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어서도 사는 존재들-174화 (17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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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배에 돌아오고는 우리는 서둘러 몸을 씻었다. 우리가 나간동안 섬의 인원들이 배를 손봐줬고 발전기를 이용해 소량의 전기도 공급이 가능했기에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온몸의 기름때를 벗기기 시작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전기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지만 생사를 걸고 싸우고 들어온 우리들에게 뜨거운 물 정도의 사치는 괜찮을 듯 싶었다. 그래도 내부는 촛불이나 그 외 다른 방법으로 밝히고 있었기에 소모량은 보일러 돌아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 수고했어요."

" 별일도 아닌데 뭘. 자기는 뭐하고 있었어?"

" 식당일도 도와주고 요새 섬에 농작물을 심고 있어요. 그런 작업이나. 뭐

자잘한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요."

" 으구. 고생이 많네."

" 오빠가 고생이 제일 많죠. 다른 사람들도 우리 일행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많이 배려해 줘서 크게 하는 일도 없어요."

" 그래?"

" 네. 미란이 언니도 보미 언니도 솔직히 미안할 정도로 사람들이 배려해줘서

오히려 더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 자기 편하게 하는데 너무 무리 하지 말고. 어디 가더라도 핑크는 꼭 같이 다녀.

나 없으면 든든한 녀석이니."

"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너무 밖으로 돌며 일만했더니 너무 소홀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미안하네. 너무 신경을 못 써서."

" 괜찮아요. 멀쩡한 세상도 아니고. 예전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죠. 뭐 그렇다고 어디 가서 바람을 펴는 것도 아닌데요

뭘."

" 하하! 바람이라."

" 피워봐야 징그러운 감염체만 득실거리는 동네뿐인데요."

" 하하! 그러네."

" 옷 갈아입고 응접실로 나와요. 요기할 음식을 준비했으니 조금이라도 먹어둬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으로는 부족하던데."

" 응! 고마워. 옷 갈아입고 바로 나갈게."

" 네. 천천히 나와요."

넉넉한 크기의 반바지와 제법 큰 박스티를 입고 응접실로 나가니 박 중사와 김 중사가 널부러져 누워있었다.

" 뭐하냐?"

" 덥고 힘들어서."

" 참네."

" 애들이 음식 가져온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인데."

" 얼씨구 재효도 있었네."

" 진짜 덥다."

" 나가서 수영이라도 해. 여기서 뒹굴고 있지 말고."

상대적으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다 보니 맨살을 대면서 식히는 중 인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웃겼고 나오는 인원마다 보면서 한 마디씩 하면서 웃었다.

" 도대체 거기서 뭐하는 거야?!"

" 바닥을 쓸고 다녀라 쓸어."

" 자기도 여기 있어봐 시원해."

" 됐네요 됐어."

" 배 자체에 발전기 없어? 발전기만 있다면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지 않나?"

" 발전기는 있는데 돌릴 연료가 없어. 챙겨 논 연료가 있기는 한데 턱없이

부족해."

" 벌써?"

" 벌써가 아니고 원래 배 연비는 형편없어. 저번에 시험한다고 엔진에 시동 걸고

몇 번 움직인 적 있었는데 그때 엄청난 양을 잡아먹었지 뭐."

" 젠장... 지원도 없을 것 같은데."

" 근처에 공장이 많고 위에는 항구도 있어서 연료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아."

" 그럼 뭐가 문제야?"

" 가져올 방법이 없다는 거야."

" 아... 탱크로리가 없구나."

" 뭐 급한 것도 없고 가끔 가서 옮기면 되니까."

" 너 답지 않게 천하태평이다?"

평소 준비성이 철저한 박 중사의 말을 듣고 의외라는 말을 던졌다.

" 솔직히 섬에 있으면 위험할 것도 없고 지금은 서울 방어만 지원해주면

되니까 조금은 편하지."

" 그러다 서울이 밀리면 어떡해요 형."

재효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언제부터 우리가 남에게 의지하고 생활했냐. 지금까지 도움 받았으면 됐지.

우리 집은 우리가 꾸려가자 재효야."

" 아.."

" 맞아. 그리고 솔직히 서울이 그렇게 쉽게 밀리지 않아. 방어도 튼튼하던데."

" 우리 먹고 살 생각부터 하자."

남자들은 거의 전부가 대리석 바닥에 몸을 비비며 말을 했다. 마치 설탕에 모인 개미 때 같은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 그나저나 너희들 진짜 웃기다. 그렇게 덥냐?"

" 넌 땀을 뚝뚝 흘리면서 그런 말 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냐?"

" 하긴... 네가 제일 더워 보여."

" 덥긴 덥지만.."

나도 애들을 따라 대리석에 누워보니 시원한 감촉이 기분을 좋게 했다.

" 아.. 이래서 너희가 계속 누워있었구나."

" 그만 부비적거리고 일어나서 먹어요!"

" 자기도 어서 일어나요."

" 힝. 방금 누웠는데."

은혜의 잔소리에 일어나서 차려진 주전부리를 먹기 시작했다. 차려진거라곤 해산물 종류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진수성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그나저나 언제까지 해산물만 먹고 살아야하나."

" 먹을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라."

" 이래서 갯벌을 소중히 하자고 했구나."

" 어서들 먹자."

우리는 여자들이 구한 조개와 다른 해산물의 찜을 먹으며 말했다.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짝을 지어 섬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뭔가 여유를 찾고 마음을 편하게 지내야지 계속해서 억압된 생활을 하기에는 나부터 미쳐버릴 것 같았다.

" 하아.. 시원하다."

" 진짜 오랜만에 같이 걸어보네요?"

" 그러게. 이제 앞으로는 우리 시간을 조금 더 많이 가져야지."

" 칫!!"

그 동안 서운한 것이 많았는지 입을 삐쭉거리며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저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 그나저나 전기가 들어오는데도 대부분이 촛불을 켜고 사는구나."

" 전기는 우선적으로 초소나 이런 곳에서 쓰기로 했으니까요."

" 그래도 몇 명 정도는 전기를 쓸 줄 알았는데 그런 인원이 없네."

" 그런 이기적인 사람은 여기서 살기 힘들걸요? 사람들이 단합이 얼마나

좋은데요."

" 그래?"

" 네. 예전 남쪽에서 있던 캠프와는 완전히 달라요."

" 그래?!"

" 네. 뭔가 분위기가 약간은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할까요? 굉장히 끈끈한."

" 경험이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이지. 여기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생존 캠프가

무너졌던 경험이 있으니까."

" 바람이 차네요."

" 어라? 그러게? 무척 더운 바람이 불 것 같았는데."

" 바닷가라서 그런가?"

" 이상하네. 거의 가을 수준의 기온인네."

" 뭐 덥지 않으니까 좋죠."

" 하긴.."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섬의 산책을 끝내고 배로 돌아왔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서 간단하게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대령님을 찾아갔다.

" 무전에서 별 내용은 없습니까?"

" 우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감염체를 제거했던 부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성공도

실패도 아닌 상황이네."

" 네?"

" 제거한 숫자도 많지 않고 작전을 진행하는 도중에 사망자도 발생했다네."

" 하아."

" 현재 서울에서 대규모 포격을 계획하고 있네.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서 그

지역으로 포격을 할 계획이니 다른 부대들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현재 있는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네."

" 흠. 그럼 저희는 무엇을.."

" 근처에 공단이 많으니 이번 작전처럼 활용할 수 있는 물품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네. 팀을 꾸려 나가서 필요한 물품을 챙겨오게나. 우선 섬을 지킬 양을

구해야하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 폭격 위치는 대충 어디쯤인지.."

" 자네들이 다녀왔던 지역 근처고 서울 방벽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많은 수의

감염체가 있는 곳을 위주로 한다고 했네."

" 알겠습니다. 그럼 남쪽을 위주로 수색을 하면 되겠군요."

" 폭격 위험지역을 표시한 지도라네. 솔직히 여기까지 갈 수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가지고 다니게."

" 감사합니다."

" 부대장은 이미 팀을 꾸려 이동을 시작했네."

" 네?! 저희랑 따로 움직이기로 한건가요?"

" 뭐 현재로써는 굳이 화력을 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서로 상황을 봐가면서

번갈아 수색을 진행하도록 하게나."

" 네."

" 그럼. 수고하게나."

대령님의 방을 나와 초소로 돌아가니 이미 수색을 끝낸 부대장이 도착해 있었다.

" 벌써 다녀오셨나요?"

" 네. 아침 일찍 나갔습니다."

" 어디가 괜찮습니까?"

" 흠. 현재 이곳이 공단이 많아 생각보다 물품이 많습니다. 용접기나 가스,

연료등 아직 멀쩡한 곳이 많더군요. 이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네. 감염체는 보이지 않았나요?"

" 간혹 보이기는 했지만 많은 수는 아니라서 조용히 처리했습니다."

" 무사하니 다행이네요."

" 확실히 서울로 이동하는 감염체의 무리가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대대적인 공격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 그 전까지 최대한 저희 섬을 방어할 수 있게 만들어야죠."

" 저희 부대는 잠시 휴식을 취하러 가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네. 수고하셨습니다."

" 우리도 이동하자!"

나와 박 중사. 기태와 김 중사가 각각 차량을 나눠타고 이동을 시작했고

군용트럭이 아닌 일반 픽업트럭을 이용하여 이동을 하기로 했다. 군용트럭은 여러모로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상황이고 괜히 감염체의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었기에 조용히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 현재 재고량이 가장 없는 것은 연료군."

" 확실히 사람이 늘어나니까 연료 소비가 심하지."

" 발전기를 많이 돌리는 것도 아닌데 어디다 그 기름을 쓰는 거야?"

" 우리가 걸어서 다니냐?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하이브리드도 아니고 솔직히

대부분의 연료는 여기다 쓰는거지."

" 하긴.."

" 다 왔다. 둘러보자. 난 주변을 둘러볼게. 너희는 쓸만한 것이 있나 찾아봐."

" 응!"

재효와 김 중사가 한 조를 이뤄 공단으로 들어갔고 나와 박 중사는 따로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 흠... 이 시체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 많아봐야 며칠인데?"

" 젠장.. 뭐지? 감염이 됐으면 이런 시체가 있을 수도 없는데. 도대체 뭐야? 이

정도 상처라도 감염체라면 움직일텐데."

시체의 상태는 한 팔과 다리가 없었고 옆구리에도 큰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보통 감염체의 공격을 받았다면 움직일 수 있는 상처이지만 지금 보이는 시체는 지금까지는 볼 수 없는 그런 시체였다.

" 뭐지.."

" 글쎄..."

" 그나저나 넌 왜 여기로 왔어? 반대로 갔는데?"

" 어쩌다보니."

" 참네."

" 보면 볼수록 이상하단 말야. 꼭 누가 잡아먹은..."

" 서...설마.."

" 산짐승에게 당한 것 아닐까?"

" 그런가? 그런 것 치고는 상태가 너무 온전한데 산짐승의 이빨 자국도 없고."

" 쳇.. 모르겠다."

" 알 수가 없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우리는 주변을 순찰했고 그 시체를 제외한 다른 시체를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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