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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감염체를 볼 수 있었다.
" 썅... 입에서 욕 나오네."
" 우리 화력으로는 무리인데?"
" 응?"
다른 버스에서 박격포로 보이는 물건을 꺼내어 미친 듯이 쏘기 시작했다.
" 쾅!!!! 콰광!!!"
" 고속 유탄까지 달려있네."
" 소수의 감염체는 이동하면서 제거한다!"
" 4팀은 후방에서 포 지원을! 3팀이 가장 선두에서 서고 2팀과 3팀은 좌우로
나눠 다이아몬드 포지션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 3팀 확인!."
" 2팀 확인!"
안전을 위해서 나가서 싸우기보다 창문에 소총을 걸치고 사격을 시작했다.
" 탕! 탕!!"
" 탱.. 탱.."
" 너무 많은데?!"
탄피가 버스 내부에 떨어지며 어지럽게 굴러다녔지만 밖에 보이는 감염체의 숫자는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건물이나 골목길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감염체로 가장 선두에 있는 장갑차의 속도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 얼마나 더 죽여야 하는 거야?!"
" 탄약!!!"
" 젠장!! 여기!!"
" 더 이상은 위험한데?!"
" 치직..치직... 전 팀 철수. 전 팀 철수."
" 1팀 확인."
" 2팀 확인."
" 가자! 가자! 돌아 돌아 돌아!!!"
" 부아아앙!!"
급하게 유턴을 한 버스는 굉음을 내며 돌아갔고 탄약을 탄창에 끼우는 사이 다시 무전이 들어왔다.
" 전 팀 복귀한다."
" 에헤야.."
" 복귀 방법은 각 팀 자율에 맡긴다. 이상."
"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 네. 부대장은 괜찮습니까?"
" 네."
" 다른 인원은?"
" 괜찮아."
" 나도."
다행히 우리 인원은 부상자가 없었다. 얼핏 김 중사의 표정을 봤지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으로 있었다.
" 탄약은 얼마나 남았어?"
" 30%정도."
" 복귀까지 예상시간은?"
" 이대로라면 1시간 정도."
내 말에 운전을 하고 있는 박 중사가 말했다. 버스 창문에는 감염체의 피가 흥건히 튄 모습이었고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버스 외관에도 군데군데 피가 튄 모습이 보였다.
" 어서 돌아가고 싶다."
재효의 중얼거림에 다들 대꾸는 안했지만 다들 격하게 찬성하는 표정이었다.
" 본부로 돌아갑니다."
" 응? 본부요?"
" 네. 가서 탄약도 보급 받고 차량 정비도 하고 작전 보고도 해야 합니다."
" 어.. 그런데 본부가 어디야?"
" 00대학교입니다. 지부가 넓고 번화가 근처라 그쪽에 둥지를 틀었죠."
" 하긴.. 거기라면 엄청 넓지."
" 이제 거의 다 와간다."
이미 뚫어 놨던 길을 이용하여 달리는 상황이라 크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 정지."
몇 개 없는 다리 위를 지나가기 위해 검문소를 지나는데 초병이 우리를 막고 섰다. 앞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복귀하는 팀 전원이 다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 차량은 저기 주차하시고 팀원은 저기 보이는 건물로 가시면 됩니다."
" 네?"
초병이 알려준 건물에는 제법 탄탄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는 건물이었다. 예전에는 대사관 건물이 근처에 있었는지 담벼락 한쪽에는 박살난 이정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아.. 복귀할 때는 하루 대기시간이 있었지."
" 깜빡했네."
" 젠장. 피곤해 죽겠는데."
" 우선 환복하시고 외관상 특별한 상처가 없다면 지정된 방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 네."
" 현재 외부에서 복귀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임시로
정해진 곳이라 모든 것이 부족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초병의 안내를 받아 건물로 들어갔고 입구에 마련된 임시 천막에서 옷을 홀딱 벗고 의사로 보이는 남자에게 간단한 신체검사를 끝내고 내부로 들어갔다. 건물은 우이 예상과는 다르게 낡은 빌라였다.
" 한 방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 저희는 6명인데..?"
" 생각보다 집이 넓으니 괜찮습니다."
' 내가 안 괜찮아서 물은 건데. 썅.'
속으로 초병에게 욕을 한바탕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초병의 말과 다르게 30평이 안 되는 크기에 방2개와 거실이 보였다. 집안의 물건은 이미 다 정리가 된 듯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방마다 침대와 마루에는 이불과 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 그래도 전기와 물은 나오니 다행이네."
" 어서 씻고 자자. 24시간은 있어야 한다니까 오랜만에 푹 잘 수 있겠다."
" 으쌰!"
부대장을 시작으로 우리들은 돌아가면 뜨거운 물에 목욕을 했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전부 잠에 빠져들었다.
" 크응.."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났고 마음편이 자서 그런지 몸이 가벼웠다. 배식으로 주는 간단한 스프와 이상한 빵을 먹고 할 일 없이 다들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오락거리라고는 바둑판과 장기판이 전부였고 몇 개의 게임판도 보였지만 부속품이 많이 없어 게임은 불가능해보였다.
" 아직 10시간은 남았는데.."
" 체력이라도 보충해야지."
" 저랑 장기나 둘까요?"
박 중사와 부대장은 장기판을 꺼내어 방 한 곳에서 장기를 두기 시작했고 나는 발코니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건물 앞에는 복귀하는 인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건물로 부족한지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표정을 보니 대부분 사망자가 없나보군."
" 그런가?"
" 피곤해 보이기는 한데 일행 중 사망자가 있어 보이는 표정은 아닌데?"
" 아니면 너무 익숙해졌거나."
" 흠..."
기태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 힘든 것도 있다. 누군가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난다면 절대 익숙해지기 힘든 일일 것이다.
" 철컥."
" 응?"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의 시선은 문으로 고정되었다.
" 현재 복귀자가 많아 특별한 외상이 없는 팀부터 내부로 복귀하라는 명령
입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 네."
" 그럼."
본부로 돌아가는 길은 한산했다. 간혹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표정은 밝지 못했다. 뭔가 필요한 물품을 찾는 듯 상가나 버려진 차들을 뒤지는 모습이 보였다.
" 서울이라고 모두 풍족하지는 않군."
" 네. 수색이나 공격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보급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지금은 감염체로부터 보호 정도가 최선입니다."
" 너무..잔인하지 않습니까?"
부대장의 말에 박 중사가 물었다.
"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기에는... 지금 가진 것은 너무 부족합니다."
" 쳇."
부대장의 말에 김 중사가 비웃음을 날렸다. 통조림이나 기타 식품들이
유통기한이 길다고는 하지만 양은 한정되어 있고 소모되는 속도도 빠르기에 더 이상 구하기도 힘들었다. 물론 소도시에 있는 마트에 간다면 얻을 수 있는 식량이 조금은 남아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본부에 도착하여 부대장은 작전 보고를 끝내고 버스를 정비하는 곳으로 왔다. 우리는 부대장이 보고하는 동안 정비소에서 버스 외관을 닦고 간단한 정비를 끝내고는 쉬고 있었던 참이었다.
" 별다른 말은 없나요?"
비교적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부대장을 보고 말했다.
" 네. 뭐 저희만 했던 작전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소득이 있었으니까요."
" 소득이요?"
우리는 분명 헛물만 켜고 왔는데 무슨 소득인지 궁금한지 기태가 물었다.
" 적어도 다음번에 뭔가 찾을 확률은 높아진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작전에서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으니 소득이라면 소득이겠죠."
" 하긴.."
적어도 사람들을 잃지 않았고 다음에 찾을 곳이 줄어들었으니 맞는 말이기는 했다.
" 자자! 며칠 집에서 푹 쉬시고 다음 번 작전이 떨어지면 호출하겠습니다. 적어도
이틀의 휴식은 보장되니 푹 쉬십쇼."
" 수고하셨습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격려하며 인사를 나누고는 본부대에서 숙소까지 가는 차량에 탑승했다.
" 어서 와요!"
" 다녀왔어."
배에 도착하자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사람은 역시나 은혜였다. 뒤이어서 보미와 미란이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부 부둥켜안고 있었다.
" 들어가자. 들어가."
" 네!"
내 말에 은혜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별일은 없었고?"
" 네. 간혹 배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기는 했는데 핑크가 잘 지켜
줬어요."
" 그래? 누구지?"
" 아마도 주변에 사는 사람이겠지."
대수롭지 않게 재효가 이야기를 했다.
" 여긴 외진 곳이고 주변에 먹을 것을 구할 곳도 없는 곳인데? 뭔가 수상하긴
한데."
내심 뭔가 찜찜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내 생각을 끊으며 재효가 말을 이어갔다.
" 그나저나 홍 선생님은 어디서 지내신데요?"
" 아. 본부대에서 지낸다고 하시던데? 그래도 의사라 중요 인사에 속하지."
" 하긴. 지금은 얼마 안남은 보직이니."
의사인 홍 소령의 중요도는 상당했다. 덕분에 바로 본부대로 끌려갔지만 희욱이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난 조금 전 수상한 사람들이
기웃거린다는 말이 계속 걸려 말을 꺼냈다.
" 이 배. 내부에서 문을 잠그면 외부에서 출입이 쉬워?"
" 크게 어렵지 않아. 층도 몇 개나 되고 솔직히 그런 보안에 신경 써서 만든
형태의 배가 아니잖아."
" 하긴."
아무리 문단속을 한다고 해도 창문이 너무 많아 일일이 처리하기에는 시간도 재료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우선은 현재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도교를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여자들끼리만 지키는 것도 무리였다.
" 아무래도 우리가 있을 때에는 상관없는데 우리가 수색에 나가게 되면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대비책도 마련하고 혹시 박 중사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나 물어봐야겠다."
" 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아냐? 정말 지나가거나 뭔가 일이 있어서
근처에 있었을 수 있자나?"
" 그랬다면 좋겠다만.. 남이 보기에는 이 배는 참 탐나지. 더군다나 여자 3명만
타고 있으니 우리가 없다면 정말 위험할 수 있어."
내 무서운 말에 여자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 우선 핑크도 있고 하고 이틀의 시간이 있으니 대비할 방법을 생각하자."
"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감염체보다 사람이 무서울 순간이 더 많아."
"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아껴놨던 주전부리를 먹고 일어났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밖에서 보이는 노을의 색깔이 붉은 빛을 내며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