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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정오가 넘어간 시간에서야 내리는 비의 양은 줄어들어갔고 간혹 불던 바람도 완전히 멈췄다. 흔들리던 배가 잠잠해지고서야 일행들은 편하게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날씨로 인해 토벌 작전이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편하게 쉬기로 했다.
다행히 한 두 시간의 낮잠으로 일행들의 컨디션은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낚시를 해서 뭔가 먹을 것을 구하기로 했다. 어죽 비슷한 음식을 만들기로 정했기에 물고기를 잡아야했지만 생각해보면 어죽을 할 수 있는 인원이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잡으면 뭐라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묵묵히 낚시에 집중을 하였다.
" 날씨가 별로라서 입질이 없네."
" 하암.."
" 뭐라도 잡히면 좋겠구만."
여자들을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낚시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인데 잡히는 것이 없었다. 작은 피라미라도 잡히면 좋겠다만 입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 갯벌에 가서 조개라도 캐 올까?"
" 아아! 난 갯벌이 싫어!"
" 하긴. 들어갔다가 제대로 씻고 나올 수도 없는데."
" 그리고 저번에도 들어갔다가 난 아무것도 못 잡고 나왔잖아. 다른 인원들은
이것저것 잘도 잡더만."
예전에 갯벌에 조개가 많다고 해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원이 한 바구니 가득 챙겨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갯벌에서 뭔가를 잡으러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뻘만 잔뜩 묻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니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 하하! 저번에 그 일 말하는 거야? 하긴 너만 아무것도 못 잡고 계속해서
삽질만 했지."
" 이상하게 그런 건 못한단 말야 형이."
" 그래도 낚시는 잘하잖아!"
입질이 온 순간 낚싯대를 잡아챘고 바늘 끝에는 손바닥 크기의 물고기가 물려 올라왔다.
" 어라.."
" 흐미... 정말 작다."
"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 우선 챙기고 많이 잡으면 놔주자."
" 그래."
하지만 해가 떨어질 때까지 우리가 잡은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 젠장.."
" 아웅..."
다들 오랜만의 휴식이라 그런지 배에서 늘어지게 쉬고 있었다. 박 중사와 김 중사는 무기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였고 보드 게임이나 외장하드에 저장해 둔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간 너무 긴장하며 살았기에 대령님께서도 근무 인원을 제외하면 날씨가 풀리기 전까지는 휴식을 취하라고 하셨기에 마음 놓고 늘어진 모습을 보여줬다. 잔잔해진 파도로 인해 다들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해가 떨어질 때쯤 우리는 다시 배 위로 올라가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의 묘미는 밤낚시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도란도란 뱃머리에 앉아 낚싯대를 던졌다. 무엇이 잡히든 상관은 없었다. 모두들 뱃머리에 앉아서 웃고 떠들면서 낚시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욕을 할 광경이지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기에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배에서도 낚시를 하거나 갯벌에서 뭔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전투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예상보다 감염체가 많은 것인지 아니면 정찰을 위해 날아다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 감염체의 숫자가 많은가봐?"
" 우리가 본 숫자만 어마어마했는데 그 보다 훨씬 많겠지."
"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천하태평하게 있어도 상관 없는거야?"
" 몰라. 서울에서 막을 수 있나보지."
" 냅둬.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는데."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낚싯대를 던지며 말을 했다. 그래도 간간히 입질이 있어 뭔가 잡힐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낚은 인원이 없었기에 애만 태우며 시간은 흘러만 갔다.
좋지 않은 기상 상황으로 토벌 작전은 계속해서 중지되었고 우리는 하는 일 없이 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섬을 둘러보며 허술한 부분이 있나 확인 작업을 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서울에서 정말 이곳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조금은 과할 정도의 물건을 보냈고 덕분에 우리는 불편함 없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른 허리 높이의 펜스가 해변을 따라 설치가 되었고 그 앞으로 철조망이 꼼꼼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정거리에 만들어진 부비트랩과 간이 초소로 이제는 완전히 요새화되어가는 섬을 보고 한편으로 마음이 놓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 서울에서 별다른 무전은 없습니까?"
내가 부대장과 함께 걸으며 말을 했다. 우리 둘은 섬을 둘러보며 보안할 곳을 체크하고 보수하기로 했기에 해변을 꼼꼼히 살피며 걷고 있었다.
" 네. 그 이후로는 별다른 무전이 없습니다."
"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좋은 소식이 있겠죠?"
"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초반에는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력도 월등하고
병력도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장기전에 취약하다는 점이겠지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으니.."
" 하긴..."
"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물량을 조달할 수 있겠지만 생존자들이
생존자들이 모인 만큼 소모하는 양도 엄청납니다. 이런 상황에 식량을
둘째고 감염체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와 탄약은 보급이 쉽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대한민국이 휴전국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부대가 북쪽에 위치해
있고 사태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났으니 얼마나 남았을지도 의문입니다."
" 저희가 강원도에서 있었을 때에도 찾아봐도 얼마 없던데요."
" 그래도 들리는 이야기로는 서울은 제대로 돌아간다니 다행이죠."
그러고 우리는 한 동안 말없이 해변을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중간 중간에 미흡한 부분은 직접 손을 보고 우리 손에서 해결이 되기 힘든 부분은 따로 적어 시간이 된다면 다른 인원과 같이 보수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언제라도 비를 토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장마철도 아닌데 먹구름이 장난이 아니네요."
" 제대로 된 달력도 없으니 날짜 감각에 둔해지네요."
" 이러면 힘든데 말이죠. 토벌 작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 정찰병은 계속해서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큰 위협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문제는 그 동안 보이던 감염체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문제지요."
" .... "
부대장도 내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정찰병을 꾸준히 보내어 주변 상황을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해 왔지만 그동안 심심치 않게 발견되던 감염체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계획인지 하늘에 돌아다니는 감염 비둘기만 보이는 상황이라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꺼렸다.
" 아! 그러고 보니 무전으로 또 다른 변종 감염체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 네. 대형 감염체인데 저번에 재원씨가 싸웠던 녀석보다 덩치도 크고
머리도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 네?!"
가뜩이나 골치 아픈 감염체도 생겨났는데 다른 문제가 있다는 말에 놀랐다. 내가 모르는 내용이 있었다는게 약간은 서운하기도 했다.
" 기밀 내용이고 아직 정확히 확인된 것이 없어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내 표정을 보고 서운한 것을 알았는지 본론을 말하기 전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이 사람 눈치는 얼마나 빠른건가 존경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 곤충이나 동물이 감염된 경우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 네??"
" 고양이가 변한 것은 종종 발견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개나 곰으로 추정되는
동물까지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미, 뱀 따위도 발견됐다는 정보도
들어왔습니다."
" 젠장... 가뜩이나 지금도 힘든데."
" 아마도 감염된 인간으로는 한계가 있겠죠. 감염 됐다고 해도 전투에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고 하지만 동물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틀려집니다."
" 저희는 일반 감염체를 염두하고 방어를 했으니까요."
" 맞습니다. 솔직히 저런 방벽은 변종 고양이만 와도 쉽게 뚫릴테니까요."
" 아직 많은 숫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 최소 세 번 정도 발견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인지 아니면 계획적
인 것인지는 아직."
" 계획적일 확률이 높군요."
"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윗선에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당해놓고 또 같은 실수를 하는 군요."
" 어쩔 수 있습니까."
" 하아..."
암울한 소식만이 계속해서 들려왔는데 결정타 한 방이 날아왔다. 하지만 더 큰 한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위성으로 파악한 결과 중국에서 대규모 감염체 이동이 포착됐다고 합니다."
" 설마 방향이 한국은 아니겠죠?"
" 아직 정확하게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이미
중국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할 지경이니까요."
" 하하... 그 많은 숫자가 내려온다면..."
" 바로 온다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온다고 해도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되니
방어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우선은 지금 없어진 감염체를 걱정해야 하니."
" 비가 오는 군요. 들어가시죠."
" 네."
하늘에서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우리는 바로 초소로 돌아갔다. 초소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초소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또다시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비를 피해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드리고는 허공에 뿌렸다. 눅눅한 공기 때문에 잠을 설친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고 밤에 잠을 설치니 사람들은 쉽게 피로해져갔다.
" 비 오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단순히 물이 튀는게 걱정이 아니네."
" 제습기다 에어컨이다 그런 제품이 많았을 때는 몰랐는데 장난 아니네."
" 진짜 밤에 눅눅하고 끈적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따라다온 재효가 말을 했다. 비도 오는데 물 위에서 생활하니 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배에서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아 감염체의 위협보다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 많이도 쏟아 붓는다."
" 그러게."
재효와 나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있었다.
아직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하늘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일을 끝낸 우리 일행은 배로 돌아갔고 배에는 여자들이 아직 청소가 덜 끝난 곳과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왔어요?"
" 응! 부지런하네!"
" 할 일은 해야죠! 어서 씻어요. 많지는 않지만 먹을 것좀 해놨어요."
" 그래?!"
" 네. 낮에 낚시를 했는데 비가 오기 전이라서 그런지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잡은 것이 있었어요!"
" 와.. 이 날씨에 낚시를 했어?"
" 은혜가 의외로 강태고이던데 오빠?"
" 오! 그래? 신기하네."
우리는 낮에 은혜가 잡은 고기로 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우리의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 캬아! 소주가 한 잔 생각난다."
" 양주는 있는데 조금 마실래요?"
은혜가 우리가 먹은 그릇을 치우며 말을 했다.
" 양주가 있어?"
" 네. 배 정리를 하다가 몇 병 발견했는데 전 잘 몰라서요."
" 한 잔 하고 잘까? 어차피 내일도 토벌 작전도 없을 것 같은데. 한 잔하고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
" 오랜만에?!"
남자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그런 모습을 본 여자들은 이런 상황에 술이 땡기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큰 제재는 하지 않았다.
" 하지만 별다른 안주거리가 없는데..."
" 괜찮아. 뭐 대충 씹을 것만 있으면 되지."
곧이어 은혜가 가져온 양주병을 보고 난 상당히 놀랐다. 상당히 고가의 양주였기 때문이다. 온전한 세상에서 살았을 당시에도 상당한 고가의 술이었기에 먹을 수 없었던 종류라 기대감은 넘쳤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도 양주병을 보고 한 눈에 고가의 양주임을 알아보고는 기대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술병을 따고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 크흑..."
" 하아..."
높은 도수의 술이라 뱃속에 들어가는 경로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움이 느껴졌다.
비록 안주도 몇 개 없는 초라한 술 자리였지만 다들 술기운에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술이 약한 여자들은 조금씩 마셨고 남자들도 언제 무슨일이 생길지 몰라 조절을 하면서 술을 마셨지만 취기가 올라갈수록 마시는 속도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