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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이제는 제법 모양을 갖춘 요새와 같이 변하는 섬을 보고 다들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박 중사와 애들과 한참을 멀쩡한 배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 뭘 찾으십니까?"
기동대의 부대장이 내 옆으로 말을 걸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릴 것 같은 나이대로 보였지만 확실히 모르는 일이기에 우선 예의를 차리며 말을 했다.
" 멀쩡한 배를 찾고 있습니다. 쓸만한 물품이나 자재를 구할 수 있나 해서요."
" 그렇군요. 배에서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이제 배라면 지긋지긋합니다."
" 네. 혹시 현재 전체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계신가요?"
" 흠.. 저희 부대와 다른 몇몇 부대가 서울을 다시 되찾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 강원도다 남쪽에 견고한 생존자 캠프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 가본 적은 없습니다."
" 제가 한동안 강원도에서 지냈는데 그런 생존자 캠프는 본적도 없고.. 저희가
떠나기 전에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의 공격을 받아서.."
" 뭐.. 이제는 대형 감염체나 동물이 변한 감염체가 아니라면 일반 감염체는
무리 없이 제거가 가능한데 문제는 동물 감염체입니다."
" 저는 비둘기만 봤는데.. 다른 동물들이 변한 것도 보셨습니까?"
" 보통 새들이 많이 변하더군요. 가장 상대하기도 까다롭고 숫자도 많아서
피해가 많았습니다."
역시 하늘을 날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는 하늘에서 공격하는 감염체였다. 약간만 방심해도 수백의 비둘기들이 몰려들테니 말이다.
" 부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저희가 희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 못해도 이 섬에서는 희망이 보이는 군요."
" 네?"
" 제가 왜 하루라도 빨리 이곳으로 오려했냐면 저희가 지내는 캠프는 각자
자기 살기 바쁩니다. 식량 배급도 생필품도.. 서로 도와주며 지내는 상황이
아니죠. 물론 여기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생존자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이 섬은 인원이 늘어도 뭔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날 것
같아서입니다."
" 전 솔직히 인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다른
인원들은 인원이 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뭐 갈등이나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 그런가요? 솔직히 재원씨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아니 일행을 꾸리고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른 인원들은
서로 모이지 않는다면 힘들죠."
" 저는 생존자 캠프에서 인원이 늘어나서 생기는 부작용을 봐왔습니다. 어쩜
사람 사는 곳이 그렇게 똑같은지.."
" 그럼 재원씨가 바꿔보십쇼."
" 네?"
" 알게 모르게 여기는 재원씨 입김이 상당한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더군요.
의도하지 않는 것도 관여하고 싶지 않는 것도 알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재원씨의 의견에 따라가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 그런가요?"
" 뭐 제가 본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 부대장님 본부대로부터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 곧 가지."
무전기에서 본부대로 통신이 들어왔다고 하자 부대장은 빠르게 초소로 돌아갔다.
난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며 며칠전 수색에서 구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제는 정말 여름인지 한낮에는 그늘이 없는 곳에서는 서있기 힘들 정도로 변하였다. 그래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조금은 괜찮았지만 에어컨에 익숙한 내가 참아내기에는 힘든 더위였다. 난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는 쥐약이었다.
" 허억...허억..."
" 와.. 땀 봐..."
" 형 정말 여름이 쥐약이다... 저렇다 쓰러지겠다."
" 원래 오빠 여름을 힘들어했어요?"
" 응. 재원오빠 원래 여름에 아무것도 안 해. 더위에 약하고 땀도 너무 많아서
외출도 꺼리고... 겨울에는 추위안타는 것 보면 신기한데 이런 것도 신기
하단말야."
" 남을 구경꺼리로 만들지 마라."
내가 힘겹게 일어나 미란이에게 말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예전처럼 뭔가 따가울 정도의 햇살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눈이 부시다 못 해 아플 정도의 햇살이 아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날씨로 변했다.
"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뭔가 변한건가?"
" 그래도 그늘에서는 버틸 만 하네."
" 발전기도 있는데 에어컨이나 틀어 달라고 할까?"
" 아서라. 지금 보아하니 냉장고 돌리고 초소에 전기 공급하고 뭐 이러면
간당간당 하다더라."
" 덩치는 저렇게 큰데 용량은 얼마 안 되나봐?"
" 모르지."
" 아참 그리고 배는 구했어?"
" 응. 재원이 형이 중앙에서 유람선크기의 배를 발견했어. "
" 유람선?"
" 진짜 크던데?! 내부도 진짜 고급 물품만 사용했는지 장난 아니더라."
" 그래? 그런게 어떻게 여기에 있다냐?"
" 아마 박람회 비슷한 것도 했겠지."
" 다른 사람들도 요새는 한 척씩 차지하려는 것 같던데?"
" 그래도 끌고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나도 그 배 끌고 오려고 했는데
주변에 배들이 너무 많고 꼼짝도 안 하는 것 봤잖아?"
" 하긴.. 옆으로 끌고 가는 것도 겨우..."
" 그런데 뭔가 계속 내려오는 것 같지 않아? 저 배들은 둘째 치고 이제는 신기한
것도 떠내려 오네."
" 떠내려 오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이 주변에서 맴도는 거 아닐까? 저 배는 얼마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 이제는 위치가 저쪽을 바뀌었는데?"
" 어라?"
" 서로 계속해서 뒤섞이는 건가?"
" 신기하네..."
우리를 배들 사이에 낚싯대를 던지며 말을 했다. 배들은 다행히 기동대에서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현재 재효와 기태. 박 중사가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있었다. 나는 들어봐야 아는 것도 없고 귀찮은 생각에 필요 없다고 했다.
" 끄응.."
" 많이 더워요?"
손수건으로 계속 내 땀을 닦아주고 있는 은혜였지만 계속해서 흐르는 땀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아! 그냥 바닷물에 들어갔다 올게."
" 네?!"
" 풍덩!"
난 물안경을 끼고 그대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바다 속은 잔잔한 상태였는데 물이 깨끗한 편은 아니었다. 배들이 많이 몰려있어서 그런지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다시 물 위로 올라가 그늘에 누웠더니 조금은 살만했다.
" 피잉!!! 펑!!!"
" 응?!"
" 어라!!"
폭죽 소리와 약하게 터지는 것을 보고 나는 숙소로 뛰어가서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슈트를 챙겨 입었다. 일반 관광지에서 흔하게 파는 폭죽을 우리는 감염체가 나타나면 터뜨리는 일종의 알람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감염체가 나타나면 터뜨리기로 했다.
" 얼마나 몰려오고 있습니까?"
"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상당한 숫자라고 합니다!"
" 도착 예상 시간은?!"
" 십 분입니다!"
" 응? 십 분이면 이제 육지 입구에서 보여야... 젠장.."
육지입구에서 스멀스멀 나타나는 감염체를 보고 다들 무기를 잡았다.
" 우선 소리가 나지 않는 무기를 가진 저희가 먼저 가서 감염체를 제거 하고
있겠습니다. 기동대 여러분은 혹시 모르니 뒤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 하지만 감염체를 상대로!!"
기동대와는 처음 같이 하는 전투였기에 서로를 믿지 못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나서서 싸운다면 불신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걱정 마세요. 하루 이틀도 아닌데."
"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
" 그렇게.. 예전이 더 많았는데?"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면서 각자의 무기를 챙겨 도로로 나가는 우리를 보고 부대장은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슈트라고는 하지만 성능차이가 월등한 슈트의 존재를 아직 모를 테니 말이다.
" 그럼!!"
" 퍼억!!"
내가 휘두른 칼에 수십의 감염체의 머리가 허공을 돌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하는 방법이라고는 무식하게 자르고 자르는 것이 전부였다. 어차피 고통도 모르고 머리가 잘려야 죽는 감염체를 상대하는 방법은 단순하고 무식한 이 방법이 최고였다.
" 언제 봐도 단순 무식하다."
" 하지만 효과는 제일인데?"
" 콰앙!!"
" 응?"
" 잘 못 맞았네.."
" 야!!!"
칼이 제대로 감염체를 베지 못해 오히려 감염체가 밀려 날아갔고 박 중사 옆으로 떨어진 감염체는 한 참을 튕겨져 나갔다.
" 정말... 무식한 것 같아... 저 녀석.."
" 욕구 불만인가.."
" 다 들려 이 자식들아.."
우리 네 명은 열심히 감염체를 베어갔고 초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기동대의 눈은 이제 경이로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 하아.. 어쩐지 요새 안 보인다 했더니.."
" 젠장..."
" 쿠어어!!"
" 하나.. 둘... 셋... 젠장.. 열다섯은 되잖아?"
" 퍼억!!!"
" 이제 열 넷..."
주변에 뒹구는 쇠파이프 하나를 잡아 정확히 대형 감염체의 얼굴에 명중시켰다. 몇 번 발버둥을 치고는 온 몸의 힘이 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 나 혼자 해봐도 돼?"
" 뭐?! 미쳤냐? 아무리 그래도 숫자가 열이 넘는데?!"
" 위험하면 봐주고.. 우선 혼자 해보고 싶어.."
" 참네... 하긴 슈트도 있으니 죽진 않겠지?"
난 애들에게 뒤를 봐주길 부탁하고 다가오는 대형 감염체 앞에 섰다. 대형 감염체 뒤에는 여전히 몰려드는 일반 감염체가 보였지만 대형 감염체를 앞질러 오지는 않았다.
" 후움...하암..."
깊게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예전에 느꼈던 그 감정을 끌어올리려 노력하면서..
" 쿠웅.. 쿠웅.."
" 야..야!!"
대형 감염체는 내가 가만히 있자 포기했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고 그 거리가 약 3m정도 됐을 때 난 그대로 칼을 들고 뛰어 들었다.
" 콰앙!!!"
" 뭐?!!"
내가 도움닫기 한 땅은 깊게 내려앉았고 순식간에 대형 감염체 다섯의 육체가 상하로 나뉘어졌다.
" 저 녀석.. 더 빨라졌네.."
" 신기한 녀석인데.."
순식간에 대형 감염체 무리 중간에 들어오게 된 나는 그대로 칼을 휘둘렀고 주변에 있던 감염체들이 가볍게 잘려 나갔다. 이제는 스피드를 이용해 베어나가기 때문에 굳이 초 진동기능을 작동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 쿵.... 쿵..."
대형 감염체의 육체가 분리되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모습은 꽤 잔인했지만..
" 피?! 뭐?!"
보통 대형 감염체를 잘라도 피가 저렇게 흐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그렇다면..
" 저번.. 그 녀석처럼 변한 것인가.."
그래도 저번 녀석에 비교하면 무척이나 약한 녀석이라 손쉽게 제거가 가능했고
어려움도 없었다.
" 와웅... 스피드가 더 빨라졌네. 배율은 몇 배야?"
" 일."
" 뭐?!"
" 기본. 일."
" 말이..."
이제는 슈트의 도움 없이도 예전 배율 세배의 능력과 비슷하게 올라갔다. 박 중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 너.. 정체가 뭐냐.."
" 우선 배율을 너만 알고 있어. 뭐.. 예전에 싸움에서 뭔가 깨달음이 있다고 해야
하나.."
" 네가 무슨 무림고수냐? 깨달음은... 어?"
" 응?!"
" 저게.. 젠장!!!"
" 뭐...뭐야!!"
" 다들 집으로 피신해요!!"
우리는 하늘에서 다가오는 먹구름을 보며 섬으로 뛰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우리르 바라보고 먹구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먹구름이 비둘기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