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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천만 다행으로 감염 비둘기들은 우리를 지나쳐갔다. 하지만 다음 구역을 그냥 지나쳐 가지는 않았다. 건물 안에 숨은 생존자까지 찾아서 공격을 하는 녀석들을 겪으니 현재 일반 감염체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먹이 사슬의 꼭대기가 새롭게 생겨난 것이었다.
" 본부대에서는 뭐래?"
" 현재 공중에서 공격할 수 있는 것은 헬기가 전부야. 대공포다 다른 대구경
기관총을 박박 긁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숫자가 너무 부족해."
" 일반 감염체는 이미 안중에도 없네."
" 일반 감염체가 몰리고 감염 비둘기가 몰렸다라... 그렇다면 지금까지 감염체가
중간에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설명이 되는군. 감염체가 왜 개량이 됐는지도."
" 감염 비둘기가 먹어치우는 속도가 어마어마했으니. 그래서 일부러 생존자가
많은 이곳으로 미끼로 던진 것이군. 처음에는 크기가 작아 감염체들이 완전히
잡아 먹이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한 입 거리니."
" 이 상황은 그 집단도 예상 못한 상황인 것 같은데."
" 그건 우리도 비슷하지."
기태와 박 중사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 중사가 내놓은 가설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보였고 지속적으로 감염체가 밀려들어오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감염체를 미끼로 이용했다면 더 이상 미끼용인 감염체를 보낼 이유가 없는데 지속적으로 어디선가 감염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 방벽 보수 작업에 필요한 자재가 도착했습니다. 추가로 탄약과 식량이 도착
했습니다만.."
" 그런데?"
" 앞으로 보름간 식량 보급은 없다고 합니다."
" 뭐?! 겨우 일주일 양을 주고 보름이나?!"
" 본부대에 무전이라도 해봐!"
물건을 받은 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박 중사에게 말을 했고 박 중사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박 중사의 외침에 무전병이 본부대에 무전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 현재.. 수송용 헬기도 부족한 상황이라 힘들다고 합니다. 육로로 이동하기에는
감염체의 위험 때문에.."
" 육로와 공중이 다 막혔군."
" 해상은 당연히 안 되고."
" 지급 받은 식량 외에 얼마나 남아있지?"
" 얼마 없습니다. 탄약 외에는.."
" 망했군."
" 뭐 그래도 한강 위에 있으니 낚시라도 하면 뭐라도 건지겠지."
" 고수부지에 닭이나 토끼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잡으면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난감하군."
본부대에서도 생각지도 못 한. 아니 예상과 다르게 빠르게 커 버린 생물체로 인하여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도 다행인 상황은 해가 진다면 감염 비둘기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방벽이 감염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에 다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낮에는 확연하게 늘어난 감염 비둘기로 인하여 하루 종일 대공포와 소총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우리도 물론 건물에 들어가 눈에 보이는 녀석마다 죽이고는 있지만 그 숫자도 이제는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지상에서 몰려오는 감염체와는 전혀 다른 녀석이니 한 녀석을 죽이기 위한 탄약 숫자도 엄청났다.
" 무의미한 행동입니다. 벌써 탄약 보유량이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 지상에 있는 감염체는 현재 문제도 아닙니다. 저 녀석들 때문에 벌써 4개의
구역과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 현재 본부대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수색을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 하고 있습니다. 탄약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돌겠군."
박 중사 옆에 있는 병사가 계속해서 보고를 하고 있었지만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 방벽 근무에서 돌아온 인원들은 한눈에 봐도 피곤에 절어 있었다. 얼마나 총을 쐈는지 온 몸에서 탄약냄새가 났다.
" 우리 차례인가."
" 가보지."
나와 기태가 한 조가 되어 방벽 정찰을 나갈 준비를 했다. 탄약을 넉넉히 챙기고 건물을 나서는 순간 박 중사가 우리를 잡았다.
" 웬만하면 교전은 피하고 감염 비둘기와 감염체의 움직임만 보고해줘."
" 응?"
"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해줘. 너희라면 탄약이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방어가 가능하자나."
" 알았어."
아무래도 일반 생존자보다 우리가 생존력이 월등했기 때문에 탄약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무장으로 기태와 건물을 나섰고 조심스럽게 방벽과 이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 후우.. 숫자 봐라."
" 언제 저렇게 늘어났냐?"
이미 지상에는 일반 감염체는 찾기 힘든 상황이었고 하늘에는 다른 먹이가 없나 배회하는 감염 비둘기가 한 가득이었다.
" 내가 밖으로 나가볼게."
" 괜찮겠냐?"
내가 창을 챙겨 건물 밖으로 나갔고 그런 내 존재를 눈치 챈 녀석들이 무서운 속도로 몰려들었다. 벽을 등지고 몰려드는 녀석들의 머리를 잘랐다.
" 끼에에엑!!!"
" 깜짝이야!"
감염체와 다르게 바로 죽이지 못하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옆에서 떨어져 푸덕거리기라도 한다면 날리는 털이 시야를 가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
" 벌써?"
" 저기 안 보여? 더 몰려오고 있어. 더 이상은 무리야."
기태의 말에 우리는 다른 건물로 들어가 감염 비둘기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우리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건물 이곳저곳에 붙어 우리를 찾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더 이상 날지 못하거나 숨이 끊어져가는 동족들도 멀쩡한 녀석들에게는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 무서운 녀석들."
" 뭐 사람이라고 다를까? 아마 먹을 것이 떨어졌다면 다른 생존자들도 저
녀석들처럼 했을걸?"
" 하긴.."
몇 몇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우리가 자리를 잡고 있는 건물로 들어오기에는 창문도 집 안 크기도 매우 작았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봤다.
" 후아.."
" 포기 한 것 같네. 더 이상 건물에 들어가지 않는군."
" 생각보다 지능이 뛰어난데? 예전에는 새대가리라고 무시했는데 취소해야겠군."
" 동감이야."
" 꽤 멀리 갔네."
감염 비둘기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자리를 이동했다. 날아가는 방향을 한참을 지켜보던 중 기태가 소리쳤다.
" 젠장!! 저 방향은 우리 숙소가 있는 방향이야!!"
" 뭐?!"
" 어서 무전해! 뛰어!!!"
" 젠장!! 뭐야 저 녀석들!!!"
물병을 챙겨 가방에 넣고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무전으로 현재 상황을 박 중사에게 알렸다.
" 박 중사! 현재 감염 비둘기가 그 쪽으로 날아간다! 그 쪽으로 날아간다고!!"
" 알았어!!"
무전으로 현재 상황을 보고 받은 박 중사는 인원 전원을 무장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우리 숙소 주변에는 낮게 날아다니는 감염 비둘기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혼비백산 배나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미처 숙소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길을 강제적으로 가게 되었다.
" 살려줘!!"
" 꺄악!!"
" 어서 달려!!!"
박 중사는 비둘기를 향해 총을 겨눴지만 움직이는 생명체에 더군다나 사람이 잡혀있는 목표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맞춘다고 해도 떨어지는 충격에 잡힌 사람이 온전할 확률도 희박하였다.
" 쾅!!!"
난 가능한 높이 뛸 수 있게 크게 도움닫기를 했고 어느새 내 앞에는 감염 비둘기가 시야에 잡혔고 크게 창을 휘둘렀다.
" 찌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머리와 육체가 분리되었고 잡혀있던 생존자는 내가 비둘기 몸체를 잡고 그대로 땅에 착지하여 다친 곳이 없이 무사히 내려 올 수 있었다.
" 꺄아아아!!"
" 응?!!"
익숙한 톤의 비명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지금 잡았던 비둘기보다 더 높은 곳을 날아가고 있는 비둘기가 보였고 발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은...혜?"
" 빌어먹을!!!"
나는 다시 도움닫기를 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지만 이미 내가 뛸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 녀석은 약이라도 올리듯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 헬기!! 헬기는?!!"
"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려!!"
주변에서 비둘기를 정리하던 박 중사에게 외쳤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인 답변이었다. 슈트의 배율을 최대로 하고 뛰었지만 이미 한계치 이상으로 떠오른 녀석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시야에 비둘기에 잡혀 발버둥치는 은혜의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실력에 눈물이 났다. 유일하게 내 옆을 지켜주던. 매일 내가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세우게 한 존재를 지킬 수 없는 내 모습. 다른 비둘기들도 잡은 생존자를 바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을 돌며 마치 낚시를 하듯 생존자를 잡지 못한 비둘기들이 먹이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듯 한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 크흑...크흑..."
" 정신 차려! 이 새끼야!!!! "
" 재원이 주변으로 가!!"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비둘기들이 몰려들었고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박 중사와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나를 잡고 강하게 흔드는 박 중사였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를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도 은혜를 잡고 있는 비둘기의 모습이 보였고 순간 예전 정서형님이 주신 물건이 생각났다.
" 어디가냐?! 제 왜 저래?!"
" 야!! 재원아!!"
나는 배로 뛰어 들어갔고 방에서 서랍 깊게 숨겨둔 주사를 찾았다.
" 젠장..젠장..."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약물. 다시 지금처럼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실패해서 우리 주변을 서성거리던 대형 감염체와 다른 것이 없는 녀석이 될 수 있다.
" 뭐야? 뭔 주사야?"
" 설마.. 너?!"
" 안 돼... 안 돼!! 정확한 효능도 모르는 약을!!!"
" 야!!!"
" 푸욱!!"
애들이 다가오기 전에 팔에 주사기를 꽂았고 총 형태로 된 주사기는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빠르게 몸 안으로 들어갔다.
"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온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전신이 근육통이 오는 듯 싶더니 점점 큰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 크아악!!"
정신을 잃기 직전에 쏟아진 강한 통증으로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온 몸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 뭐?! 뭐야!!!"
" 크으윽!!!"
내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은 점점 키가 커지며 근육질로 변해갔고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는 것이 보였다. 머리카락은 더 이상 검은 색이 아닌 새하얀 색으로 변했고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단어만 맴돌았다.
' 죽인다.'
난 고개를 들어 은혜를 잡고 있는 비둘기를 찾았고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을 날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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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