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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사는 존재들-171화 (17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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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밖에 내리는 비로 인해 막걸리와 파전이 생각나는 밤이었지만 우리 상황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고급 양주와 간단한 술안주가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 하아... 좋다."

" 크아!! 오랜만에 먹으니!!"

" 이제 그만 먹자. 내일 지장이 있겠다."

꽤 큰 양주병을 벌써 두 병이나 비운 상태였고 애들 상태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내일 할 것도 없지만 취해서 숙취로 고생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번 술자리는 단지 스트레스를 풀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줄 술이어야 했는데 조금 과한 듯 싶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폐쇄된 공간에 쫓기며 다닌 시간도 길었기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이런 자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섬이 안전하다는 조건이 붙어야 되겠지만.

다행이 아침에는 숙취로 못 일어나는 인원은 없었다. 단지 속이 약간 쓰릴 뿐 크게 지장은 없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은 고난과 역경의 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엄청나게 쏟아 붓는 비로 인해 제대로 걸을 수는 없을뿐더러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행 전체가 물에 빠진 생쥐마냥 젖어버린 것이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식당에 온 인원 전체가 전부 그런 상태였다.

" 대단하다."

" 그래도 바람이 심하지 않아 배에서 생활하긴 어렵지 않으니 다행이지."

" 우와.. 천둥 번개까지."

" 태풍이 올라오는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 심하기는 하다. 진짜 기후가 다시

변화 하나봐. 예전에는 비가 너무 안와서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라."

" 물 걱정은 없으니 다행이네."

" 생각보다 저수지도 깨끗하던데? 지하수도 나오고."

" 응. 여기 지하수는 그냥 먹어도 상관없다는 것 같았는데."

" 그리고 어른들이 여기 농사도 짓고 있다던데?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확물을

기대할 수 있다더라!"

" 자급자족이 가능하겠다!"

" 무기만 어떻게 된다면 진짜 요새지."

" 지금 있는 무기 양은 저번처럼 많은 숫자만 아니라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한 양인데 문제는 서울에 얼마나 공격을 갔고 그 감염체가 얼마나

다시 내려 오느냐겠지."

" 현재 서울의 상태는 어떻다는데?"

" 큰 변화는 없고 소수의 감염체만 공격을 해왔고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더라."

" 더 무서운데."

" 이런 긴장감. 너무 싫어."

다들 아침을 먹으며 무거운 이야기를 했고 그런 분위기가 싫어 밝은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마땅한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끊어진 대화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대화가 없었고 식사를 끝내고 나와서는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이동을 했다. 어차피 우산을 써도 워낙 비가 많이 내려 의미가 없었고 이미 젖은 옷이기에 굳이 우산을 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서로 커플끼리는 팔짱을 끼고 움직였고 짝이 없는 김 중사만이 홀로 이동을 했다. 그런 모습에 다들 약을 올렸지만 크게 관심 없는 김 중사는 우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배에 도착하고는 씻고 바로 초소로 이동했다. 아무리 감염체 토벌 팀이라고 하지만 너무 근무에 빠지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현재 상황을 알고 싶어 초소에 들어가는 순간 뭔가 무거운 공기가 나를 누르는 것 같았다.

" 무슨..."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부대장과 대령님을 보고 말을 했다. 나를 따라온 일행들도 심각한 기운을 느끼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에 어렵게 대령님이 입을 여셨다.

" 드디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네."

" 벌써...입니까?"

" 현재는 일반 감염체와 변종 감염체만 파악이 된 상황이라네."

" 하지만 후방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합니다."

대령님과 부대장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 설마..."

" 지금까지 정찰 갔던 모든 인원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하네."

" 현재까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감염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 감염체는 대응할 무기가 있어서 쉽게 당하지 않겠지만 그런 감염체라면

상황이 틀리니까요."

부대장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생명체로의 감염이 시작된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염의 시작이 아닌 다른 종의 감염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 진짜 큰일이군요. 저희가 개발한 독초가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군요."

" 살아돌아온 인원이 없다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겠지."

" 하아.."

대령님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서울을 방어하러 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 저희가 도와줄 방법은 없겠군요. 그 정도 숫자라면 서울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 네. 현재 육지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 설마.. 다른 방법으로..."

육지라는 말을 쓴 것으로 보아 부대장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현재 섬에는 배가 많은.."

" 반대입니다."

" 네?!"

부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말을 끊고 나섰다. 말하는 중간에 치고 들어간 것이 불쾌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했다.

" 아시다시피 현재 배에서 생활하는 인원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남는 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록 거리가 얼마 멀지 않다고 하지만 항해를 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서울에서 배나 헬기를 보내준다면 모를까 현재 저희가

생활하는 공간이 배를 가지고 서울에 간다는 것은 섬을 버리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애써서 가꿔놓은 섬을 이대로 떠난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

" 저도 반대입니다. 서울에서 뭔가 제공을 하고 저희의 지원을 가는 것이라면

모를까 저희가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 하지만 박 중사님 재원씨. 저희는 서울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와서

저희가 못 간다고 하면.."

" 초반에 저희가 움직인다고 했을 당시에 움직였어야 합니다. 지금 와서 무슨

수로 서울까지 올라갑니까? 그리고 이미 포위된 상황의 서울을 무슨 수로 방어

합니까?"

내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했고 대령님은 우리의 감정이 더 격해지기 전에 말리기 시작했다.

" 그만하게나. 부대장의 말도 자네들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니."

" 대령님."

" 재원군 말대로 현재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배를 끌고 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네. 자네 부대원중 항해를 할 수 있는 인원이 있나?"

" 없습니다...."

" 그럼 무슨 수로 갈 생각이었나?"

" 서울에서 항해가 가능한 인원을 지원해준다고 했습니다."

" 언제? 얼마나 지원을 해준다고했나?"

" 아직..."

" 확실히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을 너무 일찍 말한 것은 부대장 잘못이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재원군도 너무 몰아세우면 되나."

"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 자네 둘이 생각하는 차이는 잘 아네. 재원군은 섬을 지키기 위해 처음부터

노력을 했으니 이곳을 떠나기 싫은 것일테고 부대장은 핵심이 되는 서울을

지켜야하는 부담감이 있었겠지."

" 그리고 강압적으로 서울로 복귀하라는 명령도 없었고 우리가 무리해서

움직이면 오히려 적을 도와주고 섬만 위태롭게 할 수도 있네. 그러니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하게나."

" 하지만 시간이!!"

" 아직 서울에서 전면전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제 움직임을 보였을 뿐이네.

어쩌면 다른 생존 지역의 모든 인원이 서울에 모이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저들 입장에서 한 번에 거의 모든 생존자를 제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꼴이 될 수 있네. 명심하게나. 저들 중에는 우리처럼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 네."

생각해보니 감염체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도 계략일 수 있었다. 한 곳에 거의 모든 생존자가 버티고 있다면 저들에게는 굳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생존자를 공격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 생각해보니.."

" 어쩌면 계략일 수 있겠군요."

" 흠..."

" 아직 저들이 완전히 방향을 잡고 움직인 것도 아니고 어쩌면 우리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네. 물론 정찰대가 전멸한 것을 보아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것은 맞지만 저들의 움직임이 정확해졌을때 움직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네."

" 그럼 대령님 만약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서울로 갈 생각이십니까?"

" 어쩌긴 차로 이동을 해야지."

" 하지만 서울 근처에는 이미.."

" 굳이 서울 안으로 들어가서 싸워야 하나? 후방에서 적을 치는 것도 한 방법

이라네."

"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는 감염체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지. 한 방에 많은 감염체를 제거할 수

있으니."

" 하긴. 감염체도 우리 위치를 알고 있는 마당에 굳이 서울 안에서 싸우기보다

뒤를 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네요."

" 저희는 게릴라 전술로 움직이자는 말씀이시군요."

" 맞네. 솔직히 우리 소수의 인원이 우리 전체 인원의 화력과 차이가 없다면

굳이 전부 움직일 필요는 없겠지."

대령님 말씀은 슈트를 입은 인원의 전투력이 섬 전체 인원의 전투력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말이었다.

" 좋은 작전인 것 같습니다. 감염체를 통솔하는 인원도 저희가 뒤를 칠 것을

예상하기는 힘들겠지요."

" 아무리 통솔이 가능한 감염체라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힘들겠지요."

" 서울에는 내가 이야기하겠네. 그러니 부대장과 자네들은 계획을 짜서

보고하게나."

" 알겠습니다."

대령님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주시고 유유히 퇴장하셨다.

" 대략적인 계획은 후방을 친다는 건데.."

" 하지만 우리가 가진 무기로는 많은 숫자를 한 번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해.

이동이 쉬운 것은 수류탄이나 크레모아가 전부인데."

"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군요."

" 뭡니까?"

" 감염체 무리 뒤로 가서 불을 내보는 것은 어떴습니까? 감염체자체가 불에

잘 타니 쉽게 번질 것이고 그로인해 다른 감염체도 피해를 받을테니까요."

" 불을 내는 것은 좋은데 뭔가 큰 발화체가 필요할 것 같은데.."

" 흠... 헬기의 지원이 있다면 좋을텐데 공중에서 뭐라도 뿌리면.."

" 소방차는 어때?"

" 응?!"

" 소방차에 물 대신에 기름을 넣어 뿌리고는 잽싸게 튀는 거야!"

" 오호..."

" 가능할까요? 소방차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 구했다고 해도 운용이 가능할까? 정비도 안했을 것이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 적당한 방법이 없을까?"

" 이러지 말고 다른 인원들도 모아서 회의를 하는 것이 어떨까?"

" 응?"

" 하나보다 여럿이 모였을 때가 좋은 의견이 나오니까. 섬에 있는 인원 전체에게

어떤 의견도 좋으니 말해달라고 하면 그 중에 뭐라도 건지지 않을까? 솔직히

우리끼리 여기서 뭉개고 있어봐야 당장 좋은 의견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 괜찮은 생각입니다. 전 찬성입니다."

제일 먼저 부대장이 찬성 의견을 내었고 다른 인원들도 찬성을 했다. 우리는 우선 식당가에 큰 공고문을 붙이기로 했고 의견은 직접 초소로 와서 말을 해주거나 식당에 마련된 노트에 적어주는 방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어떤 의견이라도 좋으니 적어달라고 호소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 기상천외하기는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군요."

" 핵을... 쏘자는 인원은 누구여..."

" 풍선을 이용해서 하는 방법도 괜찮은데 이 많은 풍선을 어떻게 구한담."

" 이사람... 의견 괜찮은데?"

" 뭔데?"

" 근처에 고압가스 운반차량이 몰려 있는 곳이 있는데 감염체 사태 후에

피난가다 멀쩡히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기는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만약 계속 멀쩡하다면 그 차량을 이용해 폭파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은데."

" 무슨 수로 감염체 무리 중간까지 가려고?"

" 멀리서 핸들 고정하고 가속페달에 돌을 올리던가 하고 우선 이 차량부터

찾아보자."

" 좋군요. 뭐 감염체 근처에만 놔도 피해는 상당할테니."

" 역시 머리가 많이 모여야 의견이 나오네!"

우리는 지도를 펼쳐 차량이 있는 위치를 대략적으로 확인 한 후에 답사를 위하여 소수의 인원만 빠르게 정찰을 해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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