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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하지만 우리를 감시하는 인원은 예상과 다르게 점점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인원도 없는데 감염체와 감염 비둘기의 공격이 점점 늘어나니 어째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감시 인원이 차출하기 편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허허벌판에 텐트만 치고 지내는 생존자들은 감염 비둘기의 한 끼 식사로 어렵지 않은 사냥거리였다.
" 거의 없네? 이제 나가도 상관없겠다?"
" 감시 인원은 없다고 해도 하늘에 떠있는 저 녀석들은 어쩌고?"
재효의 말에 나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하늘에는 무서울 정도의 숫자의 감염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엄청나게 커진 녀석들도 보였다. 저 녀석들은 이제 자연의 법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먹는 족족 커질 수 있나보다.
" 쿠웅!!"
" 와.. 아슬아슬하게 피했네?"
우리를 감시하는 인원들 위로 감염 비둘기들이 사냥을 위해 활강하고 있었다. 개중 덩치가 큰 녀석이 무식하게 내려오다 착지에 실패해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몇 번 떨더니 그대로 기절했는지 움직임이 없었고 그런 녀석을 감시 인원이 소총을 쏴 잡는 모습이 보였다. 병사들은 감염 비둘기를 피해 무단히 노력을 했지만 지속적인 피해를 입었다. 추가 병력이 도착하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지만 어디선가 또 나타난 감염 비둘기로 인하여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 가서 도와줄까?"
" 됐어."
재효가 잔인하게 잡아 먹이는 병사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저들을 도와줄 능력은 되었지만 실력은 되었지만 그렇고 싶지 않았다.
" 꽤 잔인해졌다?"
" 잘해 줘봐야 좋을게 없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 들어가자. 이대로 있다간 저 녀석들이 우리 존재를 눈치 챌 것 같다."
병사들이 몸을 숨기고 보이지 않자 아직 굶주린 녀석들이 계속해서 주변을 날아다녔다. 달팽이 같이 눈이 튀어 나온 녀석들은 사방팔방을 보며 사냥 거리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시야에 의존하는 경양이 큰 것 같았다. 큰 날개를 열심히 움직이던 녀석들은 갑자기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같았다. 다른 곳에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지 순식간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병사들이 묵었던 장소로 나갈 수 있었다. 곳곳에는 피가 흥건했고 조각난 육체까지 보였다.
" 잔인한데? 이건 단순히 먹을 생각으로 잡은 것이 아닌 것 같은데?"
" 설마.. 재미로 사냥을 한단 말야? 그런 존재는 인간 밖에 없지 않았나?"
인간만이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이 광경은 아무리 봐도 먹기 위한 사냥의 모습은 아니었다. 소총에 맞아 죽은 비둘기들의 상태를 살피니 처음과 다른 모습을 한 비둘기도 보였다. 아직도 숨이 붙어서 헐떡이는 녀석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처리하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생존자들은 전부 철수 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처참한 전투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 아침에 먹은 감자가 넘어올 것 같다."
" 감자는 어제 저녁에 먹었어. 아침은 아무것도 안 먹었고."
" 아..."
" 이제는 기억력도 퇴보하나.."
" 지급 받을 식량은 아직 안 왔어?"
" 오긴 왔는데 점점 양이 줄어든다."
" 참네.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 어.. 그런게 아닌 것 같아. 전체적으로 식량 보급이 힘든 상황 인가봐. 어제는
식량을 배급하던 헬기가 비둘기 공격으로 추락했고 엊그제는 지상으로 옮기던
트럭이 감염체로 포위돼서 겨우겨우 탈출했다더라."
" 무전이 돼?"
" 주파수 돌리다 몇 개 찾았어. 해상을 제외한다면 지금 안전하게 이동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야."
" 그래서 우리 식량이 점점 부실해지고 있군요."
" 우리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 구역에 식량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더군다나 감염
비둘기와 늘어나는 감염체로 인하여 구역간의 이동이 원활하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고립되어 가는 상황이야."
" 그 집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네. 각 구역의 고립이라."
" 그럼 우리 구역이 제일 먼저 식량 보급이 끊기겠군."
" 응? 왜?"
" 박 중사 말로는 우리 구역이 제일 작고 상주하는 인원도 없는 편이래.
" 뭔 소리야? 우리 옆에 유람선하고 일반 보트들도 있잖아?"
" 그 배들 철수한지 꽤 됐어. 너를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이미 전부
철수했어."
" 그런데 배는 그대로 있네?"
" 배에는 병사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전에 보니 유람선에서 내리는
병사들이 많이 보였어요."
은혜가 내 옆에 앉으며 말을 했다. 아무래도 배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은혜가 이 근처에서 일어난 일에 더 빠삭할 것 같았다.
" 그 외에 다른 점은 없었어? 병사들이 많이 이동했다거나 뭔가 다른 배나
차량이 온 적은 없어?"
" 배들은 움직인 적이 없고 군용 트럭이나 SUV 몇 대가 움직인 적은 있어요.
아! 그리고 요새 자주 드론이 왔다 갔다 하던데요?"
" 드론? 저그의 그 드론?"
" 뭔 소리야? 무인 항공기를 말하는 건데. 앵? 은혜는 드론이란 단어도 알아?"
" 뭐. 영화도 많이 봤으니까요."
은혜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보통은 드론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여자는 흔치 않았다.
" 이래서 병사를 철수시켰군. 드론이 있으니 우리를 감시하기 위함이라면 저
방법도 괜찮지."
" 어라? 드론이 작동될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나?"
" 응? 나아졌다니?"
" 우리나라에는 내가 알기로는 저런 군용 드론이 없는 걸로 아는데?"
" 방송용 카메라를 장착한 모델이라면 모를까 지금 저기를 날아가는 녀석은
상당한 무장까지 하고 있는 모델인데.."
" 서..설마 이쪽으로 미사일을 쏘지는 않겠지?"
멀리서 날아가는 드론으로 보며 재효가 겁에 질려 말을 했지만 방향을 보아하니 우리 쪽은 아닌 것 같았다. 인력 정찰보다는 드론 정찰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드론까지 운용할 정도가 됐다면 군은 지금 꽤 안정권으로 들어갔다는 말이다. 전투기에 헬기까지 운용되는 상황에 생각해보면 감염체 제거속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 아직까지도 인력을 투입해서 감염체를 제거하는 것이 의아했다.
" 콰앙!!"
" 저래서 제대로 운용이 안 되는 상황이었군."
잘 날아가던 드론은 감염 비둘기를 만났고 미사일 몇 발을 날렸지만 결국은 비둘기와 충돌하며 그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하긴 숫자에서 밀리는 상황이니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 그나저나 식량은 얼마나 남았어?"
" 잘해야.. 일주일치."
" 뭐?! 그 많던 식량이 일주일치만 남았다고?"
" 보급은 엉망인데 아무리 아껴먹는다고 해도 소모되는 양이 있단 말야.
그리고 우리 외부로 나가 수색을 한 것도 오래됐어. 당연한 결과야.
다행히 지금까지 모아둔 양이 있었으니 버텼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린
진즉에 굶어 죽었어."
" 빌어먹을.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나 뭐 그런 건?"
" 한계가 있어. 여기가 바다도 아니고."
" 나가봐야 하나.."
" 우리를 지키는 인원은 둘째로 쳐도 우리가 나간다고 해도 이동할 차량도
없고 차량이 없다면 옮겨올 식량의 양이 한정되어 더 많이 나갔다 와야
한다고."
내 말에 기태가 말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아무리 그래도 나가 봐야해. 구해오는 양이 적다고 해도 우리가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양을 구해야 앞으로 편해지지."
" 박 중사 오빠가 오네요?"
" 응?"
고수부지 한 곳에서 걸어오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을 보고 은혜가 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중사가 배로 걸어 들어왔고 손에는 더블 백을 들고 있었다.
" 그건 뭐야?"
" 식량."
" 응?? 웬 식량?"
" 어제야 가까스로 보급이 들어왔고 너희 일행에게 지급되는 식량이야.
일주일 양이니 아껴먹어."
" 이게 일주일 양이라고? 이게?"
" 어쩔 수 없어. 저번 주만 식량 보급 차량과 탄약 보급 차량 반 정도가 피해를
봐서 양이 줄었단 말야."
" 하아.."
" 그래서 우리 앞에 감시하는 인원이 줄어들었군."
기태의 말에 박 중사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 맞아. 윗분들이 전부 너희를 가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누군가는 너희에게
관심도 없는데 굳이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 다행이네. 반대파가 이겼다는 소리군."
" 라기보단.. 인력이 너무 모자라서 그런 거야. 아직은 최소한의 인력이 너희에게
배치되어 있어."
" 이거나 저거나."
" 그럼 우리 이제 나갈 수 있는 거예요?"
" 응. 재원이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예전처럼 생활은 가능해. 단
재원이가 구역을 벗어난다면 최소한 저기 있는 인원 중 2명은 대동하고 움직
여야해."
" 번거롭군."
" 야! 이 정도도 내가 위에다 엄청나게 고집 부려서 얻은 거야!"
" 고맙다고. 화를 내긴."
내 말에 박 중사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 나갈 수 있으면 뭐해. 차가 없잖아."
재효가 투덜거리며 말을 했고 박 중사는 주머니를 뒤지고는 차 키를 꺼내고는 기태에게 던지며 말했다.
" 좋은 차는 아니고 트럭이야. 터널 지나면 바로 세워져 있으니 구역 벗어날 EO
꼭 병사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다녀."
" 우리가 구한 식량이나 물건도 나눠줘야 하냐?"
" 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친하게 지내야 너희도 편하지 않겠냐? 제들이
뭔 죄가 있다고 그렇게 괴롭혀?"
" 성격이 배배 꼬여서 그래."
" 지는!"
재효 말에 내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고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웃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박 중사가 알려준 주차 위치로 가서 차량을 확인했다. 차량은 일반 트럭에서 뒷좌석이 추가된 모델이었다. 나와 기태가 나가기로 했고 박 중사가 말한 인원이 우리와 같이 이동을 하게 되었다.
" 누구랑 같이 살아 남았나요?"
기태가 우리를 감시하는 인원과 친해지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전 사태 발발 때 군에 있었습니다. 소대에서도 저 혼자 살아남았죠."
" 아..."
" 운이 좋았습니다. 연대 전체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져 이동하던 중간에 공격을
받았죠. 마침 버려진 차량도 있어서 소대 인원과 이동하던 중에 사고가 나서
감염체의 공격에 죽은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로 죽었죠."
" 다행히 살아남았군요."
" 과연 다행일까요.."
병사는 암울한 표정으로 이야기 했고 덕분에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구역을 벗어나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 왜 이쪽으로 가는 거야?"
" 예전에 내가 살았던 동네야. 주거지역이라 마트나 식량을 구할 곳도 많고
이런저런 매장들이 많아 쓸만한 물건들이 많을 거야."
" 하지만 사태 초반에 전부 털렸을텐데?"
" 전부는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도망친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사에
있던 시간이고 인구에 비례하게 마트들이 생기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운전을 하며 말을 했고 트럭은 빠르게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얼마 후 차량은 서울 경계선에 있는 동네에 도착했고 천천히 도로를 달리며 작은 구멍가게라도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 아파트 단지에 있는 마트다. 저기 가보자."
" 그래."
오래된 아파트 상가에 있는 슈퍼에 들어갔지만 이미 탈탈 털리고 남은 것도 없었다.
" 뭐.. 예상했던 모습인데?"
" 그래도.. 캔은 몇 개 있네?"
바닥에 굴러다니는 참치 캔 한 개와 번데기 캔 서너 개를 잡고 내가 말했다.
" 다른 곳으로 가보자."
" 여기 옷 가게가 있네. 옷들 좀 챙겨가자."
" 빨리 챙겨가자."
나와 기태는 서둘러 옷을 챙겼고 다음 장소로 가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찰라 거리를 가득 메운 감염체가 보였다.
" 워... 빌어먹을..."
" 젠장.. 언제 온 거야? 몰랐냐?"
기태와 내가 있었는데 저 정도 숫자의 감염체가 몰려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 재활용 감염체군."
" 응?"
" 어.. 그래서 몰랐던 건가?"
" 아직 익숙한 존재가 아니라 감각에 잡히지 않았나?"
" 숙여! 감염 비둘기!! 들어가! 들어가!!"
기태가 멀리서 다가오는 비둘기를 보고 소리쳤다. 비둘기들의 목표는 재활용 감염체로 보였다. 수백의 감염체는 도로 위의 감염체를 청소기로 밀듯이 밀려 들어왔고 순식간에 재활용 감염체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고급 승용차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재활용 감염체가 있었던 곳을 살피며 뭔가를 적고 있었다.
" 뭔가..냄새가 나는데?"
" 가서 잡아?"
" 그럴 필요까지야. 그냥 지켜보자."
" 도대체 뭘 수집하는 걸까?"
" 다른 감염체를 만들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 아닐까요?"
" 다음번에는 하늘을 나는 감염체가 나올지 누가 알아요?"
" 돌겠군."
" 이제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
30여분이 지나 감염 비둘기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다음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안전 구역도 아닌 곳인데 곳곳에서 생존자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이곳은 아직까지는 구역이 설치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안정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구역이 설치되지 못 한 이유는 아파트 단지가 너무 많아
설치가 힘든 것도 있습니다. 최신식 아파트보다 옛날 아파트가 많아 방어가
힘든 곳이라."
" 하긴 예전 아파트라면 담벼락도 낮고 복도식에 접근이 쉬워 감염체가 많을
확률이 높죠.
" 돌아가자."
" 응? 왜? 아직 다른 곳도 보지도 않았는데?"
기태의 말에 내가 의문을 갖고 말을 했다. 이제 겨우 한 곳을 살폈는데 돌아가자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