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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비가 계속 해서 내리고 있는 하늘을 보고 잠시 나와 담배를 폈다. 기태도 같이 나와 담배를 피려고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여름답지 않은 바람이 우리 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 으... 추워.."
" 말이 돼? 지금이 어느 계절인데 이런 날시야?"
" 전에도 그랬잖아. 비만 오면 무서울 정도로 기온이 낮아지는걸?"
물론 비만 오면 기온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3번 중 1번은 이렇게 기온이 뚝뚝 떨어졌다. 그냥 느낌일 수 있지만 오늘따라 더 추운 것 같았다.
" 와.. 여름이라서 그런가 더 춥게 느껴지네."
"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고 있어."
" 뭐..?"
외부에 설치된 온도계를 보니 이미 10도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 더워서 헥헥 거리던 시간이 있었는데 적응할 틈도 없이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 이러나 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
" 눈까지는 무리겠지만.. 조만간에 거의 0도 가깝게 떨어질 것 같은데."
" 하아.."
담배를 하나 다 피기도 전에 온도는 벌써 1도가 떨어졌고 세차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지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진짜 눈이 내릴지도 몰랐다.
물론 눈이 내린다면 진짜 말도 안되는 상황이니 생각일 뿐이었다.
" 어서 들어가자."
" 으으으으..."
우리 둘은 덜덜 떨며 배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인원에게 밖의 상황을 말했다.
" 아..또 시작이군요."
" 저번에도 엄청 고생한 것 같은데."
기온이 떨어지면 당연히 여러모로 제약이 심하다. 더군다나 이런 갑작스런 기온 변화는 체력전을 요구하는 지금 상황에 감기라도 걸렸다간 큰 손해였다.
" 다른 방에 남는 이불을 가져오자."
" 오늘은 버티겠지."
" 우선 여분의 이불은 여기 둘게. 그러니 너무 추우면 다들 챙겨가."
" 치직.. 치직.."
" 응?"
재효와 내가 이불을 챙기고 있던 중 기태가 들고 있는 무전에서 말이 들렸다. 저 무전기는 우리와 박 중사를 연결해 주는 무전기였다.
" 치직. 왜?!"
" 치직.. 너희 남는 침구류 있냐?"
" 치직.. 뭐?!"
박 중사의 무전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아니 어째보면 예상했을지도.
" 치직.. 우리 급하게 나오느라 침구류를 챙겨오지 못했다는데 너무 추워서 잘
수가 없어. 혹시 남는 침구류 있나해서."
" 치직.. 배는 언제 들어오는데?"
" 치직.. 적어도 일주일은 걸리나봐. 정확한 날짜는 몰라. 젠장. 도착해야 도착
하는 거란다."
" 참네.."
박 중사의 무전을 듣고 있다 어이가 없어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군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기태야 그냥 병사들 데리고 여기로 오라 그래. 어차피 거실도 넓고 남는 방도
있으니 며칠이라도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은 없을 거야."
" 그래요. 그 건물에서 이런 날씨를 버티기에는 힘들 것 같아요."
내 말에 은혜도 찬성하였고 곧이어 모든 인원이 찬성을 하였다.
" 치직.. 박 중사! 박 중사!"
" 치직.. 왜?"
" 치직.. 그냥 병사들이라 다 같이 여기서 생활했다가 나중에 배가 들어오면
그때 나가."
" 치직.. 그래도 되냐?"
" 치직.. 어쩔 수 없잖아? 지금 이런 날씨에 거기서 버티기도 힘들텐데."
" 치직.. 고맙다. 짐 챙겨서 바로 갈게."
" 치직. 응."
박 중사의 목소리로 보아 정말 고마워하는 것이 느껴졌고 우리는 추가 인원을 받을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박 중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정말 밖에 눈이 올 정도로 추워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거실에 있는 벽난로를 가동할 지경까지 오게되었다.
" 젠장.. 한 여름에 벽난로를 쓸 줄이야."
" 말이 되냐."
" 그래도 마른 나무가 있어서 다행이네."
다들 거실에 모여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원이 늘어났으니 다행히 근무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자들은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약간은 불편한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보일러를 가동할 수도 없었다. 이 큰 배를 데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양의 기름이 소모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애들 덕분에 박 중사가 데려온 인원들은 몰래 몰래 곁눈질로 은혜와 미란이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저 나이에 지금 환경에 어쩔 수 없는 수컷의 본능이라 생각했다. 물론 저들도 박 중사에게 내 성격을 들었으니 괜히 밉보였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테니 괜한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 뭐가 죄송합니까. 이런 상황에 서로 돕고 살아야죠. 덕분에 저희도 근무도
편해지고 인원이 많으니 조금은 더 빨리 따뜻해지겠죠."
" 여기 차 드세요."
" 와! 커피도 있습니까?"
" 네! 아직 많이 남았으니 마음껏 드세요."
미란이와 은혜가 내어온 다과에 병사들은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저들 입장에서는 정말 몇 달 만에 먹어보는 특식이었을 것이다. 박 중사는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고 기태는 근무를 서는 순서를 짜서 우리에게 알려줬다. 하지만 밖이 너무 바람이 차고 강하게 불어 외부에서 근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 이 상황에 밖에서 섰다간 진짜 돌아버릴걸?"
" 우선 이 배 여기와 여기에서 이쪽 방향 정찰이 가능하니 이 방하고 이 방을
돌면서 외부를 감시하자."
" 아래층은 이 방향과 이 방향이 가능하니..."
우리는 가능한 사각지대가 없이 순찰을 위한 루트를 만들었고 간단하게 적은 종이를 가지고 교대시간에 맞춰 인수인계를 하기로 했다. 거실에 모여 누워 여러 사람이 잠을 자는 상황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감염체 사태 이후 우리의 생활은 솔직히 호화 그 자체였다. 남들은 제대로 된 차량도 없이 이동할 때 카라반을 이용하여 이동했고 그 후에 미국을 거쳐 생존자 캠프에서도 꽤 안락한 공간에서 생활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섬에서도 여기 온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는 호화스러운 보트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 진짜.. 신이 내린 운인가."
" 뭐가?"
"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상황이 정말 부족함 없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효의 말에 내가 대답을 했다. 재효도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 하긴.. 진짜 우린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여기까지 왔네."
" 중간에 위기는 있었지만.. 고생은 별로 없었네요."
" 그렇지?"
옆에서 듣고 있던 은혜도 말을 했다.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익숙해지다 보니 잊어버렸던 것이다.
" 앞으로 더 고생길이 훤하니..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미란이의 말에 다들 말없이 자리를 잡고 이불을 덮었다. 꽤 큰 거실이었지만 벽난로에 많은 사람으로 인해 크게 춥지는 않았다. 혹시나 해서 원래 우리 방으로 들어가 봤는데 정말 둘이 잤다간 거짓말 조금 보태서 동사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은혜의 체온을 느끼며 오늘은 조용히 잠을 청했다.
" 휘이이잉!!!"
" 이렇다 토하겠다."
하지만 제대로 잠을 자는 사람은 몇 없었다. 엄청난 바람소리와 강에서 파도치듯 흔들리는 물결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없는 사람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 와.. 재원이는 이 상황에서 잠이 오나?"
" 저 녀석 자기한테 피해만 없다면 계속 잘 수 있는 놈이야."
" 정말 부러운 능력이야."
다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내 수면이었다.
" 다 듣고 있으면서도 자는 진짜 엄청난 녀석."
기태 저 녀석. 절대 적이 되면 안 되는 녀석 중에 한 녀석이다.
" 일어나셨습니까?"
마실 물을 찾아 주방에 가니 병사 몇 명이 요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 네..진짜 바람이 많이 부네요."
" 네.. 살아생전 이런 바람은 처음인데요."
" 그나저나.. 이건..?
" 아.. 아침에 운동 삼아 밖에 나갔다 뛰어 노는 닭이 몇 마리 보이길래.."
" 이런 날씨에 운동을 갔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고 이런 날씨에 닭이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요?"
내 말에 병사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실은 저희가 몰래 키우던 닭인데.. 박 중사님이 아시면 곤란해서.."
" 그런가요? 그럼 저희 냉장고에 있었다고 해요."
" 그래도 믿으실까요?"
" 뭐 안 믿으면 어쩝니까? 그냥 그래야지."
" 네.."
병사들은 뭘 만드는지 몰라도 꽤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나왔고 꽤 기대되는 아침이었다.
병사들은 닭죽을 끓여 우리에게 대접했다. 생각보다 맛이 뛰어났고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한 병사들은 순식간에 영웅 대접을 받았고 그 닭의 출처를 아는 박 중사도 묵묵하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 뭐 크게 문제될 것도 없는데 용서해줘."
" 하지만 우리가 허락 없이 뭔가를 키우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 야! 우리가 무슨 공산 국가도 아니고! 제대로 보급이 나오지도 않는데 다른
방책을 마련하는건 당연한 건데 뭘 그런걸.."
" 하아.. 그래.."
" 자기도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 그래그래!!"
" 그나저나 이 바람은 언제 그치나? 진짜 멀미하다 토할 것 같아."
" 너.. 지금 그게 토할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냐?"
아무렇지 않은 내 표정으로 보고 박 중사가 말을 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기태와 재효. 미란이와 은혜 보미는 모두 멀리로 침대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
병사 몇 명도 같은 상황이라 지금은 최소한의 인원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 치직.. 거동 수상자 접근중. 거동 수상자 점근중."
" 응?!"
" 누가? 이런 날씨에? 여길?"
우리는 무전을 받고 즉시 방으로 올라가 외부가 보이는 창문에 망원경으로 밖을 살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불구하고 몇 사람이 망토를 걸치고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낯설지 않은 망토. 그 모습을 보고 나와 박 중사는 서로를 바라봤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설마.. 이렇게 빨리 우리를 찾았단 말야?"
" 그 집단이 아닐 수도 있어. 정말 그냥 지나가거나 다른 생존자일 수도 있어."
" 방형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 저.. 박 중사님..?"
" 전 인원 전투 준비."
" 알겠습니다."
박 중사의 말을 들은 병사는 배멀리로 골골되는 인원을 깨우러 갔고 잠시 후 무장을 마친 병사들이 방으로 모여들었다.
" 우선 내가 나가볼게. 만약 저들이 진짜 마음 먹고 왔다면 지금 이 인원으로
힘들어."
" 괜찮겠냐?"
" 우선 나가서 시간이라도 끌어볼게. 그러니 준비하고 있어."
" 알았어."
난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무기를 챙겨 나갔다. 무기는 소총이 아닌 예전에 만든 창을 가지고 나갔고 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자 세 명의 거동 수상자는 멈춰섰다.
" 역시..."
" 오오! 이게 누구십니까?"
얼마 전 이단자 집단에서 마주친 그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 여기 어떻게 오신 겁니까?"
" 예전에 재원씨 일행도 저희 구역에 오셨으니 저희도 한 번 놀러와 봤습니다."
' 내 이름을 알고 있다라...'
알려 준적도 없는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 연관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우리의 전력을 아는지 세 명이 온 것은 분명 어딘가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상황이었다.
" 그럼 둘러보고 가시죠. 저는 바빠서 이만.."
" 아!! 그냥 보내시는 겁니까? 배 구경도 안 시켜주십니까? 꽤 좋아보이는데?"
" 거부합니다. 그 덩치로는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 허허.."
세 명다 족히 3m는 넘는 키에 헐크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긴장하며 그들을 바라봤고 의외로 세 명다 별다른 반항 없이 돌아갔다.
" 그런가요? 하긴.. 소중한 집이니 조금 그렇군요. 그럼 돌아가죠. 다음을
기다하겠습니다."
" 다음은.. 없었으면 하군요."
" 뭐.. 그럼 저희 인연은 여기서 끝인가보죠."
명백한 경고 행동이었다. 우리가 어디를 가도 자신들은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우리와 붙는다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더군다나 그 때 우리와 이야기 했던 존재와 비슷한 존재가 둘이나 더 있었다. 가뜩이나 하나도 괴로운 상황에 최소한 둘 이상인 상황은 우리에게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돌아서서 멀어지는 그들의 자취가 완전히 내 감각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지켜봤다.