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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160화 (16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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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배 안에서는 일행들 모두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 이제 마무리가 되가나봐?"

" 네! 이제 조금만 하면 되요. 박 중사 오빠 말로는 엔진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지만 지내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짧은 반바지에 헐렁한 박스티를 입고 물건을 나르는 은혜의 모습을 보며 말을 했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남자고 여자고 이제는 가린 부분보다 드러난 부분이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름옷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부지런히 옷을 세탁하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속옷은 겨울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 운행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네?"

" 왔구나? 생각보다 부품을 구하기가 어렵고 내가 아는 것이 없다보니 시간이

걸리겠다."

" 너무 조급하게 생각 하지마. 타고 갈 것도 아닌데."

" 가능하면 움직일 수 있는게 좋겠지."

" 부대장에게 말은 해봤어?"

" 부대원 중에 정비병이 있다고 해서 말은 해뒀는데 대답이 없네. 괜히 또 묻기

미안하기도 하고.."

" 뭐. 언젠가는 오겠지."

" 아!! 그리고 조금 전에 부대원을 만났는데 내일 중으로 물자가 온다고 하더라."

" 부대원?"

" 응! 대부분의 인원들이 숙소는 따로 정해두고 배를 선호하더라고. 배들이

정리되면 내 생각에 다들 배에서 지낼 것 같은데?"

" 신기하네. 멀쩡한 숙소 놔두고."

" 감염체가 와도 안전하고 감염 비둘기가 와도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곳이니

다들 선호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니까."

" 하지만 그만한 연료가 없잖아."

" 여기 널려있는 배의 숫자만 해도 엄청난데 여기서 빼다가 써도 얼마간은

버틸 것 같은데?"

" 하긴.."

그만큼 엄청난 양의 배들이 좌초되어 있었고 연료는 충분했다. 여기 인원이 그렇게 많지도 않으니 한 동안 쓸 연료는 확보한 셈이었다. 나는 배들 중간에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던졌다. 아무리 잘 곳이 있다고 해도 먹어야 하는 법이다. 낚싯대를 던지고 얼마 되지 않아 입질이 오기 시작했고 우리 일행이 먹고 남을 정도의 양이 잡혔다.

" 오늘도 상당하군."

" 뭐해서 먹게?"

" 구워먹자. 매번 끓여먹는 것도 질린다."

기본적으로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인원이 우리처럼 낚시를 하거나 갯벌에 들어가 따로 먹을 것을 챙겨 먹었다. 식당에서 주는 양은 한정되어 있어 양이 적었고 움직임이 많은 사람들이라 쉽게 배고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인원의 하루 일과가 먹고 일하고 먹을 것을 구해서 먹고. 근무를 서고 자기가 살 곳을 정리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또다시 하루가 지나 어제 박 중사가 말했던 물자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번과 다르게 수 십대의 차량이 들어오며 물자를 나르는 모습이 보였고 방어에 필요한 물품과 무기들도 상당했다.

" 이게 그물 총인가?"

" 네. 총을 쏘면 사각형의 그물이 퍼졌다가 꼭짓점에 있는 강력자석들이 붙어

감염 비둘기를 가두는 형식입니다."

" 그물의 크기는요?"

" 가로 5m 세로 5m입니다."

" 생각보다 크네요?"

생긴 것은 대형 손전등처럼 생겼는데 생각보다 그물의 크기가 컸다.

" 네. 하지만 사정거리가 50m도 채 안됩니다. 급하게 개발한 물품이라 아직

사정거리가 미약합니다."

"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양은 얼마나 되나요?"

" 우선 일 차분 500개와 이 차분 500개를 보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소형

다연장산탄총은 10개가 추가로 공급되고 탄약도 가져왔습니다."

" 많이 챙겨왔군요."

" 이곳이 생존 캠프지역으로 정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죠. 특히나 위험지역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 위험지역이요?"

물건을 가져온 일행을 도와주며 말을 나누다 위험지역이라는 말에 놀랐다.

" 모르셨군요. 서울과 근교 감염체 소탕 작전과 주기적으로 뿌리는 화학탄으로

감염체들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가 있다는 정보가 있고 확인도 된 상황이라 이곳이 위험지역으로 된

것입니다."

" 하지만 위험지역인데 왜 굳이 이곳을 생존캠프로 정한 걸까요?"

" 위험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방어에 유리한 지역과 이곳에 상주하는 인원의

대부분이 슈트 착용자라서 그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곳이니 중간 허리 지점에 위험을 감수하고도 캠프를 만들어야 계속된 싸움에

유리할테니까요."

" 그렇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계시네요?"

말하는 것이 꽤 중요한 내용 같은데 일반 병사로 보이는 사람이 자세히도 알고 있다.

" 뭐.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으니까요. 중간 중간 이런 캠프도 많고

강원도에도 상당수가 있다고 하던데요?"

" 강원도에요?"

" 네. 강원도에는 군부대도 많아서 남은 무기도 많고 무슨 연구소인가가

있어서 이번 반격의 시초가 됐다는 소리도 있고.."

" 아..."

미국에서 들었던 연구소의 인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이번 반격의 물꼬를 튼 것 같았다. 나름 연구소인데 뭔가 획기적인 무기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 식량은 또 언제 오나요?"

" 식량은 이제 오지 않습니다. 현재 생존자들이 많이 몰리고 있어서 빠듯한

상황이라. 그나마 여기는 바다근처라 먹을 것을 구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서울은 뭐 구할 곳이 있어야지요."

" 네.."

역시나 생산이 없고 소비만 지속되다 보니 금방 바닥을 드러낸 식량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바다와 갯벌로 인해 지겹기는 하지만 며칠을 굶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울은 딱히 공급처가 없으니 계속해서 소비만 해야하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하루에 두 끼도 힘든 적이 있다고 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 네. 언제 또 볼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몸 조심 하시고요."

차량을 몰고 온 인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우리는 보급 받은 무기를 설치했다. 그물총은 가구당 한 개씩 지급을 하고 몇 개의 예비탄을 지급했다. 신호탄도 색깔에 맞는 상황을 정해두고 움직이기로 했고 무기들을 설치하고 나니 섬 입구는 요새로 변하였다.

" 감염체가 아무리 많이 와도 끄떡없겠다."

" 멋지다!!"

" 성벽 같은데?"

입구를 보급 받은 방호벽을 이용해 도로 전체를 막고 성벽처럼 만들었다. 감염체가 도로 옆 갯벌을 통해서 들어오기는 힘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벽 앞에는 다연장 산탄총까지 설치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든든하였고 대형

감염체가 온다고 한 들 뚫기는 어려워보였다.

"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겠다!"

" 키야!! 요새다 요새!"

사람들은 튼튼하게 변해가는 섬을 보고 희망을 가졌고 우리 또한 설치를 끝내고 흐뭇한 모습으로 벽을 보고 기뻐했다.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인원이 해변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 내 옆으로 왔는지 부대장이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다들.. 숙소보다 배를 선호하는 군요."

" 저희도 배에서 버텼으니까요. 배가 더 안전하다고 느끼겠지요."

" 이러다 태풍이라도 온다면.."

" 배들이 많아서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태풍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거의 모든 배들이 침몰할걸요. 배들이 엉켜있으니 피해도

더 커지겠죠."

" 뭔가 방법이.."

" 배를 끌고 와서 육지에 올려놓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지금까지 배들이 저기 있었던 이유가 우선 가벼운 배들이 먼저 밀려오고 그

후에 대형선이 밀려왔는데 밑바닥에 박혀서 안에 있는 배들이 꼼짝도 못 하고

갇혀버린 상황인 것 같습니다."

" 저 큰 배들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군요?"

" 그렇죠. 그렇지 않다면야 저 배들이 지금까지 여기 있을 수가 없습니다. 뭐

초반에 태풍이나 다른 이유로 수위가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면서 저렇게

됐다는 가설이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최선이군요."

" 그럼.. 저 밖에 있는 배들을 치워야 나갈 수가 있는데 저 배들은 바닥에

닿았거나 이미 침몰한 상태인데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으니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군요."

" 그럴지도 모르죠."

" 끌고 올 수 있을까요?"

" 동일한 무게를 육지에서 끈다면 가능하겠지요. 슈트를 입은 인원이 많으니.

하지만 물 위에서 끌 방법은.."

" 하아... 여러모로 골치군요."

" 사람들이 희망적이라 딱히 말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태풍이라도 온다면

저기 있는 배들 대부분이 파손되거나 침몰하겠지요."

" 그래도 방파제 역할을 하는데 조금은 안전하지 않을까요?"

" 태풍이 올라오면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럼 지금은 가라앉거나

묻힌 배들이 떠올라 마구 움직이겠죠."

" 아... 하긴 테트라포드도 없으니.."

" 만약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면 전부 철수해야 합니다. 괜히 바다에 있다가

화라도 당한다면.."

배에서 생활한 사람이니 바다의 무서움을 잘 아는 부대장이었다.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이제부터라도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 네."

우리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 태풍이 오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 현재 남쪽 해상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무전입니다. 서해상에 있는 생존

캠프에 주의하라는 내용입니다."

" 육안으로 확인된 태풍이라 경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측으로는

서해상을 따라 올라올 것 같다고 합니다."

" 기상 위성이라도 있어서 그런 예측을 하는 겁니까?"

" 뭐. 그냥 경험이겠죠."

어두운 초소 앞 임시 사무실에는 대령님과 나, 박 중사. 김 중사와 기태와 부대장과 부대원 몇 명이 앉아 있었다.

" 우선 숙소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태풍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도록 하죠."

" 사람들이 배로 가지 않을까요?"

" 저희 부대원들은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고. 다른 일행은 모르겠습니다."

" 우선 배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치해야죠."

" 난파된 배들의 돛을 전부 내려놨습니다. 큰 움직임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제발 소형태풍이길 바래야죠."

" 비가 내리네요."

조금씩 내리는 빗소리로 우리 섬도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우선 사람들을 깨워서 태풍에 대비하도록 하죠."

" 이런 날 시야가 더 좋지 않으니 근무자를 늘리도록 하고."

" 알겠습니다."

" 바람에 날아갈 위험이 있는 물건은 조치를 해두고 부실한 건물에서 지내는

인원은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게나."

" 알겠습니다."

" 무전에서 다른 내용은 없었나?"

" 서울 탈환 작전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방호벽을 설치하며 움직이는

작전이라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듯 싶습니다."

" 시간이 걸려도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라.."

" 하긴 미국에서도 그런 방법을 택해서 도시를 점령했지. 캠프가 뒷통수만 맞지

않았어도 잘 살았을텐데."

" 이미 지나간 이야기해서 뭐하나.."

" 네..."

" 현재까지 저희의 도움을 요청하는 무전은 없었습니다. 대신 점령당하지만

말아달라는 무전은 있었습니다만.."

" 남 걱정하기 전에 자기들부터 챙기지."

" 우리는 알아서 잘 살아야지."

" 우선 태풍 대비를 시작하고 인원들을 깨우게나. 늦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가?"

"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빗줄기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구만.."

" 들어가시죠 대령님."

" 그래.."

대령님은 불안한 미소를 보이며 사무실로 들어갔고 우리는 다른 일행을 깨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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