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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아침이 되자 빗줄기는 눈에 띄게 굵어졌고 맞으면 따가움을 느낄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바람은 심하게 불지 않았기에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예상과 다르게 다들 배보다는 건물 안을 택했고 몇몇은 간단하게 짐을 꾸려 안전해 보이는 건물로 옮기는 인원도 보였다.
" 역시 안전제일이지."
" 그나저나 진짜 많이 내린다. 감염체 사태이후부터인가 비가 내렸다하면 그냥
쏟아져 내리네."
" 그렇게나 말이다."
나는 초소에 앉아 김 중사와 담배를 피며 말을 했다. 군대의 규율을 따르고는 있지만 사사로운 것까지 따지고 들지 않았기에 이런 행동이 가능했다. 뭔가 명령체계는 수직이지만 대우는 수평적인 관계라서 그런 것 같았다.
" 다행히 밀물이라 도로도 잠겼네."
" 하늘이 도왔다."
태풍이 올라옴과 동시에 밀물이 진행 돼서인지 도로가 잠긴 상태라 감염체의 공격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놓칠 수 없었기에 눈이 빠져라 섬 밖을 보고 있었지만 비로 인해 시야는 좋지 못했다.
" 킁..."
" 배고프다.."
" 나도.."
새벽 내내 움직였더니 평소 아침을 먹는 체질이 아닌 나였지만 배가 고팠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교대시간이 다가와 다음 근무자가 들어왔고 간단한 인수인계후에 빠르게 숙소로 달려갔다.
" 와!! 비 엄청 온다."
" 어서 씻고 와요."
" 응!"
잠에서 깬 은혜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며 말했다. 적지만 전기가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라 수도사용에는 지장이 없었다. 기본적인 생활은 위한 설비를 우선적으로 손보고 고쳐나가는 상황이라 조금씩 나아진 생활이 가능하였다.
" 비가 엄청 오네요."
" 응. 그래도 다행히 바람은 많이 불지 않아 배가 가라앉을 확률은 조금
줄어들었네."
" 열심히 작업했는데."
" 너무 걱정 하지만. 별일 없을 거야."
" 네."
씻고 나오니 거실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은혜에게 말을 해주었다. 습도가 높아 끈적거림이 심해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무척이나 간편한 옷차림의 은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보다 확실히 살이 빠지기는 했지만 균형 잡힌 몸매는 변함이 없었고 글래머러스한 상체도 큰 변화가 없는 모습이었다. 원하지 않은 다이어트로 인해 오히려 부각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이었다.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은혜가 내 옆으로 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콰광!!!"
" 헉!! 아...아니구나.."
큰 소리에 놀라 급하게 일어났지만 다행히 포탄소리가 아닌 번개 소리였다.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은혜도 놀라 일어났지만 이내 안심을 하고 내 품에 안겨와 다시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 깬 상태에서 다시 잠을 청하기 어려웠고 은혜가 잠드는 것을 확인 한 후에 살며시 침대에서 나와 밖을 바라봤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2시를 갓 넘긴 상황이었지만 몸은 피곤하지 않았다. 은혜도 밤새 움직였기에 피곤했는지 아니면 날이 어두워서 밤이라고 인식했는지 몰라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빗줄기가 창문과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모습이 보였지만 위험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 정도 파도와 바람이라면 배에 큰 피해는 없을 것 같았다.
" 비라..."
평소 비오는 것을 좋아하고 비가 내리면 혼자서 차를 끌고 운전하는 것을 즐겼다. 물론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고 나가는 것은 싫어하지만 비오는 분위기가 좋았다. 비가 내리면서 차량에 부딪히는 소리가 좋았고 빗속을 가르며 나는 소리가 좋았다.
" 후두둑! 후두둑!"
" 운치 있네."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하나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제법 굵은 빗줄기가 들어왔지만 그래도 맞을 만한 양이었기에 한 쪽에 몸을 기대고는 내리는 비를 감상했다.
" 하아.."
" 뭘 그렇게 한숨을 쉬어요?"
" 에엑!! 어..언제?"
" 아까부터 있었는데? 그리고 집에서 담배피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 미..미안! 자는 줄 알고.."
" 여하튼..."
언제 일어나 내 뒤로 왔는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보통 누가 다가오면 바로 알아차리는데 은혜는 유독 그 안에 속하지 않았다. 감염체가 다가오거나 근거리에 있는 생존자의 느낌도 알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왔는데 은혜는 포함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 비가 그칠 생각이 없나봐요."
" 응. 그래도 더위를 식혀주니 좋다."
" 습기가 많아서 너무 끈적거리는데.."
" 그래도 더워서 땀흘리는 것보다는 좋다."
" 자기야 그렇지만 난 이게 더 싫어요!"
" 하하!"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이 됐다. 침대에 누워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고 수위 높은 스킨쉽을 이어나가다 보니 어느 덧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 와.. 엄청 빠르네요."
" 신기하게 다들 안 오네? 보통은 이런 일이 있으면 이 시간쯤.."
" 형!!"
" 역시.."
여유로운 시간에 항상 우리 집을 찾아오는 무리가 찾아오지 않아 이상함을 느낌과 동시에 재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요."
은혜가 웃으며 옷을 추슬러 입고는 현관문을 열어줬다.
" 무슨 일이야?"
" 아니.. 심심해서."
" 미란이랑 놀던가 아니면 박 중사와 놀지 왜 매번 우리 집이냐."
" 뭔가 다른 곳을 가기에는 찜찜해."
" 참네."
" 그리고 박 중사 형도 온다고 했어."
" 그래?"
" 응. 잠깐 배들이 있는 곳을 살피고 온다던데? 그리고 김 중사 형은 초소에가서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 했고."
" 다들 부지런하네."
" 언제까지 내리려나."
" 미란이도 살이 많이 빠졌네?"
" 응? 뭐라고?"
" 아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미란이가 물었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이 사태가 일어난 후부터 다들 제대로 먹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니 다들 살이 빠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생존자들에 비하면 진수성찬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 카라반에 숨겨둔 음식은 없어?"
" 조금 남아있기는 할 걸?
" 하아.. 이제 비상식량도 점점 떨어져 가는구나."
"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신기하다."
" 가서 낚시라도 해 올까?"
" 참네. 저 날씨를 뚫고 뭘 잡으려고?"
" 뭐라도.."
" 자기 배가 많이 고프구나."
" 하앙..."
미란이 앞에서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그 사건은 전부 정리한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고 내 표정을 보고 은혜도 따라서 미소짓고 있었다.
" 하긴 먹는 양에 비해서 소모되는 체력이 더 크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대로 먹을 것도 없는데."
" 예전에를 생각해라. 그래도 이정도면 진수성찬이지."
" 해산물이 질려가. 고기 없나."
" 나중에 섬 밖으로 나가면 한 번 찾아는 볼게.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마.
우리 말고도 다른 생존자가 있는 것 같더라."
" 응. 말을 들었는데..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텐데 여기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저들도 우리를 경계하는 것 같다던데?"
" 뚜겅은 열어봐야 알겠지."
" 어?! 이제 비가 점점 약해지네요?"
" 다행이다. 조금 더 그치면 바다에 나가 낚시라도 해야겠어."
" 오늘은 근무가 없나봐?"
" 응! 내일 오후에만 있어. 이제 근무를 설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서 중간에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
" 하긴..."
"자기도 나가서 뭐라도 잡을 생각이예요?"
" 아니. 난 됐어. 초소에 가서 부대장이랑 상황을 봐서 섬 밖으로 나가볼
생각이야."
" 왜요?"
" 생존자들도 있고 감염체도 상당수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정찰을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밀려버릴 수도 있어."
" 하아.. 그래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위험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은혜가 실망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 하지만 방어는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아. 생존자도 아마 그걸 알고 함부로
들어오지 못 하고 있는 거고 감염체가 와도 이제는 정말 엄청난 숫자가
아니라면 크게 위험한 상황까지 갈 일은 없을꺼야."
" 다행이네요!"
" 하지만 긴장을 늦추면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있으니 다들 긴장하고
움직이고 있어. 너희도 너무 풀어지지 말고."
" 걱정마!"
" 그럼 다들 쉬고 있어. 난 나갔다 올게."
" 너무 무리하지마요."
" 걱정마."
나는 가볍게 은혜의 볼에 키스를 해주고 집을 나섰다. 빠르게 달려 순식간에 초소에 도착했고 마침 초소 안에는 부대장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 무슨 일이십니까?"
" 비도 그치고 물도 빠져서 섬 밖으로 나가서 살펴 보는게 어떨까해서요. 비가
왔으니 감염체도 생존자도 움직임이 둔해졌을테니 지금이 기회일 것 같아서."
" 흠. 알겠습니다. 차량을 준비하도록 하죠."
" 부대장님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 그럴까요? 그럼 제 근무시간이 아직 20분 정도 남았으니 기다려주세요."
" 알겠습니다."
보통 저 위치에 있다면 근무도 빠지고 그럴 법도 하지만 저 사람은 그런 것이 없다. 남들과 같이 근무를 서고 힘든 일도 먼저 하려는 성격이라 부대원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것 같았다. 차량을 대기하고 무기를 점검하고 있자 부대장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부대장과 운전병은 각자의 무기를 챙겨 차량에 탑승했고 나도 역시 차량에 탑승하고 섬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이제 완전히 비가 그쳤군요."
" 다행이네요. 큰 피해없이 지나가서."
" 태풍이라고는 했지만 정말 태풍인지 알 수도 없으니."
" 부대장님!"
" 뭔가?!"
" 사람이... 있습니다."
" 흠..."
멀리서 보이는 실루엣이지만 움직임을 보니 생존자가 확실해 보였다. 가족 단위인지 소수의 인원이 있는 모습이 보였고 들키지 않게 차량을 두고 천천히 이동을 했다. 다가갈수록 인원의 형상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걸어가는 인원 사이에 검은 개가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어라? 개? 저번 흔적의 생존자인가?"
" 아마도.. 검정 개? 저 크기에?"
생각해보면 저 정도 크기의 검은 색 개는 흔한 크기가 아니었고 감염체 사태에 개와 같이 다니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인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 서..설마?!"
" 왜 그러십니까?"
" 하하... 설마...?!"
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고 있는 일행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 핑크!!"
" 재원씨!! 뭐하는!!"
" 컹!! 컹!!"
내 목소리를 듣고 무서운 속도로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부대장과 운전병이 긴장하고 총을 들었지만 내 모습을 보고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하하! 녀석!! 살아 있었구나!"
" 재원이냐?!"
" 소대장님! 홍 선생님!"
" 하하! 살아있었구나!!"
" 소대장님도 살아있었네요?!"
" 그럼! 내가 누구냐!"
" 다른 일행은요?"
" 저기 보이는 건물에 있어!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온 거야?"
" 미국 캠프도 박살이 나서 다시 오게 됐죠. 그나저나 제주도는 왜 빠져나온
거예요?"
"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들어가자."
" 네!"
손 하사와 홍 소령은 가던 방향을 바꿔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고 평범한 공장처럼 생긴 건물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생존자가 지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