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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이미 꽤 멀어진 상황이었지만 건물을 그대로 뛰어 올라 도움닫기 몇 번과 엄청난 도약력으로 단숨에 은혜를 잡은 녀석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 퍽!!"
난 녀석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목을 잡고 다리에 잡혀 있는 은혜를 뺏어왔다. 다행히 큰 상처 없는 모습이었고 공포심에 기절한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나는 점점 더 심하게 머릿속을 울리는 단어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 죽여라 '
나는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녀석과 함께 지상으로 추락했고 녀석을 발판삼아 지상에 착지했다.
" 쿠웅!!!"
상당히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나에게 느껴진 큰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녀석은 다시 날아가기 위해 푸덕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대로 날개를 잡고 찢어버렸다.
" 끼에에에!!"
녀석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비둘기들은 순식간에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 콰앙!!"
단 한 번의 도움닫기로 내 시야 밑에 있는 비둘기들이 생겨났다. 나는 다시 지상에 내려오면서 몇 마리를 잡아 내려왔고 그대로 땅에 꽂아버렸다. 주변에는 비둘기 피가 튀면서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고 그런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인원들이 보였다.
" 푸득...푸득..."
" 쿵!!"
아직도 꼼지락 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밟아 버려 숨을 완전히 끊어버렸고 그런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이제 잡은 생존자들로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우리 구역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도망가는 녀석들을 따라 발톱에 매달린 생존자들을 구출하는데 힘썼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녀석들을 전부 따라가는 것은 무리였고 건물 옥상에서 멀어지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상에는 일반 감염체들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쿠왕!!!"
개미 밟는 듯한 느낌으로 감염체들을 제거해갔다. 죽어가는 감염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역시나 감염 비둘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녀석들을 보자 점점 살기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크릉...크릉.."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변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감염체와 비둘기들이 널려져 있었고 건물들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변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에는 낯선 소리가 새어나왔고 멀리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정신 차렸냐?"
" 얼마나 지난거야? 은혜는?"
" 은혜는 다행히 큰 상처는 없어. 너는 거의 3시간 가량.."
" 목격자는?"
" 우리 팀원 이외에는 없어. 입단속은 철저히 시켰고."
" 크흑..."
" 그런데... 정서 형님은 몸이 작아지던데.. 너 왜..."
" 몰라.."
나보다 큰 박 중사가 어린 아이 마냥 작게 보였다. 나는 우선 이대로 배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우리 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강에 들어가 대충 몸을 씻고는 깨끗한 물로 다시 한 번 헹궜다. 내 옷은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만 가릴 정도라 박 중사가 꽤 큰 천을 가져다 줘서 몸에 둘렀다.
" 우선 은혜에게 나는 무사하다고 말해주고. 한 동안 집에는 못 들어가겠네."
" 본부대에 연락을.."
" 미쳤냐? 그럼 재원이를 바로 실험용으로 쓸걸?"
" 다른 인원들은 걱정하지 말고. 우선 다들 숙소로 돌아가."
" 그래.."
" 은혜에게 잘 좀 말해줘."
" 걱정마."
나는 기태에게 부탁을 하고 한 구석에 앉았다. 배가 무척이나 고팠지만 정서 형님처럼 감염체를 씹어 먹고 싶지는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멀리서 은혜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당황하며 숨을 곳을 찾았지만 이 덩치에 그리고 하얗게 변한 긴 내 머리카락을 숨길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 자기?"
" 으,,응?"
" 역시... 맞네.."
" 봤어?"
" 네.."
은혜는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두려움과 측은함이 섞인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은혜의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내 앞에 다가온 은혜는 손을 들어 내 뺨을 어루만지고는 머리카락을 만졌다.
" 은색에 가깝네요. 이쁜데요?"
완전히 내 품에 안겨 길어진 머리카락을 이불삼아 덮고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 것이 보였다.
" 얼마나 다쳤어?"
" 다행히 크게 찢어진 곳은 없어요."
" 다행이네."
" 그나저나 이 자세 굉장히 신기한데요? 어른이 돼서 이렇게 안길 수 있다니."
뭐가 좋은지 아니면 좋게 보이려 노력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잘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였다.
" 이제 곧 있으면 해가 져. 여긴 위험하니까 배로 돌아가."
" 자기도 없는데 여기서 같이 있죠 뭐."
그러면서 내 품에 더 안기려 꼼지락 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웃었다.
" 그나저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네요? 얼굴도 달라지고 근육도 단단하고."
내 몸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찌르며 확인하는 은혜의 모습을 보며 점점 눈이 감겨왔다. 마치 며칠은 잠을 자지 못했다가 긴장이 한꺼번에 몰리는 피로를 느끼며 잠이 들어버렸다.
" 끄으윽.."
온 몸에 뻐근함을 느끼며 눈을 뜨니 다시 작아진 내 품에 은혜가 안겨서 잠이 든 모습이 보였고 우리 위로 내가 변했을 때 덮고 있던 천 때문에 답답함에 천을 걷자 해는 완전히 넘어가고 보름달이 보였다.
" 어라? 다시 돌아왔네?"
미처 느끼기도 전에 작아짐 모습이 보였고 나는 은혜를 깨워 배로 돌아갔다.
잠에 취한 은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내가 업다시피 하고 배로 돌아갔다. 심하게 배가 고파 나는 은혜를 침대에 눕히고 바로 먹을 것을 찾아 배로 넣어버렸다.
" 우걱 우걱."
"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라."
" 웅?"
입에 한가득 먹을 것을 담고 고개를 돌리니 내가 낸 소리 때문에 기태가 깨어난 것 같았다.
" 미안. 나 때문에 깬 거야?"
" 뭐.. 굳이 그런 것도 있고."
" 천천히 먹어."
" 이러다가 내가 식량 다 먹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구했는데 그 정도야 당연하지."
" 못 구한 사람들도 많은데."
" 너무 자책 하지마."
" 그런 것 따위 이제 안 해."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나는 기태에게 담배를 피우자는 제스처를 취했고
말없이 뱃머리로 나간 우리는 담배를 끝까지 다 필 때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 누군가 온다?"
" 알아."
기태와 내 감각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리 배 근처로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와 기태는 굳이 티를 낼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하던 행위를 계속해서 했다.
" 손들어라!"
" 그대로 있어라!"
어느새 배 위로 올라온 군인들이 우리를 포위했고 제대로 무장을 한 군인들이 보였다.
" 그만둬라. 너희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 넵."
" 대령님."
군인 무리 중 가운데 길이 열리면서 대령님이 나타났다.
" 엄청난 짓을 했더군. 재원군."
" 뭐.."
" 도대체 이 인원들은 뭡니까? 그냥 오셔도 될텐데요?"
기태가 약간은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했고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군인 무리를 보니 은혜와 미란이와 재효와 보미가 보였고 군인들은 뒤에서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 감히... 누구에게 총을 겨누는 거냐..."
" 크윽!"
내가 은혜와 미란이 옆에 있는 군인들을 노려보자 겁을 먹은 듯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은혜 옆으로 달려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움직임이였다.
" 꽈악!!"
" 헉!!"
난 총구를 들고 있는 병사의 총을 뺏어 그대로 힘을 줘 구부려서 강에 버려버렸다.
" 다시 한 번 총을 겨눴다간 두 번 다시 뜨는 해를 보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 그만두게 재원군. 저들은 겁을 먹고 그러는 것이니."
이 순간만큼은 대령님도 무척이나 야속했다. 굳이 병력까지 끌고 와서 우리를 보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 서..설마?!"
" 응??"
" 역시 기태군이 감각이 더 좋군. 자네는 군치챘군."
" 하하.. 설마...그래서 저희에게 그 집단의 연구시설을 수색하게 한 것입니까?"
뭔가 느낀 기태가 대령에게 말을 했고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사를 바라보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그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 이 사람들..."
" 맞네. 자네와 같은 인간이지."
" 그랬군요. 저희도 성공했군요."
" 뭐.. 적과 대적하려면 대등한 힘이 필요하니까 말일세. 자네만 있다고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그럼.. 그 약물이 더 있다는 것입니까?"
" 자네가 사용한 약물의 정확한 효능은 모르지만 비슷한 효능을 가진 약물은
우리도 만들었다네."
" 도대체 왜..?"
" 자네도 보고 겪어봐서 알 것 아닌가? 탄약은 떨어지고 미사일도 언젠가는
전부 소모가 될 텐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우리 인간이 직접 제거하는
것이지. 하지만 감염 비둘기는 전혀 예상을 못한 상황이라. 그 집단도 예상을
하지 못 한 것 같기는 하네."
" 무섭군요. 대령님도."
"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솔직히 나도 이들과 같이 오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 들어가시죠. 오신 김에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죠."
" 이 판국에 차가 목으로 넘어가나?"
대령님 옆에 있던 병사가 시비를 걸며 말을 했고 나는 대꾸도 없이 그대로 팔을 들어 멱살을 잡고 멀리 던져 버렸다.
" 퍼억!!"
강이 아닌 육지로 던졌기에 땅과 부딪히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 내 행동에 토 달지 마라. 내 집에 와서 내가 하겠다는데. 초대도 안 한
녀석들이 온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그 스트레스를 다 풀어 버리기 전에."
" 재원군!"
" 재원아!"
다들 내 행동에 경악을 하며 소리쳤고 난 대령님을 보며 이야기 했다.
" 굳이 내려갈 이유가 없군요. 미란이와 은혜는 내려가고."
내 말에 미란이와 은혜가 불안한 표정으로 내려갔고 옆에서 기태도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부작용이 심하군."
" 부작용이 아닙니다."
대령님의 말에 내가 받아쳤고 병사들은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굳이 차를 마시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 여기서 하겠네. 마침 의자도 몇 개
있으니 앉고 이야기 하지."
" 네."
" 이야기는 하되 나머지 인원은 배에서 내려라. 아니면 강제로 내려주마."
" 재원군. 진정하게. 강 대위 내려가게."
" 알겠습니다."
대령님의 말에 병사들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편하게 자세를 취하고 대령님에게 물었다.
" 네. 그럼 하실 말씀이 뭔가요?"
" 자네. 그 집단의 사람과 아는 사이라고 했지?"
" 네."
"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네."
정서 형님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핸드폰이나 이메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연락을 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마 자네가 변한 것을 그 쪽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네. 그러니 당연히 찾아
오겠지. 그 때 말좀 전해주게나."
" 알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저희 쪽에서도 저를 감시했군요. 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신것을 보니."
" 부정하지 않겠네. 주요 인물을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니."
" 위험 인물이겠죠."
내가 살짝 웃으며 받아쳤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 대령님은 쓴웃음을 지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