜있는 배들을 거쳐서 중간으로 가서 낚싯대를 던졌다. 초반에는 입질이 없다 밑밥으로 뿌린 먹이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 오오!! 이번 건 제법 크다!!"
" 오늘은 제대로 먹을 수 있겠는데?!"
" 그런데 이런 것도 서해에서 잡혔나?"
" 모르지.. 낚시라고는 주꾸미나 광어 낚시가 전부였는데.."
" 신기하네...이거 먹어도 되는 생선인가?"
" 흠..."
뭔가 잡혀 올라오는 어종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서 그런 일이 종종 있다는 뉴스가 생각나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근무시간 전까지 열심히 잡다가 더 이상 잡는 것은 무의미해지자 낚시를 그만 두었다. 다른 사람을 주거 뭔가 처리를 해서 장시간 보관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장기간 보관할 기술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과학의 편리함인 냉장고가 있는 환경에서 생활했던 우리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 난 주변을 둘러볼게."
" 그래.. 우리도 조금만 더하고 철수해야지."
예상외로 많이 잡았지만 계속해서 낚시를 하는 기태였다. 아마도 다른 인원에게 가져다줄 생각에 그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우선 주변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었다.
" 생각보다 좌초된 배들이 많구나.."
정말 요트 박람회라도 했던 것인지 많은 종류의 배들이 좌초되어 있었다. 개중 한강에서 봤던 유람선과 비슷한 것도 있었고 정말 작은 무동력으로 움직이는 배들도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좌초된 배들은 섬 뒤편 산책로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몇몇 배들은 심하게 파손되어 반쯤 잠겨 있었고 무동력 요트나 가벼운 배들은 대부분 파손되어 있었다.
" 움직이지는 않아도 내부가 멀쩡한 것도 있을 것 같은데.."
난 홀로 돌아다니며 배들을 살폈지만 대부분이 파손된 상황이었다. 가장 큰 유람선처럼 생긴 배도 파손이 되었는지 뱃머리가 바다 속에 파 묻혀 있었다. 멀쩡한 배를 찾기 어려울 만큼 상태는 크게 좋지 못했고 찾는다고 해도 타고 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 쳇... 그래도 멀쩡한 것 몇 개는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을 걸어도 멀쩡한 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제법 큰 배들은 해안가로 끌고 와서 그 안에서 지낸다면 오히려 육지보다는 감염체의 공격을 피할 확률이 조금은 높아질까 싶어 둘러봤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섬 입구로 돌아갔다.
" 별일은 없죠?"
" 네.. 큰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이제 점점 더워지니.. 힘드네요."
" 그러게요. 수고하셨습니다."
" 수고하세요."
미리 도착해있던 기태와 만나서 근무교대를 하고 육지를 바라봤다. 밀물 시간이라 길은 이미 물에 잠겨서 보이지 않았으니 감염체가 넘어올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바다의 짠맛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면 버틸 만 했다.
" 젠장...빠르게 더워지네.."
" 흐미... 난 여름이 쥐약인데.."
" 하긴 너 여름 내내 에어컨 달고 살았으니.."
유독 열이 많은 체질이라 여름에는 전혀 힘을 못 썼다. 더군다나 땀도 많은 체질이라 여름에는 몇 번씩 옷을 갈아입곤 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 전기가 조금이라도 공급이 된다면 좋겠는데 말야.."
" 발전기가 있잖아?"
" 용량이 턱없지. 캠핑용이지 산업용이 아냐. 그리고 우리만 쓰기도 좀.."
" 하긴... 카라반에 있는 태양열집열판은 얼마나 모여?"
" 많은 양은 아니야.."
" 흠..."
" 뭐 저기 배들 연료통을 하나씩 뜯어서 본다면 연료는 많이 나오겠지.."
파도에 밀려 내려오는 배를 보고 말했다. 요트라기보다 카누 비슷하게 생긴 배는 뒤집혀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배를 제대로 구분할 줄을 모르니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그냥 떠다니면 전부 보트라고 부르는 실정이었다.
이제는 제법 방어초소답게 변한 섬 입구를 보고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육지 입구에 몇 개의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작업을 끝냈고 섬 입구에도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기관총 거치대를 만들고 감염체가 쉽게 넘어올 수 없게 철조망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며 만들었더니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네.."
" 주변에 뭐라도 있는지 확인중이겠지.."
" 아!! 이틀 전에 생존자가 들어왔다며?"
" 응. 근처에서 우리가 피운 불을 보고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알고 들어왔다고
하더라."
" 흠.. 괜찮은 사람들인가?"
" 노부부랑 40대 후반의 부부와 중학생 애들이 있던 것 같던데?"
" 와..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런데 왜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았지? 살아남기에는 편한 곳인데.."
" 그거야 우리 상황이니까 그렇지. 원래는 감염체가 많이 있었다고 하던데?"
" 그래? 그런 것 치고는 상태가 깨끗했는데?"
" 섬에서 실제로 지내는 사람이 얼마 안 되니까. 관광지라 사람은 많아도
관광객이지 거주자가 아니니까. 그러니 사태가 일어나도 쉽게 피난을 갈 수
있었겠지."
" 하긴.."
" 그리고 입구가 하나니까 감염체가 밀고 들어오면 도망갈 곳이 없잖아?
우리야 무기와 슈트가 있으니 버틸 수는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생존자는
오히려 이곳이 더 위험하지."
" 장단점이 있군."
" 하암... 졸리다.. 응?!!"
" 왜?!"
" 아니.. 저기.. 먼 바다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 같았는데.. 햇빛이 반사 된건가?"
"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뭔가 순간적으로 반사되면서 번쩍였는데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내가 잘못 봤나.."
" 뭐 파도가 치면서 뭔가에 반사됐겠지. 주변에 좌초된 배들이 수두룩한데
얼마나 흘러갔는지 알 수가 있나."
" 그런가..."
기태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고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다음 근무자가 들어왔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근무가 없는 시간에는 섬 안을 수색하며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 했지만 워낙 작은 섬이고 다른 사람들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상황에 건진 것은 얼마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식사를 각자 해결했지만은 이제는 공동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 지내기로 마음먹었으니 하나하나 규칙을 정하고 지키기로 했다. 식사는 생존자들 중 여자들이 우선적으로 준비하기로 했고 버거운 것은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남자들은 근무나 낚시를 하며 먹을 것을 구했고 간간히 섬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구하려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감염체의 공격을 받아 위험한 고비를 넘길 뿐 만족스러운 소득은 없었다. 섬에 저수지도 있으니 농사를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뭔가를 경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었고 그쪽 방면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노부부가 전부였다. 그나마 텃밭을 가꾸는 정도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시기가 여름의 문턱에 다다른 상황에 뭔가를 심는 다는 것은 무리일 듯 싶었다.
" 섬 밖으로 나가서 공장이나 산업단지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겨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섬 안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제법 큰 도시도 있었으니 그 곳을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 국제공항을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쓸만한 물건도 많으니까요."
" 알겠네. 그럼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바로 이동을 시작하게나."
" 네."
" 인원은 재원 군과 김 중사. 박 중사가 가도록 하지."
" 너무 슈트 인원들만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 방어할 무기는 넉넉한 편이니 큰 위험은 아니라고 생각되네. 여차하면
재효군도 있으니 상관없네."
" 알겠습니다."
간단한 회의를 끝내고 각자의 펜션으로 돌아갔다. 식사는 한 곳에서 해결하더라도 지내는 곳은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다수였기에 굳이 모여서 지내지는 않았다. 뭔가 뒤로 물품을 빼돌릴 생각을 한다기보다 괜히 옆집에서 감염되서 자신을 공격하는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 큰 것 같았다.
" 약간은 개인주의적이라고 해야하나.."
" 뭐 당연한 것이지. 사태 초반에 아파트에서 살았다면 옆집에서 감염된 사람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것인지 알겠지."
" 흠..."
" 뭔가 뒤로 빼돌리고 챙기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걱정 하지마. 그냥
아직은 불안한 감정이 더 큰 것 같으니.."
" 이러다 생존자들이 점점 늘어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걸까?"
" 그때 생각하자. 솔직히 많은 인원이 모일 것 같지는 않으니까."
" 왜?"
" 그 정도로 많은 생존자가 남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부정적인 말에 기태와 박 중사가 말이 없었다. 이미 일 년 가까이 흘러버린 시간으로 식량은 이제 구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야생동물이 많아 잡아서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언제까지 풀만 뜯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니...
이미 컴컴한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었는지 별과 달은 볼 수가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우리가 자리를 잡고 있는 펜션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 안에 도착하니 은혜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힘들어지는 생존으로 인하여 눈에 띄게 마른 몸이 보였고 왠지 뒷모습이 서 있는 것도 힘겹게 보였다.
" 뭐해?"
" 응?! 아.. 왔어요?"
" 뭘 그리 멍하게 보고 있어?"
" 그냥.. 옛날 생각 좀...'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억지로 웃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은혜를 살며시 안아주며 말했다.
"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여기서 자리를 잡고 지내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편하게 지낼 수 있을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고 지내자."
" 알죠.. 자기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펜션이라고 해봐야 콘도형 펜션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단어를 붙이고 영업을 했던 곳이라 옆방과 거리는 벽 하나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 밤에도 제대로 된 애정표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뭐 이런 상황에 마냥 즐길 수는 없지만 말이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물이 없어 용변도 밖에서 봐야만 하는 상황에 서로 불편한 것이 상당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서로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 상황에 그런 것을 유지하기란 상당히 힘들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기운 없는 은혜를 침대로 눕히고는 가볍게 두드리면서 잠이 드는 것을 지켜봤다. 애초에 겪었어야할 일이지만 우리는 너무 편하게 생활을 했기에 이제야 느끼는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편하게 생활한 것을 위안삼아야 했고 나는 은혜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