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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기태는 약간 생각에 빠지고는 말을 했다.
" 생존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 그렇다는 말은 이 지역에 있는 마트는 이미
털리고 남은게 없다는 말이지."
" 맞는 말이군."
박 중사가 기태의 말에 동의했다. 생각해보면 여기 생존자들은 우리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 돌아가죠. 이제 곧 있으면 해가 집니다."
" 가자.."
우리는 결국 몇 개의 통조림과 옷을 챙기고 복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 다녀왔어요?"
" 응. 별일 없었어?"
내가 배로 돌아가 방으로 들어가자 책을 읽고 있던 은혜가 물었다. 이제는 해가 져도 한참은 높아진 기온을 낮추지 못해 꽤 더웠다. 덕분에 아무도 없는 우리 방에서의 은혜의 복장은 상당했다.
" 또! 또!!"
내 눈 빛을 읽은 은혜가 얇은 이불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요새 밤에 제대로 잔 적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격하게 사랑은 나눴다. 덕분에 은혜는 항상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게 되었다.
" 오늘은 그냥 자야 돼요! "
" 알았다고! 알았어!"
내 확답을 받고야 은혜는 다시 시야를 책으로 옮겼다. 한 번 책을 읽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은혜의 습관을 알았기에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 끄아아..."
" 좀 참아요!"
침대에 누워 은혜의 마사지를 받고 있자니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어쩜 저리 아픈 곳을 잘 아는지 감염체와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든 고통이 몰려왔다. 주사 바늘도 들어가지 않는 육체로 변했지만 은혜의 손길에는 효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 크아.. 시원하다.."
" 풋.."
내 표정을 보고 은혜가 살짝 웃는 모습이 보였고 그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다시 참았던 욕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 안돼요.. 안돼... 워..워.."
은혜는 내 등에 앉아 힘을 주고 나를 진정시켰다. 우리는 서로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시작했고 한참을 장난친 후에야 기운이 빠져 침대에 누웠다.
" 하아...헤헤.."
숨에 헐떡거리며 침대에 눕는 은혜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은혜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은혜는 언제나 그랬듯이 내 품에 파고들며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 쾅! 쾅! 쾅!!"
" 응??"
아침부터 내 방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은혜도 옷을 챙겨 입고는 무슨 일인지 같이 나가봤다.
" 박 중사?"
" 왜 그래요? 아침부터?"
은혜도 아침 댓바람부터 난리를 치는 통에 약간은 짜증이 난 보였다.
" 배..배.."
" 응? 뭔 소리야?"
숙소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는지 숨이 넘어갈듯 했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난 은혜에게 물을 한 잔 떠오라고 부탁을 하고 박 중사를 다시 바라봤다.
" 배에!! 시동 걸어!! 빨리 여기서 벗어나!!"
" 뭐..뭔?!"
" 무슨 일이예요?"
박 중사의 소란을 들은 다른 일행들이 우리 방 앞으로 몰려들었고 박 중사는 숨을 고른 후 다시 소리쳤다.
" 한 시간.. 후에 강북 지역에 대규모 폭격이 이뤄질 예정이야. 여기서 있는
것은 위험하니 빨리 이동해!"
" 갑자기 웬 폭격이야? 지금까지 멀쩡히 있다가?"
" 강북 지역에 대규모 감염 비둘기 서식지가 발견되었다는 정보야. 녀석들의
번식 속도가 엄청나서 미리 정리할 계획이야."
" 그런 계획을 여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공격을 감행해?"
" 지금 알리러 왔잖아! 어서 시동 걸어!"
" 시동을 건다고 해도 어디로 가라고!!"
" 그냥 저기 말고 반대편으로 가!!"
박 중사의 말에 기태와 박 중사는 바로 배에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운전으로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속력은 꽤 나오는 상황이었다. 다리의 대부분이 무너졌으니 상판에 닿을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앞에 막힌 장애물도 별로 없는 상황에 기태와 박 중사는 열심히 배를 운항하고 있었다.
" 강북지역에 생존자들은 어쩌고 폭격을 하는 거야?"
" 얼마 전부터 강북지역에 폭격이 있을 것이라고 항공으로 전단을 뿌렸다던데?"
내 물음에 박 중사가 대답을 하였다. 하지만 박 중사의 대답은 크게 신용하지 못할 대답이었다.
" 말이 되는 소리 하라고 해라. 얼마 전부터 뜨는 족족 비둘기한테 격추 당한
주재에 무슨 항공 살포야?"
" 풍선을 이용해서 뿌린 것 아닐까요?"
" 풍향도 멋대로인 상황에 뭐하러 그런 짓을 할까?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지."
" 그럼 설마 생존자가 있는데 그 위로 그냥 폭격을 한다고요?"
내 말에 은혜가 놀라며 이야기 했다. 아무리가 비둘기가 무섭다고 해도 아직 강북지역에는 상당한 숫자의 생존자들이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소이탄을 사용해서 비둘기를 제거할 계획이야."
" 소이탄이라.. 강북지역은 며칠 동안 불바다가 되겠군."
" 일반 폭탄보다는 그래도 건물이나 도로에 피해를 덜 주니 당연한 방법인가?"
재효에 말에 나는 다른 의견을 냈다.
" 재효야. 소이탄을 대량으로 사용한다면 진짜 강북지역은 전부 타버릴지도 몰라.
그게 얼마나 잔인한 녀석들인데."
" 그 정도에요?"
" 뭐 과장 조금 더 한다면 물속에서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 그런 폭탄을 생존자들이 있는 곳에 사용한다고요?"
아무리 세상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예고도 없이 너무 잔인한 짓을 하고 있었다.
" 그냥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고 우선은 비둘기들이 있는 곳을 흔들어
비둘기들이 날아오르면 그 때 폭죽 비슷하게 터뜨린다고 하더라."
" 너도 정확히 아는 내용이 없구나."
" 응. 이 사실도 대령님이 조금 전에 무전으로 주셔서 급하게 온거야."
" 그런 폭탄인데 왜 우리가 도망 가야해?"
" 공격 루트 길목에 너희가 위치해 있으니까."
" 아.."
30분을 넘게 달려 안정권에 접어들었는지 한적한 곳에 배를 정지시키고 박 중사는 주변을 살폈다.
" 왜 그래?"
" 흐음.. 혹시나 하고."
" 설마 감시 인원이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육로로 오기에는 쉽지 않을걸?"
" 그리고 감시하면 어때요. 이제는 익숙해서 괜찮아요."
은혜가 비치 의자에 핑크와 함께 앉으며 말했다. 이제는 너무 감시를 받아서 인지 대수롭지 않았다. 배 위에서 일행들만 없으면 농도 짙은 스킨쉽도 나누게 된 우리였다.
" 혹시 모르니 무기도 준비해놔."
" 너무 큰 걱정..."
" 쿵!!"
" 허..."
멀리서 약한 폭음이 들려왔고 그 소리가 나자 갑자기 한쪽 하늘이 어두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 뭐..뭐지?"
" 서..설마... 저.... 말도.."
어두워진 하늘은 날아오른 감염 비둘기로 인한 모습이었다.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망원경을 이용해 날아오른 비둘기를 봤다.
" 아직 새끼도 있나봐?"
" 응? 새끼?"
" 저게.. 새끼면 다 큰 녀석은 얼마나 크다는 거냐?"
" 봐!!"
날아오른 비둘기 사이로 미사일 몇 개가 날아들었고 미상일은 공중에서 터지며 온 사방에 작은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워..."
날개며 몸통에 불이 붙은 비둘기들은 그대로 땅에 추락하기 시작했고 아직 추락하지 않은 녀석들도 추락하지 않기 위해 쉴새 없이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 하지만... 생각보다 죽은 숫자가 얼마 없는데?"
" 젠장..."
꽤 큰 미사일이었지만 뿜어져 나온 불꽃의 크기가 미약했는지 반 이상이 다시 날아올랐다.
" 그래도 지금까지 한 작전 중에 가장 작전다운 작전이네. 저렇다면 생존자들이
건물에만 있으면 최소한 죽지는 않겠다."
" 잔인한 모습인데... 불꽃은 예쁘다."
미란이의 말에 다들 말없이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비둘기들이 타면서 땅에 떨어지고 있었지만 멀리서 본다면 그냥 화려한 불꽃이 터지는 모습에 불과하였으니 말이다.
" 언제까지 할 생각이지?"
" 글쎄.."
" 치직...치직.."
" 박 중사 무전오는데?"
" 응?!! 어..."
이어폰에서 박 중사를 찾는 무전이 들려왔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박 중사에게 말을 해줬다. 무전을 듣던 박 중사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 왜 그래? 이번에는 또 뭔데?"
" 갈수록 태산인거야?"
" 대형 감염체..."
" 응?"
" 변종 대형 감염체 수 만이 지금 구역을 항해 오고 있다는 무전이야."
" 뭐!!"
" 뭐라고욧?!"
" 어째서 지금.."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혔다. 다들 감염 비둘기 제거 작업에 투입되어 요새는 뜸했던 변종 감염체의 공격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 진짜 대단한데? "
" 타이밍.. 한 번.."
" 우리와 상관없는 상황인데... 방에 들어가서 쉬자."
" 뭐?"
내 말에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날 봤고 나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 우리 지금 물 위에 떠있어. 감염체는 수영을 못 한다고. 그러니 최소한
감염체의 공격을 받지는 않는 다는 사실이지."
" 하지만 여기가 또 무너진다면 우린 더 이상 갈 곳도 없는데?"
재효가 불안한 듯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웃으며 말했다.
" 걱정 하지마. 지금 쳐 들어온 변종 감염체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니까."
" 응?"
" 뭐?"
박 중사와 기태가 동시에 물었고 나는 은혜 옆에 앉은 핑크와 은혜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말했다.
" 아마. 지금 오는 대형 감염체. 목표가 감염 비둘기일 것 같아."
" 무슨 근거로?"
" 저 근거로."
강북 지역에서 날아오른 감염 비둘기들은 어느 한 곳으로 집중하여 모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활강했다. 보통 활강해서 다시 올라오는 모습을 보인 비둘기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렵사리 다시 하늘로 올라가도 목이나 다리에 매달려 있는 대형 감염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설마?"
" 그 집단에는 아마 이런 변종 동물 감염체가 나올 것을 예상했나보지. 그러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이 가능하겠지."
내 말에 다들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솔직히 나도 몰랐다. 그냥 찍은건데 정말 맞을 줄이야. 특히나 은혜가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누가 알리오. 내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