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0 / 0281 ----------------------------------------------
-2부-
밤바다의 싸늘함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바람을 가리고는 몇 번을 라이터를 돌리고서야 불이 붙었다.
" 후우..."
이미 빈 담배 케이스를 구겨서 버리고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려면 잠을 자둬야 했지만 잠도 오지 않았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밤이 되자 파도는 거친 소리를 내며 울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천천히 섬을 한 바퀴를 걷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 출발하자!"
해가 뜨기도 전에 밝아진 하늘을 보고 바로 출발을 하였다. 군용트럭 두 대에 나눠 타고 빠르게 이동을 했고 중간 중간에 보이는 감염체를 뒤로 하고는 국제 공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 여기 아직 탄약이 많이 남아있어!"
" 그래도 제법 쓸만한 무기가 많이 남아 있네?"
" 이건 뭐야?"
" 연막탄인가?"
눈에 보이는 무기로 보이는 모든 것을 담아 차에 적재했고 대령님이 알려주신 연구소로 가서 액을 찾았다. 다행히 지하에 보관된 꽤 큰 통에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부지런히 차에 싣는 중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 젠장... 어쩐지 잘 넘어간다 했다.."
" 응?!!"
" 젠장..."
군용차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감염체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숫자는 많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체될 것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 내가 처리를 하고 있을게."
" 혼자 괜찮지?"
이제는 괜찮겠냐도 아니다. 못된 놈들.
" 참네.. 어서 옮기기나 해."
" 그럼 부탁한다!"
나는 칼을 힘 있게 쥐어 잡고는 감염체를 하나씩 베어갔다. 이제는 일반 감염체 따위는 큰 위협이 되지도 않았고 감당할 수 있는 숫자도 점점 늘어만 갔다. 어렵지 않게 감염체를 베어가니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갔고 이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감염체 시체근처로 비둘기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머지 감염체도 처리를 하고 유심히 비둘기를 관찰했다. 예전처럼 쪼아 먹는 것이 아닌 날카롭게 변한 부리로 뜯어 먹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비교적 연한 부위를 골라 먹는 모습이 보기 불편할 정도였다.
"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다행인가.."
감염체 시체만 먹는 모습에 아직까지는 살아있는 생존자를 공격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걸어서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 젠장... 아니었군!!"
" 푸드득!!!"
주변에 몰려있던 비둘기둘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징그럽게 변한 눈과 부리를 보고 순간 움찔했지만 나는 칼을 휘두르며 비둘기를 공격했다.
" 퍼억!!!"
" 뭐?!!"
내 칼은 베기 위한 도구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비둘기쯤은 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날에 맞은 비둘기는 멀리 날아가기는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젠장!!!"
나는 일일이 상대하기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 쿵!! 쿵!!!"
" 그냥... 부딪히는 건가?"
" 왜 그래?!"
내가 다급하게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김 중사와 박 중사가 뛰어왔고 옆에 놓여진 탁자와 의자를 이용해서 문을 막고는 말했다.
" 비둘기들이 공격하던데? 젠장.. 덩치가 작아서 상대하기도 힘들어."
" 미국은 독수리 한국은 비둘기란 말인가.."
" 차라리 독수리가 편하지 덩치라도 크니까. 이건 뭐 숫자는 많고 덩치가 작으니
상대하기 힘든데."
" 얼마나 모였는데?"
"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얼마 안 됐는데.. 점점 많이 모여들겠지?"
" 젠장!"
건물 비상계단에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비둘기들이 주변을 날고 있었다. 비둘기는 우리를 공격하기보다 우선 주변의 감염체를 뜯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듯 했다. 족히 이 백마리는 넘는 비둘기들은 감염체를 모조리 먹어치워 버렸고 몇 마리는 자기들끼리 싸우며 남은 감염체를 독식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 예전에 알던 닭둘기가 아니군."
" 무슨 수로 이곳을 벗어난담.."
" 난감한데? 가져온 식량있어?"
" 그래봐야 하루치야. 물이랑 해봐야.."
" 지하 통로나 그런 것은 없나?"
" 있다해도 우리 차가 바로 앞에 있는데... 맨 몸으로 떠나자고?"
" 돌겠네."
" 조금 있으면 떠나지 않을까?"
" 글쎄.. 계속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 하아..."
" 우선 숨 좀 돌리자."
우선 건물은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우리는 건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TV에서 보던 그런 연구소처럼 생긴 내부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강화 아크릴로 만든 방도 보였다.
" 설마 이 안에 감염체를 넣고 관찰한 것은 아니겠지?"
" 맞는 것 같네.. 손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 참네.. 그렇게 당하고도.."
" 하지만 치료제나 뭔가 한 방에 보낼 방법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 여기 뭔 지도가 있는데?"
" 응??"
" 뭐지?"
" 우리나라 지도 맞아? 처음보는 지형인데?"
"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 우리나라 맞는 것 같기는 하네. 산이 많은 것으로 보아."
부사관 출신이 두 명이나 있으니 지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지역이 어딘지는 알 수가 없었다. 꼭대기 층에서 지하까지 꼼꼼히 확인하며 내려왔지만 쓸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 중요한 곳인데 근무자도 없었나?"
" 보는 눈이 있으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겠지. 차라리 일반 생존자처럼
있다면 의심하지는 않았겠지."
" 흠.."
" 그래도 여기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이네."
" 문제는 어떻게 트럭까지 옮기냐 인데..."
" 내가 창문을 깨고 나가서 비둘기를 유인할까?"
" 감염체는 확실히 네가 더 빠르니 상관없었지만 비둘기가 너보다 빠르면?"
" 설마..."
" 저렇게 변했는데 날아가는 속도도 빨라졌을지 알아?"
" 괜한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흠.."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섣불리 움직이는 것도 위험했다. 하지만 마냥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 그냥 나가보자."
" 응?!!"
" 뭔 소리야?"
" 내 칼은 무게가 있고 날이 별로 없어서 힘들겠지만 쇠파이프를 이용하면
그래도 수월하겠지. 죽지는 않아도 기절을 하지 않을까? 아니면 날개라도
부러져서 못 날아갈지도."
" 저 많은 숫자를 무슨 수로 처리하게."
" 이거."
나는 무기창고에서 가져온 크레모아를 들고 말했다.
" 내가 건물 주변을 빙글 빙글 돌고 비둘기를 유인하면 너희가 이걸 여기에
설치해. 그리고 내가 건물에 들어오면 바로 터뜨리면 되잖아."
" 너무 위험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줄 알아?! 그리고 그 소리로 다른
비둘기들이 몰려오면 어쩌려고?"
" 나도 동감이다. 너무 위험해. 후폭풍도 거리가 상당한 편이고 네가 그 순간에
그 거리를 뛴다고 해도 위험한건 마찬가지야."
" 그럼 어째?!"
" 쿵...."
" 응?!!"
" 방금..무슨.."
" 어라?!"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진 후 공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의 진동과 소리가 들린 후 곳곳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자 비둘기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 뭐..뭐지? 어디서?"
" 함포 사격?"
" 응?? 뭔 소리야?"
" 설마 전에 봤던 것이 군함인가?"
" 설마..."
" 아무리 봐도 저런 식으로 떨어지는 건.. 미사일이나 뭐 그런 종류 같은데.."
" 또 떨어졌나봐."
" 설마.. 여기도 쏘는 것은 아니겠지?"
" 하하..."
우리는 서둘러 건물 위로 올라갔다. 멀리서 보이는 군함들. 어느 나라 소속인지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숫자만 10여척에 가까웠다.
" 군대가 있었군."
" 하긴.. 배에서 생활한다면.. 감염체의 공격을 받을 수 없으니.. 더 안전하겠지."
" 여기로 오나봐?"
" 그런데 왜 쏜 거지?"
" 아마도 감염체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 우선 사격을 했겠지."
" 그런데 저 군함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어? 항구가 있나?"
" 모르지. 그래도 이곳에 들어오니 가보자."
" 무슨 말이야? 가보자니?"
" 군대니까. 지금까지 본 군대 중에 가장 안전한 군대니까."
" 반대."
" 나도 반대."
김 중사가 가서 만나보자는 말에 나와 박 중사가 반대했다.
" 왜...왜 그래.."
" 지금까지 경험으로 제대로 된 군대가 없었으니 큰 신용을 가지 않고 아직은
우리가 다가갈 시간이 아닌것 같다."
" 맞아. 무슨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알 수 없으니."
" 무슨 생각이라니?! 뻔 한 것 아니냐? 감염체를 죽이는 것이지?!"
" 그랬다면 벌써 서울이나 주요도시에 폭격을 가했어야지. 그곳에 가장 많은
감염체가 있는 상황인데. 아직도 멀쩡한 것을 보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는
증거지."
" 왜 도시를 지키려고 하지? 다른 곳에서 지내도 되는데.."
" 모르지.."
" 머릿속에 뭐가 든 거야? 감염체를 죽이고 다시 일어서야하는데 저것들은
왜 저기서 쏘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거야?"
몇 번의 사격이 끝내고 움직이는 모습은 보였지만 이곳으로 올 생각이 없는 듯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격분했다.
" 참네... 엄청 소심하네."
" 에휴.. 또 쏘기 전에 움직이자. 괜히 눈먼 탄에 맞지 말고."
" 가자."
우리는 또 사격을 할까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고 포격소리를 듣고 몰려온 감염체를 밟으며 빠르게 섬으로 돌아갔다.
섬에 도착해서 대령님에게 군함을 봤다는 이야기를 했고 대령님은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이제야 왔군."
" 네?"
" 뭐.. 사건 발발 후 소문으로는 가장 먼저 도망갔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내가 해군도 아니고 알 수가 있나. 그리고 그 많은 군함들이 보이지 않은 것이
뭔가 이상하기는 했는데 이제야 나타났다면 뭔가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
아니겠나?"
" 해결책이요?"
" 뭐 자네가 발견한 독초도 있고.. 시간이 흘렀으니 뭔가 해결책을 찾았으니
이제야 움직이는 것 아니겠나?"
" 하긴..."
" 좋은... 상황이겠죠?"
" 지켜봐야겠지. 확실한 것은 저들도 뭔가 확신이 있으니 움직였을 것이고
그 확신이 뭔지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겠고."
" 네."
" 수고했네. 가서 무기는 한 곳에 모아두고 섬 입구에 무기를 보강하도록
하게나."
" 알겠습니다."
우리는 가져온 무기를 가져다 섬 입구에 화력을 보강했고 자잘한 작업을 끝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가서 밥이라도 먹자."
" 배고파 죽겠다!"
우리를 섬 중앙에 마련된 식당으로 갔고 식당에는 식사를 준비하는 은혜와 미란이 보미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마주해주며 식사를 준비해줬고 고된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