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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158화 (158/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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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언제나 변함없이 해는 떴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일상이라고 해봐야 낚시를 하거나 숙소를 손보는 것이 전부였다. 간간히 저번에 봐뒀던 배를 손보는 작업을 했지만 주력으로 투입된 인원은 우선 여자들과 배를 운용하기 위한 교육을 받을 재효였기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인원들도 자신이 피난을 갈 배를 선택해서 수리를 하는 모습이 보였고 기동대 인원들도 피난처를 만드는 작업을 도왔다.

" 사람들이.. 준비성이 철저하군요."

" 경험에서 나온 것이죠."

" 감염체가 나타났을 때 움직임. 사람들의 협동심. 준비성이 웬만한 군대 보다

뛰어나군요."

" 뭐.. 적은 인원으로 계속해서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적응이 됐죠."

부대장은 초소를 정리하며 나에게 말을 했다. 초소 앞에서 비둘기들이 먹고 남은 감염체 시체로 가득했고 우리는 그 시체를 한 곳에 모아 소각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진 보호 장비라고는 고무장갑과 마스크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다들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 이제 불을."

" 네."

비둘기가 대부분 먹잇감으로 삼았지만 워낙 양이 많았기에 시체를 모으니 양이 생각보다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종이에 불을 붙여 약간의 휘발유를 뿌린 감염체쪽으로 던졌다. 순식간에 번진 불을 크게 커졌고 나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타오르는 불을 보고 있었다.

"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 네?? 아.. 그냥.. 언제까지 이래야하나 해서요."

부대장이 내 옆으로 담배 하나를 주며 말했다. 말없이 담배를 받아 들고 불을 붙이고는 둘 다 한 동안 말이 없이 타들어가는 감염체의 시체만 바라봤다.

" 언젠가는... 끝나지 않겠습니까? 대 감염체 대응 무기도 속속 보급이 되고

있고 문제라고 하면 저 비둘기죠."

" 제발.. 비둘기만 변했으면 좋겠네요."

" 아쉽게도.. 잡식성의 동물들이 다 변했을 거라는 예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견되는 동물도 있는 상태입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요."

"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 다행이도 한국에는 야생동물이 많지 않으니 큰 위협은 되지 않겠지만 혹시

몰라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크게 믿음은 가지 않는군요. 지금까지 한 행동을 보면요."

" 군에 대한 불신이 많이 쌓이셨군요."

" 뭐.. 군대도 다녀왔고 지금까지 당한 것이 있으니까요."

" 저희도 들은 이야기가 있다 보니 뭐라 할 말이 없군요."

" 그렇다고 부대장님을 못 믿는 건 아닙니다."

" 하하!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입장이니까요."

" 잘 부탁드립니다."

" 저희야 말로.."

섬에 들어와 계속해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지냈는데 간단한 대화지만 뜻있는 대화로 인해 한 발자국 서로에게 다가간 시간이었다.

" 다 타려면 시간이 걸리겠네요."

" 양을 보아하니.. 해 뜰 때까지 탈 것 같네요."

" 뭐 주변이 밝아서 좋긴 하네요."

" 다행이 타면서 큰 악취가 나지 않으니 다행이죠."

" 잘 탄다.."

나는 다 피운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끄며 중얼거렸다. 기동대 직원들과 우리 일행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서로의 일행에게 가서 섬 안에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다행이 크게 놀란 사람들은 없어. 집에 피해도 크지 않고. 그래봐야 창문이

깨어진 정도."

" 다행이네."

" 창문에 방범창이라도 달아야 하나봐. 생각보다 무식한 녀석들이라."

" 다친 사람은 없어?"

" 직접적으로 비둘기의 공격을 받고 다친 사람은 없고 피하다가 넘어져서

다친 사람은 있지만 큰 상처는 아니야."

" 큰 피해는 없군요."

" 이번은 운 좋게 넘어갔지만 다음번에는 모르는 일이야."

" 그래도 일반 감염체는 신형 무기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처리했네."

섬으로 정찰을 나갔던 인원도 복귀하는 모습이 보였고 대부분의 전투 인원이 초소에 모여 있었다.

" 감염체에게 습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다시 공격해올 확률이 높다. 그러니

섬 입구 경계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남은 탄약과 무기를 정비하고 부족하면

본부로 돌아가 보급을 받아 오도록!"

" 알겠습니다."

" 그럼 어서 움직이자!"

부대원들은 사용했던 무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탄을 채워 넣었고 우리도 초소를 보강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대부분의 인원이 슈트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업이 완료되었다.

" 탄약과 무기를 더 가져와야 할 것 같습니다. 정찰대 이야기로는 주변에 몰려

있는 감염체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 큰일이군. 이 상태로 계속 공격 받으면 버티기 어려운데."

" 우선 보급을 받을 인원을 추려 출발시켰습니다. 운이 좋다면 비둘기용 무기도

받을 수 있겠지만.. 큰 기대는 안하고 있습니다."

" 그래도 서울 소탕 작업에는 성과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이미 서울 주변

주요 건물을 확보했다는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 서울을 탈환하는 것은 시간문제군요."

" 저기.. 그것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내 말에 무전병으로 보이는 인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다른 인원들도 궁금한 표정으로 무전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 서울에 있는 감염체의 숫자가 엄청나고 건물의 밀집도가 높아 무기 사용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그러니 일일이 인원이 들어가 상대해야 하는데...

문제는 저희가 봤던 대형 감염체와 감염된 비둘기겠죠."

" 하긴. 공중 공격을 예상하지 못 했으니.."

" 그래도 저희와 같은 소규모 집단이 많다는 소식입니다. 인원이 없어 고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 문제라고 하면 저 녀석들이지."

" 하아..."

섬 멀리 육지위에 날아다니고 있는 감염된 비둘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먹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 설마 여기로 오지는 않겠지 형?"

재효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 여기는 이제 먹을 것이 없으니 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저기에 몰려 있다는

것은.."

" 감염체나 생존자가 몰려 있다는 증거군."

옆에 있던 박 중사가 말을 이어갔다. 다들 공감하든 듯 고개를 저으며 근무 인원을 제외하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 배 고치는 작업을 잘 되어가?"

" 응! 내부 청소도 거의 마무리가 됐고 조금만 손보면 운행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 다행이네. 그래서 다들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는구나."

요새 집에서 완전히 뻗어 죽은 듯 잠을 자는 은혜를 보고 뭐하나 싶었는데 배를 고치는 작업에 열중했던 것이었다.

" 하긴.. 이런 건물보다야 어떻게 보면 배가 더 안전하겠지."

"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작업을 하고 있던데?"

" 캬하.. 준비성 하고는.."

부대원들과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섬 밖으로 나갔다. 일반 차량을 가지고 은밀하게 이동을 하면서 섬 근처 도심을 정찰했다. 멀쩡했던 시절에도 관광객을 제외하면 주거하는 인원이 얼마 되지 않을 곳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감염체의 숫자는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어버렸다.

" 조용히... 지내야겠죠?"

" 아무래도.."

우리는 유심히 감염체의 경로를 살피며 예상 경로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현재로써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불규칙 적으로 움직이며 이동하는 감염체의 예상경로를 맞춘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 어렵게 됐군."

" 그래도 지금 방향을 본다면 섬에 올 확률은 극히 낮군요."

" 다행이군."

천천히..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이루고 있는 감염체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서울과 그 근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감염체 소탕작전을 피해서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생존 본능이라도 남아 있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 상황에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 아무래도 육지 입구에도 방어를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잘 못해서 생존자가 건들이면 큰일입니다. 그렇다고 표지판을 세울 수도 없습

니다. 저희에게 호감만 가지고 접근하는 인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 현재 감염체의 이동을 짐작해 본다면 서울과 근교에서 일어나는 소탕작전으로

인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라 추측됩니다."

" 그 정도의 지능이 있나?"

" 최소한의 생존본능이나. 아니면 누군가 조종 하는 인원이 있겠죠."

" 물자를 보급 받으러 갔던 인원이 돌아왔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기와 탄약을 지급받기는 했지만 한 동안 추가 보급은 힘들 것 같답니다.

소탕작전에 워낙 많은 양이 투입이 되어 여유 량이 없다고 합니다."

" 흠.."

" 한 동안은 버틸 양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도록 하세."

" 알겠습니다."

대령님과 기동대원들과 우리들은 다 같이 모여 앞으로의 계획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다. 버려진 배들은 비상 피난처로 정해서 움직이기로 했고 현재 지내고 있는

숙소는 창문이나 현관문을 보강해서 감염 비둘기의 공격에 대비하기로 했다.

무기들도 최대한 많은 수의 감염체를 제거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정을 시키고

나는 애들이 작업하고 있는 배를 찾아 해안가로 갔다.

" 형! 여기야!"

" 응?!"

생각보다 먼 곳에 위치한 재효를 보고 배들 사이를 뛰면서 다가갔다. 생각보다 외관은 깨끗했고 제법 큰 크기로 보였다.

" 와.. 이걸 언제.."

" 들어와봐!"

" 오호!!"

안으로 들어가니 청소를 끝낸 상태라 무척이나 깨끗했고 절대 몇 달이나 방치된 상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 전기도 들어와?"

내부의 전등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말을 했다.

" 응! 엔진도 손 봐서 근처의 배들만 없다면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다고 하던데?

문제는 이 많은 배들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 건지."

" 우선 나갈 생각은 하지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감염체나 감염 비둘기를

피하는 용도로는 충분하니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침실과 화장실. 거실이 보였다. 큰 저택을 그대로 가져다 논 것처럼 말끔한 모습에 상당히 놀라웠다.

" 왔어요?"

" 어라? 에구.. 고생이 많았구나?"

" 헤헤!"

긴 머리카락이 엉켜있는 것을 보아 엄청 고생한 것 같았다. 내 팔에 팔짱을 끼고는 방으로 안내 받았다.

" 우와..."

" 굉장하죠?! 저도 처음에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 하하.. 뭐야..."

고가의 호텔 방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방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겉에서 본 것 보다 훨씬 큰 배인지 구조 자체가 굉장히 넓었다.

" 고생했네. 힘들었겠다."

" 아직 전부 끝난 건 아니고 침실이나 거실 정도만 끝났어요. 다른 층은 아직

시작도 못했는 걸요."

" 다른 층도 있어?"

" 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곳도 호화스럽던데요?"

" 키햐... 나중에 감염체가 사라지면 주인이 찾아오는 것 아냐?"

" 설마요.."

재효와 미란이도 거실에서 앉아서 쉬고 있었다. 엔진룸에서 오는 것인지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은 박 중사와 김 중사가 보였다.

" 왔냐?"

" 응. 뭐했냐? 옷은 왜 그래?"

" 엔진을 손 봤는데.. 당장은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시간을 두고 손을 더

봐야 할 것 같네."

" 운행에 지장이 있나봐?"

" 엔진은 괜찮은데 다른 곳이 문제가 있어서. 안 쓰는 배 안으로 들어가 괜찮은

부품을 찾아야겠어."

" 고생이 많네."

" 뭐 너도 고생이 심한데. 이쯤이야."

" 풋.."

나는 그대로 배 위로 나왔고 주변을 자세히 봤다. 저 많은 배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이 배는 절대 나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배들을 일일이 치우기도 힘들 것 같고 남은 방법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지만 박 중사의 말에 따르면 그럴 정도가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 당장은 힘들겠군."

난 다시 섬 입구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추천은...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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