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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배로 돌아와서 다시 무기를 손질하고 방벽으로 나갔다. 역시나 감염체는 소수의 무리를 지으며 이동하고 있었고 나는 그 중간에 서서 감염체를 노려봤다. 나를 한 끼 식사로 생각한 듯 움직임이 격해지는 감염체를 보고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 후움.."
" 쾅!!!!"
슈트의 배율을 최하로 조절하고 마음먹고 뛰자 순식간에 감염체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오른손에 든 칼을 크게 휘두르자 내 앞에 있던 감염체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목만 잘린다고 죽는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확인 사살이 필요했다. 이런 작업을 계속하느니 뇌를 직접 가격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 쿵.. 쿵.."
확실히 목을 베거나 몸을 두 동강 내는 것보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확인 사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 젠장..."
꽤 오랜 시간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를 제거했는데도 불구하고 숨이 차지 않았다. 몸은 점점 가벼워졌고 감염체들의 움직임이 확실히 눈에 보였다. 가뜩이나 느린 감염체인데 내 움직임과 동체시력이 월등히 좋아진 상황에 감염체에게 공격당할 확률은 땅에 쳐박힐 지경이었다.
" 젠장..젠장.."
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런 변화가 두렵기만 했다. 얻는 것이 있다면 분명 잃는 것도 있다. 잃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 수명이 줄어들 수도 있고 다른 뭔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상황도 생길 수도 있다. 눈앞에 보이는 감염체들을 전부 처리하고 칼을 땅에 꽂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는 더 이상 저번과 같이 결합할 정도의 상태가 아닌 감염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멀리서 날아오는 감염 비둘기들이 보였다. 어떻게 냄새를 맡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귀신같이 알고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고 순식간에 쓰러진 감염체들의 시체를 뜯기 시작했다. 개중에 살아있는 나를 보고 달려드는 녀석들도 있었다. 예전의 평범한 비둘기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 푸욱!!!"
날아오는 감염 비둘기를 밑으로 피해 칼을 들고 반 토막 냈다. 자신의 동료가 죽는 것을 알았는지 동시에 고개를 들었고 무서운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개중에는 달팽이 눈처럼 변한 녀석도 있었다.
" 푸득! 푸득!!"
" 젠장!!"
비둘기들은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뛰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도 문제였지만 움직임도 문제였다. 감염체와 다르게 꽤 날렵한 움직임을 보였기에 상대하기도 까다로웠다. 도망가면서 몇 마리를 처리했지만 지상과 공중에서 협공하는 녀석을 상대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방벽 안으로 들어간다면 구역의 생존자들이 위험했다. 아직은 생존자들이 감염 비둘기를 상대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감염 비둘기를 제거해야 했는데 내 공격 패턴을 이해했는지 처음보다 죽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감염 비둘기들도 따라 들어왔다. 다행히 천정이 낮은 건물이라 더 이상 날지 못했고 복도에 서서 따라 오는 비둘기를 하나씩 제거해갔다.
" 빌어먹을 끝도 없네."
아무리 건물이라고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녀석들을 상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난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갔고 나가서 본 모습은 내 생존 의지를 꺾어버릴 광경이었다.
" 푸득! 푸득!!"
처음 봤던 숫자보다 몇 배는 늘어난 숫자를 자랑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감염 비둘기를 바라봤다.
" 하아... 젠장."
난 칼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는 자세를 잡았다. 내 움직임에 반응한 녀석들이 순식간에 날아들었고 나는 최대한 낮게 몸을 웅크리고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콰콰쾅!!!"
" 쌔앵!!!!"
" 쾅!!!"
" 어라?"
어디선가 나타난 공격헬기와 장갑차가 감염 비둘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화력에서 월등한 존재가 나타나자 비둘기들은 혼비백산으로 날아갔고 몇 몇은 추적을 하면서 제거했다.
" 참네. 너 답다."
" 뭐야? 어떻게 알고 온거야?"
" 기태가 말해줬어."
장갑차에서는 박 중사가 내린 모습이 보였고 그 뒤로 장갑차량들이 더 몰려왔다.
" 쳇. 혼자서도 죽일 수 있는데."
" 뭐 너라면 시간이 걸려도 죽일 수 있겠지. 그 시간 단축을 도와준 것 뿐이야."
" 괜찮냐?"
장갑차에서 내린 기태가 말을 했다.
" 뭐 이래저래 감염 비둘기를 없앨 계획이었는데 네 덕분에 엄청난 숫자가
모여서 급하게 온 것 뿐이야."
" 헬기가 추락해서 방벽이 무너져 생존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구역은 사실
감염 비둘기 때문에 피해를 본거지?"
" 응. 맞아."
"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
" 잘해야.. 다음 주? 어차피 다들 알게 될 내용이었고 나도 전달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알아봐야 좋을 것도 없고. 네가 내 말을 듣기도 전에 쏴 붙이는
바람에 나도 감정적으로 나왔지."
" 미안."
" 됐어. 네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아직은 화가 덜 풀렸지만 더 이상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장갑차들은 뒤늦게 날아가는 비둘기를 제거했고 공격 헬기들은 무서운 속도로 비둘기를 추격해 제거했다.
" 치직.. 상황 종료.. 치직.. 상황 종료"
" 확인."
" 치직.. 생포 두 마리. 두 마리를 생포했다."
' 지금 무전에서 그 비둘기를 생포했다는 거야?"
" 오호!"
" 치직.. 본부대 실험실로 바로 이동한다."
" 확인."
그 와중에 비둘기를 두 마리나 생포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생각보다 군인들의 훈련 상태가 월등했다.
" 돌아가자. 다음번에도 이렇게 허락 없이 나오면 영창에 가둘 줄 알아."
" 네. 네."
박 중사가 이제는 허락 없이 나오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박 중사를 바라봤고 박 중사도 나를 보고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각 구역에서 감염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탄약을 아끼기 위해 탄약 소비는 최소로 하고 화염 방사기나 화염병을 이용하여 감염체를 죽이는 작업을 지속하였지만 이제는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는지 감염 비둘기가 종종 날아오는 바람에 그 작업에도 지장을 받기 시작했다.
" 난감한데? 점점 비둘기 공격횟수가 증가해."
" 어젯밤에는 우리 배 위에서 빙빙 돌았단 말야. 밤새 한 숨도 못 잤어."
" 대공포 같은 건 없어?"
" 있다고 해도 여기에 설치해 줄지도 의문이다."
" 예전에 그 비둘기 잡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했는데?!"
" 그거야 크기가 작았을 때 이야기지. 지금은 너무 크게 쓸모가 없더라."
우리는 선착장에 앉아 잡담을 나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둘기가 주변의 감염체도 같이 먹이로 생각해서 틈만 나면 잡아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예상과 다르게 점점 커지는 녀석도 있었다. 생포한 비둘기의 초기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가 알던 비둘기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변했다고 했다. 육식을 탐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식탐도 엄청나서 틈만 나면 감염체나 생존자를 사냥을 한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한 번 물리거나 잡히면 벗어나기 힘들었다.
" 덕분에 탄약이랑 소총 지급량이 늘었네."
감염 비둘기로 인하여 전 구역에 긴장감이 높아졌고 몇 몇 구역에서는 협력하여 방어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 우리도 옆 구역에서 같이 방어하자는 말이 나왔어."
" 뭐 숙소 문제만 해결된다면 큰 문제는 없는데."
" 알다시피 우리 구역은 배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쓸만한 빌라가
몇 채 없으니까."
" 옆 구역도 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 뭐... 그 사람들이 움직일지는 의문인데."
" 응? 왜?"
내 말에 박 중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솔직히 말하면 우리 옆 구역은.. 하아... 빈민가야."
" 빈민가?"
" 그런 곳이 있어?"
" 뭐랄까..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많이 있어서 경계 인원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해. 그래서 다른 구역에서 협력에 기피대상인 이유야. 솔직히 말하면 옆
구역 남자들은 다른 구역에서 성인군자라고 부를 정도야."
" 우리 입장에서 보면 손해인데 굳이 그 협력에 응하려는 이유는?"
박 중사 위치에서 근무자가 아닌 어린아이와 여자. 노약자가 많은 구역과 합류하여 방어한다면 이득은 물론 현재 방어력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수 있었다.
" 뭐랄까..."
" 알았다."
" 그래.."
박 중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우리는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구역이 조금 약해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한 구역일 수도 있다.
" 내일부터 배들을 끌고 올 예정이고 남자들은 경계 근무에 투입될 예정이야."
이미 계획이 세워져 있었는지 앞으로의 일을 나열하는 박 중사를 봤다. 뭐 이러나저러나 상관은 없지만 전에 봤던 여자들과 아이들만 있는 배는 조금은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배급을 받는 다고 하지만 워낙 양이 빠듯해서 약간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있었다.
다음 날이 되어 우리 근처 선착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배들이 모여들었다. 본부대에서 보내준 추가 무기에는 대공포 대신에 대 구경의 무기가 지급이 되었다. 우리 배 인원은 여자들이 예전에 봤던 유람선에서 생활하는 여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이동했고 생각보다 적대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 배 바로 옆에서 생활하기로 했고 추가로 도착하는 배들이 차례로 주변에 정박을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선착장 근처에 대공포 진지를 만들고 혹시 모를 감염체의 공격에 대비해 울타리를 만들었다.
" 무전으로 계속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네."
" 이번에는 또 어느 구역이 공격을 받았어?"
" 감염 비둘기가 한 구역 전체를 공격했어. 다행히 생존자들이 미리 알아서
피했기에 피해는 없었어. 하지만 구역 대공을 방어할 방법이 마땅히 없어서
걱정이야."
"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냐? 저 덩치의 새가 날아서 들어오면 멀쩡한 건물이
어디 있겠냐."
" 하하.."
" 응?"
박 중사가 손가락질 한 곳에는 한 무리의 비둘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 애애앵!!!!"
" 들어가! 숨어! 숨어!"
" 기관총!!!"
" 탄약 더 챙겨와!!"
남자들은 빠르게 비둘기를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했고 그 외 인원들은 배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상대적으로 배는 건물보다 약하기 때문에 가장 깊숙한 곳에 숨었다. 남자들도 대공포 진지 안에 숨어서 날아오는 비둘기를 관찰했다.
" 젠장... 갈수록 태산이다."
" 그래도 이 무기들 덕분에 조금은 다행이지."
" 이제 옵니다."
" 쌔앵!!!"
무서운 속도로 먼저 날아가는 비둘기가 보였고 그 뒤로 대략 50마리는 되어 보이는 숫자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장 작은 녀석은 족히 길이가 50센티는 되어 보였고 가장 큰 녀석은 1미터가 넘는 녀석도 보였다.
" 속도도 장난이 아닌데."
" 저 속도로 그대로 배에 돌진하면 끝장이야.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 속도라면
배는 그냥 두 동강 날 수도 있겠는데?"
" 지나간다."
" 쌔앵!!"
마치 고속도로에서 차가 지나가듯이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잘 못 걸리면 정말 뼈도 못 추릴 속도였다.
" 제발...제발..."
" 지나가라..지나가라.."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움켜쥐고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 속도로 덤비는 녀석을 막을 자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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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래저래 벌써200회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