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8 / 0281 ----------------------------------------------
-3부-
비는 밤새서 내렸고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보트를 부술 기세로 내렸다. 눈에 보일 정도로 한강의 수위가 높아져갔고 묶어뒀던 로프를 넉넉하게 풀었다.
" 그러다 괜히 재수 없게 총 맞지 말아라."
" 언제 나온 거야?"
" 방금."
기태가 내 뒤에서 로프 푸는 것을 도와주며 말했다. 기태와 나는 비를 피해 홀딱 젖은 몸을 녹이려 배 안으로 들어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기태에게 주고 우리는 덜덜 떨며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 와.. 여름에 비 맞았다고 이렇게 춥냐?"
" 덜덜덜.."
이가 부딪히며 소리를 내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며 말했다.
" 참네.. 이런 것도 행복이라고."
" 담배는 많이 남았냐?"
" 한.. 세 보루 정도?"
" 많이 남았네."
" 그 동안 밖에 나간 시간이 많았으니까. 뭐 시간이 꽤 흘렀는데 먹을 것이
남은 편의점이 있더라."
" 그래? 신기하네. 전부 탈탈 털렸을 것 같더니."
" 구석에 있는 편의점이라 담배도 많이 남았던데."
" 그런데 왜 우리 세 보루만 남은거야?"
" 블랙마켓."
" 응??"
"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물물 교환이 이뤄지는 곳이 있더라고 그 곳에서
담배로 다른 것을 교환했으니까."
" 뭐?! 넌 그런 곳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 얼마 전에 박 중사가 알려줬어. 호기심에 갔다 왔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거래되던데? 총이나 탄약도 쉽게 구할 수 있어."
" 총이랑 탄약까지?"
" 응. 식량은 물론이고 닭이나 강아지도 있더라."
" 신기하네."
" 더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 사창가도 있더라."
" 대단하네.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그런 건 없어질 생각이 없나보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나저나 기태가 그 곳에 가서 뭘 교환해 왔는지 궁금했다.
" 그래서 그 많은 담배를 가지고 뭘 바꿔 온 거야? 그리고 담배로 물물교환이
가능해?"
" 뭐 대충 교환 방식이 정해져 있더라고. 탄약이 화폐기능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식량이랑 탄약 좀 바꿔왔어."
" 탄약은 뭐 하러? 이미 충분한 상황인데."
" 뭐 유비무환이지."
물을 끓여 얼마 남지 않은 스틱 커피를 꺼내서 마셨다. 따뜻한 것이 뱃속으로 들어가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그나저나 블랙마켓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화폐도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뭘로 교환이 가능한지도 궁금했다.
" 담배 말고 다른 것도 교환이 가능해?"
" 물물교환 형태라고 말했잖아. 뭐 교환자가 허락만한다면 뭔들 못하겠어."
" 다음에 한 번 가봐야겠는걸?"
" 한 동안은 힘들 것 같아. 보통은 밤에 열리는데 지금은 오후 5시 이후에
통행금지가 걸려 있으니. 풀리기 전까지 아마 열리지 않을 거야. 미쳤다고
불법적인 일을 대낮에 하지는 않겠지."
" 쳇. 아쉽네."
" 왜? 뭐 필요한 물건이 있어?"
" 흠.."
생각해보니 외부로 나가면서 은혜에게 반지나 목걸이 따위의 장신구를 해준 기억이 없었다. 다음번에 나간다면 애들에게 양해를 구해 하나를 구해올 생각이었다.
" 생각보다 물이 빨리 높아지는데?"
" 로프를 더 풀어야하나?"
" 바람도 점점 강해지는게 심상치 않은데."
" 설마.. 태풍이라도 부나?"
" 에이..설...마가 아니네.."
어둡지만 분명이 뭔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가만히 서있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었고 배는 심하게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일행이 부럽기만 한 시간이었다.
정말 태풍이라도 지나가는 것 같은 날씨였다. 정오가 지나 외출이 허락된
시간이었지만 나갔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은 바람이었다.
" 대단한데?"
" 무시무시하다."
배는 심하게 흔들렸고 창문의 결속상태를 확인하고 주변에 날아갈 물건을 치우고 방으로 향했다.
" 바람은 잠잠한데 비는 엄청난데?"
" 이러다 서울 잠기는 것 아냐?"
" 잠기면 어때. 물이라도 많으면 좋지."
기태가 내리는 비를 보고 말했다. 빗줄기는 전혀 약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이런 비를 맞으면서 나와 재효는 배급을 받기 위해 지정된 건물로 이동하고 있었고 배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 애앵!!!!!"
" 크엑!! 깜짝이야. 뭐지?!"
" 감염체가 또 쳐들어왔나봐."
" 어차피 방벽을 넘지도 못 할텐데 왜 자꾸 쳐들어오는 거야?"
평소처럼 우리는 별일이 아닌 듯 배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군인을 태운 트럭이 몇 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트럭에는 인원뿐만 아니라 꽤 많은 양의 탄약과 무기가 실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는 뒤따라 장갑차도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 뭔가 심각한 상황인가?"
" 글쎄.."
" 투다다다다!!!"
" 헬기가 낮게 날아?"
거의 머리 위로 날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낮게 헬기가 날아갔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자 우리도 배를 향해 뛰어갔다.
" 뭐?!!"
" 감염체가 방벽 사이에 가득하다고. 다른 구역과 이동할 방법은 공중 외에는
없어."
" 뭐야? 왜 굳이 이제 와서?"
" 고립이지."
" 응?"
" 평소에는 방벽끼리 이동이 수월하니 상관없는데 지금처럼 방벽 문을 굳게
닫아 놓고 공중으로만 이동이 가능하다면.."
" 언젠가는 식량 보급이 끊어지겠군."
" 맞아. 자급자족이 가능한 구역은 몇 군데 되지 않아. 자급이 불가능한 구역은
조만간 식량이 부족하게 되겠지."
" 빌어먹을. 그런.."
박 중사도 사이렌 소리를 듣고 우리 배에 들렀고 복장은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덕분에 우리도 무장을 하고 박 중사를 따라 나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재효는 배에 남겨 두고 내리를 비를 맞으며 방벽으로 이동을 했다.
" 젠장.."
방벽이라고 콘크리트 벽을 설치한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방벽을 설치하고 일반 건물을 봉쇄하고 설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에는 건물이 촘촘하게 지어졌으니 건물과 건물 사이를 막고 건물 내부의 감염체를 제거하고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문이나 창문을 4층 높이까지 전부 막아 버린 형태였다. 그래도 꽤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었기에 대부분의 구역을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콘크리트가 부족하면 컨테이너를 넣거나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 쏴아아아!!"
" 나온지 1분도 안 되서 몸이 홀딱 젖었네."
" 와..."
배에서 나와 방벽수비를 위해 다른 인원과 함께 감염체를 경계하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보이는 감염체의 숫자는 엄청났고 중간 중간에 변종 감염체도 보였다.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 목표 없이 어슬렁거리며 생존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었다.
" 크에엑... 크에엑.."
숨을 쉴 때 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동하는 감염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 징글징글하다. 우리가 가진 탁약으로는 어림도 없겠는걸?"
" 나가서 그냥 죽이고 다닐까?"
" 저 숫자가 보이지도 않냐? 너야 가능하겠지만 다른 인원은 채 백도 제거
못 할걸."
내 말에 박 중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내가 봐도 저 정도 숫자라면 쉬지도 않고 며칠을 죽여야 겨우 티가 날 것 같았다.
" 우선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저희가 가진 무기라고는 개인
소총과 유탄. 박격포가 전부입니다. 게틀링 건이 있기는 하지만 탄약이 얼마
없어서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박 중사 옆에 있는 인원이 말을 했다. 그래도 게틀링 건이라니. 그런 무기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 저희 구역은 특별히 뭔가 설치된 구역이 아니라 최소한의 무기와 탄약만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현재 식량은 2주 배급량 정도와 무기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줄줄이 나열하는 중간에 무전병이 박 중사를 향해 소리쳤다.
" 현재 본부대는 물론이고 구역 대부분에서 감염체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 뭐?!"
" 역시. 구역끼리 이동을 막을 생각이군."
" 누군지 똑똑한데. 이런 생각도 하고."
박 중사의 말에 내가 대답을 했다. 감염체를 유심히 지켜보던 중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 저.. 감염체.. 뭐지?"
" 왜 그러십니까?"
" 저 감염체.. 뭔가... 앵?!!!"
" 왜?! 뭐야?"
감염체 무리 중에 마치 인간의 육체를 이어 붙인 듯 한 모습의 감염체가 보였다. 다리가 없다면 제대로 걷기 힘드니 상체가 없는 감염체의 다리를 가져와 붙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설마. 그 집단이 만든 것인가?"
" 감염체가 모자라서? 저런다고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지?"
" 그나저나 저런게 가능해?"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고 난 이동하는 감염체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감염체의 사태 이후 분명 수많은 공격이 이뤄졌고 생존자들의 공격도 있어 분명 사지가 온전하지 못 한 감염체가 있을 법도 한데 지금 보이는 감염체 무리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육안으로 보이는 육체의 상태는 온전했다.
" 설마.. 설마..?"
" 왜?"
" 우리가 건물을 수색했을 당시 조각난 감염체 육체가 많이 있었는데. 설마..
감염체의 육체가 서로 호환되는..."
" 하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인간의 몸이 무슨 조립식도 아니고.."
" 보통 감염체를 죽이는 방법이 머리를 부숴버리는 방법인데 감염체의 육체가
온전하지 못 한 녀석들도 많을 것이야. 그 집단이 또다시 공격하려면 그나마
육체가 온전한 감염체가 효율적인데 그렇기 위한 연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
박 중사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반박하기도 힘들었다. 여자의 상체를 하고
다리는 남자 같은 다리를 한 감염체도 보였고 좌우 팔의 크기가 다른 녀석도 보였다.
" 비가 너무 와서 불을 지를 상황도 아닙니다."
" 비가 그치고 나서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아직은 버틸 시간이 충분하니 본부대에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 비가 그치면 다시 소집을 할 것이니 우선 집에서 계십시오."
박 중사의 명령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다른 구역과 격리된 상태에서 가장 상급자인 박 중사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배로 돌아와 소총이 아닌 자신만의 무기를 챙겼다. 난 오랜만에 꺼낸 칼의 상태를 점검하고 다른 장비를 점검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 설마.. 혼자 나가서 감염체를 제거할 생각은 아니겠지?"
" 맞는데?"
어느새 기태가 뒤로 다가와 말을 했다. 이미 기태가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 뭐하러 지금 나가는 거야? 어차피 네가 죽일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죽인다고 해도 지금 저 숫자로 봤을 때 티도 안 날 것 같은데."
" 그냥..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
" 같이 가자. 혼자 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 너무 무리하지 말고."
" 참네."
장비를 챙겨 나는 방벽으로 갔고 외부로 통하는 문은 굳게 잠겨있는 상황이니 4층에서 뛰어내려 지상으로 착지했다.
" 쿵!"
지상에 착지하는 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감염체가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는 감염체 중간에 끼어들어 무서운 속도로 감염체를 베어갔다.
" 쿠궁!"
" 쿵..."
육체가 분리되면서 지상에 떨어지는 소리가 지속되자 감염체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챘고 앞서가던 감염체 무리들이 뒤돌아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크아악!!"
어차피 빗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난 그동안의 스트레스라도 풀어버리는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감염체를 베어갔다. 이미 주변에는 두 번이나 죽은 시신들이 가득했고 이런 상황에서도 기태는 그냥 나를 지켜만 볼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 지켜만 볼 거야?"
" 뭐. 혼자서도 잘하면서 뭘."
" 참네."
어렵지 않게 감염체를 베어갔고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감염체의 숫자가 줄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감염체의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내 눈 앞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