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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감염체의 공격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감을 가졌다. 독초를 발라둔 탄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확인했고 최소한의 피해로 감염체를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 해가고 있었다.
" 계속 탄에 담갔다가 빼야하는 것이 번거롭다. 소량이라도 감염체에게는 치명적
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뭐 다른 방법이 없나?"
" 양이 한정되어 있으니 탄피 말고 탄두에만 담갔다가 빼자. 어차피 탄피는 버려
지는 거니까."
" 액이라고 했는데 꿀 같은 느낌인데? 색도 그렇고.."
" 잘못해서 먹으며 바로 저세상으로 떠나니 조심해."
우리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많은 수의 탄약에 일일이 액을 발랐다. 가지고 있는 독액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최대한 양을 아끼며 사용해야만 했다.
" 못 가져온 것도 있으니 몇 번은 가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일일이 처리하는
것도 일이다."
" 몇 번을 갈 양은 아니던데.. 뭐 주변에 쓸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도 해봐야
하니까 가보자."
" 어깨 빠지것다!"
우리는 탄두를 액에 담갔다가 빼서 건조대에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건조대 밑에는 혹시 떨어지는 액을 담기 위해 통을 설치해서 필요 없이 낭비되는 양을 최소화 했다.
"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이게 효과가 있었으니.."
" 대량으로 양산이 가능한가? 지금 이 상황에?"
" 무엇보다 여기에 독초가 있는지가 관건이지. 우리가 성분만 추출해서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없고.."
" 안 되면 다시 강원도로 가서 독초를 가져와야지."
" 하아.. 언제 거기까지 간다냐?"
" 그래도 이게 있어야 우리가 살지."
열심히 작업을 하면서도 우리는 입은 쉬지 않았다. 언제 또 감염체가 공격해올지
몰랐기에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은 계속되었고 그런 우리를 위해 야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 와... 이게 뭐야?"
" 생선구이다!"
" 와웅!"
" 맛있겠다!"
생선은 많이 잡고 있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잡은 것 중 가장 큰 것을 불에 구워 우리에게 가져온 것이었다.
" 쉬면서 해요. 이거라도 먹으면서."
" 고마워."
" 캬아!! 소주가 한 잔 생각나는 맛인데?!"
" 맛있다!"
우리가 매우 만족해하며 먹자 야식을 준비한 여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허겁지겁 먹다보니 큰 생선은 이미 뼈만 남은 상황이었고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만족한 표정으로 앉았다.
" 크아!! 잘 먹었다!"
" 덕분에 잘 먹었어!"
" 별말씀을요.."
우리는 작업을 끝내고 다음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펜션 앞에 피워진 모닥불로 꽤 밝아진 상태였다. 한 번 방어를 해서인지 아니면 마음이 놓여서 그런 것인지 조금은 여유로워진 모습들이었다.
" 이제 좀 사람 사는 곳 같네."
" 생기가 좀 도네."
" 그래도 모닥불을 좀 위험하지 않을까?"
" 감염체가 불을 무서워하고 또 시력이 좋지 못해서 아마 불을 보고 오지는
못 할 것 같아. 아마도 생존자들이 보고 몰려들겠지."
" 생존자들이 몰려 드는게 그렇게 싫으냐?"
" 뭐 싫다기보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가 싫은 거야."
" 하긴..."
박 중사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뻔했지만 생존이 달린 일이니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무조건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현재 부족한 것이라고는 약간의 식량일 뿐. 무기와 탄약. 그리고 개별적인 능력은 그 어느 집단보다 뛰어난 상황이다.
" 쿵..."
" 응??"
" 어라?"
" 꽤 멀리서 들리는데.. 이런 야밤에 무슨.."
" 공항 쪽 인가?"
" 다른 사람은 못 들었나봐?"
" 재효랑 기태는 들은 것 같은데..나머지 인원은 못 들었나봐. 난 정말 미약하게
들렸으니 다른 애들은 못 들었을 수도 있지."
" 하긴.. 나도 순간적으로 들렸지 너랑 계속 말을 하면서 갔으면 못 들었을 것
같은데?"
" 흠... 뭔가 중요한 게 공항에 있나봐?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걸까?"
" 우리가 가진 독초 액이랑 관련이 있겠지?"
" 나도 그 생각했는데.. 워낙 중요한 것이니... 확보된 양도 얼마 없고.."
" 한시가 급해졌군. 저들이 저렇게 공격을 한다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양이
있으니 들어가려고 하는 것 일 테고.."
" 괜찮을까? 괜히 가서 포탄이라도 맞는 것 아냐?"
"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물건이니... 들어가야지..."
" 제발 남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 뭐.. 굳이 없더라도 강원도에 가서 독초를 구해오면 되지.."
" 천하태평이다."
" 지금 있는 양으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 뭐 오늘 꽤 작업을 했는데도 상당량이 남았으니... 생각보다 오래 버틸 것
같아."
" 다행이네. 공항에서 더 구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 우리만 들어가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 하아.."
어느새 우리는 펜션에 도착했고 씻을 물을 챙겨서 올라갔다. 전기가 없으니 방으로 물이 올라가지 못했고 이렇게 일일이 물을 쓸 만큼 올려야 했다. 크게 무겁거나 힘든 것은 아니지만 일일이 올려야 한다는 것이 매우 귀찮았다.
" 끄응.. 발전기라도 돌려야 하나?"
" 괜찮겠냐? 보는 눈도 많은데..."
" 돌린다고 해도... 물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과연 시설이 제대로 작동할까?"
" 응?"
" 시설을 방치한지 오래 되서 제대로 작동할까? 애초에 시설이 별로인 곳이라
전기가 공급된다고 해도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은데?"
" 하긴.. 방마다 시설을 보니 정말 아니더라..."
" 이런 곳을 돈 주고 빌렸으면 진짜 입에서 욕 나오지."
" 하지만 놀러오면 아쉬운 것은 관광객이지 펜션주인이 아니잖아요. 매번 보면
시설은 별론데 가격은 비싸고 그런 곳이 수두룩하니까요."
펜션 입구 앞에서 다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야 슈트를 입었으니 이 정도 무게는 별게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차라리 발전기를 돌아가면서 돌려서 필요한 물이나 물건을 올리는데 써도 좋을 것 같았다.
" 바닷가라 그런지 습도가 장난이 아니네.."
" 어떻게 여기서 여름을 버틴담.."
" 어떻게라도 버텨야지."
" 오늘은 늦었으니 어서 자자."
이미 달이 밤하늘 중앙에 떠있었다. 그런 달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내일도 살아남길 바라면서 잠이 들었다.
" 쿵!!!"
" 응?!!"
뭔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발코니로 나가봤지만 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 나만 들었던 소리가 아니었는지 박 중사와 김 중사도 나온 것이 보였다.
" 무슨 소리였지? 포탄 소리가 아니라 뭔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는데?"
" 저 배인가 보다.. 저 배... 어제까지 없던 것 같았는데."
" 어디서 떠 내려왔나 보네."
" 여긴 배들의 공동묘지야? 왜 자꾸 여기로 모이는 거야?"
" 조류가 여기로 흐르나? 신기하네.."
어제보다 많아진 배들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근처에서 흘러 다니다 이곳으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조류의 영향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크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공짜로 들어오는 물건을 싫어할 이유도 없고 만약 이 섬이 감염체의 공격에 무너진다면 우선 저기 쌓여있는 배들 안으로 들어가서 숨어도 될 일이다.
" 소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네. 오히려 우리 피난처가
쌓여 가는데.."
" 하긴... 감염체는 물을 싫어하니까."
" 배 안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올라나?"
" 모르지... 지금은 저게 문제가 아닌데.."
" 왜??"
" 저기... 저 연기... 도대체 어딘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보일 정도라면 엄청난
상황 아닌가?"
" 어라?!!"
" 저 방향이면... 국제공항은 아닌 것 같고... 서울인가?"
" 심각한가? 여기까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이네.."
" 엄청 쏟아부었나보다."
" 지역이 어딘 거야?"
" 가보려고?"
" 아니... 미쳤냐?"
" 생각보다 폭격이 많나봐. 공항에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괜히 갔다가 폭격
맞으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
" 재수 없는 녀석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니까. 조심해야지."
" 뭔가 말이 안 맞기는 하지만... 가는 것은 보류하자."
" 당장 큰일은 아니지만 괜히 아까운데.."
" 그렇게.. 좀 빨리 갔다 올 걸 그랬나?."
" 상황을 조금 지켜보자."
" 젠장.."
우리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을 지켜보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여자애들도 방에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봤고 역시나 한 동안 말없이 바라만 봤다.
" 들어가자. 뭐 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 식당에 가서 아침이나 먹자."
" 그래.."
다들 있어봐야 달라질 것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식당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식사준비 전이었고 우리는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도와 아침을 준비했다. 역시나 해산물이 가득한 아침식사였다. 곡식을 얻을 방법이 없으니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해산물 위주의 식단일 수밖에 없었다.
"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이제 슬슬 질려 가는데.."
" 그냥 먹어... 농사라도 지어야 하는데 지금 그게 가능한 사람이 없잖아."
" 하아..."
"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수지도 있고 식수로 활용할 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라. 먹을 물도 없었다면 미친 듯이 물을 끓여서 얻어야 했을걸?"
" 쳇... 밥에 김치가 먹고 싶다. 밥 먹어 본지가 언제야?"
" 몰라.. 기억도 없어."
" 히잉..."
다들 밥도 없이 해산물로 만든 음식만 먹는 것에 질려가고 있었다. 한국 사람은 밥 힘이라고 했던가? 역시 밥이 없으니 다들 음식에 빠르게 질려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먹기 시작했다. 생존자 중 처음으로 들어온 일행 중 노부부가 텃밭을 가꾸고 있다고 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다른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령님과 다른 사람들은 아침에 본 관경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 대량의 미사일을 쏜 것 아닐까요?"
" 여기서 직선거리로 꽤 되는데 여기서도 보일 정도면 제법 크게 맞은 것
같은데요?"
" 그렇다고 지금 당장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언제 또 폭격을 가할 지
모르니까요."
"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요? 지금까지 도시에 가능한 피해가 없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폭격을 가한다?"
" 지휘관이 바뀐 건가?"
" 그럴지도 모르죠."
" 흠..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해봐야 알 수도 없고.. 그냥 한 번 가볼까요?"
" 아닐세. 너무 위험하네. 아무리 슈트를 입어도 저런 폭격을 맞는다면 솔직히
생명을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 네.. 그럼 거리를 두고.."
" 어디를 포격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어디라고 안전하겠나? 며칠 지켜보고
잠잠해지면 그 때 움직여도 늦지 않네."
" 알겠습니다. 공항의 물품이 아까워서.."
" 뭐.. 너무 아까워하지 말게. 지금 가져온 양도 상당하니까."
" 네.."
" 혹시 모르니 섬 입구 근무에 신경을 쓰고... 수고하게나."
" 네."
우리는 별다른 소득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각자 할 일을 찾아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